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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 산청모임(64장. 천리길도 한걸음부터)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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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름가지 (183.♡.203.138) 댓글 8건 조회 9,399회 작성일 16-09-16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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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앓이
                     (강영철)

밤별들이 내려와 창문 틈에 머물고
너의 맘이 다가와 따뜻하게 나를 안으면
예전부터 내 곁에 있는 듯한  네 모습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네게 주고 싶었는데
골목길을 돌아서 뛰어가는 네 그림자
동그랗게 내버려진  나의 사랑이여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그 큰 두 눈에 하나 가득 눈물 고이면
세상 모든 슬픔이 내 가슴에 와 닿고
네가 웃는 그 모습에 세상 기쁨 담길 때
내 가슴에 환한 빛이 따뜻하게 비췄는데
안녕하며 돌아서 뛰어가는 네 뒷모습
동그랗게 내버려진 나의 사랑이여

아-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찾아들고, 그 바람은 내 마음의 외로움을 귀신같이 찾아 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꼭 껴안고 싶은, 그렇게 한참을 껴안고서 그 사람의 호흡과 심장의 두근거림을, 그 전해지는 진동을 내 온몸으로 받아내고 싶은.....

'아-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예, 저라면 사랑의 기쁨뿐만이 아니라 그 사랑으로 인해 아픈 가슴까지도 통째로 허용하겠습니다. 그 아픈 가슴을 전적으로 저의 것으로 하겠습니다. 지독하게 아리는 가슴인채로 있겠습니다. 그래서 내 감각을 마비함으로써 통증을 외면하고 그로인해 자신과 또 세상과 단절되기보다는, 그 통증을 있는 그대로 허용함으로써 내 자신과 세상과 소통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수한번 칩시다. 손바닥만 부딪혀도  에너지가  흐른다는데, 밝고 힘찬 박수소리로 강의를 시작하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오는 길은 안개가  끼어있고, 먼산, 들, 꽉찬 알곡으로 고개를 많이 숙인 벼,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우리도 이와같이 깊어지고 고요해지면 고개를 더욱 숙이게 되는, 그런 풍경을 안개가 감싸고 있었고 그 신비로운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차를 타고 오면서 계란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에게 계란을 주셨는데, 풀을 베어 닭모이를 직접 만들고, 건강한 닭, 건강한 계란, 건강한 삶.... 좋은 계란의 조건이  크기가 작아야  하고, 노른자위가 옅은 색이 좋다는, 또 계란 껍질은 딱딱한게 좋은. 오늘 아침 그 계란을 후라이해서 먹었는데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실제로 그 좋은 계란을 우리 모두가 먹어야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 돈만을 앞세우게 되면 다 무너지게 됩니다.

도덕경 81장 전체를 통해 노자가 매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리의 길입니다. 이 길을 알면 인생의 모든 것에 물들지 않고, 모르기 때문에 쓰지 못하는, 64장에서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방황의 끝, 삶의 참다운 행복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그 행복의 길, 진리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8/29일부터 저에게 거의 매일 자신의 경험을 문자로 보내주신분이 계십니다. 그분의 문자를 통해 삶의 변화, 천리길도 발밑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말해보겠습니다.

○선생님의 강의, 말씀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고, 제 자신을 바라볼 때 선생님의 말씀과 같이 애틋한 마음이 듭니다. 제 남은 삶을 선생님 말씀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여러 감정들, 화, 실증, 미움을 그대로 느껴 보았습니다.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만나 보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아련한 슬픔이 밀려오는데, 그때마다 눈물이 가득 고입니다. 그것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지  않으니까 아주 귀한 것이었습니다. 오래 묵은 와인의 향기처럼, 알싸하게 향기로웠습니다. 내 감정에 대해 항상 상대의 핑게를 대었었습니다. 이젠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해야할 것으로 여깁니다. 이렇게 했더니 이상하게 마음이 아늑하고 평온했습니다. 이렇게 생활속에서 실험하면서 살면 이게 맞는 것입니까?
오늘은 56강 강의를 동영상을 통해 들었습니다.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멈추고, 남에게 항상 웃는 얼굴을 해야하고,  모든게 친절해야  더 나은 자신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대로 내가 완전한데 더 무엇을 해야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웃을 필요도 없고, 더 잘하려고 할 필요도 없고, 화가날때 그것을 느끼려고 하니 그게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생님 강의를 듣는게 왠지 아련한 자신과 함께하는 느낌입니다. 강의를  듣기 전에는 늘 수행에 대한 부담감과 가르쳐주신 분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강박, 어제부터 그 마음을 느끼고 더는 집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숨을 느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주 이완을 경험합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잘 배우지 못하고, 부족하고 혼자인 나, 그래서 왠만하면 남과 다투지 않고 살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도 저를 깊이 이해해 줄 분이기에 편안하게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말씀으로인해 세상살이가 참 쉽다는게 느껴집니다. 삶이 참 신비하고 많은 것을 체험하고 살고 있습니다.


