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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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람 (218.♡.219.203) 댓글 1건 조회 7,470회 작성일 06-02-26 15:43본문
담벼락에 여러 사람들이 낙서를 많이 해 놓았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지저분한 낙서를 다 지우고 나서 거기에다가 ‘낙서금지’라는 글씨 하나를 써 놓았습니다.
그런 후 한 사람은 이 글씨를 보고 ‘에이! 낙서금지도 낙서이지는 마찬가지지!’하면서 그 글씨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런 후 한 사람(문맹자)은 이 글씨를 보고 그 뜻이 뭐가 뭔지 도통모르니, 담벼락에다 어떤 누가 시커먼 먹물을 칠해 놓은 것으로 보고 지나갔습니다.
그런 후 한 사람은 이 글씨를 보고 ‘아! 그래, 담벼락에는 함부로 낙서를 하면 안되지!’하는 교훈적 차원으로 그 글씨를 알아듣고 지나갔습니다.
그런 후 한 사람은 이 글씨를 보고 옛날에 낙서를 많이 하던 그 사람을 떠올리며, 그 사람은 지금 ‘뭐 하고 있나’하는 그러한 생각, 혹은 불쾌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후 한 사람은 이 글씨를 자꾸만 보다가 낙서를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는 합니다.
그런 후 한 사람은 이 글씨를 보고 ‘낙서금지’라고 하는 글자가 쓰여질 수 있음은 거기에 그 바탕으로서 담벼락이 있음이야‘하면서 그렇게 이해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 후 한 사람은 이 글씨를 보고 ‘낙서금지’라고 하는 글자가 보일 수 있음은, ‘그것이 상대적으로 담벼락보다 그 농도가 검기 때문이야’하면서 그렇게 이해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 후 한 사람은 이 글씨를 보고 ‘아! 그래, 내가 옛날에 낙서를 많이 하였는데, 그것이 참으로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였던가? 참으로 회개하고 또 회개하나이다!’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심정으로 알아듣고 지나갔습니다.
그런 후 한 사람은 이 글씨를 보면서 ‘이렇게 글씨가 보이는 것은 나와 저 글씨 사이의 공간이 텅비어져 있어 보이는 것이야!’하면서 ‘텅빈 공간’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그것을 이해하고는 지나갔습니다.
그런 후 한 사람은 이 글씨를 보고 ‘낙서금지라고 하는 것도 본래는 낙서외에 다름이 아니니, 실상으로서는 이미 없는 것, 하나도 안 쓴 것외에 다름이 ’아니다‘ 하면서, ’낙서금지‘라고 하는 글씨가 이미 없는 것임을 깨닫고 지나갔습니다.
그런 후 한 사람은 이 글씨를 보고 ‘낙서금지’라고 하는 말뿐만 아니라, 담벼락도 ‘없는 것’임을 깨닫고 지나갔습니다.
그런 후 한 사람은 이 글씨를 보고 ‘낙서금지’(?)라고 하는 그 세계안에 자기자신이 이미 함께 하고 있는 것임을 발견합니다.
그런 후 한 사람은 이 글씨를 자꾸만 반복해서 보다가 어느 날 공의 세계가 통하여 지면서, 거기로부터 100만톤에 달하는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이후로 부터는 그러한 능력으로 인하여 저절로 깨달아집니다.
이렇게 ‘낙서금지’라는 말은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은 것이지만, 때.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나타나는 양상이 천차만별이 되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그것이 그 순간속에 있는 생각의 차이, 때의 차이. 에너지(능력)의 차이에 따라 그렇게 나타나 지게 되는 것이다. 각각의 순간속에 어떠한 종류로 얼마만한 것이 얼마만한 능력으로서 담기어져 있느냐 하는 그 차이에 따라, 그렇게 나타나는 양상이 천차만별이 되어지는 것이다.
즉, 바르게 써진 글이냐? 틀리게 써진 글이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 그 능력으로서 깨쳐지느냐(알아차려지느냐)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위에서 열거한 그 모든 것들이 때를 따라 다 가능한 상태라면, 그는 그러한 것들을 다 담아낸 상태로서 살아가는 것이고, 그 중에 일부만이 가능하다면, 그 중에 일부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는 곧 전체이고, 전체는 또한 곧 일부인 것이니, 이것은 밑도 끝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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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님의 댓글
바람개비 아이피 (211.♡.41.154) 작성일
물론 사고의 한계에서 오는 제한도 있겠지만 동시에 다양한 생각을 할때도 있고 점차적으로 생각이 변하는 것도 있음을 느꼈습니다.
만약 어떠한 생각이 한순간의 것으로 선택되는 경우 그 생각은 그순간에만 머무르게 되는데 우리의 생각은 습관적으로 이어 가거나 반복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듯 합니다.
오늘 한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다 재미있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며칠 전 만났던 친구와 흘러간 옛날을 떠올리다가
'우리가 왜 서로에게 하나되지 못하고 삐걱거렸을까?
왜 우린 서로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늘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헤어지지 않고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과연 우리가 사회에서 만난 사이라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를 두고 이야기 하다가 서로의 다음 약속 때문에 이야기를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을 메일로 전하려고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에 대한 불만과 또한 그 반대로 측은함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며 내가 선택한 오늘 이야기의 요지는
내가 너때문에 얼마나 상처 받은 줄 아느냐? 너는 나를 친구로 생각한 게 아니라 나를 무시한 게 아니냐? 너가 나를 제대로 아느냐?
라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클릭을 하고 글을 써내려가는 순간 처음의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네가 비틀리고 꼬인 나를 상대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겠니?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널 발목잡아서 늘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쪽으로 몰고 가려했던
내가 부끄럽고 미안하다....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난 내가 얼마나 세상과 대항하느라 힘들고 외로웠으며 얼마나 상처받고 얼마나 억울했는지를, 그리고 너 또한 나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는지...
를 따지려 하였는데 이야기는 순간적으로 방향을 완전히 전환하여 나의 반성과 사과의 인사로 변한 것입니다.
나는 그 순간 그래 바로 이것이야! 모든 문제는 바로 내 안에 있었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이러한 반성뿐만 아니라 나의 섭섭함까지도 같이 표현 못함에 대해 아쉬워하면서 클릭을 하는데, 오 마이 갓! 그만 다운이 되는게 아니겠습니까?
아 그 허망함이란...
원래 난 컴에 막바로 글을 쓰기 때문에 이런 황당한 경우를 많이 겪습니다. 저장도 안된 글이 다운돼서 날아간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필 이런 순간에 또 이런 사고가...그러면서 또한번 깨달았습니다.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고 동시에 없다. 또한 순간은 또다른 순간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나는 매순간 변한다. 그것이 밖으로 표현되는 순간도 하나의 인연법에 의한 것이다.
표현되던 안되던 그 모든 것은 있고 또한 없다.
아, 지금 이순간의 이글도 컴이 날 배신하면 그대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겠죠?
아니 날아가더라도 없는 것이라 할수 없는 뭐, 그런 것?... ㅠㅠ
삶자체가 늘 황당투성이니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하여튼 좀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