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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시 꿈꾸는 부처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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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오강호 (123.♡.166.186) 댓글 3건 조회 5,246회 작성일 07-08-07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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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지워져서,고만하고 영어공부좀 하려했는데, 안되겠다.^^
세상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이라고 알지만, 사실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란다
참으로 멋들어진 빛좋은 개살구이구나.
도가 만들어내놓은 중묘가
천하만물이 어찌하여 아름다움도 모르는 바보로 해석해 놓았는가? ㅋㅋ
천하개지 미지위미 사악이에서
미지위미를 받기 위해서
그것기자에 도끼근자를 붙여서 이것사자를 만들고
접근성의 원리로 미지위미 바로 뒤에 위치시킨다.
이렇게 할때, 노자의 본 뜻은
하늘아래 모든 신묘한 만물은
위미와 위선이 악이요, 불선이라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즉 위함이 나쁘고, 잘못된 것임을 안다는 말이다. 모가? 위함이.
하늘아래 천하만물은 아름다움도 모르는 바보가 아니란 말이다.
양지양능하는 불성을 가지고, 위미와 위선에서의 위함을 알고,
꾸밈과 조작과 왜곡이 없이 신묘한 도의 원리를 인연따라 참되게 드러내주는
우리의 도반이란 말이다.
아직도 천하만물이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여기는 것이 사실은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세상에서의 잘못된 해석이 옳다고 여기는가?
모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은 진정한 아름다움도 모르는 바보스런 천하만물의 거짓됨에 둘러싸여있다는 말일테고,
바보스런 놈들을 만들어놓은 곡신인 신묘한 도에게 가서
왜 당신 자식들은 그따위냐고 따져야 할 상황인데,
아마도 도의 현신인 동네 강아지가 당신을 물어버릴 것이요,
도의 현신인 자신의 내면에서 참되게 이건아니잖아라는 각성이 우러나올 것이다.
다 비유로써 말장난 일뿐이니, 희언자연이라
쓰는이도 읽는 이의 틀이 쏙 받아들이게 쓰는 것이 어려움이요, 그렇게 해놓았다 자부하여도 읽는 이가 그것을 쏘옥 받아들임도 참으로 아슬아슬하니,
아마도 신묘한 도도 이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이정도로 드러내놓으면 다 알겠지했는데도, 임계점까지 치고 올라갈 능력자인 인간들이 하는 짓이 참된 천하만물들을 바보로알고 무시하면서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있으니, 도인들 무슨 방법이 있으리요.^^
뒤이어서 성인은 무위하고 무언한다고 했다.
도의 원리가 그대로 밝게 드러난 현상의 단면단면마다에 도의 원리가 그대로 있으니,
그곳에서 캐어올려야 하는 것이거늘, 어찌 위해놓을 것인가?
위해놓을 능력자 없다만,
숭상하여 노예로 만들고, 못살게 닦달하여 노예패턴으로 이인연따라 저인연따라 그저 스러져가게 해놓고, 참된 지금여기의 보리처를 개무시하고
저멀리 성공과 도가도비상도, 세상은 고통이요, 말로할수없는 신묘한 것이요등등등의 개소리로 꾀어내 바보로 만들어 놓는다.
뒤서 오는 이의 한 단면을 어찌 인정못하는가?
뒤서 오는 이의 한 단면에도 그대로 원리가
인연따라 드러난 보리처이거늘
