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 산청모임(78장. 진리의 말은 마치 반대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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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름가지 (183.♡.203.138) 댓글 8건 조회 9,329회 작성일 17-09-11 14:02본문
도덕경 78장. 진리의 말은 마치 반대인 것처럼 들린다.
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지만, 굳고 강한 것을 물리치는 데에 능히 물을 이길 만한 것이 없다. 그 무엇으로도 이런 이치를 대신할 수 없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능히 행하지를 못하는구나.
그러므로 성인은 말하기를, 나라의 허물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사직의 주인이라 하고,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일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천하의 왕이라 하는 것이다. 진리의 말은 마치 반대인 것처럼 들린다.
●여기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꽃이 피는게 참 좋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시끌벅적 삶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아 더 좋습니다. 오다보니, 벼가 누렇게 익는게, 저는 강의하다보면 시작하는 멘트가 매번 비슷하고 뻔한듯해서 주저했는데, 이번 서울 모임에서 농사짓는 분이 오셔서 제가 하는 처음 멘크가 참 좋아서 매번 기다린다고 하셨서, 용기가나고, 그래서 이번엔 길게 해볼까 합니다. 여기 오는 길, 계절의 변화를 늘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다음달엔 아마도 텅빈 들판을 보게 될 것 같은데, 늘 변화하고, 변화한다는 것은 새롭다는 것이고, 기억이 아니라 존재로 보면 언제나 처음이고 태초이고, 이건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늘 실재하는 것입니다. 모든 변화들이 늘 감사하고 신비롭고,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계절이 변하고 풍경이 달라진 것뿐이지만, 다른 의미로는 익숙한 것이지만, 그 속에는 깊은 존재의 울림, 존재의 신비로움, 생명의 호흡, 맥박, 오늘은 여기 오면서 좀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새끼를 밴 고양이 한 마리가 느릿느릿 길을 건너가기에 제가 차를 멈추어서니 조금 빨리 지나가더라고요. 그러며 저 생명의 몸짓과 그걸 바라보는 이 생명(나)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의 차이 뿐인 것을......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지면, 늘 새롭고 더 깊게 자신을 보게되고, 그렇게 자신을 보게되면 세상밖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진리는 늘 가까이 있고, 우리와 함께 하는데, 너무 익숙해서 그걸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없다고 생각해서 다른 곳에서 찾는데, 진리는 그렇지 않고 늘 여기에 있습니다. 78장을 통해 지금 여기에 있는 진리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진리의 말은 마치 반대인 것처럼 들린다.'
진리는 혁명적입니다. 우리의 관념, 습관을 깰 수 있는 힘이 있고, 진리에 귀를 기울이면 삶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나'라는 관념을 깨버리고, 삶의 전부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진리는 지금 이순간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은 매번 변하고, 매순간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미래'에 있다고 여깁니다. 진리는 여기 있는데, 저기, 미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여기에 있는데, 우리는 보다 완전한 모습속에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진리는 내 안에 있는데, 내 안이 아닌 밖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고, 진리는 아무것도 아닌데, 어떤 특별한 것,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진리를 깨닫게 되면 영혼의 자유, 마음의 평화가 옵니다. 다시는 평화를 잃어 버리지 않는 상태, 삶의 진정한 만족, 행복해지기 시작하고, 삶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진정으로 성장하게되고, 참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결핍, 불만족, 불완전, 갈증, 삶 속에서 늘 경험하는 이것들을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게 진리입니다. 다시 불만족으로 떨어지지 않는 진정한 만족, 삶의 결핍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것이 진리입니다. 이것은 혁명적인 것이지만, 내 안에 지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토토님이 사온 빵~, 일본에 스시장인 '지로'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이미 여든이 넘었지만 아직도 정정하게 활동을 하고 있고, 도쿄에 사는 일본인들은 이 지로의 가게에서 스시를 한번 먹어보는게 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지로밑에서 기술을 배우고 일을 했던 사람들은, 지로의 가게쪽은 쳐다보기도 싫다며 고개를 젓는데요, 그가 그만큼 지독하고, 강박적 결벽증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일류요리사들의 필수 요소 중에 한 가지가 강박적 결벽증이라고 하는데요, 오늘 커피를 내리는 토토님, 글쎄, 자기가 원하는 맛이 나지 않는다며, 같은 커피를 세번째 다시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 돌아가서는 커피집에 들러 자신이 원하는 신맛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물었답니다. 흠, 일류 바리스타가 되기에 필요한 강박증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 ㅋ(아, 차를 샀어요, 오늘 부산에서 산청까지 몰고왔어요~, 축하해주세요, 또 안전운전하기를 기도해주세요~~~)