사랑에 빠질 수록 혼자가 되라.
                                              (릴케)

사랑이 다른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것이 커지기 시작하면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송두리째 던져 주고 싶은 충동.....
사랑에 빠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야 한다
사랑이라 불리는 그것
두사람의 것이라고 보이는 그것은 사실
홀로 따로따로 있어야만 비로소 충분히 전개되어
마침내는 완성될 수 있는 것이기에.

사랑이 오직
자기감정속에 들어 있는 사람은
사랑이 자기를 연마하는 일과가 되고...
서로에게 부담스런 짐이 되지 않으며
그 공간과 거리에서
끊임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두 사람이 겪으려 하지 말고
오로지 혼자가 되라......

사내아이로 태어나 죽은 누이를 잊지 못하는 엄마로 인해 여자아이의 옷이 입혀진 채로, 죽은 누나의 삶을 대신 살았던, 자기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했던 어린시절의 삶, 누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릴케의 지독한 고통이 전해집니다. 그가 이런 시를 쓸 수밖에 없었음이  이해가 됩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을 상대방의 반응에 신경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존중할 때, 그 사랑의 감정은 '비로소 충분히 전개되어 마침내는  완성될'것입니다.

'관계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두고 얼마만큼 거리두기를 잘 하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일혜)


●도, 진리, 자유가 무엇입니까? 걸림없이 사는  것, 그러나 인생은 걸림없이 살아갈 수 있는게 아닙니다. 불교용어로 말하면 경계밖에 없는데, 그 경계를 깨려고하면 참 힘들어 집니다. 경계가 곧 자유이고, 존재자체가 자유입니다.우리 인생에 목적이 있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우리에게 목적은 이미  이루어져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 그것이 목적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려고 하기에 있는 그대로 존재하지 못하게 되고,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바이런 케이티가 말합니다. 제겐 '궁극적'이란게 없습니다. 내게는 현실(현존, 도)이 단순합니다. 그것 위(지금 경험하는 것, 감정, 느낌, 생각)에 아무것도  없고, 그것 뒤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든 당신 앞에 있는 것이고, 무엇이든 지금 일어나는 일이며, 당신이 그것과 다투면 늘 지게 되고,  지금 있는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고통밖에 없습니다라고.

내가 너무 초라하고 부끄럽고, 너무 내 자신이 마음에 안들고, 대인공포가 있고, 그래서 늘 마음이 괴롭고, 혼자 있을 땐 너무 게을렀고, 인정받고 싶어 척/체를 많이 했습니다.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혼자 있을 때 한없이 게을러지고 무기력해지고, 또 그런 자신을 못마땅해 합니다. 자기안에서 올라오는 못났다고 여기는 것은 회피하고 부정하는, 그러다 또 괜찮은 모습이 올라오기도 하는데, 그것은 확대 재생산하고 떠벌리고 다니는, 저는 이런 내가 참 싫었습니다. 저는  이런 내가 싫어 다른 내가 되려고 한없이 나아가다가  갑자기'나'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른 것을 추구하는 '나'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지금의 부족한 나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지금이 지옥이어야 하는데, NO!,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지금 이런 모습이 너무나 싫어 다른 것을 찾아갔는데 말입니다. 이게 에고가 우리는 속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저것을 구하기에 이것이 부족해 보인 것입니다. 저기에 가려고만 하니까 지금이 괴로운 것입니다. 다른 것을 찾는 행위를 그치면, 결핍 그대로 충만입니다. 사람들은 사랑받지 못해 쭉정이만 남은 난데, 지금 이런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하면  분해하고 억울해  합니다. 그러니 누가 저의 말을 믿겠습니까!

미움, 슬픔, 성냄 이것은 오직 지금 현재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도 지금입니다. 우리는 지금을 놓칠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습니다. 갑자기 저쪽을 향해 나아가던 그것이 끝이  났고 중생만 남았는데, 그것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늘어나는 것도 아닌 그냥 나였습니다. 부족하거나 못나지 않았습니다. 전혀 부족하거나 못난 것이 아니었는데, 이런 초라한 내가 싫어 저리되고 싶었고, 자기가 아닌 남이 되고 싶어하니까 지금 있는게 부족해 보이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이  아닌 다른 것을 추구하던게 갑자기 끊어졌고, 그러면서 알았습니다. 파도가 곧 바다였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무한자, 곧 바다였습니다. 그래서 파도가 바다가 되려는 몸짓만 그치면, 그 착각하나만 놓으면, 바다가  되려는 그 몸짓하나만 놓으면 되는데, 바다가 되려는 것으로 이미 바다인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닌자터틀 2. 아주 유쾌한 영화인데요,  닌자거북들은 그 흉칙한 외모때문에 사람들에게 괴물이라 따돌림 당하기에 지하세계에 자신들의 은신처를 두고 또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고 활약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들에게 몸에 바르면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액체가 주어지고, 이 액체로 인해 닌자거북들은 서로 갈등하는데.....)