어찌 뒤서오는 이의 보리처인 그 단면을 인정못하겠는가?
이 보리처인 단면을 꾸미고, 조장하고, 왜곡시켜놓겠는가?
말씀언은
5살 사탕달라하는 아이에게 도덕경 펼쳐놓고 개소리 하는 것이며,
시험공부하는 중고딩에게 팔만사천경문을 쑤셔넣으려는 수작이며,
일하느라 피곤하고 힘들어죽겠는데
쉬게하지 않고, 귀속말로 도가도비상도란 말이야~~~ 해대는 수작이다.
즉 뒤선이의 틀을 인정치 못함이다. 말했듯이 , 듣는이의 틀이 받아들일수 있도록
변환하는 것이 공자왈의 말씀왈이다.이거 힘들다.^^
힘들어죽겠는데, 시험공부하는데, 사탕달라하는데
지혼자 도가도비상도해대면 씨알이 먹히겠는가? 잘못했다간 뒤진다.
지금여기 그대로 있으라는 전식의 강요도 사실 엄청난 에너지의 집중을 요하는 것이요,
한 말씀 구하려는 이에게 ,
그들의 지금여기의 틀을 살펴보고 길을 보여주려는 작업도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거늘,
서로가 지쳐버려, 자신의 틀에 머물러 서로 다투는 모양꼴이니
따라서, 방법론도 살짝 바꿔줄 필요는 있어보임직 하다.
문제는
도경의 해석이 잘못된 점이 많다는 점이다. 질문하나 턱 던져놓고, 그것에 답을 못하면 아직
그 도덕경의 인연틀에서 원리를 발견못하고 아직도 서원하는 허우적거리는 참된 길에
있음이다. 어찌하여 이 사이트에 몇몇사람들은 숭상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설령 원리를 다 알았다하여도,
싣달이가 가장 경계한 것이, 노자가 가장 경계한 것이
숭상하는 것이다.
불성의 등불을 죽이는 것이요,
참된 길인 인연속 서원속에서 데이고,까이고, 베이고,쓰러지는 참된 시행착오인
스스로의 등불을 밝히면서 살아가는 주체성을 말살함이다.
싣달이와 노자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참된 믿음이
인연속 증거함 속에서 캐어올렸거늘
어찌하여 한 사람을 숭상하고 있는가?
듣는 이가 준비가 안되서 못받아들인다고 하는데,
앞서가는 한 소식 얻은 이들이 어찌 말씀을 갈구하는 뒤선이들의 틀을 건드릴 능력도 없다는 것인가? 이러한 맹목적인 숭상함의 패턴은 노예를 만들어내고, 그 노예가 또 노예를 만드니,
이 폐해는 말로 다 하기 어렵거늘,
어찌 도덕경을 공부하는 이들이 이런 죄를 짓고 있는지 개탄스럽다.
내가 글을 한두번 써놨는데 조리없게 써놔서 그런가? 말발이 안 먹히네. 음.
이경숙의 완역도경해석은 37장중에서 100여곳의 오류가 있다.
물론 이곳의 해석법도 많은 곳에서 틀렸다. 정말로 도덕경 공부하는 대표적 사이트인 이곳이 2년 3년이 지나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당신들의 게으른 패턴에도 가슴이 아프지만,
힘들게 살다가 한 말씀 얻어보려는 지난날의 나와 다르지 않는 이들이
또다시 열려던 마음을 닫고 바쁜삶속의 게으른 패턴으로 돌아가거나,
또는 얼토당토않게 숭상하여 시키는대로하면서
참되게 드러나는 자신의 삶의 현상에 눈을 가린다. 무엇을 보겠는가.
참된 드러난 모습을 못보니 무위하는 도인들 무슨 재주가 있으며,
뒤서 오는 놈들의 참된 틀을 인정치 못하니,
왜 담배피니, 왜 공부안하니, 왜 노니, 왜 싸우니, 왜 그모양이니 하는 정신나간
짓거리들을 한다. 이러함의 패턴을 깨야 할 분들이여,
그대 한사람의 깨어남이 참으로 소중하도다.
오늘 참 횃소리 많이 해서, 다시오기 어려울 듯하니, 한마디 더,
4장에서 도충이용지혹불영을 본다.
사춘기는 충년이고, 군대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것이 충천이고, 하늘과 땅사이의 오묘한 기가 꽉차있음을 충기라고 한다. 충은 빌충이 아니라 꽉찰충이다.
도가 하늘아래 득실득실하는 만물에 내재해 있으니 가득찰 충이라 한 것이요,
가득차서 흘러 넘쳐버리지 않아 내재하면서, 또한 서워반하니
반복반복하여 가득차 흘러넘쳐버릴 영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채울영이 아니라 한것뿐.
서서히 맑아지는 것과 동일한 의미인 고요하게 해서는
도를 잘 닦은 선비처럼 될 수 없다는 야릇한 비웃음에서도
반복반복하는 패턴에 대한 우려가 보이는가?
