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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삶의 차이 -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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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11.♡.228.4) 댓글 0건 조회 5,945회 작성일 08-03-1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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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교육와 한국의 교육

국가가 국민교육을 책임지는 프랑스의 공교육제도는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을 거쳐 기틀을 잡았다고 한다. 기존의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바꾸고, 무상교육을 확대하고, 여성교육을 시작하고, 성인을대상으로한 평생교육이 18세기 말에 터를 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도 이뤄내지 못한 것을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이뤄내고 있었다. 이는 프랑시 인민이 피흘리는 혁명을 통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낸 결과였다.

프랑스에는 의무교육 제도와 전문기술 교육이 정착되어 있다. 진로 선택은 중학교 4학년 때 공부할 학생과 직업을 택할 학생들로 나뉘어진다. 진로는 학생들의 취향, 적성, 자질 등을 바탕으로 학부모들의 합의에 의해 이루워지기 때문에 대학입시 경쟁 과열 같은 것이 없다. 프랑스 대학은 1960년대에 사회개혁을 통해서 평준화 되었다. 따라서 한국처럼 대학의 서열화나 이류, 삼류 구분이 없다.


반면 한국에는 민중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아 온 역사가 없다. 조선시대 평민들은 과거시험 응시 자격은 커녕 교육의 기회 조차도 주워지지 않았었다. 민중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양반들 뒷치닥거리하는데에 자신의 노동력을 쏟아내야 했다. '노비' '백정' '관비'들의 삶은 더더욱 처참한 것이었다. 양반들 역시 고위관직을 차지하기 위한 급제를 위해서 사서삼경, 효경, 소학 등을 줄줄이 외우며 읊어댈 뿐이었다. 양반들의 과거제도를 준비하기 위한 준비는 주로 지역의 '서당'에서 이뤄졌는데, 평민들은 감히 그 근처에도 얼씬 거릴 수 없었다. 이렇게 '온전한 교육의 역사', '온전한 교육을 요구한 역사'가 없다보니, 작금의 한국 교육은 비루하기 그지없다.

근시안적 소견을 가진 정책당국자와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부모들의 공모를 통해 만들어낸 교육적인 현실은 아이들에게는 끔찍한 지옥의 형벌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합리화 시키면서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으로 내몬다. 하지만, 그것은 '내 자식'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합리적으로 판단할수 없는 사고에 기인한 행위이고, 공멸을 위한 이기적인 제스취어일 뿐이다. 결국 이로 인해서 대학은 서열화가 되고, 그 ‘자식’들은 더더욱 과열된 분위기에서 더 어린 나이에 더 많은 학원을 다니면서 스스로를 혹사시켜야 한다.


물론 부모들이 그들의 자식들을 '줄세우기' 교육으로 내 모는 것은 '줄세우기'교육으로 인한 희생의 결과이다. 온전한 교육을 통해서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본 바가 없기에 이러한 ‘병패’가 어디서부터 기인된 것인지를 확인할 여력을 갖지 못하고, 조금 투덜대다가도 이내 그 자식들 '줄세우기'에만 기를 쓰는 것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주체적인 관점으로 잘못된 제도를 인식하고 이를 바꿔내고자 하는 여력을 갖지 못하고 '기존의 제도권'에 소속되기 위해 처절히 몸부림 칠 뿐이다.

'교육제도/교육문화'가 나라간에 다른(민중을 위한 교육인지? 민중이 끌려다니는 교육인지) 이유는 각각의 나라의 '민중의 투쟁의 역사'의 차이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경우는 봉건 질서를 ‘아래로부터’ 뒤 엎은 민중의 역사가 있다. 프랑스 민중은 혁명을 통해서 국왕인 루이 16세를 처형하고 나서 ‘민중으로부터의’ 정부를 세우기 위한 경험을 축적하였다. 프랑스혁명은 기존의 군사혁명과 같은 단순한 무력혁명이 아닌, ‘디드로’ ‘볼테르’ ‘루소’등의 사상가들에 힘입어 무르익던 ‘인권’ '자유' ‘개인의식’을 자각한 주체적 민중에 의한 ‘사상혁명’이기도 했다.

