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트라우마를 겪고 지극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캄캄한 숲길을 걸었습니다. 밤하늘엔 별빛이 가득했고, 읍내는 집집마다 밝힌 불빛으로 촘촘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숲길을 걸을 때 숲의 어둠이 내 형체를 집어 삼켰고, 그렇게 전 완전히 숲에 잠겨버렸습니다. 오직 차가운 공기만이 내 육체와 숲의 경계를 가르고 있었습니다. 숲이 숲의 정령인 반딧불이를 통해 자신을 살피고 세상을 내다보듯, 이번엔 저를 통해 숲이 숲 자신을 걷고, 밤하늘과 세상을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아, 관계들에서 오는 그 미묘한 파장들, 관계에서 오는 행위와 사건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힘든건, 그토록 많은 말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 많은 말이 쓰였음에도 여전히 옳고 그름이 불투명한건, 애초에 행위와 사건들에 옳고 그름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단지 무의식적 행위와 사건들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고 그것으로 엮이게 되는 그것만이 있을뿐.......
●12월, 올 한해 마지막 강의입니다. 산청에서의 강의가 6년째인데, 다사다난했던 한 해, 혼란스럽다는 것은 새로운 질서가 오는 것이기에, 혼란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동전의 양면이 있듯이, 항상 모든 것은 희망적입니다. 받아들이면 눈에 보이는 것 이면의 것들이 보입니다. 내가 받아들인 것은 비록 절망과 슬픔일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면 알게 됩니다. 비탄이 비탄만이 아니라는 것을, 절망이 절망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 언제나 경험하는 것은 오늘, 지금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언어이고, 사회적 약속인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에 그 이름을 떼버리면, '나무'라는 이름을 떼어버리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위해 만들어 놓은 하나의 약속일 뿐인 언어, 그것에 속아버립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가 56세인데, 사실 저는 나이가 없습니다.
●이 멋진날, 유난히 햇살이 좋은 날입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파스텔톤의 투명하고 선명한 햇살, 햇살에 비추인 밝은 면과 그리고 어두운 면의 그 음영, 그리고 바라본 파란 하늘, 따뜻하고 투명한 햇살이 참 좋았습니다. 사실 세상에서 아름답지 않은게 없는데, 지금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 또 그 소리를 듣는 우리, 안솔기 계단을 올라오며 본 고양이를 쓰다듬을 수 있는 것, 참, 인생은 기적입니다. 그 모두가 아름답고, 그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게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고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67장. 노자가 가진 세 가지 보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르기를, 나의 도는 크지만 도 같지가 않다고 한다. 대저 오직 크기에 도 같지 않은 것이다. 만약 도 같았다면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서 소중하게 지니고 있는데, 하나는 자애로움이요, 둘째는 검소함이며, 셋째는 감히 세상에 앞서려 하지 않는 것이다. 자애롭기에 능히 용감하고, 검소하기에 능히 넓으며, 감히 세상에 앞서려 하지 않기에 능히 세상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자애로움을 버리고 용감하려고만 하거나, 검소함을 버린 채 넓으려고만 하고, 뒤를 버리고 앞서려고만 한다면 이는 곧 죽는 길이다.
무릇 자애로움을 가지고 싸우면 이기게되고, 자애로움으로 지키면 견고하다. 하늘이 장차 사람을 구원하고자 한다면 자애로움으로 그를 지켜준다.
연말 모임, 즐겁고 풍요로운 시간이자 공간이었습니다. 십시일반으로 준비한 맛있는 음식과, 한해를 무사히 잘 보내고, 역경속에서도 참 잘 이겨내고 성장했다고 우리들 각자에게 축하를 전하는 케익(제가 제일 많이 먹었습니다ㅋ), 그리고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특히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은 참 특별한데요,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선생님께 좀 더 마음을 쓰고, 챙겨드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면, 그 에너지가 보태어져 선생님께 전달될테고, 그러면 그것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더욱 많이 돌보는 것에 쓰일 것입니다.
●'도(진리=이치)'는 있다가 사라지거나 없다가 생기는 것일까요?, 아니면 언제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여기에는 없고 저기에만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일까요?
1. 언제나 있는 것이다.
2. 어디에나 있다(안과 밖)
3. 현재에 있는 것이다.(=현존=그것은 언제나 변화하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현재'도 아닌, 또 '언제나'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과거/현재/미래라는 의미로 착각하는데, 과거는 오직 기억으로만 경험되고, 기억은 지금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사실 오직 현재입니다.)