그렇게 동일패턴에 걸려들어서 인연만 바꿔가는 게으름의 길속에서는
도를 잘 닦은 옛 선비처럼 될수 없다는 말이니, 꼬옥 새겨들을 지어라.
이것을 과연 도는 텅비어있다고 해석해야 하는가?
공도 원리공이요, 공이 드러남이 곧 색이니, 다르지 않다.
색즉시공이나, 요즉시요라고 노자가 한 말이나, 11장의
유속의 볼견해서 볼시해야하는 없을무자라는 것이나 다 그말이 그말이다.
28장에서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과
35장에서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 용지불가기에서의 용자를 보면 쉬우리라.
28장. 통나무를 쪼개지 않고 톡톡 다듬는 그런 패턴을 성인은 써서 관장이 된다했다.
옥처럼 되려하지말고, 지금여기 인간의 본성을 인정함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단 말이다.
아무리 싣달이의 깨달음의 말이라하여도
지금여기 답을 찾는 이의 본성을 인정치 않으면 그것은 독이다.
35장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은 해석은 이렇다.
나그네는 음악과 술과 밥이 있어서 당연히 여관에 머무른다.
그러나 도는 담담하여 무미라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한다고
노자는 기우한다. 그 누가 거들떠도 안보는가? 거들떠 못보도록 수작을 한다면 모를까.
그렇게 도라는 것이 볼견하기에도 부족하게 밋밋하게 잠길침하여 있지만,
우리는 <볼견하기에 부족한 그 속에서> 볼시한다는 말이다.
여관에 음악가 술과 밥이 있어서 쉬다가지만,
도는 담담하고 무미하여 확연히 드러나 보이는 것이 없을지라도,
알아서들 <볼견하기에 부족한 그 미묘함속에서 볼시하려한다>는 말이다.
숭상함의 가장 큰 문제는 볼견을 막는데 있다.
볼견만으로는 분명이 부족하나 시작은 볼견이다. 숭상하여 눈가리는데 어찌 인연속
한 단면에서 볼견하여 출발이나 할 수 있겠는가.
볼견하여 출발하면 그 누구도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막을수 없다.
너무 길어졌나?
쓸용자의 글자의 자체에서의 뜻은 이러하다.
외곽의 틀은 미분법을 중3때 배우듯이 그렇게 하나의 틀을 만드는 노력이다.
구구단을 외움으로써 하나의 틀을 만든다는 비유도 되겠다.
그렇게 하나의 틀을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었다하여도,
그안에서 춘하추동의 비유의 코드로써 써놓은 그 표시를 증거해내지 못하면
써먹는 자유로움을 맛볼수 없다.
미분하는 법을 배웠다하여도, 그것을 현상계에서 어떻게 적용하는지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알수 가 없는 것이다. 즉 열심히 공부하여 원리를 알아내는 것이, 춘하추동을 겪어내어 한 주기의 반복되는 원리를 알아낸다는 비유로써의 의미라고 보면 가하다.
즉 그렇게 원리를 알면, 봄여름가을겨울을 알면,
때에 맞춰 씨뿌리고, 기르고, 추수하여 잘먹고 잘사는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여 원리를 알아내야만, 그때에 가서야 자유로이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서원반의 순환상의 원리가 천변만화로 드러나듯이,
인간의 본성을 인정한 참된 한마디말이 그대의 인생에서 찬연히 드러나리라.
하나가 찬연이 모두 드러나니, 하나는 그속에 그대로 있음이어라.
이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틀은 법등명자등명 뿐이다.
오직 그대만의 길이다. 주인은 그대이다.
가장 맘에 드는 말로 마무리 하고 여기에서 튄다.
만물은 삶을 삶으로써 하나를 얻는다.
하의 선비처럼 웃어제껴버리면 가하겠는가?
웃어제껴버리지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다인가?
오직 상의 선비처럼 열심히열심히