●우리는 여전히 반복되는 결핍으로 힘들어 하는데 그게(진리) 내안 어디에 있겠냐며 믿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지금 뒤죽박죽이고 찌그러진 이 모습속에는 절대 있지 않고, 내밖 어딘가에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은 다 제껴 놓고, 밖에서 찾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것(밖에서 찾은)을 진정으로 믿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그 안타까운 몸부림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모습은 내 결핍이 모두 해소된 완벽한 모습입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몸부림을 칠까요? 지금 현실이 고통스러우니까 그 고통을 끝낼 무엇이 미래의 완전한 모습으로 있을거야 상상하고, 또 그럴 것 같으니까 그걸 얻기위해 미래로 달려 갑니다. 이 마음, 에고는 참된 길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마음은 그것이 의도한 반대의 것을 경험하게 합니다. 골프를 치면서 제대로 치려고, 의도한 곳으로 정확하게 보내려고 마음을 먹으면 정확히 엉뚱한 것으로 갑니다. 이와같이 마음이 의도한 곳으로 향하면 늘 결과는 반대입니다.
●진리의 말은 혁명적이고 힘이 있습니다. 삶을 완전히 변화시켜 버립니다. 진리는 내 마음안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마음 안에 아무것도 아닌 모습으로 있습니다. 일상속에서 경험하는 마음, 우리 마음안에 있는 것들, 기뻐하고, 성내고, 두려워하고,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내고, 슬퍼하는 이것들은 우리가 배우지 않고서도 잘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온갖 것들을 다 합니다. 관계를 맺고, 전쟁을 하기도 하고, 일을 해나가기도 합니다. 그 모든 순간 속에서 늘 이 마음을 쓰고 살고, 늘 쓰는 이것이 진리입니다. 사람은 이 마음으로 삽니다. 지금 이순간 우리 마음은 이것 말고도 불안, 집착, 질투, 남들을 의식하는, 외로움, 환희, 감사, 평화, 평안.....우리의 삶 이대로가 진리입니다. 진리가 여기, 있는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늘 춤을 춥니다. 정확히 말해서, 지금 경험하는 이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훨씬 심하고 깊게 경험합니다. 불안, 초라함을 더 깊이 경험할텐데, 여기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게 살아있는 생명에너지의 너울거림입니다. 이건 그냥 단순히 생명에너지입니다.
●아이들은 도덕, 관념, 개념, 이런 것들이 없이 그냥 존재합니다. 아이들은 자기 멋대로 행동합니다. 짜증내고, 움직이고, 먹고 자기만하는데, 내가 이렇게 의미없이 살아도 되나하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루종일 먹고 자기만하고 너무 게으르고 의미없는 삶을 살았어하는게 없습니다. 아이들은 온통 생명에너지입니다. 이 생명에너지를 내가 거부하면서 갈증이 생겨납니다. 예수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되지 않고서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올라오는 이것, 이 결핍이 생명에너지이고, 여기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오히려 우리가 이것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대로가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자유를 줍니다. 우리가 이미 길위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이것을 통째로 버리고 다른 존재가 되려합니다. 정확히 누가 그렇게 합니까?, '나'가 그렇습니다. 항상 문제는 '나'입니다. 그러나 '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나'가 사라질 때 깨달음이 드러납니다. 세상에서 강한게 바위와 쇠 등인데, 그것말고 또 다른 강한게 '나'라고 하는 에고입니다. 우리는 다 '나'라는 에고로 살아갑니다. '나'가 살아가고, 이 몸이 '나'라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진실은 '무아'입니다. '나'는 없습니다. '나'라는 것은 정말 오해입니다. 우리는 다 이 육체가 '나'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착각입니다. 여러분은 태어났습니까?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당신은 딸로, 또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었습니까? 지금 이런 삶을 살고 싶었습니까? 지금 이 시기에 태어나고 싶었습니까? 임신을 막했을 때, 생명이 처음으로 잉태되었을 때 그 사실을 아무도 모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육체, 탄생에 대해서 내가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게...진실은 한 핏덩어리가 태어났고, 이것은 자기가 태어난지도 모르고 그저 존재했습니다. 수정되었을 때 이게 뱃속에서 움직이며 살아 있습니다. 열달이 지나면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허파로 호흡하게 되지만 자신이 태어난지 모르고 딸인지 아들인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다 살아가며 너는 딸이고, 이름은 무엇이고, 그런 교육을 받다가 어느 순간 자기를 인식하는 때가 있게 됩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 몸이 나이고, 그래서 이 '나'가 실체가 됩니다. 그때부터 주어진 삶이 모두 '나'로 수렴되는, 그러면서 내가 탄생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한 생각이 '죽음'과 연결됩니다. 이 '나'가 생겨나면서 온갖 결핍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면서 삶이 두려워지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그런 결핍속에서 진정한 만족을 찾아나서게 됩니다.