4. '나'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5. '무상', 어떤 모양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음식을 입에 넣으면 침이 나오고, 그것이 위에 들어가면 소화액이 나오는, 그것이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입니다. 늙음이 진행되고, 모든 현상들이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고 지금 변화합니다. 닭이 울고, 계절이 바뀌고, 낙엽이 지고 그것이 썩어가는....이것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재 일어나는 변화이고, 현재 일어나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게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언제나 현재에 일어납니다. 기쁘다, 기분좋다, 막막하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하는 마음. 진리는 언제나 지금 있는 것입니다. '영원하다'는 의미도 사람들은 먼 과거에서부터 측량할 수 없는 먼 미래라는 의미로 착각하는데, 영원하다는 정확히 지금 이순간입니다. 이순간에 도달해 보면 압니다. 그것은 사실 시간이 없는 자리라는 것을.
●진리는 어떤 모양이 없습니다. '나의 도는 크지만 도 같지가 않다고 한다'. 도는 정말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도를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도를 깨달았다는 자들이 나는 특별한 존재야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그래서 단계를 나누고, 돈을 받습니다. 도는 노력과 수고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도를 모르기에, 모르는 자들이 단계를 나누고, 단계에 도달하도록 노력하고 수고하게 만듭니다. 도는 특별한게 아니고 높낮이가 없습니다. 도는 정확히 말해서 평범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것, 밥먹고 똥누는 것, 이것이 도입니다.
●'도'는 지금 여러분입니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도를 떠나 있지 않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아침이 안왔으면 좋겠다는 무기력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삶에 목표가 있어,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하는 자신을 버립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하는 무기력한 자신을 저주합니다. 그러나 무기력이 도입니다. 무기력이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진리는 항상 지금이고 모양을 떠나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무기력이 진리인데 스스로 그 진리를 버려 버립니다. 여러분 자신이 도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긴장하고, 직장에 나가기 싫어하는 무기력이 진리고 이치고 진아입니다.
●노자가 말하는 세가지 보물, '자애로움'은 어미가 갓난아기를 따뜻한 눈으로 그냥 봐주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감정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정도 있을 텐데, 마음에 안 드는 감정일지라도 자애로운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분별심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기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반응을 느낌의 형태로 인지합니다. 양수가 터지고 엄마의 배밖으로 나오면, 아기가 처음으로 자신의 허파로 호흡하게 되고, 충격받습니다. 그러면서 '앙~'하고 울음을 터뜨리는데, 갓난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것이 엄마의 반응입니다. 그러면서 따뜻함과 편안함을 받지 못하면 이 아이는 긴장하게 되고 힘들어 지게 됩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사랑을 받지 못하면, 나중에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보인 태도가, 이 아이가 자라서 자기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됩니다. 그래서 삶이 힘드니까 자기다움을 찾기위해 밖으로 찾아 나섭니다. 목표를 만들고 수행합니다. 그러는 동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더욱 미치도록 싫어합니다. 이때 그 눈을 돌이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자애롭게 바라봐 주는 것입니다. 긴장하고, 무기력하고 떠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면, 이게 '한'이 풀립니다. 이것이 자기자신을 만나는 것이고, 이렇게 자기 자신을 만나기 시작하면 그 한번의 조우로 인해 모든 것이 풀어지게 됩니다. 사랑받지 못해 주눅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면, 이젠 그 상처받은 아이로부터 진정으로 배우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삶이 변화하게 되고 편안해지고 평화로워 집니다.
슈퍼맨이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아버지(케빈 코스트너)가 어린 켄트(슈퍼맨)의 마음을 참 섬세하게 이해하고 보듬습니다.(아버지는 켄트가 세상에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 말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동네 양아치들이 켄트를 건드리는데, 켄트는 묵묵히 참고,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아버지)
쟤들이 아프게 했니?
아플리가 있나요!
그 말이 아니잖니, 너 괜찮냐고 물어본 거다.
한 방 날려주고 싶었어요. 정통으로 때리고 싶었다고요!
나도 안다. 사실, 나도 조금은 그런 마음이었어, 근데 그러고나면?
그런다고 네 기분이 좋아지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네 스스로 결정해야 해, 왜냐면, 그게 선인이든 악인이든, 넌.....세상을 바꿀테니까<맨 오브 스틸>
예, 저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했습니다. 매 순간 순간, 세상이 제게 도전해 올 때, 세상에 아부하기 보단 내 마음을 믿어주는 사람이 되기로....그렇게 했을 때 전 제게 선한 사람이 될테고, 그것은 제가 경험하는 세상을 완전히 바꿔 버릴 것입니다.