라파엘 : 닌자의 3대 덕목이 뭐지? 속도, 은밀함, 그리고 명예. 그런데 형제를 속이는게 명예인가?
레오나르도 :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라파엘 : 이젠 거짓말까지 하는구나.
레오나르도 : 보라색액체에  대한 이야기라면 불필요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을 뿐이야.
라파엘 : 우리가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레오나르도 : 좋든 싫든 우린 거북이야.
라파엘 : 저 위의  인간들은 우릴 인정하지 않잖아.
레오나르도 : 진정한 인정은 내면에서 비롯돼.

네, 진정한 인정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저 나일 뿐입니다. 그때 비로소 처음으로 저를 만났고, 자신으로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내가 되었습니다. 저기가면 자유와 평화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꿈결같은, 저는 그것에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그냥 존재하게 되니 평화가 내 안에서 솟구쳐 올랐습니다.

저기가려는 몸짓을 멈추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재하면, 그냥 아프고, 힘들고, 중생 그대로인데, 그것을 통해 성장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내가 무너진 만큼 다른 사람에게 섬세하게 다가가는, 나를 살림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같이 살리는.....

자기감정을 숨긴 채 웃어야 하는, 그런데 그런 모습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그렇게 자신을 등불삼아 가는, 그러면서 찾아오는 감정이 슬픔입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고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성장하면서 늘 외로웠고, 한번도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받으려 자신의 모든 것을 감추고 오직 상대에게 맞추는 것을 통해 사랑받으려 하는, 그래서 자기삶을 살지 못했기에 삶이 공허해지는, 자신을 비로소 만나기 시작했기에 자기삶에  가득했던 슬픔이 올라온것입니다. 제 강의를 통해 자기 감정으로 돌아오는, 저리로 가려는 마음이 멈추어지고 지금 올라온 자기 자신의 감정을 만나가는....

50년 묵은 슬픔을 만났더니, 알싸한 느낌, 설명하기 힘든, 저리로 가려고 하는 동안에 자기안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이 조금만 올라오면 그것을 부정하고 죽였고, 그랬기에 저리로 가려는 동안에는 지금 올라오는 것들이 보이지 않고 또 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올라오는 것을 조금이라도 만나면 그것이 참 귀한 정보를 내게 보여 줍니다. 그러니 상처받은 결핍 그것이 진주이고 보배입니다.

지금 올라오는 이것에 온 우주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곧 사랑입니다. 이런 내가 싫고 저런 내가 되려고 하는 동안에는 보지 못했던 지금 올라오는 것, 남들에게 외면 당하는 것 같은 아픔이 올 때 그것을 허용하는, 그런데 수행이란 이름으로 그것으로부터 도망갑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결단코 진리로 갈 수 없습니다. 자기를 만나는 길, 그 가시밭길, 한번도 만나지 않았던, 만나고 싶지 않아 외면했던 그 감정을 만나야 하기에 정말 힘들어 질 수 있습니다. 한번의 전환, 미래, 저리로 가려던 것이 지금으로, 아픔으로부터 도망가던 몸짓을 멈추고 아픔자체로 돌이켰을 때 늘 눌려있던 감정들이 쭈욱 계속해서 올라오게 됩니다. 그러면 삶이 정말 놀랍고 신나는, 이것은 노력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소중합니다. 지금 나를 괴롭게 하고 쓰리게 하는 그것을 만나면 잠깐 아프지만, 영원한 행복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잔이 흘러 넘치게 됩니다. 여러분이 빛입니다. 이 빛이 애매모호했던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모든 것을 주고도 준다는 생각도 없는, 이것은 호흡처럼 쉬운 것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지금 여러분 삶속에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외면하지만 않으면, 여러분이 매순간 경험하는 감정이 곧 도입니다. 외면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깁스?를 하고 오셨는데, 빨리 쾌유하길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인생의 길잡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손을 뻗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가장 좋은 가능성에 이르는 것, 자기자신이 되는 용기를 품는 것이었다. (자크 살로메)
저는 인과응보가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한 일과 또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들을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으니까요. 내 감정에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으니까요. '자기자신이 되는 용기'란 자신의 감정을 책임지는 태도가 아닐지.....