●결핍이 많은 사람들은, 이 '나'가 자라면서 편안하거나 불편한 경험을 하게 될 터인데, 이런 경험들을 반복하면서 불안하고 불편하게 했던 경험들은 피하려들고, 편안했던 경험들은 집착하게 되는, 그런 반복적인 경험속에서 고통과 결핍이 없는 그 무엇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게 기억, 과거로부터 생겨난, 그리고 이 기억이 어떤 일정한 패턴을 형성합니다. 그래서 결핍을 많이 경험하면, 결핍이 없는,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존중받는,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경향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강화된 모습이 됩니다. 우리의 주인이 된 것은 이 '에고'이고, 이 에고가 지금 이 순간에 올라오는 것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이 에고는 지금 올라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결핍이 깊은 사람은 수치심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속에서 자기 정체성이 생겨나는데, 지금 올라오는 것은 에너지일뿐이고, 지금 이순간 올라오는 것이니까 이것은 언제나 처음이지만, 에고는 기억으로 그것을 보기에 내게 결핍감을 준 그것을 거부하고, 자기를 평화롭게 하는 것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내고장 9월은 호박이 노랗게 익어가는 계절, 반가운 손님이 오면 내 그를 맞아~, 오늘의 주된 요리는 호박전이었는데요, 9월은 호박이 최고인 것 같아요.....부드럽게 입에서 녹아내렸습니다.
●태어났을 때 내가 없고, 지금도 사실은 '나'가 없습니다. 태어날 때 내가 없었다가 지금도 내가 없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크고 강한 것중에 가장 강력하게 이 '에고'인데, 노자는 이 에고를 녹이고 물릴칠 수 있는게 물이라고 말합니다.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결핍을 경험하지 않으려고 에고는 이 마음에 손을 댑니다. 결핍은 다 없애고 좋은 것만 남기려드는데, 이 에고는 실체가 없고, 단지 패턴일뿐이기에 없앨 수 없습니다. 이 에고는 물(무위)이 이길 수 있습니다. 손을 대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올라오는 것에 손을 대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고치고 바꾸고 하는 것으로 '무아'로 갈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가장 깊은 삶의 포옹입니다. 매순간 있는 그대로, 이 포옹이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내 이미지를 모두 망가뜨리더라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우주에서 온 에너지입니다. 어쨌든 생각만으로라도 '이 몸이 내가 아니다.'는 것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제가 34살 때 눈을 떴는데, 영문을 모른채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게는 왜 그런일이 일어났는지를 자각하는 공부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강의의 내용이 깊어지고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손짓, 이 움직임, 예전엔 내가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뱃속에서 아이가 움직이고 발을 툭툭 찹니다. 내가 있기전에 먼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 손짓, 그 움직임을 있게 하는게 온 우주에 가득한 생명력, 그 생명력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때에 이 육체를 잉태하게 한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보게하고 움직이게 하는게 생명력입니다. 손톱이 자라고, 머리카락이 자라고, 어디 이게 내 뜻대로 되는 것입니까? 이게 모두 우주 생명력입니다. 이것을 불성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배고프면 배고픈줄 아는 것, 자기 안의 새끼를 보호하려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임신한 고양이, 풀이 흔들리는 모습, 이 움직임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기억, 하나의 습관, 패턴이 있을 뿐 거기에 '나'는 없습니다. 생각이 아주 멋대로 움직이는데, 그것은 그저 패턴이고 거기에는 '나'가 없습니다. 그럼 나는 뭐냐?, 영원한 생명, 이 몸이 있기 전에 있는, 영원한 생명, 지금 저는 새롭고 재미있는 공부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에고를 사라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 에고는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늘 분별하고 미래로 향하는데, 여러분은 본래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영원한 존재이고, 여러분이 자신을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여러분은 위대한 존재이기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올라오는 이 하나하나가 에너지이고, 나를 온전히 하기위한 것인데, 그래서 아플 때 아프고 슬플 때 슬퍼하면 됩니다. 슬픔, 이게 전체 우주의 율동입니다. 나는 전체인데, 왜 전체가 부분으로 세상에 나왔냐면, 전체로 존재할 때는 전체를 알지 못하고, 부분으로 태어나야 전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그대로를 경험하면, 다 알게 됩니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이 삶이 무엇인지, 이 소우주는 손댈 것이 없고 이대로 완전하다는 것을.
