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자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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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0건 조회 4,615회 작성일 08-01-21 12:03본문
외로운 길을 걷는 구도자에게 바칩니다.
무수한 경전과 스승과 깨달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많은 걸 배우지요.
이 길은 전통과 역사의 길이고 많은 이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그것은 타인의 흔적이고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여행기를 보았다고 자신이 그 길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길은 전통과 역사의 길이고 많은 이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그것은 타인의 흔적이고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여행기를 보았다고 자신이 그 길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귀의 합니다. 그냥 믿고 복속하는 것이지요.
절이나 교회나 성당에 가서 원대한 사랑과 존재에 자신을 바쳐도 위안과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도자는 자기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 보고자 합니다.
절이나 교회나 성당에 가서 원대한 사랑과 존재에 자신을 바쳐도 위안과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도자는 자기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 보고자 합니다.
구도자는 자기 마음 속의 병통을 아는 이 입니다. 우리 내면 속에는 상처, 고통,
갈등, 욕망의 치유하지 않은 병통이 참 많습니다. 자기 공부는 이런 병통을 찾아내어
스스로 치유의 길을 얻고자 합니다. 그 병통은 다 고칠 수 없지만 그 병통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살아가려는 게지요. 구도자가 히히덕 거리며 자신을
방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또 어떤 표현을 빌리든지
자신과의 대면과 투쟁이 따릅니다. 요즘 '투쟁'이란 말을 기피하지만 또 그것
없이 어찌 나를 뛰어 넘을 수 있겠는지요.
갈등, 욕망의 치유하지 않은 병통이 참 많습니다. 자기 공부는 이런 병통을 찾아내어
스스로 치유의 길을 얻고자 합니다. 그 병통은 다 고칠 수 없지만 그 병통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살아가려는 게지요. 구도자가 히히덕 거리며 자신을
방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또 어떤 표현을 빌리든지
자신과의 대면과 투쟁이 따릅니다. 요즘 '투쟁'이란 말을 기피하지만 또 그것
없이 어찌 나를 뛰어 넘을 수 있겠는지요.
'깨달음은 없다' '지금 여기 이대로가 진리이다' '모든게 주관적 착각이다'
'분별하지 않음이 열쇠이다' 이런 말들이 무척 많습니다. 타자의 설득과
유혹이지요. 여기에는 이런 말들이 비롯된 많은 사연과 이유가 갑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들을 그대로 인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들에
대한 본질적 성찰과 고민 없이는 이런 언구들이 구도에 지친 사람들에게
한 길을 제시할지 몰라도 더 미혹한 길로 이끌 수 있습니다.
'분별하지 않음이 열쇠이다' 이런 말들이 무척 많습니다. 타자의 설득과
유혹이지요. 여기에는 이런 말들이 비롯된 많은 사연과 이유가 갑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들을 그대로 인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들에
대한 본질적 성찰과 고민 없이는 이런 언구들이 구도에 지친 사람들에게
한 길을 제시할지 몰라도 더 미혹한 길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 처럼 전통, 자신, 타자의 촘촘한 그물 망에서 구도자는 한 편 갇혀 있습니다.
이런 진경을 타개하려는 것이 구도자이며 힘든 고투 속에 경계를 넘어서려는
정신적 모험을 수시로 감행 합니다. 이런 선명한 체감 없이는 스스로 얻고자
하는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이런 진경을 타개하려는 것이 구도자이며 힘든 고투 속에 경계를 넘어서려는
정신적 모험을 수시로 감행 합니다. 이런 선명한 체감 없이는 스스로 얻고자
하는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구도자의 내면에는 그 자신이 감지하지 못하는 고뇌의 시간이 온축되어
있습니다. 그는/그녀는 떠먹여 주는 깨달음의 이유식을 거저 받아먹지
못하는 자유와 실험의 야생이 아직 살아 있지요. 치열한 싸움이 매번
정신 속에 일어나고 때로는 스스로 길을 잃기도 합니다.
있습니다. 그는/그녀는 떠먹여 주는 깨달음의 이유식을 거저 받아먹지
못하는 자유와 실험의 야생이 아직 살아 있지요. 치열한 싸움이 매번
정신 속에 일어나고 때로는 스스로 길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환하게 시린 개화의 절정을 그 생명의 극점을 그 자신
스스로 느껴보고자 합니다.
스스로 느껴보고자 합니다.
스스로 목 마른 자이며
자기의 얼굴을 알 수 없는 자로
존재의 등불을 켜고 다니는 자입니다.
자기의 얼굴을 알 수 없는 자로
존재의 등불을 켜고 다니는 자입니다.
그를/그녀를 어리석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빠삐용이라 생각하는 분에게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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