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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이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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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0건 조회 5,617회 작성일 07-11-0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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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꿈속에서 Yellow mawed라는 영어 단어를 보았다.
갑작스레 깨어나 꿈의 스토리는 희미해졌다. 그런데 'maw'라는 단어는
내가 모르는 단어이다. 모르는 단어가 왜 꿈에 선명히 보인 것일까.
사전을 뒤적여 보았다.
maw n. 반추 동물의 넷째 위(胃); (새의) 멀떠구니; (드물게) 사람의 밥통;
목구멍, 입; (비유) 심연(深淵), 깊은 구렁.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어떤 이는 '참나' '본성'을 찾는 것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부모미생전' '이뭐꼬'를 아는 것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생각, 시간, 자아가 소멸된 의식이라고 한다.
그럼 이것을 얻은 분이라면 '깨달은 분'일까?
이 지구 상에 '내가 무엇일까?'를 찾았다는 사람은 부지기수 인데
'그것이 무엇이다' 라고 말한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본래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이유가 아주 많나 보다.
요즘 불교 쪽으로 깨달았다라는 분들의 사이트 몇 곳을 둘러 보았다.
뭐랄까. 깨달음의 구구단 공식으로 짜놓은 이음동의어의 집합소 같은 느낌과
나이도 많아 그들의 언어관이란게 이미 소통이 단절된 일방 통행식이다.
읽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래도 내가 직접 체험하여 안 것은 그래도 '무의식'의 세계이다.
본래 의식이였는데 무의식으로 넘어가 버린 것들도 있고
본래부터 있어왔었던 무의식도 있을 것이다.
또 무의식이였는데 의식화 되어 형질을 바꾼 것도 있다.
이렇듯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모호하다.
나는 간혹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어떤 사람이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이 무의식의 문이 잠시 열려
그것을 잠시 구경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어떤 분은 자기의식의 욕망과 소망이 누적되어 오다가 어느 순간
무의식으로 사라졌었고, 이 무의식이 나중에 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투사해
주는 것을 그가 잠시 보게 되는 수가 많다고.
이런 경우는 무의식의 자기환영 일 것이다. 자신이 감독 주연한 영화를
관객이 되어 보고서 감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의식, 분별, 논리, 지각으로서는 무의식의 세계와 만나기 어려운 이유는
그 성질 자체가 바로 무의식의 억압 벽(wall)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무의식은 우리의 의식과 다른 구조 세계이다.
여기에 탐조등이나, X-레이선 투과나, 리트머스를 대어보는 행위가
바로 자유연상, 은유, 암시, 꿈의 해석, 명상, 최면 등이다.
이런 행위 조차도 고작 무의식의 존재, 에너지, 성질 만을 어렴풋히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을 안다는 것 자체도, 그것을 타파했다는 것 조차도,
그걸 훤히 비추어 보았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사람들은 어느정도 접속 했거나 하이퍼링크 되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에 나는 감출 '藏' 한 자를 A4 사이즈로 확대하여 벽에 붙여다 놓았다.
그리고 무의식은 내가 모르는 'maw'라는 단어를 꿈 속에서 비춰 주었다.
그 세계를 알고 싶어 하는 갈망을, 무의식의 또 다른 '나'가 '나'에게
보낸 전언 같이. '나'이면서도 도저히 정체를 알 수도 없는 '나'가
꿈 속에서 보내준 편지라 할까.
그것은 해독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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