●슬픔, 중용은 이쪽 혹은 저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슬픔의 중용은 슬픔 자체입니다. 무엇인가를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올라오면 슬픔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용입니다. 무위를 통해 여러분 자신으로 돌아오면 이 일상속에서 자기를 충분히 만나면 대인관계가 달라지고, 삶이 기쁨이 되고, 삶속에서 계속 배우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모양을 따지니 엉뚱한 곳으로 갑니다. 이 절대의 자유를 누리는 길은 무위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다 알지만 능히 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섬세하게 만나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지금 이순간으로, 지금 스트레스받는 것 이게 도입니다. 도는 뭔가를 하려드는게 아닙니다. 나 자신으로 돌아오면 '사랑'이 제일 먼저 자신을 찾아옵니다. 여러분 마음이라는 나라, 여러분이 더럽다 여기고 꼴불견이라 여겼던 것,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못합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여러분 자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생명력입니다. 불생불멸의 존재가 소멸하는 존재로 태어난 것은 전체를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저 존재하면 됩니다. 이유없는 우울, 무기력 정말 좋은 것입니다. 그것을 깊이 만나 보십시오.
<야단법석>
●사람들은 결혼은 기쁜 것이고, 이혼은 나쁜 것이라고, 또 탄생은 좋은 것이고, 죽음은 나쁜 것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오히려 이게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옳다, 무엇이 그르다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뜻하지 않게 태어나서, 이게 '나'라고 믿어버리고 살아가면서 온갖 결핍을 겪게 되는데, 그래서 저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해질거야라고 생각하는데 결과는 다르게 나타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끊임없이 태어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삶은 왜 살아야하는지, 고통과 실망이 오면 누구나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데, '나는 누구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태어났습니다. 일상속에 있으면서, 육체가 나라고 믿으면서 결핍과 구속이 오는데, 사실 결핍과 구속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가짜의 허구를 통해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갑니다. 이게 참 오묘한데, 이렇게 육체가 나다,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착각, 스스로 구속하고 결박하는 속에서 우리는 자기자신이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찾아나섭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 중에 상처없는 사람, 고통없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살아가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생활속에서 놓지 않는 무언가, 자리 잡아가는게 있습니다. 저는 무위실험을 하면서 제 자신을 한번 보았지만, 그후로도 여전히 돈이 있어야 하고, 그런 것들이 있었는데, 이젠 그 무엇인가가 자리잡으면서 그런 것들을 놓아갑니다.
●공부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깨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삶이든 치열하지 않은 삶이 없는데, 당신은 지독하게 앓으면서 배워가고 있고, 그것 자체가 고삐를 움켜 잡는 것입니다. 사람은 '알았다'하는 순간부터 썩어갑니다. 벌써 가르치려드는 사람들, 알았다는 것으로 무엇인가에 갖혀 버리는 사람들, 제가 생각할 때 삶이 가치있는 것은 끊임없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알았다'는 것이 들어설 수 없습니다. 어떤 상을 가지지 않으면 '이루었다'하는 이런게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배워하고, 그러면서 원래있던 자신의 자리로 가고 있다는 느낌, 그것이 참 귀합니다.
