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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게 진짜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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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인 (211.♡.160.42) 댓글 4건 조회 8,918회 작성일 16-09-30 10:44

본문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이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엔 너무도 많은 내가 존재한다.

그 중에 어느 게 진짜 나인가?

그걸 알면 갈증이 끝난다.

내게 그걸 아는 건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 같이, 남들에게 얘기 해 줄만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냥, ‘문득그렇게 알았다.

그 얘기를 해 보려고 한다.

며칠 전 일이다.

그 때도 귀에 이어폰 꽂고 선생님 동영상 강의를 듣고 있었다.

저만치에서 아내가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 게 보인다.

멀리서 보기에 화면에 나타난 것들이 대충 짐작된다.

순간 미움이 솟구친다.

한편으로 아직도 내게 미움이 사라지지 않았구나!’는 자괴감이 나타난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저렇게 허망한 데 소모하는 게 미움의 이유다.

그동안 공부를 통해 미움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미움문제를 해결한 줄로 알았었는데, 다시 미움이 찾아오는 내 자신을 보니까, ‘도루아미타불이로구나!’

그러다가 , 알겠다!’

바로 이거로구나!’

이렇게 알고 나면서 지극한 평안이 왔다.

아마 그 시간은 불과 몇 초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이벤트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겠다.

소중한 한 순간 순간을 그렇게 허망한 곳에 쓰는 아내를 미워함, 그게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런 미움을 인지함으로 해서 찾아오는 고()가 문제다.

도저히 미워해서는 안 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저이를 미워하다니.....’

그 미움을 느끼는 나 자신을 정죄(淨罪)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게 바로 고().

아내를 미워하는 나()가 문제가 아니다.

아내를 미워하는 나를 못견뎌하는 나()가 문제다.

그게 바로 에고(ego).

그런 나는 없다.

무아(無我)가 바로 그 얘기일 것이다.

김기태 선생님의 또 다른 강의에 나오는, ‘오줌 누는 게 힘든어느 분 얘기가 생각난다.

오줌 누는 게 힘들다는 사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남들을 의식함으로 해서 오줌 누는 게 힘든 것, 그게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그 힘들어 하는 자신을 못 견뎌하는 데 있다.

여기 두 개의 나가 존재한다.

남들이 보면 편하게 오줌을 누지 못하는 나(), 그리고 그것을 못 견뎌하는 나(), 이 두 개의 나 중에서 진짜 나는 무엇인가?

그것을 못 견뎌하는 나()는 진짜 나일 수 없다.

왜 진짜 나가 스스로를 괴롭히는 그런 짓을 하겠는가?

그러니까 나를 괴롭히는 그것을 못 견뎌하는 나()는 가짜 나일 수밖에 없다.

그걸 아마 자아(自我), 에고(ego)라고 부를 것이다.

따라서 진짜 나는, 에고가 아닌, 남들이 보면 편하게 오줌을 누지 못하는 나()라는 게 분명하다.

선생님 강의에서 익히 들었던 대주 혜해(大珠慧海)스님의 깨달음 순간도 같은 얘기일 것이다.

대주 혜해(大珠慧海)스님이 처음 마조(馬祖)스님을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월주(越州) 대운사(大雲寺)에서 옵니다."

"여기에 와서 무엇을 구하려 하느냐."

"불법을 구하려 합니다."

"자기의 보배창고(寶藏)는 살피지 않고서 집을 버리고 사방으로 치달려 무엇 하려느냐.

여기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무슨 불법을 구하겠느냐?"

대주스님은 드디어 절하고 물었다.

"무엇이 저 혜해(慧海)의 보배창고입니까?"

"바로 지금 나에게 묻는 그것이 그대의 보배창고이다. 그것은 일체를 다 갖추었으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작용이 자유 자재하니 어찌 밖에서 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 시대의 위대한 영적 스승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의 깨달음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스물아홉 번째 생일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밤, 나는 절망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 느낌 속에서 헤맨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여느 때보다 강렬했습니다. 밤의 적막 속에서 윤곽만 희부옇게 보이는 방안의 가구들,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차소리,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낯설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서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모든 것이 아무 의미도 없었고, 삶 자체가 끔찍스럽기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지긋지긋했던 것은 나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이런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단 말인가?’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싶은 깊은 갈망이 먹장구름처럼 나를 뒤엎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어. 도대체 나는 왜 이 모양이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 때, 불현 듯, 그것이 얼마나 이상한 생각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나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하나가 아닌 둘이란 말인가? 내가 나 자신을 견딜 수 없다고 느낀다면, 나는 둘이어야 마땅하다. 평소의 내가 있어야 하고,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또 하나의 내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나인 것일까?’