이는 프랑스 혁명 기간동안에 만들어진 현재의 프랑스 애국가의 내용을 통해서도 살필 수 있다.

'나가자 조국의 아들딸이여

영광의 날이 왔도다

폭군에 결연히맞서서

피묻은 전쟁의 깃발을 내려라

우리 강토에 울려 퍼지는 포악한 적군의 함성을 들어라

적들은 우리의 아내와 사랑하는 이의 목을 조르러 다가오고 있다.

무기를 들어라 시민동지들이여

그대 부대의 압장을 서라.'

이렇게 프랑스 애국가에는 국가의 주인은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인민'이고,

'잘못된 국가는 인민이 흘리는 피'로 전복해야함을 명시하고 있다.

애국가에 '적군'을 상정하고 '전의'를 다지는 내용은 너무 호전적인 듯 하다.

하지만 이 당시의 프랑스 혁명은 10세기 이상 존속된 기존의 '봉건질서'를 무너트리는 실로 거대한 움직임 이었고,

이에 주변의 유럽 국왕들도 이로 인한 '감염'으로 인한 체제붕괴를 우려하고 있었기에,

프랑스 민중이 전복한 왕권을 다시 다시 세우기 위해서 프랑스 민중들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막강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 위기의 순간에 만들어진 애국가이기에 상당한 호전성이 배여져 있다.

이후 이러한 프랑스 민중들의 '주체'와 '자유'를 향한 의지와 이에 대한 유럽국가의 저항은 대규모전쟁으로 확대되는데,

프랑스의 자유정신을 대변하여 이를 전 유럽에 전파시키며 기존의 봉건적 특권을 철패하는 선봉장 역할을 나폴레옹이 하게 된다. 이러한 프랑스 혁명은 이후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세계 2차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난 후에 독일에 야합 했던 민족배반자 수천여명을 주저없이 처형했던 것 역시 프랑스 혁명의 정신인 '자유' '권리' '평등' 을 바탕으로 사회 정의를 세우려는 모습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들의 교육제도와 사회문화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는 다시 이들의 '투쟁력'으로 맞물려진다.

제국주의전쟁(이라크전)에 대한 대대적인 반전운동과, 심지어 경찰들 까지 파업하는 프랑스 시위 문화는 이들의 정신세계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이다. 유럽사회의 사회민주주의 교두보로 (‘죠스팽 총리’이후 현재는 잠시 주춤 하고 있는) 프랑스의 사회당(서민중심, 사회복지 강화)이 존속되며 국민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이유도 앞서와 같은 철학적인 근간을 가진 그들의 경험, 역사, 교육이 그들의 문화에 뿌리 내려왔던 결과이다.


반면 한국의 역사에는 억눌린 민중의 이상적 사회건설에의 실현을 위한 투쟁 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각종 민란은 관료들의 폭정에 시달려서 이에 ‘발끈’한 농민들의 반란이었고, 민란의 대표격으로 알려진 ‘동학혁명’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못 이긴 농민들의 ‘관아습격사건’으로, 이는 기존의 봉건 질서를 전복하기 위한 혁명적 시도라기 보다는 탐관오리에 대한 저항의 성격이 강한 운동이었다.

그당시 1876년 일본에 대한 개항 이후로 일본의 경제수탈이 날로 고도화 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민중들의 삶이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탐관오리의 득세는 필연적으로 농민들의 봉기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동학혁명군은 부분적으로 노비문서를 소각하며, 토지의 평균분작을 주장하는 등 과거 질서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들이 왕에게 올린 ‘상소문’을 볼 것 같으면, 기존의 봉건질서를 대부분 당연히 ‘전제’한 상태에서 다만 ‘농민의 사람 된 권리’를 주장한 것으로 근대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결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껏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통큰 저항이라고 한국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고려시대의 노비 만적의 난 정도 였다. 물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는 구호를 내걸고 추진된 이 반역의 시도는 사전에 발각되어 주모자들이 곡괭이 한번 허공에 휘둘러 보지 못하고 전부 강물에 익사 당하는 것으로 끝맺음 되었다. 이러한 ‘주체적 민중 혁명'의 역사가 없다보니 나라의 ‘근간’은 제대로 세워질 기회를 얻지 못했던 듯 싶다.