●내 세계를 깨고 들어오는 어떤 계기가 있다면 그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이 에고는 늘 자신을 지키려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공동체마을을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 달리 보이고, 그래서 불편해지면서 언성이 높아지는, 자기도 모르게 맹목적으로 올라오는 분노..... 이 분노를 유발하는 사람, 이 분노가 튀어오르지 않으면 벌어지지 않을 상황을 원하는데, 그러나 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분노를 허용하면 그 뒤에 또 여러 가지 것들이 계속 올라오게 됩니다. 이 일이 있기전에는 대부분의 일들이 다 자기가 원하는 선에서 마무리되고 수습이 되었는데, 타인과의 관계에서 수습되지 않는 분노가 치고 올라오고,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일정기간 경험하면 그 분노 밑에 있는 또다른 무엇인가를 계속 보게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평토장을 합니다. 평평한 무덤위에 잔디를 심고 꽃을 심어 가꿉니다. 겉은 번듯하고 깨끗하지만 속은 썩은 것들로 가득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토장을 하고 겉은 멀쩡하지만 그 속에 썩어 있는 자신의 진실은 잘 보지 못합니다. 그 속에 있는 모습을 잘 보지 않으려하고 스스로 귀한 기회를 차단해 버립니다. 그러니 지금 올라오는 분노가 참 귀한 기회입니다. 저는 제 속에있는 그 썩은 모습을 제대로 보았습니다. 그 이전에 저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고, 좋은 직장까지 버려가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었고, 보잘 것 없는 사람과 결혼해준 훌륭한 사람이었는데, 누군가와 이야기하면서 그런 썩어 문드러진 자신, 끊임없이 잘난체하고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어 꾸며진 나를 내보이는 그런 꼬라지를 보았습니다. 그런 적나라한 나를 보는 것은 정말 입술이 타들어가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런 내 인생의 꼬라지를 본 순간이 내 삶에서 가장 고마운 순간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첫단추가 그때 제대로 꿰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눈만 뜨면 거짓말하고 자기자랑하는 그런 내 자신을 보며 저는 고통받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고통의 순간들이 진참회의 과정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닌 척 감추어버리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귀한 복입니다. 대장간에서 망치로 달구어진 쇠를 내리칠 때 굳건한 모루(달구어진 쇠를 받치는)처럼 거기에 머물러 있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단련하는 그것은 정말 축복입니다.
●내가 내 삶을 통째로 책임지는, 그 어떤것도 내치지 않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게 깨달음입니다.
○저는 몸이 예민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힘들고 지치고, 에너지 소모를 너무 많이 합니다. 자기자신을 알고 나면 에너지 소모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에너지 소모가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에너지 덩어리입니다. 감정, 생각, 느낌이 모두 에너지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늘 피곤하고, 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하고 저는 늘 힘들었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는데, 이유는 하나입니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그 어떤 것도 에너지입니다. 초라함, 불안, 두려움이 에너지입니다. 그 모두를 100%허용해 보면, 에너지가 하나도 남아있을 것같지 않은 초라함을 껴안으면, 한번만 껴안으면, 나자신을 만났을 뿐인데, 이상하게 삶이 즐겁고 안도감이 생기고 메마름이 사라집니다. 한번 경험하면 됩니다. 에너지가 넘친다는 것은 마음이 그만큼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열린 이문은 절대로 다시 닫히지 않습니다.
