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자도 책을 읽어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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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218.♡.233.55) 댓글 1건 조회 14,779회 작성일 08-08-18 22:08본문
2008년 7월 13일 (일) 정기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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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법정님이 병석(病席)에 계신 동안, 법정님이 안 계시면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 답변 > 부처는 부처의 몸 자체가 우주요. 다만 여러분이 제 본래의 몸을 밝히지 못했을 뿐이오.
그래서 자꾸 부처를 밖에서 구하고, 법에 의지하고 부처에 의지하려고 하는
거요. 여러분 마음의 근본이 부처고 근본이 법이오. 바깥에서 새로 얻고 구해서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오.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제가 모르고 있으니
그 얼마나 답답한 일이오?
이 몸과 이 마음을 '나'로 삼고, 이 세상을 실제로 알고, 또 허공이 그 모든 것을 껴잡고 있다는 생각까지도
몽땅 여러분 한 생각으로 지어 나툰 바요.· · · 그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거요. 없다는 생각조차 없는 거요.· · ·
그 티끌 하나 없는 그 가운데서 자꾸 망념을 일으키고 있는 거요.
모름지기 투철해야 합니다.
지금 있는 이대로의 것을 바꿔서 끄달림도 휘둘림도 없는 세계에 닿는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면 영영 가망 없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도달하여야 할 '저 언덕'이라 커니, 해탈의 경지,
열반의 경지 따위의 이름들은 전부 인간이 세상 살기 간고해서
억지로 지어낸 이름들이오. 그런 망령된 이름에 사로잡힌 사람은
잘 해야 유위법에 떨어질 뿐이오.
삼평 의충(三平義忠) 선사의 게송을 깊이 새겨 보시오.· · ·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가 열반이요,
불국토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보고 들음이 보고 들음인 채로 보고 들음이 아니니, 그대에게 빛깔과 소리를 드러내 보일 길이 없도다. 만일 이 가운데서 아무 일 없음을 깨닫는다면, 체(體)와 용(用)을 나누건 나누지 않건 방해로움이 없으리라. |
자 | Access : 365 , Lines : 29 |
2008년 6월 15일 (일) 정기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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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주변 경계가 전부 내 마음으로 지어낸 바라는 사실이 믿기질 않습니다. < 답변 > 범부가 깨치지 못하는 이유는 만법이 자체로 성품이 없다는 사실을 꿰뚫지 못해서 그런 거요.· · · 석가모니 이래로 많은 선지식들이 이 말이
틀림없이 참이라고 보증을 해줬소. 그렇다면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그냥 말로만 공허하게 예하고 대답할 것이 아니라 끝까지
만법이 성품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참구해야 할 것 아니겠소?
그리 안하고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좀 막히면 덮어놓고 모르겠다고 하니,
그런 식으로 해서 언제 깨달을 분수가 있겠소?· · ·
아무리 말로만 예, 예해도 스스로 참구하여 꿰뚫지 않으면
백 날 가야 헛수고하는 거요. 오히려 지견만 잔뜩 늘어 점점 어려워질 뿐이오.
질문자도 책을 읽어봤지요?· · · 그 하얀 종이 위에 찍힌 까만 점들이 질문자한테 뭐라고 합디까?· · ·
그것들이 뭐라고 하지 않지요? 그럼 어떻게 책을 읽은 거요?· · ·
그 점들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분별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책을 읽었더니 이러저러 하더라고 말하는 거요.· · ·
책 그 자체는 아무 말 안 해요. 다시 말해 책을 읽는다고 하는 것은
책을 읽은 게 아니고, 제가 제 마음을 읽은 거요.
하늘 땅 삼라만상이 늘비한데 그것을 하늘 땅 삼라만상이라고 비추는 것조차도 그것들이 내게로 와서 '내가 하늘 땅 삼라만상이라'고 하는
게 아니오. 산이 높고 바다가 출렁거리는 것조차도 내가 그렇게 지은 거요.
그게 진실이오.· · · 20세기 초반에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바요.
물질을 이루는 최소 단위인 양자(量子)는
우리가 관찰하기 전에는 그것이 거기에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소.
결국 양자는 인간의 관찰을 통해서만 있다 없다가
결정되는 거요.· · ·
2500년 전에 이미 붓다가 말씀하셨고, 100년 전엔 그 누구도 이론을 제기할 여지가
없는 순수히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증명을 해마쳤는데, 아직도 '그래도 그렇지만' 하고 제 자리에서 맴맴 돌고 있다면 그 사람은 수행자가 아니오. |
Access : 317 , Lines : 26 |
2008년 6월 1일 (일) 정기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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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쉬기 위해 뭔가를 좀더 알아야 할 것 같고,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답변 > 그 마음이 아직 바닥까지 환히 밝아지지를 않아서, 아직도 뭔가를 깨달아 들어가려 하고, 알아내려 하고, 자꾸 뭔가를 조작하려고 해요.· · ·
지금 있는 그대로 모든 순간 순간, 생각 생각이 어느 것 하나
진리의 응현 아님이 없으니 다시 무엇을 찾을 일이 있겠소?
왜 부처를 가지고 다시 부처를 찾느냐 이런 소리요.
하고 싶은 게 많지요?· · · 해탈하고 싶고, 깨닫고 싶고, 쉬고 싶고, 싶고, 싶고· · · 앞서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허, 아무것도 없는데 그동안 괜히 엎치락뒤치락 했네!
라고 할 수 있으면 그게 제대로 쉬는 거요.· · · 쉬는 것과 못 쉬는 게 전부 한 생각에 달려있는 것 아니오?
심지어 깨달음과 미혹함, 범부와 성인, 생사와 열반 등등 그
모든 두 가닥이 전부 그 한 생각을 벗어나 있는 게 아닌 거요.· · · 앉은자리에 앉아서 일체만법을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좌단(坐斷)해 버리는 거요. 그게 일승법의 요체요.
깨닫기 위해 미리 뭔가를 준비할 것은 아무 것도 없소. 미리 긁어놓고 가려워지기를 기다리는 바보는 없지 않소?· · ·
참 성품(眞性)은 그저 그때그때 인연 따라 감응할 뿐이오.
그런데 이 가죽주머니를 '나'라고 말뚝을 박아놓고
그 있지도 않은 몸과 입과 뜻을 갖고 온갖 시비득실을 따지고,
또 그 '나'가 좀더 바람직한 어떤 상태가 되기 위해 요리조리 궁리하고
조작하고.· · ·
'나'는 없소. 이놈은 지각이 없어요. 환화공신 (幻化空身)이오.· · ·
그러니 이 놈이 '나'이면 그때부터 사단은 벌어지는 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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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님의 댓글
대원 아이피 (211.♡.76.251) 작성일
대우거사님의 귀중한 설법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매우 귀중하게 여겨서 공부에 도움이 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