금지된 사랑, 동성애를 위한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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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리 (218.♡.76.116) 댓글 11건 조회 5,834회 작성일 07-05-03 16:26본문
동물학자들이 자주 상기시키듯, 성애(性愛)의 수준에서 인류는 다른 동물들과 또렷이 구분된다.
다른 동물들이 특정한 시기에만 성욕을 느낄 뿐 그 나머지 삶을 섹스와 무관하게 보내는 데 견주어,
인간은 섹스에 대하여 ‘늘 준비된 상태’다.
인간은 섹스 안에서 즐거움과 재생산을 분리시키는 유일한 동물이다.
동서양의 여러 종교나 세속 권력이 성과 관련된 갖가지 규범들을 만들어 낸 것은
인간이 이렇게 ‘늘 준비된 상태’인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 규범들은 대체로 이상적인 섹스를 ‘재생산을 위한 섹스’의 범주 안에 가두었다. ‘
즐거움을 위한 섹스’는 극단적인 경우에 금지되었고, 적어도 널리 장려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즐거움을 위한 섹스’의 해방은 인간의 적극적 진화 방향과 일치한다.
인간을 생물학적 제약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그 새롭게 획득된 자유를 적절히 사용할 수만 있다면, 예외 없이 진보이기 때문이다.
재생산과 완전히 분리된 섹스,
오로지 즐거움만을 위한 섹스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동성애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근친상간 이상으로 강력한 금지 하에 놓인 사랑이다.
동성애의 역사는, 이성애의 역사만큼은 아닐지라도, 오래고 오랜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흔히 자신들의 기록된 역사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시인 사포에게까지 끌어 올린다.
그러나 그들만이 이름난 동성애자인 것은 아니다.
미국 바사 대학의 영문학 교수 폴 러셀은
<게이 100-가장 영향력이 컸던 게이들과 레즈비언들의 랭킹, 과거와 형재>(1995)라는
책에서 역사 속의 중요한 동성애자 100사람의 생애를 요약하고 있다.
이 리스트에는 소크라테스와 사포는 물론이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아르튀르 랭보, 폴 베를렌,오스카 와일드, 버지니아 울프, 마거리트, 미드, 루스 베네딕트, 앙드레 지드, 미셀 푸코, 앤디 워홀, 존 케이지, 엘런 긴즈버그 등 인류 문화사에서 자기 자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빼어난 이름들이 포함돼 있다.
그러니까 동성애자는, 비록 성적 소수파이기는 하지만, 역사 속에서 늘 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동성애를 이유로 투옥되기까지 한 오스카 와일드의 예에서 보듯 동성애자들은,
고대 그리스를 비롯한 몇몇 사회를 제외하면, 늘 주류 사회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조직적인 동성애자 해방 운동의 첫 걸음을 내딛은 사람은
마그누스 히르쉬펠트라는 독일인이었다.
독인 사민당의 당원이었던 그는,
1897년에 최초의 게이 권리 조직인 ‘과학-인도주의 위원히’를 만들었다.
히르쉬펠트는 동성애자들이 생물학적으로 이성애자들과 다르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에
동성애자 해방의 열쇠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만 여명의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동성애에 대한 자료를 모은 뒤,
그것을 기초로 동성애자들은 이성애 남성과 여성과는 다른,
오히려 그들끼리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제3의 성이라는 가설을 내세웠다.
그는 동성애자가 자연에 의해 형성된 인류의 변종일 뿐이며
그래서 그들의 성적 행동이 비윤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들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이론적 모험이었다.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들과 유전학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면책’의 사유도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 차별과 배제의 근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치의 인종주의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마찬가지 논리로 동성애자들에게도 ‘열등 인간’의 족쇄가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나치 휘하에서 게이 조직은 대대적인 탄압을 받았고,
게이 운동 지도자들은 유태인들과 함께 수용소행 열차를 탔다.
얄궂게도 그것은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혁명 뒤에 차별에서 잠시 해방되었던 동성애자들은,
1934년에 동서애를 포함한 ‘성적 일탈 행위’가 범죄 행위로 규정 되면서
줄줄이 형사 처벌을 받았다.
전체주의 사회가 소수파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체주의의 정의에서 도출되는 자명한 진리다.
그러나 서유럽이나 북아메리카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동성애자들은 법률적
차별과 사회의 편견에 계속 시달려 왔다.
동성애자 행방 운동이 새롭게 힘을 얻은 것은 1960년대 말이다.
1969년 6월 28일 그리니치 빌리지의 동성애자 전용 술집 스톤월에 대한 뉴욕 경찰의 습격은
동성애자들의 폭동을 촉발시켰고,
몇 주 후에 뉴욕의 게이들과 레즈비언들은 ‘게이 해방전선’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힘을 통한 동성애자 해방을 선언했다.
1990년대 초 미국과 영국에서는 ‘퀴어 네이션’과 ‘분노!’라는 동성애 단체가 각각 만들어졌고,
1994년에는 20여만명이 ‘런던 동성애자 긍지 축제’에 참여했다.