진리가 어디에 있을까요? 집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집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모든 의문과 목마름을 해결할 그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 '밖'에는 진리도 평화도 없습니다. 그런데 에고가 우리를 너무나 그럴듯하게 속입니다. 자기완성을 위해 수행하는, 인간의 마땅한 길이라고 에고가 속입니다. 여러분이 '본향'입니다. 단  한순간도 떠난적이 없는 영원한 본향이 여러분 자신입니다. 진리는 지금 있습니다. 성내고 괴롭고 우울한 그것이 본향입니다. 그러니 떠나지만 않으면 됩니다. 짜증내고 긴장하면 곧장 그것을 떠나 고치고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치십시오.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내치고 저리로 가려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지금 올라오는 것에 있으면 불편하고 힘들어지지만, 그것은 곧 끝이 납니다. 그러나 저리로 가면 그것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속아왔습니다. 집떠나면 개고생, 떠나면 어지러워집니다. 이런저런잡다한 지식들로.....한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도 이 터럭 같은 씨앗에서 시작됩니다. 한줌의 흙, 발밑, 이게 우리의 생각, 느낌, 감정입니다.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집안에 편안하게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내 집이 어디에 있나하며 자기집을 찾아가는, 황벽이 말했습니다.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고요한(우리 삶의 모든 것, 지금 일어나는 것)
일체의 소리와 색(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것)
전부가 부처의 일이다.
그런데 어디에서 부처를 찾을 것인가?
머리위에 머리를 얹지 말고,
주둥이위에 다시 주둥이를 더하지 말라.


지금 이대로 온전합니다.
완전한 자기, 깨달음
이런 것들을 더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자신으로 돌아오십시오.
여러분이 주인공입니다.
주인된 삶을 사십시오.
자기자신을 책임지는 삶,
약할 때 약할 줄 아는 것,
뒤죽박죽 혼란스러울 때
뒤죽박죽 혼란스러워 지는 것,
자기감정을 책임지는 것,
그것이 가장 적극적인 삶.
쓰다고 떠나지 않고,
달다고 집착하지 않는,
단지 자신에게 정직했는데,
합리화하지않았을 뿐인데,
척/체하지 않았을 뿐인데,
삶의 풍요를 누리는,
삶의 풍요가 저절로 찾아오는.....


내가 널 먼곳의 기수라 부르는 건,
너의 그 대단한 경주와 조랑말 때문이 아니다.
넌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달리고
또 고향을 안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인상깊었던 영화, 히달고)

예, 두려움 때문에 자신(고향)을 보지 않으려는 짓은 당장 그만두어야 겠습니다.


<질의 응답>
어느 순간부터 이리되었는데, 이 질문응답하는 시간이 자리잡았습니다. 질문하고 그것을 다른 분이 들으며 도움이 되는, 이 자리가 서로 함께하는 자리, 축제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평소에 했던 의문 그 어떤 것도 참지 말고 질문하세요. 편안하게 하세요. 그것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지금 이대로 완전한 존재였다는, 과연 그렇게 되기위해 체험이라는게 필요할까요? 체험을 하면 어떤 경계가 올 때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데, 저는 체험을 두어번 했습니다. 그럼에도 또 다른 체험을 바라는 저를 봅니다. 고통스러운 어떤 것속에  지속적으로 있다가 갑자기 이 모두가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자각이 왔었습니다. 그러면서 참 편안해졌는데, 또다른 체험을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계합되어 있습니다. 분리되어 있다는 착각, 그래서 무엇인가 불안한, 그것이 계합을 찾아가게 합니다. 대구에 치과원장님이 계시는데, 이분이 알고 있는 분이 어느날 갑자가 교통사고로 죽게 됩니다. 바로 이틀전에 그분에게서 결혼도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그러면서 이 원장님이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죽음이 오기전에 이 사실(도)하나는 알고 죽어야 하는데하며 조바심을 내었습니다. 늘 수행하고 자꾸 무엇인가를 해서 얻으려하는, 그래서 제가 무심선원 김태완선생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운전하며 김태완선생님의 녹음파일을 듣다가 '아, 이대로네'하면서 마음을 쉬게 되어버립니다. 분리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찾게 되고 끊임없이 구하게 됩니다. 그러다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 것입니다. 미진하고 부족해서 밖으로 찾아다녔는데 그게 갑자기 그쳐 버리고, 미진한 자신을 그대로 보게되고, 그렇게 되었을 때 미진한데도 미진하지가 않는, 자기는 자기보다 위의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을 보면 늘 위축되었는데 더 이상 위축되지가 않는, 늘 화가 난 상태였었는데 더이상 화를 내지 않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엇인가 바뀌었다하는 소릴 듣게 되는, 가을이 되면 허허로워 늘 어딘가로 떠나야만했는데, 이젠 텅빈 충만이라고 해야하나 그냥 존재할 뿐, 힘겨움 속에서 배우고, 그냥 살뿐인데, 여전히 고통을 겪지만 더 이상 그것에 묶이지 않는.....

