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정물을 마시고 난 후에 얻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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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20.♡.43.140) 댓글 0건 조회 6,136회 작성일 07-11-18 10:10본문
전국을 떠돌면서 인간과 생명사랑의 깊이를 더해가던 어느 날.
초겨울의 쌀쌀함을 무릅쓰고 텐트를 쳐 놓고 들어가 잠이 든 와중에
타는 목마름이 느껴져 인근 민가에서 통에 떠온 물을 벌컥 벌컥 들이켰다.
낮 동안 내내 진이 빠졌던 터라 몸에서는 수분을 갈구하고 있었다.
참으로 달콤한 물맛이지 않을 수 없었다.
밤새 몇 차례 그 물로 해갈하고 나서
동이 터오는 아침에 물통을 들여다보고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0410 물통 아래쪽에 가라앉은 퍼런 딱지 ]
물통 내에는 페인트 벗겨진 딱지를 비롯한 갖은 이물질이 들어 있었다.
전날 떠왔던 물은 식수가 아니라, 구정물 통에서 뽑아올려진 그것인 듯하다.
갑자기 헛구역질이 밀려왔다.
뱃속에 있던 모든 것이 뒤집어져서 솟구쳐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순간적인 깨달음이 머릿속을 치고 지나갔다.
나는 밤중에는 틀림없이 저 물이 깨끗하고 맑은 물인 줄 알고 그렇게 달콤히 먹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그것이 아닌 것이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한참을 숙고하다가 나는 손으로 무릎을 탁 쳤다.
그렇다!!!(깨달음의 순간)
후뢰쉬로 물통을 확인해 보지 않은 탓이다. @.@(꼴랑 결론)
밤이라 컴컴하기 때문에 물속의 불순물이 살펴지지 않았는데,
후뢰쉬를 한번 켜서 확인해 봤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에 큰 깨달음을 얻고, 다음부터는 어둠 속에 물을 떠 마실 때 한 번씩 후뢰쉬로
살펴볼 것을 다짐했다. ^^‘
* 원효는 당나라 유학길에 굴속에서 쉬는 중에 해골 물을 들이키고 나서
‘모든 것이 자신의 마음의 상태에 의해서 결정된다. 는 불교의 진수를 체험한 후에
당나라로 유학을 갈 이유가 없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마음공부에 충실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원효를 오해한 그 이후의 수많은 그의 제자들(불자들)은 원효의 이러한
‘발상’ ‘태도’를 ‘현실생활 속에서 아무것도 않고 마음공부만 하면 된다. 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지로 사회현실에 대해서 철저히 무관심한 상당수의 불교도들은 자신들의
‘무책임’함과 ‘무실천’함, ‘무지’함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위와 같은 ‘마음의 원리’(아무것도 않고 마음공부만하면 된다)만 교묘히 갖다 붙이고 있다.
하지만 원효는 ‘물질(현실, 실천)이 미치는 인간의 생존기반’ 자체를 부인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물질이 미치는 마음의 상태’를 스스로가 조절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한 것일 뿐이다.
이는 원효가 ‘해골물’이 아니라, ‘독약’을 먹었으면 생존할 수 없었음으로 추정해서 예로 들 수 있다.
사실 원효는 그 전의 ‘사변적인’(관념적인)학문을 통해서만 불교를 접해오다가 해골물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앎의 관념성을 버리고,
‘현실’ ‘인간’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오히려 더더욱 관심을 가지고
저작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민중들에게 포교를 시작했다.
이때 그는 승복을 벗고 복성거사라 자칭해서 무애가(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 나리로다)를 읊으며 무애박을 두들겼다고 한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민중교화를 이뤄낸 원효는 아마 이때도 그는 가끔 ‘동굴’속에
들어가서 잤을 텐데,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는 생각으로 동굴 속에 고여 있는
아무 물이나 퍼마시거나 바닥에 있는 흙을 집어 먹으면서 끼니를 이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아마 처음의 경험(해골물) 이후로는 횃불(후뢰쉬)을 지펴서 그 물이 먹을
만한 것인지 아닌지, 조심히 살폈을 것이다.
(이는 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추정이다.)
왜냐하면 원효는 물질세계를 부인하기 위해 나선 허무주의자이거나,
‘생각만으로 흙을 밥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헛소리를 늘 놓는 사이비신비주의자가 아니라,
인간의 머리에 박힌 대부분의 관념, 개념, 가치들이 인간 스스로를 얽어 매고 부자유스럽게
만들어 냄을 전하기 위해 나섰던 선지자 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효는 생존을 위한 물질의 필요성은 기본적으로 전제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고 원효의 사상과 철학이 ‘허무적’이고 ‘관념적’으로 왜곡되면서
많은 불교도들은 원효의 철학을 들먹이며, 현실-사회적인 관심과 참여-실천의 필요 없음의 근거를 든다.
이들은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의 고통’, ‘빈익빈부익부의 세상’에 눈감기 위한 방편으로,
‘현실-사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는 말만 편리하게 읊조리곤 한다.
더군다나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일 수록 대중소비사회의 충실한 구성원으로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후손들의 존립을 불가능하게 일조를 하는 인물들이니 그 주장의 이율배반성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즉 이들은 자기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극히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삶을 살지만,
사회-인간-환경 문제에 대해서만 그리 무심한체로 그 무심과 무책임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현실-사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는 말을 읊조리는 것이다.
[ 0420 원효대사 삽화 - 인터넷에서 펌 ]
하지만 기실 원효가 주장했던 것은
‘현실-사회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현실-사회에 관심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왜곡된 자아의식을 만들어내는 현실-사회에 저항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나.
그렇기에 그는 현실과 사회에 대한 오히려 더욱 증폭된 관심으로 무장해서
전국을 떠돌면서 현실-사회 속에서 얽매여 있는 민중들이 ‘자유로운 길’을
갈 수 있도록 그리 쉴 새 없이 무애박을 두들긴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 대해서 철저히 무지하고, 무책임하고, 무감각한 채로 ‘자기 자신’에만 빠져
있는 대다수의 불교도들은 (대다수의 기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아무런
직관이나 통찰이 없는 상태로, 극단적인 개인주의(이기주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다만 자신의 한계를 합리화 하기 위한 방편으로 원효를 들먹여 댈 뿐이다.
진정 원효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을까?’를 숙고해 보고 싶다면,
동굴 속에서의 해골 물을 들이 킨 경험 이후로는 자신이 들이키는 음료의 안쪽을
꼭 확인했을 것임을 떠올려보라.
아마 그렇지 않고 물이나 똥이나 된장이나, 흙이나 아무것이나 다 집어 먹으면서
‘모든 것이 내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유의 말만 지껄여 댔다면,
1600년의 세월을 거쳐서 그의 가르침은 물론 그의 이름도 온전히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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