구한말의 격동기에 만들어졌던 애국가에도 이러한 '민중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개항 이후로 일제가 양곡을 수탈해 감으로 서민들의 삶이 극에 치달아 있고,

농민들은 입에 풀칠할 것이 없어서 신음하는 터에 탐관오리들이 득세해서 그 삶이 더욱 황폐화되고 있는데,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만세' 라니...

물론 이는 한편으로 900여차례가넘는 외침에도 그 당시까지 단 한차례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던

(현재는 베트남 참전과 이라크 참전 등을 통해서 벌써 두차례나 외국을 침략한 상황이다.)

한민족 특유의 낙천적이며, 운명론적인 정서의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나, 그보다는 '정치적 역학'의 결과인듯 하다.

아마 이시대 훨씬 더 '투쟁적'이고 '민중의식을 고조'하는 내용의 애국가를 누군가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온전히 민중들에게 전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왕권'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러한

'민중의 저항의식' 자체가 두려운 것이고, 일제의 수탈에 대한 저항의식의 고취는 그 당시 일제의 이익과

맞물려 있는 구한말 세도가들의 비위에 거슬렸을 것이며, 탐관오리의 폭정을 비난하는 '함께 싸우자'쯤의 가사도

그놈이 그놈인 가문들끼리의 공모에 의해서 기존의 사회질서를 전복하려는 시도 쯤으로 왜곡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제 해방 후의 이승만은 자신의 정권 창출을 위해서 (프랑스와 반대로)친일민족반역자들을 그 권력의 발판으로 삼았고, 이로 인해 역사는 역류하여 청산되어야할 자들이 청산을 하고 다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로 치달았다. 이는 이 나라의 역사를 통해서 그간 국가의 권력이 '민중'에게 있지 않고 '권력자'에게 있었음에 빚어진 필연적인 사건이었다. 6.25이후에는 남북 적대관계를 심화시키는 ‘반공교육’ ‘국가주의’ ‘애국주의’ 이데올로기들이 주류를 이루며, 그 교육의 ‘형식’부터 군대식(전체주의적) 성격(권위로운 교사와 지시를 따라야할 학생)을 띄게 된다.

정부에서 이러한 교육을 획일화 할수 밖에 없는 것은, ‘원죄’(친일, 군부정권)가 있는 이들에게는 시민의 ‘주체’가 깨어나 ‘역사의식’을 가지고 ‘실천적 투쟁력’으로 무장하는 것만큼 두려운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우민화, 전체주의 전략을 통해서 모든 국민을 국가에 종속시키는 군대 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다면 대한민국은 ‘최고권력자’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백년 간 이어져온 유교적 전통과 왕권에 단련된 민족성은 새롭게 부여되는 전체주의 사회질서를 한편으로 익숙하게 여겼다.

이즈음 만들어진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이러한 전체주의-국가주의적 사고의 결정판이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1984년 대통령령)

개인은 국가를 위해 살란다. 대의를 위해서 소의를 희생시키란다.라는 의지의 공공연한 표현...

문제는 개인이 희생을 감수하면서 이뤄야할 '대의'의 실체는, '권력자'와 '자본가'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는 '권력자에게 철저히 복종하고 희생하는 국민'을 갈구하고 있었다.

(2007년 맹세문이 개정되어 '조국과 민족을 위한'이라는 문구의 국가주의적을 충성을 '자유롭고 정의로운' 이라는 다소 탈 국가화된 개념으로 바꿔내기는 했으나, 이를 타율에 의해 '낭독'하며 '충성'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개개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탈근대화된 발상이다.)