다 계합되어 있는데 우리는 계합을 찾아 다닙니다. 그렇기에 먼저 깨달은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른 것을 찾고 구하는, 그 무엇인가를 함을 통해 추구하다가 결국 지치게 되는 때가 옵니다. 그때 비로소 추구를 멈추고 자기자신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I am who I am. 그냥 나는 나일뿐이고 나로 돌아오면 계합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자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아, 이대로네'하는 계합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전히 삶에 매이지만, 그땐 더 이상 매이는게 매이는게 아닙니다. 넘어질 때 기꺼이 넘어질 수 있는 힘이 계합입니다. '더 큰 계합을 기다린다'이게 '상'입니다. 지금 부족하다 생각하기에 더 큰 계합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슬픔, 분노, 좌절, 이런 것들이 아이가 태어나서 엄마와 아버지와 형제들간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심리학 서적을 많이 읽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완벽한 치료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깨달음이 완벽한 치료가 아닐까? 깨달음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 마음에 문제가 있고, 어릴적 환경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합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고통이 완벽히 치유됩니까?

상처가 없어지는게 아니라, 상처에 대한 반응이 사라집니다. 상처는 여전히 올라오지만, 그래서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배울뿐 그것에 더이상 묶이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내면에 성장이 멈춘 아이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른은 없고 아이뿐입니다.성장이 멈춘 이 내면아이를 치유하기 위해 어린시절 자신을 분석하고 그때의 어린아이로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굳이 그렇게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없고 단지 지금을 만나면, 이유를 찾지말고(내가 왜 이런가하는) 지금을 만나기만하면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가족에서 태어나고 거의 대다수가 그러면서 상처받습니다. 그게 사랑의 결핍때문인데 사실 이것이 영원한 것을 만날 수 있는 씨앗입니다. 고통, 절망, 상실이 올 때 그 결핍을 껴안기만하면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되고 그런 의미에서 고통도 절망도 없게 됩니다.

○저에게 책이 도저히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소설책을 읽으니 너무 잘 읽혔습니다. 책꽂이에 있는 책을 보니 갑자기  구역질이 났고, 그 이유를 깊게 생각해보니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미래의 나,  어떤 이상적인 틀에 나 자신을 끼워 맞추기위한 책이었던 것입니다. 이젠 그런 책들을 쳐다보지도 않게되고, 또 그런 내 자신이 무척 편안해지고 좋습니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게 너무나 좋습니다. 그런데 또 때때로 가슴은 참 편안한데 머릿속에선 '그러면 안되지'하는 생각이 올라옵니다.

내버려 두면 됩니다. 진실은 저절로 드러납니다. 그냥 복잡하면 복잡한채로 내버려두면 그것은 왔다가 그냥  사라지는 생각일 뿐, 그러다보면 어느날 내가 무얼 고민했는지 애써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을때가 올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무엇인가 가슴을 베고 지나가는 고통, 이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나하는 그런게 늘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를 확 베고 지나가는  외로움 힘겨움 그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도 불구하고 양치질을 하는데, 문득 '이대로 조화롭구나!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내게도 마누라가있어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다 어느날 아침 이대로 삶이 참 축복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 관리자와 다투기도 하는데 그것 그대로 조화였습니다.

아버지의 그늘
             (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부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제가 자라며 거의 유일하게 느낀 감정?이 아버지에 대한 증오였었습니다. 절대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는게 저의 좌우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의 삶을 참으로 가련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증오가 저를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알콜 중독자인분이 있는데, 이분이 대구에 있는 알콜중독자모임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단주모임인데, 거기에서 알아차리는, 술을 먹고 싶은 생각이 올라오면 즉시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그 욕구로부터 벗어나는 것인데, 그게 자연스럽게 위파사나로 연결되고 그러면서 이분이 황홀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다시금 꼬꾸라지게 되는데. 그렇지만 이분은 자신이 지금까지 자신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가 자신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깨달음을 얻기위한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게 힘있게 나아가는 토대가 됩니다. 그렇기는 한데, 그 체험을 하려들면 더욱 꼬이게 되고 멀어집니다. 누군가 제게 어떻게 수행해야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무엇인가 하려들지 말고 그냥 내 강의를 들으십시오. 이 1시간 30분짜리 강의가 뚫어 냅니다. 그냥 듣다보면 체험의 순간이 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게 체험이 왔을 때 하나의 중심축이 서게 되는데, 그래서 거기에 매달리게 되는데 그러면서 더욱 지옥속으로 들어가는 제 자신을 경험했습니다.