●일선씨 아드님이 제 책을 읽고 자신을 자애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삶이 변화하게 되고, 제게 감사의 문자를 보내 왔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자신은 중학생때부터 잡생각/망상이 많았고, 그것을 부정해왔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면서 강박증이 사라졌다고, 10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31일째 피우지 않고 있다고, 긴장하거나 불안하면 손톱을 물어 뜯는 버릇이 사라지고, 아직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래서 아내 대신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 항상 남들 시선이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그런 시선도 편안해졌다는.....
●이 분은 소를 키우는 분인데,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던 분입니다. 자기생각에 빠져 오랫동안 엄청 힘든 삶을 살다가, 제 강의를 듣고, 저의 말을 자신의 삶에서 실제로 실행했습니다. 벌벌떨고 긴장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의 강같은 평화가 한달정도 지속되었고, 다시 거꾸러졌는데, 그 거꾸러짐은 예전과는 다른 거꾸러짐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은 내치기만 했는데, 지금은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고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쩌면 깨달음보다도 진정한 자기자신이 되었다는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같다고... 서든, 무너지든, 무력감에 빠지든, '그게' 답이고, 자기로 돌아오는 것이고, 현존입니다. 여러분은 못나지 않고 그냥 여러분 자신입니다.
●도는 없습니다. 단지 여러분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노력을 그치는 것, 매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 이것이 '검소'이고, 무위입니다. '앞서려고 하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을 조절하고 통제하려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자애롭기에 능히 용감하고', 초라함이 올라올 때 그것을 내치지 않을 때 고통이 옵니다. 죽음의 자리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살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죽을 자리, 고통속에 머물기에 그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검소하기에 넓으며', 수고를 통해 완전을 꽤하는 마음을 멈추었기에 올라오는 모든 것이 도가 되니, 그것이 넓은 것입니다. 불안/수치 그것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것, 그것이 자기삶을 책임지는 것이고, '세상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입니다.
●자애로움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대로가 싫어 다른 것을 추구하는, 또 그것의 이면에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기 수고와 노력을 통해 완전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 것, 이것이 '넓으려고만'하는 짓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자꾸 하려드는 자에게 검소하라 합니다. 진리는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하기 이전에 이미 진리입니다. 좋아보이는 것을 지키려하고 나빠 보이는 것은 버리려하는 짓이 '죽는 길'입니다. 노력과 수고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는 그 생각자체가 틀린 것이고 죽는 길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자애로운 눈으로 보면 싸움이 그치게 됩니다. 싸울 대상이 사라지고, 그래서 영원히 이기게 되는, 내 육체와 마음에 커켜이 쌓인 상처를 모두 치유하게 됩니다. 번뇌 그대로가 보리입니다. 나를 치유케하기위해 올라온 수치와 상처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자애로움으로 지키면 견고해집니다. 그 마음이 금강입니다.
●자기가 살길이 그 길이라 생각해서 자꾸 그 길을 고집하는 데, 그러면 하늘이 그를 때립니다. 그를 병들게 해서라도 그가 가는 길을 돌이키게 합니다. 그래서 병들어 누워보면 자기가 살아온 삶이 보이게 됩니다. 단 한순간도 자기를 위해 산적이 없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을 바로보게 되면 거듭나게 되고, 비로소 자기자신을 위해 살게 됩니다.
●도는 특별한 것이 아니고, 바로 여러분이 도입니다. 그런데 도라는 '상'때문에 자꾸 자신을 버립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그 완전한 평화는 단 한순간도 여러분을 떠나있지 않았습니다. 아, 내가 거꾸로 살았구나, 내가 속았구나, 맞습니다. 원래 그냥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으로부터 사랑받아야 합니다. 그동안 자신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채찍질해 왔는데, 그걸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요? 그것은 지금 즉시로 가능합니다. 자신을 자애롭게 바라봐주기만 하면 자기자신과 소통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세상과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자애로움이 있다면, 내가 아닌 남이 되려는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있고, 도망가더라도 그 길을 다시 돌이켜 지금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불행을 놓아버리면 무의식의 공포감이 의식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려운 공포감을 차단하기 위해 불행에 매달린다. 공포감을 의식하는 것보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쪽이 심리적으로 훨씬 편하다. 불행을 주변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동정을 구하면 정말로 무서운 공포감으로부터 신경을 끊을 수 있다.<가토 다이조>
더는 불행을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을 들었을 때, 그래서 제가 무조건 불행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제게 제일먼저 다가온 것이 극심한 공포였습니다. 식은땀을 흘리고 벌벌 떨면서도 전 그 공포속에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허용할 때마다 저는 조금씩 더 편안해 졌습니다. 그러니 불행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불행을 선택했고, 불행에 매달렸다고 말하십시오.