어쨋튼 군부정권의 폭정은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불만은 점점 고조되어 마침내 몇 차례의 큰 폭발이 있었다. 하지만 이때의 ‘폭발’이라고 하는 것도 조선시대의 농민운동과 같이 ‘눈앞에 보이는 적에 대한’ 단순한 저항성 활동이었다. 물론 그것이 ‘대규모’였고, 시대적으로 중요한 시점에서 터졌기에 역사적인 의미는 컸다. 그러나 그것은 거시적인 안목과 청사진을 가지고 추진되는 운동이 아니었다.


물론 ‘민주화운동’의 이념 자체가 현대 사회 ‘최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한 것으로 보였을 수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적 민주주의를 구체화할 [ 인간의 올바른 ‘주체’를 깨우기 위한 노력, '자유'에 대한 인식 ]은 결여된 상태였기에 그 운동의 과정에서 늘상 ‘집단-조직적 저항운동’성만 강화되었고, 현재에 와서는 올바로 ‘주체’를 깨우지 못한 부작용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잡글란’의 ‘주체’관련 글 참조)


그렇다고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주체’를 깨우기 위한 노력이 아예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몇몇 선각자들이 일정 정도 그러한 미래지향적 청사진(깨어난 개인)을 보이려 노력한 역사는 있다. 하지만 이제껏 ‘주체’를 제대로 깨워 올 경험과 기회를 갖추지 못했던 인민들에게 그것은 올바로 호소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간 인민에게 행해지던 ‘전체주의’ 교육은 선각자들이 보이려 했던 ‘주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인식조차 안되도록 인민의 의식 속에서 저항하였던 것이다.


하여간 ‘주체’를 제대로 깨워내기 위한 노력의 부재로 인하여 현재 우리가 겪는 현실은 보는 것과 같다. ‘민주화운동’을 한답시고 그 당시에는 피튀기며 싸웠던 이들이 현재는 한줌의 권력을 쥐기 위해서 부조리와 동침하고 있고, ‘민중운동’한다고 나서는 이들 조차 서로의 기득권을 쥐기 위해서 피터지게 싸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리 찾기’를 위해서 나서는 이들이 그들보다 더 약한 자들의 권리는 무시하는 현실. 이 역시 올바른 역사와 교육의 환경이 제공되지 않아 우리가 ‘잘 못 배워 온 결과’발생하는 사건들이다.


더군다나 군부독제세력이 자신들에 대한 불만의 촛점을 분산하기 위하여 기치로 내건 ‘우선적인 경제성장’은, 시민들의 ‘사회정의 의지’를 떨어트리면서 ‘돈’ ‘안락’ ‘풍요’ 쪽으로 교묘히 관심을 돌려내기 시작했는데, 일반 대중들이 ‘무턱대고 잘살려는 욕망’에만 휘둘리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이러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대중은 ‘정부’가 주도하는 ‘교육’과 ‘경제행위’에 맹목적으로 따랐다. 한국에 ‘줄 세우기(등수) 교육’이 호황을 이루는 것은 이러한 국가와 대중의 성향이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줄 잘서는(질서의식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전체주의적인 문화에 익숙하다는 의미) 대중이 기존의 교육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사회적인 책임감과 실천력을 체화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갖은 부정과 부조리에 쩔어 있는... 노동자 인권을 유린한 전과 15범의 건설기술자를 단지 ‘우리를 잘살게 해 줄 것’이라는 기대로 대통령으로 뽑아낸 현실은 바로 이러한 무책임으로부터 기인된다. 가진자를 위한 정책, 재벌을 위한 법제개편, 사회복지 공공영역 축소, 과거사 청산 중단,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가진 대통령 후보에게 ‘서민’들 마저도 거침없이 투표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 국민의 ‘역사의식’ ‘사회책임의식’ ‘환경의식’ '교육수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먹고 사는 것'만 중요히 여기는 대다수의 대중들은, 왜 자신들이 못 먹고 못사는지를 이해할 여력이 부족하고 주체적으로 나서서 사회현실을 바꿀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이렇자 '내가 잘 먹고 잘살게 해주겠습니다'라고 공약하는 정치인들을 영적 지도자 수준으로 추종하면서 시민권 마저 위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아무런 사회적인 실천도 없이 지도자만 잘 뽑으면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 하며, 그 지도자가 잘 못했을 때는 삿대질 하면서 푸념하는 것이 올바른 인민의 자질인 것으로 알고 있는 듯 하다.) 현대 한국사회의 정치인들이 '수사학'(그럴싸한 주장하는 기술)에만 능한 것도 전적으로 그정도 수준의 시민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고도의 '감성공학'과 '여론정치'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교묘히 뒤틀어 내고 있지만, 온전히 배우지 못한 국민들은 이 부정한 현실의 '가능성' 마저도 생각해 보지 않는다.