동성애자들의 축제 시위는 그 이후 도시를 바꿔가며 이어졌다.
지난 세기의 후반 50년 동안 이밖에도 미국의 ‘마타신 회’(1950)와
‘빌리티스의 딸들’(1955), 유럽의 ‘문화 및 오락 센터’(1966)등
수많은 동성애자 조직이 생겨났고,크고 작은 시위가 조직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세계 대부분이 나라에서 동성애자들은 떳떳하지 못하다.
동성끼리의 성행위만이 아니라 공공 장소에서의 입맞춤까지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동성끼리의 결혼은 아직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유럽이나 미국에서조차 게이 파티는 그 ‘난잡함’을 이유롷 흔히 결찰의 단속 대상이 된다.
고용이나 사회 보장에서 동성애자들은 커다란 차별을 받고 있다.
1967년 동서애 금지법을 폐지한 영국에서도 동성애자들은 교사나 외교관이 될 수 없다. 언론들도 동성애에 대해서 대체로 부정적이다.
에이즈와 관련된 편견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심리적, 물리적 박해를 더 강화시켰다.
동성애적 성향이 생물학적인 것이듯 사회적으로 습득된 것이든,
그것은 결국 개인들의 성적 취향일 뿐이다.
동성애는 합리적 이유로 형법의 제재를 받고 있는
‘어린이 성애(페도필리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적 구성 요소가 자유와 평등이라면,
그리고 그것의 심리적 기반이 너그러움이라면,
동성애자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법적 차별과 관습적 편견은 부당한 것이다.
다른 취향에 대한 너그러움과 개인의 영역에 대한 불간섭이 한 사회의 에토스로 자리잡을 때,
동성애자들과 이성애자들은 서로를 무심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는 지금의 가족 제도가 견고히 남아 있는 한, 동성애자들의 소외와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은 여성 해방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자 해방도 가족의 미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뜻한다.(고종석. 2000. 1. 12)
댓글목록
정리님의 댓글
정리 아이피 (218.♡.76.116) 작성일
요즘 읽고 있는 책, 고종석 님의 코드 훔치기에서 한대목을 발췌 해 봤습니다.
(타자 치느라 조금 수고 했습니다. 오타도 있으나 양해 해 주세요..)
이 시대의 탁월한 문장가 이시기도 하지만, 문장만 좋다고 논리만 좋다고 내용이 다 좋을 수는 없지요..
기본적으로 고종석 님은 극단적 개인주의자이시기도 하지만
(개인주의여, 영원하라!..라는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인 내가 불필요한 간섭으로 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구는 곧 너..에게도 같이 적용하는 것이지요.
나와 같이 너도!!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런 글이 나올 수 없음입니다.
(간혹 어떤 경솔한 이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같은 선상에서 놓고 이해를 하더군요...
저는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는 않았지만, 참 개념없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저는 이 글을 읽고 동성애자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적 구성 요소가 자유와 평등이라면,
그리고 그것의 심리적 기반이 너그러움이라면,
동성애자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법적 차별과 관습적 편견은 부당한 것이다. //
이 대목은 동성애자들에게 가졌던 우리 모두의 편견들로 인해 가슴아팠을 그들에게 죄스러움이 올라오더군요.
저는 이 글을 우리 아들들에게 소리내어 읽어 주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느 여가수가 자신의 애인과의 사랑을 나눈 비디오가 시중에 퍼져 완전히 생매장을 당했었죠.
사람들은 그녀를 아주 죽일려고 작정을 했더군요.
비난하는 이유가 하나같이 너무 야하다..어쩌다..그래서 제가 물었죠. 야한지 어떻게 아느냐고.
그랬더니 봤다고 하더군요.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때 나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관음증 체면에 걸린 것 같더군요.
그 이후, 그 여배우가 다시 화면에 나오면서 울면서 사죄를 하더군요...
죄송하다고......
그때, 저는 참 먹고 살기 팍팍하구나...식당에 가서 일이라도 하고 살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암튼, 이런 글을 읽고 자란 우리 아들들은 저런 저급한 관음증 환자는 되지는 않겠지요.
더구나,
//다른 취향에 대한 너그러움과 개인의 영역에 대한 불간섭이 한 사회의 에토스로 자리잡을 때,
동성애자들과 이성애자들은 서로를 무심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 라고 하신 고종석 님의 말씀처럼
다른 취향에 대한 너그러움과 개인의 영역에 대한 불간섭의 아름다운 의식이 그들의 기본 마인드가 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최영훈님의 댓글
최영훈 아이피 (59.♡.167.240) 작성일아! 잘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좀더 성숙해 지려면 정말 다름에 대해 너그러워 저야 합니다.
권보님의 댓글
권보 아이피 (122.♡.11.4) 작성일오래전 미국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깜짝 놀랬드랬습니다. 그들은 동성애자를 삶의 형태중의 하나로 보더군요. 전 지금도 이해가 잘 안되지만 그런 이해로 다름을 인정할 줄 안다는 그가 존경스럽더군요. 아~!! 난 왜 아직 안될까?
