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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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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루시오 (119.♡.124.87) 댓글 0건 조회 6,550회 작성일 15-07-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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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란 것도 나 자신에 대한 얘기였다. 생각을 통해 아프지 않으려고..상처를 외면하려고
발버둥치는 짓이 다 '욕심'이다. 그런 욕심을 버려야 숨통이 트인다. 난 내 욕심때문에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 순간 나도 죽고, 부대 후임인 혁준이도 힘들었었다. (허나 전화위복이라고
이 또한 나에 대한 얘기로서 후임 녀석도 무서운 분위기가 자신을 만날 기회였으리..) 즉 모든게 기회고
서로 얽혀있으며 사건이 없는 것보다, 있는게 재밌다...넘 맑은 물에선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몇 주전 사건은 이러했다. 부대원 전원이 출동이 걸렸기에 다 같이 출동을 나갔는데, 출동 차량 안에서 내 동기가
가벼운 농담을했고, 이를 봉고차량 맨 뒷 자석에서 듣지 못한 대원에게 루시오가 그 농담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 때, 자대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된 막내가 '설명충, 개극혐' 이란 단어를 내뱉었고, 순간 차량 안은 싸해졌다.
나 역시 '내가 뭘 들은건지??' 어안이 벙벙했고, 대원들은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막내에게 온갖 욕을 내뱉었다.
 
'미쳤냐? 이 새끼가 빠져가지고...고문관같은 새끼가..병신이...어디 막내새끼가 왕고참이신 루시오 수경님께 욕해?'
등등..
 
16명의 대원들이 돌아가며 그 막내에게 1대1 교양이 들어갔고, 나 역시
'전역을 한 달 앞둔 내가 막내에게 욕을 먹다니?' 란 생각에 분노라는 감정은 사뿐히 씹어주시고, 교양 대열에
앞장섰다. 대원들이 주의를 줄 때마다 막내녀석은 풀이 다 죽었고, 나는 이를 말리긴 커녕 후임들에게
더 교양을 시키라고 지휘하는 내 모습이 있었다. '구타만 허용된 부대였었음 넌 뒤졌어 새끼야' 란 맘 가짐으로..
 
이틀 뒤, 나의 마지막 특박 때, 난 서울에 올라갈 일이 있었고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서
부대 왕고인 내가 막내에게 욕을 먹은 사건을...내 생각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다시 되짚어봤다.
 
내 욕심에..막내 혁준이가 심하게 교양을 듣는 걸 보아도 난 묵인했었다. 되려 왕고로서 더 부추겼다.
'부대의 기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난 쓰레기가 확실했다. 정말 추악했다. 아니 추악하다.
그렇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나를 스스로가 동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찾아오는 이 죄책감과 쓰디쓴
이 절망의 맛..오냐, 와라. 다 맞이해주겠다. 아프고 짜져주겠다. 와주어라. 그 아이가 나에게 욕한게
잘못이라고 누가 규정하던가? 그게 잘못이라고 규정지은 나와 이 세상이 잘못인거다. 와라...맞이해주지.
이런 잔인한 나를 만나게 해주고, 나에대한 욕심을 알고, 인식하게 해준것만으로도 혁준이와 나에게 미안하며
동시에 고맙구나. 그리고 또 하나의 산을 넘어준 스스로에게 감사를 표하며, 추악함이라는 사랑을 동시에
느껴지는 나는 역시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이 안 된다. 그 때, 분노의 나를 맞이해주었다면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을텐데...그 때 내 욕심에 나도 죽고, 막내도 힘들었구나. 허나 잠시 분노의 날 부정해준 덕분에
추악안 날 만날 수 있었고, 내 욕심이란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주환아, 욕심내서 미안해. 혁준아 미안하다. 그리고 추악한 날 안아줘서 고맙다.
혁준아 이런날 만나고 배우게 된 계기를 만들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특박을 마치고 7월2일 부대에 복귀하였을 때, 막내 혁준이는 나에게 또
머리숙여 사과하길래 따로 불러내서 말했다.
 
'그간 내 밑으로, 니 위로 모든 대원들이 너에게 따로 교양받느라 애태웠겠네? 너의 본성도 원랜
착한 녀석이거늘...말 실수 하나 한 걸로 많이 놀랐겠구나. 미안하다. 내가 왕고로서 그걸 말렸어야 했는데...
오히려 못 본척했구나. 그런데 빈말이 아니라 네 덕분에 추악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화가 난 내 분노를
수용치 않을 내 욕심에 나도, 너도 힘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고맙게 생각하고, 내가 언제 막내에게
욕도 먹어보겠냐? 좋은 경험한 것 같다. 고맙고도 미안하다. 너 역시 지난 며칠간 힘들 때, 그 무섭의
공포를 한 번 받아들여보지 그랬니? 내가 전역까지 며칠 안 남았는데, 지금 이 순간의 인연인
너랑 나는 잘 지내다 헤어지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남은 군 생활 더욱 잘하렴. 너에게 따끔히 대한
니 고참들인 대원들 원망마라. 니가 힘들 때, 16명 다 같이 널 위로해주고, 니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다 니 편이
되어주고, 다 같이 웃고 우는 사람들이다. 널 낳아준 가족들 다음으로 이 순간 함께 하기에, 너의 가족들이나
다름없으니 다들 잘 지내도록 해라. '
 
라는 말에 녀석은
 
'제가 왕고께 욕을 하는 말 실수를 저질렀는데, 되려 좋은 경험이라고 해주시니...'
 
라며 울먹이는 녀석을 평생 잊진 못 할 것 같다. 좋은 인연에 감사할 뿐이다.
정말 좋은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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