뭔가 체험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삶이 힘들어 집니다. 그냥 일상을 살아가며 '이걸 내가 몰랐었구나'하는 걸 이름하여 체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검증받았습니까?
깨달음은 인가가 필요없습니다. 스스로 압니다. 그럴뿐만아니라 이미 삶이 다 바뀌어 있습니다. 진짜로 알면, 아는 자도 없습니다.그러면서 '내가 안다'라는 생각이 떠으르면 그것도 내려놓게 됩니다. 저는 제가 깨닫고 나면 우러름을 받고 베푸는 자가 될거라 생각했는데, 깨닫고 나니 저는 저 아래로 내려가고 섬기려듭니다. 저는 그저 쓰임받는 그릇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릇에게 무슨 욕망이 있겠습니까? 그릇에게 '나 때문에 너희가 밥을 먹는다'라는게 있겠습니까? 단지 쓰임받게 되어 감사하고 그렇게 쓰임받다가 받다가 어느날 깨지면 사라지는.....


○박가현샘,
알콜 중독자 모임에서 하는 첫단계가 '나는 알콜 중독자입니다'하는 말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저런  핑게를 대고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저는 변화를 원했는데, 그런 변화가 지금 이것 말고 딴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죽고 싶었습니다. 더이상 좋은게 없다면 지금껏 힘들게 살아왔는데, 이것 말고 다른게 없다는 사실에 저는 정말 죽고 싶었고, 살아야할 커다란 이유중 하나가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이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결국 인정했을 때(알콜 중독자가 자신이 중독자임을 인정했을 때 진정한 치유가 시작되듯) 삶의 변화가 시작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제 자신을 인정하고 시간이 흐르자 정말 딴게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할게 없는 것이, 이게 다 과정이고, 일어날 일이 일어날 뿐이고,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고, 우리가 모두 잘 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올라오는 것이 이것이다.  생각을 움직이면 곧장 어긋난다.
투명인간이 된듯한 순간에 가방끈을 꼼지락거릴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것이 곧장 이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것을 거부하고 다른 것을 찾으면 그것이 생각을 움직인 것입니다. 왕따된듯한 순간에, 자기가 자신을 짓밟습니다. 그 순간을 외면하려는 자신, 도망가려는 자신을 보고, 내가 더이상 달아나지 않을게, 내가 네 곁에 있을게하는, 이럴줄 아는, 함께 있어줄 수 있는 마음을 알게 된 것, 이것, 지금 내가 경험하는, 그 무엇이 되었든, 그냥 그것에 있으면......

○제가 큰 아이라 다투었는데, 그때 참 화가 나는데 그때 어떡해야할지....

내 안을 받아들일 때, 밖의 일, 밖을 받아들이려고하면 힘들어집니다. 또 자기안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도 상대를 힘들게 합니다. 그 사건을 통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주목하는, 그래서 어떡해야할지 모를 때는 그 모름속에 있으십시오. 엄마로써 모범답안을 내야한다는 그것을 내려놓으십시오. 엄마도 없고 딸도 없습니다. 그냥 모름속에 있으면 됩니다.

○그때 저를 보면, 자식과의 관계에서 자식에게 지지않으려는 자존심을 세우려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지금 물러서면 딸아이가 나를 어떻게 볼까? 무시하지 않을까하는 걱정?

딸은 내가 낳은게 아니라, 자기가 살려고 내 몸을 통해 나온, 딸을 통해 내가 엄마에게 했던 그 행동과 마음을 보게되는, 결국 자기자신을 만나게 되는 정말 고마운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엄마답게'하는 것을 내려 놓으면, 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쪽으로 에너지가 자꾸 흐르게 될 것입니다.

○저는 '내가 부처다'하는 생각으로 수행을 합니다. 그러나 찌질한 모습, 미진한 모습을 볼 때 내가 부처님인데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 본래 부처가 미진합니다. 그게 다 '상'때문에 그렇습니다. '완전하다'는 것을 부족이 없는 성숙한 모습으로 규정해 버리면, 그래서 부족하고 미진한 모습의 나를 보면 완전해지고 싶고 그래서 노력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냐면, '완전하다'는 개념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 잘못된 상하나 때문에 삶이 힘들어 집니다. 완전하다는 결핍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누락되어 있지 않다는, 그러니 지금 이대로 완전입니다. 진실로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대로 미진한 모습을 보셨다면 그것이 곧 완전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부족한데, 직장동료는 잘 해내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걸 잘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내가 진실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래서 부족한 채로 자신의 일을 해나가면, 더이상 자신을 탓하거나 정죄하지 않게 됩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북이의 마음에 저 토끼보다 빨리 달리고자하는 마음이 있다면 거북이는 한발 내딛는 순간 절망하게 되고, 이런 꼬라지로 자신을 낳은 부모를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거북이에겐 비교하는 마음이 없었고, 언제나 자기 걸음으로 걸었고 결국 이겼습니다. 그러나 거북이가 게임에서 졌다고 하더라도 자기삶을 살았기에 그 결과로인해 좌절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부족한 능력을 가진 자신을 받아들여 보십시오. 그러면 저렇게 되려 노력하는 중엔 보지 못했던 자신을 보게 되고 또 거기에서 어떤 공간, 빈틈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정직한 인정과 시인속에서 못남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데, 저는 그 못남을 그대로 경험합니다. 실제로 못났으니까, 그런데 그 속에서 생명이 싹틉니다.

