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길님에게 : 봉덕동 연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6건 조회 5,845회 작성일 07-07-03 10:56

본문


마크로에 가서 닥터 페퍼를 샀다.
22년 만에 다시 맛보는 음료수의 맛. 목젖을 타고 흐르는 탄산 거품이었다.
대구 봉덕동 캠프 헨리의 TOP 5 클럽,
반평도 안되는 쇼의 스테이지 위에서 하반신이 짧은 한국 스트립 걸이 요란한
춤을 추고, 한 옆에서 철거덕~ 철거덕~ 거리는 슬롯 머쉰 소리,
술을 못마시는 나는 닥터 페퍼와 프렌치 프라이만 먹었다.
지금도 귀에 쟁쟁히 들려오는 구내 방송
Paging SGT Bass, SGT Bass (배스 상사님 호출입니다...)
1983년 20살의 내가 그곳에 있었다.
막사에는 왁스 냄새가 가득했고 버퍼 돌아가는 소리가 나즉막히 귀를
울렸다. 지금 이 계절이면 잔디를 깍아 엽록소 뭉개진 냄새가 스며들 때이다.
향수를 뒤범벅한 外人 兵士 들
아니 내가 바로 外人 들 속의 外人이였지......
밤새 개 떼처럼 붐붐 박스를 틀어놓고 퍼플 레인, 퍼플 레인을
부르며 뱀처럼 몸을 흐느적 거리던 검둥이들
나 그들이 밤이면 우우우....... 하는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밤이면 포르노 비디오를 틀어 놓고 여자의 사타구니에 머리를 쳐박고 밤새
쩝쩝거리던 흑인 병사와 메스홀의 백인 여자. 뒤엉킨 흑백의 앙상블.
쩝 쩝...찍찍...쩝쩝...찍찍... 부드러운 살들이 마찰하는
그 야릇한 소리들이 간간히 들렸다. Oh~ yea, Oh~ yea 소리는 불면의 전주곡
이였으니 한참을 그렇게 시달리다 발작적으로 외쳤다.
야이, 개새끼들아~ 잠 좀 자라. 너희는 잠도 없냐
아침이면 룸메이트는 입막음 삼아 나에게 달러를 건네 주었다.
난 그 돈으로 책을 사보았다.
부활절이면 메스홀 여기저기 차타고 돌아다녔다. 랍스터가 나오기 때문이다.
졸병들은 모두 나이가 나보다 두 서너살 많았다. 그래서 누가 고참이고
졸병인지 분간이 안간 그 시절. 저녁 마다 문을 녹크하며
이병장님, 오늘 영화 한 프로 안 때려요 하던 박일병.
영화관-도서관-레크리에이션 센터-셀라믹 센터(도자기 굽는 곳)-농구장
영화보고, 책 읽고, 빙고 게임하고, 도자기 굽고, 밤새 헤드라이트를 켜놓고
육박전에 가까운 농구를 하였다.
닥터 페퍼를 마시니 그 시절의 그 냄새, 그 향기, 그 소리, 그 빛의 감각이
가슴 속에 부글 거린다.
닥터 페퍼에는 가짜 향신료 체리의 향이 스며있다. 버찌! 어떤 이는
약 냄새 같다고 해서 싫어한다. 체리는 또 슬랭으로 '순결'을 의미한다.
When did you lose your cherry?
Hmmm...I lost it at 16.
대체로 그들은 총각 딱지를 거의 십대에 뗀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나 팝 음악에
나오는 'to make love with a cherry girl'은 '숫처녀와 사랑을 나눈다'는
뜻이다.
I was a cherry boy then...그 때 난 총각 딱지를 못떼었다. 탑 파이브 클럽
에서 닥터 페퍼를 마시며 난 체리 보이이다 하고 말했지만.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마음에 드는 경북대, 계명대, 효성여대 여학생에게
몇 주일 걸려 구운 도자기나 멍청하게 말없이 주어버리곤 했다.
밤이면 포르노 비됴 실황중계인지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헉~ 헉~ 거리는
소리'에 어지러운 밤을 뒤척이곤 했다. 암튼 그 놈은 체력이 무척 좋았다.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리내 순정. 너 마저 가버리면. 나는 나는 어떻해'
22년만에 다시 맛보는 닥터 페퍼, 그 동안 난 그 맛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인공착신 화학향료는 거짓으로 체리의 향기를 엮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체리가 없더라도, 닥터 페퍼에서 체리의 향기를 맡으려고 하는
나는 거짓 순정에 대한 그리움을 아직 갖고 있는 것일까.

댓글목록

그냥님의 댓글

그냥 아이피 (211.♡.146.79) 작성일

잘 보았습니다. 닥터 페페 처음 들어보지만 아련함이 묻어 있는듯합니다.

길손님의 댓글

길손 아이피 (218.♡.206.81) 작성일

자몽님 얘기감사~
체리향의 닥터페~퍼,아싸 맛있어음.

정말 아련한 미군홀 빙고 처음이자 마지막은 아직 모르지만 크로스로 돈땃던기억.
까마케 잊고지내던 기억가지 두배감사~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회상이란 때로는 우리가 살아온 여정을.
 앞으로 살아나가야 할 길을.
 함께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빙고 추억과 함께~~~

K2방위님의 댓글

K2방위 아이피 (125.♡.4.146) 작성일

캠프헨리가 있었던 봉덕동은 대구의 이태원이라 할 만 하지요.
술집 심야영업 단속이 있던 시절
그 동네 주택가에 숨은 술집들은 밤이 새도록 흥청망청,
마셔도 마셔도 마냥 즐겁든 시절이었습니다.
못 마시게 되어 있는데도 숨어서 마시니 더 짜릿한 특권같은 것이었죠.
대구에 사는 나도 봉덕동 시절을 잊지 못할 겁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요...
대구아가씨들이 타도시에 비해 더 예쁘다는 말은 왜 생겨났을까?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언제나 내 가슴 설레게 하였던 사과 아가씨들.
 예쁜 대구 아가씨들.

 간혹 꿈속에서, 꿈의 언저리에서 봉덕동을 찾아 갑니다.
 꿈속에서는 그 당시의 '나'로 재연되더군요.

 이상하게 가장 참담했던 시절이 가장 아름답기도 했습니다.

 세월의 마술일까요.

길님의 댓글

아이피 (125.♡.4.146) 작성일

자몽님^^
위에 k2방위 입니다.
어린시절,
오랫동안 살았던 하꼬방집이 재개발 철거되었을 때,
일부로 찾아가 동네어귀를 한바퀴 돌아보았답니다.
꿈속에서도 생생했던 우리동네의 미로같았던 골목길, 낙서하던 벽돌담장, 걸려넘어졌던 돌부리
까지도 더듬어 보았답니다.
세월은 과거을 파스텔 톤으로 은은히 채색하는 재주를 갖고 있더군요.
무상함 그것이 곧 아름다움이었습니다.^^

Total 6,239건 352 페이지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게시물이 없습니다.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5,769
어제
14,858
최대
18,354
전체
5,956,442

Copyright © 2006~2018 BE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