<질의 응답>
●마음이 어느 순간 편안해 졌는데, 그 특정한 시점을 말해 볼 수 있을까요?
○시험을 볼 때 올라오는 불안감, 성적을 받아야할 상황인데,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서 시험을 망쳐버린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것과 함께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궁지에 몰렸었습니다. 그러다 시험을 좀 망쳐도 괜찮지 않을까? 이번에 시험을 망치더라도 내년에 공부해서 더 잘 보면 되지않을까하면서 그 압박감이 느껴지는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시험을 잘 치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그 긴장을 받아들이고, 이번에 떨어지면 다음에 잘 보면 되지하는 것이 자애로움입니다. 그 한번의 전환이 다른 일과 상황에서도 다른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단초가 될 계기가 됩니다. 이전에는 탓하기만 하고 피하려고만 했는데, 이젠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상황은 똑같지만 그 상황속에서 배우게 되는, 그 한번의 전환이 그 사람 자체를 바꿔나 버리는.....
○분노로인해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는 어떻게 합니까?
●행위로는 하지말고, 마음속으로 복수할 수 있는 온갖 상상과 감정을 100%허용해 보는 겁니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마음껏 품어내지 못하게하는 저항이 문제입니다. 만약 상대에게 거부당할것같은 두려움 때문에 분노를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런 상황이라면 한번 상대에게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분노가 일어나는데도 그것을 억압하고, 그 억압의 이유가 상대가 나를 떠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라면, 한번 적극적으로 분노를 표현해 보십시오. 상황에 따라 분노를 쏟아내도 되고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마음으로 그 감정을 믿어주고 허용해 준다면 그것을 통해 자신의 또다른 힘을 만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길은 없습니다. 사실 당신은 이미 길위에 있습니다. 이미 길위에 서 있으면서 다른 길을 찾는, 지금 자신감이 없고, 불안해하는, 그것이 길인데, 그게 아닌 다른 내가 되려하는, 그렇게 다른 내가 되려할 때 지금의 초라한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되고 저주가 됩니다. 길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긴장하고 무기력한,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그것, 그래서 그것이 나를 집어 삼키려 들 때 기꺼이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는 마음을 먹는 것, 그것이 길입니다.
○제가 마음이 닫혔습니다. 피하고 달아나고, 왠지 모를 적대감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자꾸 괴롭히고, 그래서 어디를 가서도 오래 버티지를 못합니다.
●예전에 어디를 가도 감당이 안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괴로우면 도망치고, 그 어떤 직장에서도 3~4일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달동안 108배를 하게하고, 어떤 일을 하게될 때 그 일에서 짤리기전까진 절대 스스로 그만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약속을 하니, 그 사람이 죽을 지경이 되고, 숨이 막힐듯한 고로움을 비로소 만나기 시작했습니다.(예전엔, 관계가 조금만 힘들어지면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그 괴로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기에, 정작 그 괴로움을 한번도 진정으로 만나지 못한)긴장하고, 또 저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그런 두려운 감정들을 그대로 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이 정보입니다. 머리가 콱막힌다고 했는데, 그 속에 있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괴로울 때 한번 돌이켜 그 괴로움속에 있어 보십시오. 도망가지 말고 그 고통속에 있어 보십시오. 한번 태어난 생, 제대로 한번 살아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파도 타기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거야. 그것은 정신상태야. 그곳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발견하는 곳이지. 너는 모르고 있지만 넌 그것을 가지고 있어. 그놈들과 싸우는 걸 봤는데 조금도 겁먹지 않더군. 그들이 널 에워싸고 있는데도 말이야. 그것이 제일 중요한 거야.
난 지금 죽으러 가는거야, 미쳐서 죽으러 가는 거라구.<폭풍속으로, 키아누 리브스/패트릭 스웨이지 주연>
예, 미쳐서 죽으러 갈 수 있는 용기, 두려움이 나를 에워싸더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용기...........