갑작스런 이런 깨우침에 머릿속은 일순 모든 작동을 멈추어 버렸습니다. 의식은 생생했지만,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에크하르트 톨레 지음/노혜숙·유영일 옮김, 양문)

내게 찾아온 그런 앎의 순간은 에크하르트 톨레의 경우처럼 그렇게 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지난달인가 강의가 끝난 다음 모임에서 김기태 선생님이 한 말씀이 생각난다.

석가모니, 예수 같은 분들은 말하자면 크고 화려한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난 그저 작은 꽃입니다.”

꼭 크고 화려한 꽃만 좋은 게 아니다.

정원에 그렇게 크고 장엄한 꽃들만 가득하다면, 그것도 아마 부담스러울 것이다.

나도 그냥 이름 없는 아주 작은 꽃이어도 좋다.

아니 꼭 꽃이라는 이름을 붙인 결과물이 있어야만 된다는 법이 있겠는가?

그냥 지금 이대로, 아직 꽃이 피지 않은 풀잎이라도 좋다.

선생님 가르침을 통해 무엇이 진짜 나인지를 흘낏 봤다.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이지만, 그간 일을 기록해 보았다.

댓글목록

김기태님의 댓글

김기태 아이피 (183.♡.9.84) 작성일

좋네요!
그렇게 한 순간 돌이켜 자신을 보는 것을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합니다만,
행인님의 글을 읽는 제 마음도 참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행인님의 댓글의 댓글

행인 아이피 (211.♡.160.42) 작성일

김기태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늘 목이 말랐었지만
정작 갈증이 가신 상태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었습니다.

아직도 종종
그게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책을 손에 들기도 하지만
책 읽기가 겁이 납니다.

세상에 좋은 책이 많기도 많지만
"무엇을, 어떻게, 구(求)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러면 다시 뭔가 구해야 할 것같은
조바심이 찾아 옵니다.

하기에 책 읽기를,
공부하기를,
멈추기도 합니다.

물론 진짜 감로수마저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걸 몸으로 보여주시는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문득님의 댓글

문득 아이피 (221.♡.89.66) 작성일

가시나무 새.
젊은 날 많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속으로...
너무도 자신을 잘 표현한 한 편의 詩.

이런 노래를 아시는 분이라면 뭔가 동질감을 느낍니다!

좋은 일이 생기셨다니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가시나무 새와 더불어 '새 날'이란 노래도 있었죠.

어느 흐린 날 고속도로 차 안에서 그 노래를 들으면서
나에게도 이런 '새 날'이 올까?
하고 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바햐흐로,
푸른 초장을 사슴처럼 뛰 노는 게 '자신의 일'이 되었음을
축하드립니다!!
물론 그 초장은 순탄치만은 않은 거 같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선 결단코 아버지께 이를 수 없다는
예수님이 말씀.
하지만 그 상태 그대로 푸른 초장임을 압니다.

땡큐입니다~~
(최근에야 행인님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행인님의 댓글의 댓글

행인 아이피 (211.♡.161.211) 작성일

문득님,

오래 알고 있어도
낯이 선 사람이 있고
오래 되지 않아도
익숙한 상대방이 있습니다.

몇 번 만난 일은 없어도
따뜻한 기운을 느끼곤 했습니다.

뭔가 '새날'이 된 것은 같은데
그게 정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오직 분명하다면 분명한 일은
뭔가 구(求)함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선생님 덕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일부러 내 보이지 않아도 될 것들을
그렇게 보여주심이
다 깊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런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 긴기민가 하는 상태에서
다시 구함으로 빠져들어갔을 것 같습니다.

사정없이
부처라는 상(相)을 부숴버릴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이 고맙기만 합니다.

이렇게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셔서
정말 든든합니다.

인도에는 이달 29일 갑니다.

아마 서울 모임이 22일에 있다면
다시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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