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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안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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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0건 조회 5,581회 작성일 07-07-1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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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번역을 하기위해 작은 원룸을 임시로 구했다.
옆방의 그녀, 복도에서 그녀의 뒷 모습과 옆 모습을 얼핏 본적이 있었다.
약간 통통한 얼굴에 작은 키, 가느다란 흰 팔목의 인상이 어렴풋히 남아있다.
작은 방의 벽면이 얇아서인지 아니면 벽 사이에 공명의 틈이 있는지
옆 방에 가스 보일러를 틀 때나 화장실 변기의 물이 지하로 떨어지며
내는 비명 소리, 나른한 텔레비전의 기상예보 소리 같은게 희미하게 들렸다.
한 밤이면 방문을 여는 소리, 복도를 자박자박 걷는 발자국 소리,
다시 샤워실의 문 여는 소리 닫히는 소리, 물 줄기 떨어지는 후두둑 가벼운
소리도 들려왔다.

그리고 늦은 밤인지 이른 새벽인지 모호한 시간대에는
가끔씩 옆방에서 들리는 소근소근 통화하는 소리도 들리는 듯 하였다.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도 통화를 한다는 느낌을 알 수 있었다.
밤의 긴 적막 속, 나는 언어와 개념의 정글을 뒤적이며 또닥또닥 키보드의
소리만을 내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유일한
잡음 같은 소리이다.
밤 세시가 지날 무렵, <라마리자의 강변의 추억> 벨음이 옆방에서 울렸다.
이런 시간의 전화벨 소리는 고요한 침묵을 깨트리는 날카로움이 있다.
밤에 기댄 채 의식에 집중할 때는 신경이 곧두서서 예민해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삼분 쯤, 모니터의 밝은 빛을 바라 보느라 피곤한 눈에 휴식을 주기위해
방의 불을 껐다. 그믐밤의 하늘처럼 막막한 어둠이 내 방에 깃들었다.
나는 망막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점차 어둠 속에 환한 빛이 아지랭이처럼 피어나고 난 뒤 눈을 떴다.
다시 캄캄한 어둠이었다.
그 때 옆방의 흐느낌 소리가 벽을 타고 건너왔다.
나즉막히 울려왔다가 서서히 사글아지는 흐느낌.
울음 소리가 조금 커졌다가 심호흡과 함께 서서이 잦아드는 사이의 공백.
화는 나지 않았다. 언어나 몸짓 이외에 마음을 전달하는 <암시적 기호> 같은
그 소리는 조금은 애틋하고 왠지 모를 비애가 배어 있는 듯 하였다.

그것은 공허한 어둠이 내는 흐느낌이었다.
나는 담배 한 개피를 꺼내어 피우며 창 밖의 어둠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무심한 가로등 불빛이 잠시 흔들렸다.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며 의식의 끝자락에
메달린 문장을 급히 채워 넣었다.
'흐 윽' 하는 소리가 벽을 뚫고 다시 들려왔다.
나는 침대에 잠시 누웠다.
누군가 흐느끼고 있다. 벽의 한 쪽 반대편 어둠 속에서.
자기 가슴팍을 두들겨대며 울음을 참고 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때로는 하루를 시작할 시각이다.
나는 자다가 울다 웃다 하는 나처럼, 그녀도
잠결에 혹시 우는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가끔씩 옆방에서 들리는 양치 소리,
소근소근 통화하며 웃는 소리, 오늘처럼 느닷없는 울음소리......
그렇게 소리 안에 존재하는 그녀에게 나는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벽을 바라보며 나직히 말했다.
여보세요. 당신은 참 독특한 사람 같네요.
삶이 우리를 속일 지라도
우리 울면서 다시 일어 납시다.
내일.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로 전혀 모르는 것 처럼
우리 그렇게 살아왔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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