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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후기] 깊은 새벽, 잠은 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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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봉식이할매 (175.♡.214.244) 댓글 3건 조회 7,565회 작성일 15-07-0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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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잠이 오지 않는다.
실현 당했냐고? 아니면 밤새도록 일하는 중이라 잠을 못 자느냐고?
그것도 아니면 돈이 필요해서 그러냐고?
만약, 내가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가 이 중에 있다면 천만다행이다.
문제(일, 사랑, 돈)가 해결되면 잠이 올 테니까 말이다.
아쉽게도,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불면증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내 몸속 둥지를 틀고 있는 호랑이 때문이니까.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호랑이를 몸 밖으로 끄집어내기가 불가능하단다.
불치병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나는 한참(20년)을 슬프게 보냈다.
그러다 요즘엔 호랑이와 잘 지내보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그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호랑이가 사나워지면 나는 잠을 못 이룬다.
호랑이가 조용히 지나면 정말로 좋으련만,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몸속을 어슬렁거리는 호랑이의 혜택(?)은 이것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다.
일과 사랑 그리고 돈이 나에게서 점점 멀어진다는 어마어마한 축복.

 

일하지 못해서 힘들지 않으냐고? 천만의 말씀 이 세상에 백수보다 좋은 직업은 없다.
일찍이 성인 클래스로 뽑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수생활을 즐겼었다.
소크라테스는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아테네 광장에서 열심히 떠들며 놀았다.
공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찾기 위해 엄청나게 싸돌아(7년)다녔다.
나를 소크라테스나 공자 같은 사람들과 동급(백수)이 되게 이끌어준 호랑이에게 감사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연예인, 프로게이머, 다음으로 많은 것이 백수다.
일하지 않는다는 것의 행복을 아이들은 벌써부터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나 부모님들의 열띤 관심 덕분에 백수를 갈망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의 백수 생활은 호랑이의 발톱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랑 타령 "사랑~ 사랑~ 사랑에~ 사랑이라."
사랑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사랑하려면 일단 관심을 가지고 시간 투자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나에겐 시간이 얼마 없다. "말이 안 된다고, 백수가 무슨 시간 타령이냐고?"
온종일 호랑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놈의 호랑이가 암컷도 아닌 것이 얼마나 질투가 심한지 말도 못한다.
내가 혹여나 길을 걷다가 옆에 지나가는 여인에게 한눈을 판다고 치면,
시퍼렇게 갈아둔 날카로운 발톱으로, 그냥 쭉~~ 그어버린다.
그런 끔찍한 고문을 당하기 싫다면, 사랑(여인) 대신 호랑이를 달래야 한다.
사랑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다. 나도 사랑을 좋아하는 남자다.
하지만 나의 현실은 종일 호랑이 옆에만 있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혹시나, 이런 남자라도 만날 용기 있으신 여성분이 있다면 연락 바랍니다.

 

돈, 이건 좀 심각하다. 돈이 있어야 먹고 자고 싸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아~~ 미안, 하나를 빠트렸다. 호랑이 사룟값도 필요하다.
(조심해야 한다. 호랑이가 자신을 빼먹었다고 삐져서 홧김에 그어버릴지도 모른다)
사실 돈 문제는 운이 좀 필요한데, 부모님을 아주 잘 만나야 한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좀 나은 편이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부유한 건 아니다.
그냥 먹고 자고 싸고를 소박하게 할 수 있는 정도다.
이런 최소한의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다 보니 내가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행복의 기준을 이해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돈을 벌고 있음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정말로 적다는 사실.
돈을 적게 벌면 불행하고, 많이 벌면 행복하다는 공식을 믿는 사람들.
행복의 기준을 '가지는 것'에 두고, 기준에 미달하면 불행하다고 낙인 찍는 행위.
사람들은 부두술사보다 더 무서운 저주를 자기 자신에게 걸면서 끝없이 채찍질한다.
[윌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현대문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헤라클레스가 치렀다는 열두 가지의 고난도 내 이웃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난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소로우가 죽은 지 153년이 되어간다.
그런데도 아직, '사람들의 고난'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일도 없고, 사랑도 없고, 돈도 없고, 덤으로 몸속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남자를 사랑하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적을 사랑하라." 다른 말로 하면, 그렇게도 싫어하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
가진 것 하나 없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너무나 대견스럽다.
희망(일, 사랑, 돈) 없는 삶을 살면서 내가 만들어내는 고통을 받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삶을 원망하기는커녕 즐기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호랑이가 내게 준 선물이다.


호랑이와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도움을 주신 김기태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댓글목록

꽃으로님의 댓글

꽃으로 아이피 (121.♡.92.243) 작성일

예스24에서 봉식이 할매님의 후기를 읽고 감명받아 댓글을 쓰려고 왔는데 여기도 올려져 있네요~~
방금전까지 일과 돈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할매님의 글을 읽고 보다 근본적인 행복을 다시 자각하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늘 타인과 다른것.... 일반적이지 않는것... 무난하지 않는것...등에 관한 두려움이 너무 컸어요. 그래서 내 삶의 기준은 평범이었는데~
삶의 펼쳐짐은 평범과는 다르게 가고 있더라구요.
오늘부터 전 미운오리새끼가 되려구요~
그들과 같아지려고 몸부림치는것이 아니라~ 더욱 나답게 살아보려구요~^^

봉식이할매님의 댓글의 댓글

봉식이할매 아이피 (175.♡.214.244) 작성일

좋게 봐주셔서 ㅠ,.ㅠ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나답게 살기라, 정말로 그리 살아야겠지요.

여름가지님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17.♡.172.26) 작성일

봉식이할매,

깔끔한 맛이 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헤라클레스가 치렀다는 열두 가지의 고난도 내 이웃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난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이 문장이 인상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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