가장 위대한 수련법인 삶으로써 축적해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이라는 바벨탑을 쌓아야한다.
그래서 원리이며 스스로 그러함인 하늘에 가 닿아야한다.
스스로그러한 원리가 천국이니, 천국이 바로 어디에 있겠는가?
스스로 그러함인 원리가 드러난 바로 이 땅옥속에 있음이다.
큰대의 원리가 고정되어 있는 현상인 개틀속에 있음이요,
태초의 이름명이라할 스스로그러함이 16살로 드러난 자속에 있음이니,
너의 지금여기를 버리고 어디에서 무엇을 찾겠는가.
모으고 모아야지 숭상하여서 버려버리게 해서야 될 일인가?
33장에서처럼
인연속 창조주인 너에게서 너를 보는 것일 뿐.
결코 다른 곳에서는 임계점에 진정코 가 닿을수 없으리라.
아무리 우주를 보고, 원자를 본다한들, 결코 볼수 없으리라.
그러한 인연속 방법론속에서 밝아지고, 힘을 챙겨, 뜻이 생기니
마지막은 결국 자신밖에 없을듯하다.
돌려말하면, 주체적인 단면의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해내는 과학같은 것에서
얻어낸 믿음이야 말로 , 참스런 보배이다. 결국 고정된 한 단면의
시각으로 가정을 세우고, 그 속에서 면지면지 하는 것이요,
그곳에서 볼견하고, 그런 참스런 반복반복속에서 결국 볼시하는 것이리라.
결국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자신만의 꿈틀이요,매트릭스일 뿐이다.
다 그게그거인듯 같게 보여도 미묘한 차이로 자신만의 것이다.
자신의 것이 아니고 어디서 그 매트리스에서 빠져나올 테인가?
싣달이나 예수의 길도 너의 길이 아니요, 나의 길도 너의 길이 아니요,
오직 너가 인연따라 증거해 낸 그 길속에서만이
참다운 근원으로 되돌아갈 수 있음이다.
이처럼 멋지고 시원스러운 지옥길이 어디있단 말인가?
모두가 위대한 불성의 존재로다.
모두가 자신만의 바벨탑을 삶이라는 가장 위대한 직접수련법으로써 만들어가는
인연속 창조주이로다.
때에 이르면 모두가 보리수아래와 광야로 스스로 걸어가야 하리라.
결국
우리는 잠시 꿈꾸는 부처이다.
꿈에서 깨어도 또 다시 인연따른 꿈이로다.^^
스스로 그러함인 도라도 나와 함께 할 뿐이지, 숭상함을 받을수 없거늘
아직도 잘못된 도덕경의 해석과 한소식으로
서로가 숭상하는 듯한 장단에
내 어찌 한마디 안 할수 있겠습니까.
님들의 그러한 단면도 훌륭한 경험고로써 인정안하는 것은 아니나,
한말씀 구하려고 하는 절박한 이들에게는
어찌 이일이 가벼이 웃어넘길 일이겠습니까?
이 말은 진심입니다.
어찌 이일이 가벼이 웃어넘길 일이겠습니까?
궤도에 올라있는 님들께서 한 떨기 꽃을 피워내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건방진듯 보일수 도 있으나,
가슴속 깊이 새겨주시기 진심으로 바라마지않습니다.

댓글목록

꿈보는자님의 댓글

꿈보는자 아이피 (203.♡.145.114) 작성일

성경이든 불경이든 도덕경이든 경전은 그 무엇을 가리키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 수단을 이리 해석하든 저리 해석하든 그 무엇을 향한 방편으로 잘 활용하면 되겠죠,,
잘못된 해석이 어디에 있고, 잘 된 해석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경전의 말속에 진리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보는 혜안을 일궈내는 호미(도구)에 불과합니다.
호미를 왼손으로 잡든 오른손으로 잡든 쓰는 자 편한대로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꿈속에서 왠 소리요~~ 다들 좋은 꿈 체험하길,,,

본지풍광님의 댓글

본지풍광 아이피 (211.♡.148.23) 작성일

본래 쉬운 것(본래면목)을 너무 어렵게들 이야기 하시네요...........

아큐제로님의 댓글

아큐제로 아이피 (221.♡.33.192) 작성일

맞소 맞아 .모두가 꿈꾸는 부처..
헌데 그대는 부처가 아닌듯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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