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생산해 내는 사회(안양에 묵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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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121.♡.173.59) 댓글 0건 조회 5,908회 작성일 08-05-26 12:47본문
잡글 : 범죄를 생산해 내는 사회
부제 : 내 자식이 흉악범죄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얼마 전 뉴스에서 참으로 끔찍한 사건을 접했었다.
일산에서 한 사내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와서 초등학생을 납치하려다가 안 되니 주먹과
발로 폭행을 가하는 장면이 그대로 CCTV 에 잡혔던 것이다.
아이는 엘리베이터 손잡이를 잡고 끌려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서 버텼고 여의치 않게
느꼈던 사내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냥 유유히 빠져 나간다.
그는 과거에도 상습강간행위로 10년을 교도소 생활했던 전력이 있는 이였다.
이뿐인가. 안양에서의 여아실종 살해 사건 역시 도착성욕자의 범죄였다.
작년 통계 아동장기 행방불명자가 177명이란다.
뿐만인가? 여중-여고생 대상의 성폭력과 성인 여성을 상대로 한 흉악 강간 사건은 더더욱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강간치상죄로 5년6월의 징역을 살고 나온 김 모씨는 만기 출소한
지 16일 만에 또 다시 귀가중인 여고생을 납치한 뒤 살해했고, 최근에는 사내 세 명이 집단
으로 몰려다니며 세 차례씩이나 여성을 납치 강간하고 살해해서 한강 등에 버리는 사건이
뉴스화 되었다. 과거에도 이런 사건들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좀 더 잔인해지는 추세에 있음
은 우려할만하다. 이러한 범죄가 발생되는 원인과 해결과 관련해서 크게 다음과 같은 분석
방법이 사용되어왔다.
1 개인의 흉폭함
과거에는 이런 사건의 발생을 전적으로 사건을 저지른 개인의 책임으로 돌렸었다.
그야 말로 ‘범죄 심리적’인 관점에서 이를 사건을 저지른 개인의 탓으로 철저히 돌렸다.
이렇기에 그에 대한 ‘처벌’도 가혹한 것이었다.
[ 0030 범죄 당사자 정모씨 ]
하지만 죄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통해서도 범죄가 오히려 줄어들 양상을 안보이자 새로운
분석방법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2. 개인의 심적인 상처
새로운 방법이란 주로 ‘정신분석’적인 방법으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심리에 억눌
린 기억을 찾아 통찰케 하게끔 함으로 이후의 추가적인 범죄가능성을 줄이고, 사회갱생의
가능성을 넓히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실지로 미국의 한 정신의학 전문가는 연쇄살인범의
80% 이상이 아동기 학대를 경험했음을 밝혀내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서 범죄를 저
지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 정신적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방치되면 끔찍한 범죄로 연결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이러한 방법은 ‘범죄자’를 단순히 ‘죄인’ 취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
라, ‘마음의 병을 가진 이’로 대해 치료를 행하는 방법이었다.
이에는 ‘보호관찰’제도까지가 포함되는데, 이러한 보호관찰을 통해서 재범률이 현저히 떨어
진다.(한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범죄는 보호관찰이 적용될 시에 재범률이 15%에 그친다고 한다.)
[ 비정규직과 동거녀의 가출 등의 심리적 상처를 얻으며 여성에 대한
혐오감을 키워왔던 정모씨 ]
3. 사회구조적인 문제
하지만 문제는 훨씬 복잡한 것이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의 영향으로 인한 억눌린 심리가 범
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음에 대한 연구와 이의 해결을 위한 노력의 와중에 이들의 ‘심리적
문제’는 사회-문화-경제의 영향에 밀접한 영향이 있음이 밝혀진다.
이에 따라 범죄의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억눌린 심리’의 문제로 환원하던 관점을 넓혀 ‘사
회구조적’인 차원에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가령 ‘할렘가’ 출신의 범죄비율은 ‘부유층’ 지역
의 범죄비율보다 훨씬 높은 것을 예로 들어 ‘우범성향’이 ‘사회구조적’ 현상이라고 판단할
근거가 생긴다. 따라서 이러한 분석방법에는 범죄당사자를 한편으로 ‘피해자’로 여기는 관점
이 포함된다.
이러한 우범성향을 만들어 내는 열악-빈곤한 교육-가정-경제 환경과 불안한 심리성향의 개
선을 위한 [사회복지적인] 노력은 근본적으로 범죄행위를 예방하는 효과 까지를 가져 온다.
이렇게 좀 더 포괄적이고 (예방까지가 가능한)근본적인 방법이 아닌,
1) 범죄자를 단순히 죄인 취급하는 관점과 2) 범죄자 개인의 심리 분석에만 치중한 관점은
상황을 악화시키거나 혹은 현상유지에 그치게 하는 수준의 접근 방법임을 심리-사회학자들
은 밝혀 왔다.