●아버지 집안이 가난하고, 그래서 할아버지가 아버지 공부를 시키지 않았고, 아버지는 집안 일만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공부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과 한이 있었고, 그러면서 결혼을 하게되고 자식을 낳았는데, 그 열등감과 한이 자식에게 그대로 흘러가고, 이 아이가 그로인해 강박증, 열등감 등등의 종합세트가 됩니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저에게 엄마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고, 그래서 서울로 내빼고 싶은데 어떡했으면 좋겠냐고 묻길래, 서울로 튀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고 그러면서 이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에겐 강박증이 있습니다. 집밖에 나서면 전기 스위치를 껐는지, 보일러는 껐는지?, 나왔던 그 길을 돌이켜 다시 집에 들어가 확인하게 되고, 그래서 확인하고 나와서는 다시 또 확인하고 싶어지는, 뻔히 껐다는 사실을 알지만,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올라오면, 그럼 또 확인해!하며 그런 자신을 나무라지 않고, 그 강박을 더욱 허용해 주었습니다. 생각이 날때마다 확인하러 갔습니다. 자꾸자꾸 그걸 허용해주니, 어느날 그게 귀엽게 여겨지고, 재미있는 놀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무엇인가를 잊어버렸는데, 더 이상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분은 자신에게 이 강박이 있다는게 참 큰 축복이고, 이것을 통해 삶을 배우고, 그것이 주는 기쁨이 있다고 말합니다.
○제게 집착이 있고, 그 집착이 놓아지지 않습니다. 또 제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직장에서 승진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승진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승진을 하지 않으면 마음은 편한데, 또 한편 정체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또 승진하면 고생하게 될 것같아서 승진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승진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는데, 그러면서 자기몫도 챙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이 올라오고, 또 한편으로는 직장동료에게 좋은 것을 양보했다는 마음이 올라오는,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제가 집에 있을 때 남편이 늦게 들어오고 제게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고, 일부러 약속을 잡아 누군가를 만나는, 제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인가 해놓고 매번 후회하는, 결정을 한번 했는데, 자꾸 잘못된 결정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왔는데,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승진을 하지 못해 스스로 억울함을 만드는, 신랑과의 관계에서도 뭔가 억울함이 있는.
●남편에 대한 집착과 진짜 원하는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가 한뿌리인 것 같습니다. 승진을 하게 되면 일이 너무 힘들게 될것같아 승진을 포기했는데, 그러면서 한편으론 남에게 양보했다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하고, 또 한편으로는 승진하지 못해서 바보같은 자신을 보게되는....진짜 마음이 아니라 가짜 마음이라 이것저것을 가져다 붙이게 됨을 봅니다. '후회하고 억울해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자꾸 올라온다'고 했는데, 이때 그것이 올라올 때가 기회입니다. 억울함, 자책, 후회 이것들만 있다면 괜찮습니다. 이것이 올라올 때, 마음껏 장을 펼쳐주십시오. 실컷 억울해하고, 실컷 자책하고, 실컷 후회하는 마음을 허용해 주는 것입니다. 마음껏 스스로를 쥐어 뜯도록 허용해 주십시오. '후회와 자책을 계속하면 병이 생길것같아 계속 못하겠다'고 말하는데, 이미 병이 생겼잖아요.(이미 생겼으니, 병이 생길까 두려워하지 마세요.) 어느것 하나 끝까지 가지 못해서 생긴 병입니다. 어느것 하나 제대로 해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후회/자책'을 마음껏 허용해 보는 것입니다. 병이들까봐 하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그러지 말고 한번 후회하고 자책하는, 자신을 비난하는 그것을 한번 실컷 허용해 보는 것입니다. 이것 한가지라도 한번 실컷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장을 허용하면, 그것은 그러다 끝이 납니다. 제 스스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그것을 마음껏 허용했을 때, 남편에 대한 집착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그것을 허용해 주면, 어떤 에너지의 전환이 오고, 남편이 집에 들어오든 말든, 내 삶을 살게되고, 그러다보면 남편은 저절로 집에 일찍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제게 그것이 보입니다. 남편이 집에 일찍들어오지 않아서, 일을 일부러 만들어 자기도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밖에 나간것도 아니고 나가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마음껏 허용해주면 에너지의 전환이 오게되고, 그러면 남편과는 상관없이 밖에 나가는게 즐거워 나가게 됩니다. 후회와 자기질책을 마음껏 허용해주면 후회와 자책을 하면서도 그 속에는 후회와 자책이 없게 됩니다. 제 친구는 공황장애가 있었고, 잠자리에서 자기가 잠들면 죽을 것같은 공포 때문에 잠을 자지못하고, 내가 잠들어 죽게되면 처자식은 누가 먹여 살리나하는 두려움속에서 어느날, 그 마음을 바꿔먹고, 에이 한번 죽자하는 마음을 내게 되고 그러면서 삶의 전환이 오게됩니다. 강박증하나가 뚫리고 나니까 삶 전체가 바뀌게 됩니다. 이와같이, 후회와 자책이 올라올 때 그것을 마음껏 허용해 보십시오.