자기 안의 것을 허용하면, 생각이 대상이 됩니다. 밖에 있는 저 사물처럼, 내 안의 생각과 감정, 느낌이 대상이 됩니다. 에너지는 따로 있지 않습니다. 내가 깨달음을 얻으면 에너지가 생겨 남을 돕게 될거야하고 생각하는데, 그 밑바탕에는 군림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입니다.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말고, 깨달음을 얻으려드는 '나'로 돌아와야 합니다. 깨달음, 어떤 목표를 추구하지 말고, 지금으로 돌아와서 지금을 만나면, 내 안에서 올라오는 그것이 모두 에너지이고, 그로인해 힘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잡생각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요, 저는 앉아 있으면서 명상을 해 봤는데,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잡생각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가로막는 고요해야 한다는 생각이 에너지를 갉아 먹습니다. 잡생각에 에너지가 있고, 고요해야한다는 상이 에너지를 갉아 먹습니다. 잡생각이 올라올 때, 와라, 나를 집어 삼켜라, 내가 잡생각덩어리가 되리라, 한달동안 해 보십시오. 잠시잠깐 하는게 아니라 꼭 한달동안 해 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한번 해보리라는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잡생각을 거부하기에 에너지가 고갈됩니다. 잡생각을 억압하려드는 그것을 놓아버리고 모든 저항을 그치십시오. 그리고 이것은 잡생각을 지켜보는게 아니라, 그저 잡생각속에 속수무책으로 있는 것입니다. 잡생각은 저절로 올라옵니다. 감당이 안됩니다. 계속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면 감당이 안되는데, 그때 감당이 안되면 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순간 잡생각이 뚝 끊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껏 허용해주면 그것은 끝이 납니다. 그러나 그것을 조절하고 통제하고 끝까지 허용하지 않기에 그 실체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먹고 한달 내내 잡생각을 허용해 보십시오. 이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도 실험을 했는데, 하루종일 잡생각을 하는게 너무 재미있다고, 그러면서 한달 내내 잡생각을 했는데, 28일째가 되니까, 했던 생각을 계속반복하는 자신, 또 자신이 금지시했던 음란한 생각들이 모두 올라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음란한 생각조차 끝이나고, 마지막에 올라온게 가족에 대한 분노, 폭력성이었습니다. 잡생각속에서 가족을 죽이고 오빠를 죽이러 방문을 열고 잔뜩 긴장하고 달려가는데 오빠가 오히려 자신을 때려버리는 상상, 그 순간 앗~하는, 그때 이게 모두 생각임이 분명해지면서, 다음부터는 생각과 동일시를 하지 않게됩니다. 그만큼, 지금 일어나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좋은 것이고 메시지입니다. 한번 마음을 먹고 허용해 보십시오. 그때 비로소 피가 돌고 제대로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허용하는 과정에서 책같은 것은 보지 마십시오. 이게 다 도망치는 것입니다. 실험을 할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날 것의 그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얼른 정리해서 빠져 나가려 듭니다. 그러지 말고 삶속에서 날것의 것을 만나보십시오.
●지금 이순간이 기회입니다. 삶이 곧 기회입니다. 근원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나'라는 착각이 근원을 떠나 있지 않으면서 떠나있다고 착각하고 길을 찾는데, 예수가 말했습니다. 돌아온 탕자, 형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 부지런히 일을 하고 사는데, 둘째는 아버지를 찾아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받게될 유산을 지금 주세요!라고 요구하고 멋진 삶을 계획합니다. 그래서 그 재산을 받아 '아버지로부터 가급적 멀리 떠나(근원으로부터 가급적 멀리)' 결국은 거지가 되고, 아버지께 돌아가고 싶으나 염치가 없고 부끄럽고, 그래서 아버지집의 종이되어서라도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멀리에 서서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리고 돌아온 아들을 보며 정말 기뻐합니다. 그와같이 근원은 여러분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첫째 아들은 나를 위해서는 염소새끼 한마리 잡지 않던 아버지가,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탕진한 방탕한 작은 아들을 위해서는 귀한 양까지 잡으며 크게 잔치를 벌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런 마음을 잘 안 아버지가 말합니다. 내 가진 모든 것이 다 너의 것이거늘 너의 분노가 어찌된 것이냐고....지금 이순간이 기회입니다. 한번도 잃어버린적이 없는 완전한 충만을 여러분의 것으로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가을' 그 고독이 깊어지는 시간,
10월 모임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일혜님의 댓글
일혜 아이피 (211.♡.169.43) 작성일
제가 커피를 좋아해서 인지 토토님의 신맛 나는 커피 내리기에 시선이 가네요.
토토님~
신맛 나는 커피는
커피콩 안에 신맛을 품고 있는 아이로 내려야해요.
저도 커피에 신맛이 안나면 커피를 마신것 같지않거든요.
고소한 맛과 신맛 그리고 조금 뒤에 따라오는 묵직한 단향~
커피가 어울리는 가울입니다.