특히나 ‘성범죄’의 경우에는 사회구조적으로 ‘성욕’을 제대로 발산할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이들의 ‘상실감’이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이기 때문에 이에 더욱 사려 깊은 이해와 접근이 필
요하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해소 될 길이 막혔을 때, 그 본능은 인간의 이성을 집어 삼키고 어떠
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살인을 감수하면서라도) 이의 충족을 위한 길을 찾기 마련이기에
이에 면밀한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한다. 고도경쟁사회가 만들어내는
‘돈과 권력 추구형 인간의 양성’. 이의 노력이 실패로 되돌아갔을 때의 열등감과 자괴감의
증폭. 이로 인한 자포자기, 혹은 성격이상,... 그리고 거듭되는 “실패한 인간”들에 대한 무시
와 멸시의 사회분위기. 이로 인한 의욕-자존감의 상실로 인한 심리적 위축과 (심리적 허기
로 인해서) 비이성적으로 증폭되는 본능. 이는 결국 ‘실패한 인간’들로 낙인찍힌 이들이 자
신들의 본능해소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들을 낙인찍은 것은 기실 ‘타인’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기준’이 그들의 뇌리 속
에 강제하는 인식의 기준이다. 이러한 인식의 기준은 TV 속의 배우가 승진을 하고 나서야
인간대접 받는 장면 속에서... 신문 광고속의 번지르르한 모델의 모습이 행복의 기준으로서
비춰지는 모습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이 끊임없는 경쟁관계 속에서 성공을 위해서 내달음
치는 과정 속에서 그러한 ‘가치’와 ‘열정’과 ‘의지’가 ‘사회적 성격’으로 굳혀지는 것이고 다시
개인의 인식으로 삼투된다. 즉 한편으로 그들의 범죄를 일으키게 만드는 원동력은 우리 각
자가 현재 일상적으로 갖고 있는 일상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 0030 현대 사회 구조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범죄사건의 가해자 정 모씨 ]
4. 사태의 악화
하지만 대중들은 이러한 문제까지를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에
대한 대중들의 감정적 반응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더욱 증폭시키는 현실을 만들어 낸다.
아동 유괴미수-살해사건의 기사에 국민들은 대대적으로 분노했고, 현장검증이 있는 날에는 마스크로
가려진 그의 얼굴을 공개하라는 국민들의 성토까지 있었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검찰에서는 일산성폭행 미수범의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전달했고,
국회에서는 상습 성폭행범에 대한 전자발찌 부착을 시행하고 부착명령 허용기간을 최장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특정 성폭력범죄자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법 개정안을 5월 22일 통과시켰다.
이러한 사건의 당사자들에 대한 응징만을 우선순위로 두는 사건 처리 방법은 우리가 접하는
문제에 대한 사회구조적인 차원에서의 근원적인 해결을 위한 ‘사회적 책임성’에 대한 성찰
없이, 보이는 사건의 당사자를 문제의 시작과 끝으로 보는 안이한 시야에서 발생된다.
사실 이런 식으로 판단하고 낙인찍어서 단죄하는 ‘마녀사냥’식 방식이 일반 대중들과 입법,
사법부에서는 편하다. 스스로의 책임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고, 복잡한 사회구조적인 관계에
대해 논할 필요 없이 ‘당사자’에 대해서만 손가락질하면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일반 대중
들이 모두 그에 호응하니 뭘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하겠는가?
하지만 이는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한 대중들의 관점은 오히려 사태를 악
화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실지로 성폭력범의 재범률은 (다른 범죄까지 포함해서) 60%를 웃
돈다고 한다. 이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회적인 경쟁에서 낙오한 후 ‘본능해소’의 길을
찾다가 실수해서 감옥살이를 한 그들. ‘너 같은 놈은 인간도 아니다’고 사회적 모멸을 당하면서
복역한 후에 다시 사회에 발을 내디딘 그 ‘상처받은 자아’를 가진 이들이... 그 만신창이
가 된 자아를 가지고 온전히 세상살이를 하겠는가.
안양 초등생 유괴 살해사건을 일으켰던 정 모씨도 변변치 않은 불규칙한 수입의 삶을 살았던
‘소외자’였다. 사회적 기준에 의거 ‘인정받지 못하는 수준의 삶’을 살면서 역시 그를
‘인정해 주지 않는’ 동거녀들로부터 두 번 연속 배신을 당한 후에 여성에 대한 극도의 모멸
감과 공격성을 갖게 되었고 이로 인한 상처가 자신보다 약한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로
연결된 것도 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동을 납치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던 이 씨의 과거사도 별반 다를 바 없다.
1995년 5건의 아동 성폭행 사건을 저질러 10년형을 선고 받고 출소한지 2년 밖에 안되어
다시 저지른 이씨의 사건은 그의 과거의 상흔들의 깊이를 드러내 주고 있다.