야마꼬님이 만든 감말랭이, 겨울의 별미......
매음녀
(이연주)
몇 번의 마른기침 뒤 뱉어 내는
된가래에 추억들이 엉겨 붙는다.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쉬고 싶다.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함박눈 내린다.
행복해지고 싶은데 왜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일까? 진심으로 행복해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영역에서 '불행해지려고 노력하고 있기'때문이다.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보다 "그 사람에게 복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가토 다이조>
성장하며 아버지를 증오했고 그래서 그에게 복수하고 싶었고, 복수했습니다. 내가 망가지고 최대한 불행해져야, 그는 최소한 아버지이니 마음아파할테고, 그가 마음아파해야 그것이 나의 복수가 될테니까요.
○친구를 사귈 때, 어느정도까지 오픈하고 이야기를 해야할지, 어느 정도까지 한계를 지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내 개인적 아픔을 이야기하면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 이야기를 너무 무거워하지 않을까하는 것 때문에 그런 이야기의 한계를 두는 것 같습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억압하고 있는건지, 내가 깊이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허전함이 있습니다.
●'진실하다, 정직하다'하는 이런 것에 대한 상이 있습니다. 자기의 전부를 꺼내보여야 진실하다는 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하다는 것과 꼭 자신의 전부를 꺼내 보이는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내면 깊은 곳에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자기속의 이야기를 상대를 통해 인정받으려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깊은 속이야기를 내 보여야 진실하다'는 생각에는 자기가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상대에게 보여 상대로부터 이해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이해는, 자기안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데, 이걸 자기자신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니까, 그것을 남에게 꺼내어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러나 진정한 이해는 절대 밖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인정은 절대 자기밖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아직 그 이야기를 꺼내면 찜찜할 것같아, 다른 사람에게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찜찜함이 가로막았는데, 그 찜찜함을 따른게 진실로 지혜로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나야'하는 자신에 대한 진정한 받아들임이 오면, 그게 나와의 관계에서 거리가 없어지는 것이기에 밖에서의 관계에서도 그런 경계가 사라지게 됩니다.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구나하는 이해가 중요합니다. 속의 내밀한 이야기를 하고 하지 않고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대에게 인정받기위해 속의 말을 하면 시원하지가 않습니다. 인정받으려는 의도 없이 말을 한다면 오히려 시원해집니다. 어떤 마음으로 말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은 결코 자기것이 될 수 없습니다. 모르겠을 때, 책을 통해 찾기보다는, 삶속에서 부딪혀보고, 헤매보고, 모르겠는 상태속에 머물러 보는 것, 그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Don't worry Be happy!!!!!
비법은 없다, 단지 너 자신만이 있을 뿐이다.
일선님이 선물한, 원단이 고급스러운 옷, 기태선생님 인생을 20년은 업그레이드한듯한ㅋ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다.
인생의 의미란 무엇이든 갖다 붙이면 그만이다.
진정한 의미란 살아 있음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삶에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삶을 경험하는 것,
고통과 기쁨 모두를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 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는
삶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
차마 들어가기 겁내던 바로 그 동굴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의 원형임이 밝혀진다.
동굴 속에 숨어 있던, 그 무시무시한 저주받은 것이 바로 그 중심이 된다.
<조지프 캠벨, 신화와 인생>
'신화'는 먼 옛날 이야기속에 있는게 아니라, 지금 내 삶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내 삶이 곧 '신화'임을 깨닫습니다. 무시무시한 역경을 통과하고,
그 역경과 투쟁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고,
자신이 약한 존재가 아님을 확인하고,
힘의 원천, 생명의 원천이 자기내면에 깃들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혼란스러운 정국,
혼란의 수습이 비록 조금 늦추어 지더라도,
촛불을 든 국민의 염원인,
보다 진보된 사회질서가 세워지길 바라며...
2017년 1월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