커피를 핑계로 안부 전합니다. ^^
저 너무 오래 결석해서 퇴학처리 된건 아닌지 은근 신경쓰입니다. ㅋㅋ
가지님~
정성스럽고 징~한 후기 감사합니다.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17.♡.172.26) 작성일
토토님, 알았죠, 커피콩 안에 신맛을 품고 있는 그 아이로 내려야해요~~~.
일혜님, '징~한'가요?ㅋ
전 별다른 생각없이 하는 일인데요~.
오랜만이에요, 그러나 오랜만이 아니기도해요,
늘 심장 한구석엔 일혜라는 존재가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일혜님,
어젠 말이죠,
심장에서 내뿜는 내 피가 혈관을 따라 흐르면서,
뭔가 흐릿하고 아픈 기운을 담고서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다 날랐어요.
마음과 육체가 흐릿해지고 고통스러웠죠.
뭔가 소유하고 가까이 두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할때,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던 마음을 멈추었을때 제게 엄청난 충격파가 전해졌었어요.
그리고 대상과 멈추어선 나 사이의 공간에 간헐적으로 이런 아픔들이 가득 채워지는 요즘입니다.
하늘은 눈부시게 푸른데 말이죠.
보고싶어요, 가까운 시일에 한번 봤으면 좋겠어요.....
토토님의 댓글의 댓글
토토 아이피 (59.♡.103.209) 작성일
강박적 결벽증이라길래 쌩뚱맞다고 생각했는데...그럴..수도 있을거 같기도 해요 (주어빠진 유체이탈화법이람서ㅋㅋ)
그래서 나랑 함께 일하는 주임님들이 항상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어요..... :(
내가 생각하는 순서와 틀이 있는데, 그렇게 안하니까... ㅋ 일을 왜 미리 안하고 저렇게 처리하냐면서 맨날 속으로 욕했거든요 ㅋㅋㅋ 새삼 알았네. 감사합니다.ㅋㅋ
일혜남 일혜님!! 딱 두번 봤거든요, 처음에 그냥 객손님마냥 처음 왔을때 커피 내려주셔서 한번 먹었는데 그때 그 신비한 안솔기의 분위기와 커피향은 잊을수가 없어요!!
그리고 두번째로 봤을때, 팔찌 주신거 아직 갖고있답니다! 가끔씩 할때면 완전 여성여성 해 지는 기분이라 괜시리 기분좋다능. ㅋㅋㅋ 이렇게 뵈어서 참 좋아요!!!!
ps. 그비싼 게이샤 원두를 가지고도 쓰게만 내리는 똥손이라 ㅠ.ㅠ 철치부심 해서 다시 해보겠어요!!! ㅋㅋㅋㅋ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17.♡.172.26) 작성일
토토님, 강박적 결벽증이 뭔지도 저는 잘 몰라요~,
그저 토토님이 커피를 내리는데 '열정'을 느꼈어요....
그 열정을 '강박적 결벽증'이라 비튼거에요.......
'진지함과 열정'이 보여서 그걸 칭찬하고 싶었어요~~~~~하하하.......
(토토님, 아직 저의 화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요~쩝..)
그때 마신 커피가 그 비싼 '게이샤~'였군요.... 어쩐지 맛있더라.......
내 입이 아주아주 호강을 했군요....
바다海님의 댓글
바다海 아이피 (112.♡.76.8) 작성일사진이 ~~~~훌륭하세요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17.♡.172.26) 작성일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정리1님의 댓글
정리1 아이피 (175.♡.146.243) 작성일
사진은 훌륭하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아프네요...? 왜 그렇지?
언제나 항상 여름가지 님의 후기를 읽으면 다음 달엔 꼭 가야겠다, 싶으면서도
막상 그 달이 되어 급한 일이 생기면
그래, 여름가지 님이 마치 그 자리에 있었는 듯 후기를 써 주시는데,
담 달에 가지 뭐, 이러기를 반복.
10월은 안솔기가 무척 아름다울텐데요...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83.♡.203.138) 작성일
미루고 미루다 보면,
언젠가는 오게되지 않겠어요 ㅋ.
정리1님,
편안하고 풍요로운 추석한가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