5. 원죄
문제는 이러한 흉악한 사건들이 발생될 사회적 분위기가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외된 인간들을 할퀴는 ‘사회구조’에 대한 분석과 이해와 개선의 여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사회적 ‘소외자’ ‘이탈자’ ‘낙오자’들을 더더욱 압박하여 그러한 사건을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기실 그들 상처받은 영혼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려 깊은 민-관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오직 잘 먹고 잘살고자 하는 욕망의 실현을 위해서, 일 열로 줄 세워서 한 길만 가게 만드는 사회.
딱 이 한 가지 ‘줄서기 방법’의 삶 밖에 존재하지 않는 사회.
더군다나 그 세워진 줄의 1등과 꼴등까지를 순위 먹여 열등과 우열을 조장함을 통해 움직여지는
이러한 야만적인 삶의 체계가 현재 초등학교(입시교육)에까지 스며들어 있는 현실로 다가오면서...
줄의 후미를 따라가야 하는 이들의 상처는 점점 더 매정하게 후벼 파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들의 억압되고 무시당하는 욕망과 자아는 비정상적인 돌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가속화를 통한 ‘사회복지-공공부문의 축소’, 그리고 노동자들을 배척하고
자본가들 위주로 편성되는 이러한 ‘사회적 약자’(자아의 상처를 받기 쉬운 이들)에 대한
홀대는 앞선 우려를 더더욱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 낼 것 이다.
2008년 4.9일 총선 중에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반드시 우리 영등포역에 KTX를 세우겠다.
그러려면 노숙자 정리해야 한다. KTX가 백날 오면 뭐하느냐. 영등포역이 전국에서 노숙자
1위 역이 된다면 KTX 백날 해야 소용없다”라는 발언을 통해 상당한 이슈가 되었는데, 이
렇게 더욱더 성취하고, 채우고, 높아지기 위해서 사회적인 약자를 홀대하고 비하하는 이러
한 폭력적인 문화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로 인해서 상처받고 낙오한 이들에 의한 (상실의
보상을 위한) 끔찍한 범죄들은 점점 증가할 것이다.
6. 해결을 위한 노력의 시작
눈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기실 우리는 크나큰 죄를 저지르고 있음의 다름이 아니다.
사회적인 열등감과 상실감을 만들어 내는 우리의 ‘소유’ ‘소비’ ‘우월’을 향한 관념 자체가
이러한 사회의 암울함을 증폭시켜내는 하나의 축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손에 쥐어질 수 있는 것을 하나라도 먼저 더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경쟁주의-물질만능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돈’과 ‘권력’을 향한 편협한 욕망
의 실현 여부로 인간의 가치를 매김 하는 사회의 폭력성을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다양
한 방법과 가치와 삶(노숙자들의 삶/범죄인들의 삶까지도)을 인정해줄 수 있는 폭넓은 이해
와 아량을 갖춰 지금과 같이 ‘타인을 밟아 서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사회’ ‘정직해서는
온전히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 또한 ‘물질과 권력의 성취만이 성공의 기준으로 가늠되는 사회’,
그러한 ‘물질과 권력의 성취를 위한 기술-자격 습득을 위한 입시교육’만 만연 하는 사회,
이로 인해서 ‘물질과 권력의 성취만이 인간 평가의 척도로 사용’되어, 그것을 성취하지 못한
이들에게 끝없는 열등과 좌절을 심어주고 그것을 성취한 이들은 우쭐한 자만심으로 일관하게
만드는 ‘획일적 사회’.
이를 통해서 아동들에게 인간과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
이러한 사회 체계 자체의 변화를 기해야 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작금의 ‘사회’를 만들어내는 ‘나’ 자신의 이기적인 정신과 욕망의 실체를
들여다보려는 미묘하고 집약적인 노력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러한 이해를 사회적으로 확대하
기 위한 실천적 노력으로 확대 되어야 한다.
이렇지 않은 상태에서 눈에 보이는 흉악 범죄의 당사자들의 잘 못만 따져 손가락질을 하거
나, 이러한 ‘흉악한 세상’에서 자기 자식만을 금쪽 같이 여기며 철통같은 보호 속에서 키워
내려 해봤자 결국 그러한 흉악범죄의 타깃은 우리의 자식임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 자신이
운 좋게 그 가능성을 피해갔더라도, 그 자식의 자식이... 아니면 그 자식의 자식의 자식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무책임의 결과를 받아야 한다.
--- 부디 이러한 끔찍한 사태를 통해서 놀란 아이들의 마음이 그 두려움과 상처로 인하여 닫혀지지 않고,
그 아픔까지를 포용하는 넓은 이해와 평화와 사랑의 마음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 우예슬 이혜진양 살해사건의 범인 정모씨 - 당신이 만약 그를 단순히 ‘몹쓸 놈’으로만
보고 규탄만 일삼는다면, 당신은 앞으로 빚어질 또 다른 흉폭 한 사건의 ‘방조자’ 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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