김재환님의 댓글
김재환 아이피 (211.♡.174.131) 작성일
글쎄요...
수용한다는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네요.
우리사는 세상의 상식의 경계선상에 있기에 왕따가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동성애또한 이 경계선상에 있기에 통제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법적결혼허용불허등..
얼마전 한 청년의 총기난사 사건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네가 우리를 얼마나 필요로 했는지~' 어떤 분이 써 놓고 간 그를 추모하는 메모는 소통의 단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주더군요.
그와의 소통을 위해선 일이 이렇게 되기전에 적극적으로 그를 통제했어야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받게하고, 상담하고, 대화하고....
노자의 '노래와 소리는 서로 조화된다'라는 말씀이 생각나네요.
질서있는 음의 영역안에서야 비로소 노이즈도 멋진 백그라운드가 될 수 있듯, 일탈스런 모습또한 우리사는 삶의 질서안에서 허용해야 서로 조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동성애자들과의 진정한 소통은 그들에 대한 적절한 통제는 아닐까하고 생각해봅니다.
'동성애는 잘못된 관계다!'
이게 제 생각입니다.
정리님의 댓글
정리 아이피 (218.♡.76.116) 작성일
최영훈 님, 권보 님.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김재환 님, 다른 의견 주셔서 또한 감사하구요.
그렇지요. 소통의 단절에의 고통, 무지막지하겠지요.
고 조승희 군에게 너무도 필요했었던, 치료, 상담, 대화가 '통제'라는 형태로 표현하시는군요.
네...저는 문자적이해로만 접근할려다 보니 조금 혼란이 왔었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 알 듯도 합니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에게, 법적결혼 허용불허라는 시스템을 가동해야만
그들과의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 진다는 말씀이신가요?
귀한 자식, 매 한대 더 때린다는 심정으로요?
김재환 님은 동성애자들에게 허용하는 여러가지 관용이
어쩌면 상식의 세상을 혼란에 빠드릴 수 있는 위험도 있으니
차라리 그들을 위해서도 우리 이성애자들을 위해서도 법적조치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했는데
맞는지요.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일탈스런 모습 또한 허용해야 서로 조화로운 삶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하는
의견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네...다시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사항입니다.
그런데 과연 동성애는 잘못된 관계이기만 하다고 단정지을 수 만은 없더군요, 저 위에 글을 읽구요.
김재환님의 댓글
김재환 아이피 (211.♡.174.131) 작성일
왠지 이 글엔 댓글을 달고 싶다는 충동이 생겨서 몇 자 적었습니다^^
생각해볼만한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구름님의 댓글
구름 아이피 (221.♡.95.114) 작성일
제 생각에는 ..
인간이 인간을 판단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봅니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것은 너무 나 신성한 자유라고 봅니다.인간이기에..그냥 갖고잇는 ..누구도 침해할수업는 심지어 신조차도..간섭할수 없는 천부적 자유 ..
이를 문제 삼는사회가 좀 문제라고 봅니다...
사람님의 댓글
사람 아이피 (211.♡.168.146) 작성일
사람이 누구를 만나서 사는 것은 자유이고 그렇게 사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 우주 삼라만상 모든 종은 종족번식을 위해 섹스를 할때는 반드시 반대성이 필요하다.
우리의 사고가 형성된 배경에는 이것이 바탕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종자가 본연의 본성을 잃어버리고 감각적 만족에 치우치다 보니 같은 성도 그 심리적 허기를 채울수 있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뭐 잘못된 일은 없다. 그렇다고 문제될것도 없다.
그렇다고 눈 두개 달린사람들이 다수인 세상에서 눈 하나 달린 사람이 자기가 완전한 인간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장한다고 해도 누가 인정해 주겠는가?
그냥 눈 두개 달린사람들이 아량으로 그를 같은종으로 끼워주는 수 밖에...
아량만이 해결책이다.
아리랑님의 댓글
아리랑 아이피 (222.♡.115.87) 작성일
내가 살아온 문화는 온몸에 문신처럼 덕지덕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문화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정리님 좋은 글 잘보았습니다.
없을무님의 댓글
없을무 아이피 (58.♡.246.17) 작성일
쾌락보다는 평화를
통제보다는 자유를
평화와자유 속에서
사랑을...
최영훈님의 댓글
최영훈 아이피 (211.♡.138.146) 작성일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대략 1950년대에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의 일종으로보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치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들의 행태에 변화 없음과 뇌 과학의 발전으로 동성애가 정신질환의 분류에서 빠진 해가 불과 30년전 쯤 된다고 하더군요. 동성애가 발생하게 된 조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잘 못된 경우, 성장기의 환경등등. 암튼 그들과 같은 성적 소수자들이 죄의식없이 맘 놓고 자신들의 성적 취향을 즐길 수있는 사회가 오기를 바랍니다. 이 문제는 동성애만의 문제 뿐만 아니라 여러 상황에 놓인 소수자들의 삶의 질의 문제이고 자유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다수자들의 편견을 없애고 그 편견으로 부터 자유로와 짐에 따라 다수자 자신들이 심리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음에도 큰 영향이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