하루 종일 교실에 앉아 오직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을 위해 주입식 5지 선다형 답안 표시 능력에만 고도화해온 이들. 그들이 인간과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고 사회적인 책임과 생태의식을 실천할 수 있는 철학과 역사의식을 갖추기는 만무하리라. 더군다나 그들의 부모들과 그 조상들 역시 같은 교육과 경험을 해왔음에...

온전히 세상을 인지할 수 있는 정신을 형성키 위한 교육제도를 만들어 내기 위해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다.

그러한 교육제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련이 우리에게 주워져야 하고 또한 이를 극복해야하기 때문이다.

아래는 파란의 역사를 '민중의 힘'으로 극복해왔던 프랑스의 대입 자격시험 문제(바칼로레아)의 문제이다.

1장 인간(Human)

Q1-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Q2-꿈은 필요한가?

Q3-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Q4-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Q5-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Q6-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Q7-행복은 단지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인가?

Q8-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Q9-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

Q10-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Q11-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2장 인문학(Humanities)

Q1-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Q2-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Q3-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Q4-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Q5-역사학자가 기억력만 의존해도 좋은가?

Q6-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Q7-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Q8-재화만이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Q9-인문학은 인간을 예견 가능한 존재로 파악하는가?

Q10-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3장 예술(Arts)

Q1-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Q2-예술없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Q3-예술 작품의 복재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Q4-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가?

Q5-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4장 과학(Sciences)

Q1-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Q2-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Q3-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Q4-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Q5-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Q6-이론의 가치는 실제적 효용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

Q7-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Q8-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Q9-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Q10-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

Q11-자연을 모델로 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합한가?


5장 정치와 권리(Politics&Rights)

Q1-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Q2-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Q3-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Q4-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Q5-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Q6-노동은 욕구 충족의 수단에 불구한가?

Q7-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Q8-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Q9-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나?

Q10-유토피아는 한낱 꿈일 뿐인가?

Q11-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Q12-어디에서 정신의 자유를 알아차릴 수 있나?

Q13-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Q14-다름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Q15-노동은 종속적일 따름인가?

Q16-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나?


6장 윤리(Ethics)

Q1-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Q2-우리는 좋다고 하는 것만을 바라는가?

Q3-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Q4-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

Q5-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Q6-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를 말해 주는가?

Q7-우리는 정념을 찬양할 수 있는가?

Q8-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Q9-정열은 우리의 의무 이행을 방해하는가?

Q10-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Q11-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


- 프랑스에서는 대학 입학을 원하는 학생들은 전공에 따라 인문학, 경제사회, 자연과학, 산업기술 등의 공부를 준비한다. 프랑스어 시험은 2학년 말에 치룬다. 그리고 3학년 때는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하는데 이 때 공부하는 주제는 심오하기 이를데없고, 바로 이러한 학습을 통한 ‘사색의 결과’를 ‘바칼로레아’를 통해 치룬다. 대학을 가고자 하는 이들은 '우선 철학자가 되라'는 교육적인 의도인 것이다. 이는 그들이 깨인 민중의 역사를 통해서 ‘민중의 국가’를 세워왔던 바대로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결과에 따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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