그 여름의 끝
            (이성복)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이토록 무능하단 사실에 얼마나 가슴아리게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조직내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세상으로부터 내쳐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전 여러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자기자신으로 돌이키는 때가 옵니다. 그때 새로운 믿음, 부족에 대한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때 부족에 대한 정죄가 사라지고, 그 부족을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선생님의 말씀은 세상사람들이 하는 말과는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에겐 미친소리로 들립니다.

예수가 말했습니다. 병든자에게라야 의문이 쓸데있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문이 쓸데없다. 어차피 저의 이야기가 모든 세상사람들에게 전할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를 부처로 받아들이게 되면, 상대 즉,  평소 부족해 보이는 사람도 부처로 받아들이게 됩니까?

내가 부처가 되면 거기에 부처가 없고 그냥 내자신이되고,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니, 상대도 그대로 바라보게 됩니다. 열등감/우월감으로 보는게 사라지고, 상대에 대한 판단도 사라지게 됩니다. 당신의 갈증, 목마름이 참 귀합니다. 그것을 통해 자신이 변화하면 그것이 나 혼자만 변화하는게 아니라 주변까지 변화시키기에, 우주를 맑게 하기에 당신의 갈증이 참 귀하다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자신으로 사는데,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사는데 주변이 다 정리되고내가 이루고 싶은게 모두 이루어집니다. 깨달음은 자기 감정대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 상처를 상대에게 줄까요?오히려 내가 상처줄까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상대에게 상처줍니다.

깨달은 사람에게도 더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생명이기에 그렇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찾아와서 말합니다. 40년동안 살아온 결론은 이 세상은 살만한 것이 못된다.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자주 봅시다'라고 했는데 그분이 그 말을 두고두고 고마워했습니다. 이분은 자기삶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는데, 그것 또한 사랑을 갈구하는 몸짓입니다. 이분은 연세대 법대를 나왔고 아는게 정말 많았습니다. 그러다 이 사람이 어느순간 바뀌었고, 그러면서 제일먼저 했던게 이혼해 달라는 아내와 이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택시운전/고물상, 참 힘든삶을 살았지만 마음만은 편안한, 그러면서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화날 때 화낼 수 있게 해주고, 슬플때 슬퍼할 수 있게 해주고, 내 감정대로 살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슬플 때 슬퍼하고 기쁠 때 기뻐하고 무너질 때 무너질 수 있는게 부처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게 다 정리되고 모든게 풀어지게 됩니다.

○내가 이대로 완전하다면 굳이 산청모임에 와서 선생님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갈등이 생겼습니다. 내가 이대로 완전하다면,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것은 부족한 이대로 완전한데 그 부족을 거부하는 것, 혹은 피하려는 몸짓은 아닌지?

그렇다면 제가 묻겠습니다. 당신의 생각대로 '이대로 완전하다면' 당신의 삶이 진정으로 만족스럽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 산청에 오는 것은, 부족 속에 있으려 하지만 아직 힘이 없기에 부족속에 있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힘, 부족 속에 있을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는 곳이 이곳 산청입니다. 어떤 하나의 이해가 오면 그 이해를 너무 편협하게 생각해서 오히려 거기에 갇힐 수 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아장아장 걸을 때 때로 엄마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이곳 산청이 바로 엄마의 손길입니다.

저는 내면아이를 만났을 때 정말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몰랐고, 그러했기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났습니다. 불편하지 않은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어떤 사람을 9개월동안 실컷 미워했었고,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어 정말 지독하게 미워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 마음이 사라졌고, 그러면서 참 그분에게 미안해졌고, 화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화해할 수 있게 되었고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싫은 소리를 해서 상대방과 불편해졌을 때, 그 불편함을 경험해 보십시오. 그 상항을 피하려고만 들지 말고 그 불편함을 경험해 보십시오.

제가 온전히 미워하라고 했는데, 온전히 미워해 봤습니까? 미움이 올라올 때 미워하기보단 그것을 용서로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미움이 잘못된 것이니까 바꾸려고 했다고 하는데, 실은 그것이 잘못된 것이고, 그것이 당신을 괴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미움을 온전히 허용하는 것, 100%온전히 미워하면 됩니다. 이것이 조화이고 질서입니다. 그렇게 미워했을 때 미움이 사라지고 그 사라진 자리에서 사랑이 나오고 이해가 옵니다.

