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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스승과 종교가 깨달음의 독이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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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무개 (116.♡.248.160) 댓글 4건 조회 5,481회 작성일 11-05-1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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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스승과 종교가 깨달음의 독이 되는 이유?

산을 오를 때에는 산자락에서부터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면서 중턱에 이르렀을 때에는 산의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근육과 심리적인 자신감을 갖게 되어서 정상을 오르는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산의 중턱까지 케이블카 도움을 받아올라가게 되면 다리에 근육이 생기지 않고, 심리적인 자신감 또한 생기지 않아서 산의 정상을 오르기가 어렵습니다.

깨달음 또한 산의 정상을 오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얻겠다고 책과 스승과 종교에 의지하는 일은 산의 정상을 오르면서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깨달음 중턱-깨달음의 원리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쉽게 오를지는 모르지만 깨달음의 정상을 오르기에는 더 방해가 됩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이란 말은 ‘나는 우주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나만의 깨달음의 길이 있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깨달음의 중턱에 이르러서 책과 스승과 종교를 버리고 나만의 길을 찾아서 깨달음의 정상을 올라가야 하는데 그동안 의지했던 것을 버리는 일은 산 중턱까지 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두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책과 스승과 종교가 깨달음에 더 방해가 되는 이유는 깨달음에 관한 상을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에 관한 상은 산 정상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 그 목표를 향해서 매진하게 됩니다. 목표를 두고 매진하다보면 중턱-코앞이 정상인줄도 모르고-에 이르러서 목표를 바라보면서 ‘아직도 정상은 멀었네...’라는 좌절을 하게 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천리를 가려한다면 천리를 목표를 둘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이순간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가다보면 어느 새 내 발 아래 천리가 있어야 하고, 산 정상이 내 발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천리나 산 정상의 목표에 욕심을 두다보면 중간 정도에 이르러서 자신이 세운 목표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아직도 멀었음을 자책하며 지금 현재의 한 걸음을 소중히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깨달음의 정상에 이르지 못하고 중턱에서 좌절하고 허무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저 아무개는 천리 길이나 산정상의 깨달음을 목표로 하지 않았습니다. 난독증이 있어서 책 멀리 했고,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스승과 종교를 멀리 했습니다. 너무나 무능한 제가 각박한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워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능하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편이 훨씬 더 낫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19세부터 무능한 나 자신의 단점 회복을 포기한 채 못난 그대로 나를 허용하고, 존중하고, 사랑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현실 자체를 소중히 하면서 하루 한 걸음씩 걷는데 만 충실했습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산 정상이 내 발아래 닿아있었습니다. 산 정상에 오르는 순간 계란껍질 속에 갇혀있던 내 안의 수증기 같은 존재가 망망한 우주로 퍼지는 느낌을 가진 후 ‘나는 지구와 한 생명이었구나’ 하는 깨달음과 내 삶의 전체가 보이면서 ‘내가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나의 모든 이기성이 채워지면서 ‘나’가 사라져 ‘아무개(我無존재)’가 되어 오직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의 행복을 돕고자 하는 이타성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강을 건너가는 일입니다. 강을 건너는데 배(책, 스승, 종교)를 이용하면 쉽습니다. 그러나 배로 강 건너 가까이는 이르기 쉬우나 실제로 강을 건넌다는 것은 배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디디는 것입니다. 특히 종교라는 배는 강 가까이 이르기는 쉽겠지만 그 종교라는 배를 버리고, 배에서 내린다는 것은 강에 가까이 가는 일 보다 훨씬 더 힘든...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깨달음을 얻고 싶다면 깨달음이라는 목교를 우선 버려야 합니다. 책도 스승도 종교도 깨달음의 정상을 이르게 하는데 독이 되면 되었지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책, 스승, 종교가 추운 겨울날 꽁꽁 언 발에 오줌 누어 조금 따뜻하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될 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깨달음의 목표를 버리고 오직 ‘범사에 감사하라’와 지금 이순간의 내 모습 그대로를 평가, 분석, 비교하지 말고 허용하는 일에 몰입해야 합니다. 숨을 쉬는 일, 걷는 일, 가족을 사랑하는 일, 허드렛일을 사랑하고,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는 일.... 사소한 일에만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씨앗은 이미 아름드리나무이고, 애벌레는 이미 나비이기 때문에 매순간에 충실하기만 하면 모든 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물위에 떠 있는 낙엽처럼 그렇게 인연에 모든 것을 맡기고 오늘 하루하루, 지금 이 순간만 충실하기만 하면 됩니다. 물이 결국 낙엽을 바다로 안내 하듯이 우리의 삶은 깨달음의 바다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이미 우린 깨달음의 다이아몬드를 품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생후 10년 동안 부모의 마음의 상처를 내려 받고,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서 다이아몬드에 오물을 뒤집어 쓴 채 자신이 오물인줄 착각하고 깨달음을 찾아 헤매게 된 것입니다.

오물(자신과 현실)을 없애기 위해서는 오물을 부정하지 말고 오물을 사랑해야 합니다. 현실의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허용하고, 사랑하기만 한다면 저절로 내 안에서 다이아몬드가 반짝 거리게 됩니다. 우린 이미 다이아몬드이기 때문에 아이마몬드(깨달음)가 되려하는 일은 그 자체가 쓸데 없는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우린 우주의 법칙에 속하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이미 나비를 품은 애벌레처럼....

이미 나무를 품은 씨앗처럼...

이미 바다를 품은 물방울처럼....

이미 우린 다이아몬드를 품은 존재입니다.

더 이상 구하고 깨닫는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나’를 허용하고, 사랑하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의 한 걸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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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전국모임에서 뵐수 있을까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와 지구에 함께 살아줘서............^^

댓글목록

산하님의 댓글

산하 아이피 (211.♡.81.22) 작성일

아무개님의 글을 읽으면 신선한 비유에 감탄을 합니다.
단 한마디의 말을 저렇도록 다양하게 이끌어내는 능력을 보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마 서양적인 잣대로 보면 아이큐가 꽤 높을 걸요?
이거 실례되는 얘기 아니죠?

김영대님의 댓글

김영대 아이피 (210.♡.185.20) 작성일

내일 전국모임에서 아무개님 강의를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계획이 되어 있는지 어쩐지 모르겠네요.
아무개님께는 항상 감사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개님의 댓글

아무개 아이피 (116.♡.248.235) 작성일

자주 뵈어용~~~~

아무개님의 댓글

아무개 아이피 (116.♡.248.235) 작성일

부산 파르재마을 정기모임때 따로.... 꼭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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