미움이 올라올 때 미워하지 말아야한다는 가치판단도 동시에 옵니다. 그러면서 고통이 깊어지게 되는데, 제 강의를 계속 듣다보면 점점 바뀌게 되고 자기감정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윤회가 있습니까?
삶과 죽음, 이것은 사실 하나의 생각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데, 이게 하나의 약속일 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가 있어야 윤회할 무엇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없습니다. 내가 있어야 죽을 나가 있게 됩니다. 의식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태어날 때 '나'가 태어난게 아니라 하나의 핏덩이가 태어난 것이고, 자라면서의 경험이'나'를 만들어 내고, 동시에 자기 육체와 동일시가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감각되는 것은 육체와 그것의 안과 밖인데 이게 다 허구이고, 나는 전체입니다. 이 전체가 자신을 경험하기 위해 부분으로 나온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정말 기기묘묘한 것을 잘 만들어 냅니다. 의식이 만들어 놓은 그것에 사람들이 속습니다. 그러나 실재를  알면 그런 것에 속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설명하기위한 도구로 만들어 낸 것에 사람들이 속습니다. 많은 비가 오면 그것이 물골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에고이고, 에고가 잘하는 것이 자기동일시입니다. 그것이 '나'이고, 그것은 그저 하나의 개념일 뿐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리면 그것은 금방 사라지게 됩니다. 나는 없고 그저 감정, 생각,느낌이 일어났다 사라질 뿐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있는 그대로'



너무도 뜨거웠던 여름이 물러갔습니다. 모두들 편안한 나날되세요......10월에 뵙겠습니다.







댓글목록

아리랑님의 댓글

아리랑 아이피 (58.♡.218.95) 작성일

모임메 가면 사람들이 묻곤 합니다

여름가지님이 어떤분이냐구

그러면 전 모른다구 말합니다 ㅎㅎㅎ

만나는 분들마다 탄성과 함께 여름가지님 정성에 고마워 하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조만간 뵙게습니다 ^^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17.♡.172.26) 작성일

네, 아리랑님, 오랜만이고,
오랫동안 뵙지 못했습니다.
잘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참~ 좋습니다.
저도 조만간 뵙겠네요~~~

돌도사님의 댓글

돌도사 아이피 (211.♡.42.102) 작성일

집 떠나면 개 고생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매달았지만 여러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17.♡.172.26) 작성일

폭풍속, 온갖 두려움들이 찾아드는 이 시간들,
그러다 문득 뒤돌아보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는.
그처럼 어쩌면 나를 쓰러뜨릴만한 무엇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씨가 좋습니다. 좋은 시간들 보내세요~~~

정리1님의 댓글

정리1 아이피 (175.♡.146.243) 작성일

나는 이 세상을 스무 번 사랑하고
스무 번 미워했다
누군들 헌 옷이 된 생을
다림질하고 싶지 않은 사람 있으랴
유독 나한테만 칭얼대는 생
돌멩이는 더 작아지고 싶어서 몸을 구르고
새들은 나뭇잎의 건반을 두드리며
귀소한다


오늘도 나는 내가 데리고 가야 할 하루를 세수시키고
햇볕에 잘 말린 옷을 갈아입힌다
어둠이 나무 그림자를 끌고 산 뒤로 사라질 때
저녁 밥 짓는 사람의 맨발이 아름답다
개울물이 필통 여는 소리를 내면
갑자기 부엌들이 소란해진다
다나는 저녁만큼 어두어져서는 안된다
남은 날 나는 또 한 번 세상을 미워할련지
아니면 어제보다 더 사랑할련지

이기철의 < 저물어 그리워지는 것들>


여름가지 님,

정성어린 후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17.♡.172.26) 작성일

'유독 나한테만 칭얼대는 생'

네, 삶은 유독 저에게만,
왜 나만 이래야하냐고,
왜 나만 이리도 불행해야하느냐고,
참 많이도 울고 원망했었습니다.

'남은날 나는 또 한 번 세상을 미워할련지
아니면 어제보다 더 사랑할련지.'

남은날 저는 또한번 누군가를 미워하게 될지,
누군가를 사랑하게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그러할때,
저는 제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겠습니다.

달래님의 댓글

달래 아이피 (119.♡.123.16) 작성일

예전부터 내 곁에 있는 듯한  네 모습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네게 주고 싶었는데
골목길을 돌아서 뛰어가는 네 그림자
동그랗게 내버려진  나의 사랑이여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가장 짙고 붉은 빛깔
가장 인간적일 수 있는
지독한 사랑

너무나 아픈데 사랑할 수 밖에 없고
너무나 아프고 나니 오직 더 짙은 사랑만 남는
그래서 더 짙어가는 인간이 되게 하는


타오르는 붉은 단풍과 함께
이 가을 더욱 처절하게 사랑해버리고 싶네요^^

삶을 더욱 찐하게 살고싶게 하는 후기글에  감사드려요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83.♡.203.138) 작성일

달래님,

비가 오고,
빗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끌어내립니다.

평안한 나날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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