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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걸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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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반 (122.♡.139.18) 댓글 4건 조회 6,321회 작성일 12-07-0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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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키고 글을 쓰려는데 자꾸 멈춘다.
익스플로러보다 빠르다는 크롬을 쓰는데도 (응답없음)이 뜨면서 마우스는 뱅뱅뱅 돌고...
와 진짜 미치겠따.
언제부턴가 컴퓨터 창이 뜰 때까지 기다리는 이 시간이 견디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속도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인터넷 강국인데도
난 컴퓨터가 멈춰서서 마우스가 뱅뱅도는 때마다 내 몸도 같이 꾹하고 멈춰서 턱턱 걸리는 것 같다.
예전엔 그 시간을 못 견뎌서 바로 다른 창 열고 의미없는 뉴스거리나 찾아헤매거나
흥미위주의 사이트로 들어가곤 했다.
중1때부터 인터넷에 빠져들었는데,
그땐 전화선연결해서 인터넷하고 세이클럽 채팅하는거 유행하고 뭐 그럴 때였다.
거의 아이돌 자료 찾아다니고 팬픽 읽고
사지도 못할 거면서 인터넷 쇼핑몰 돌아다니고 그 옷을 입고 멋져질 내 모습을 상상하며 조급해하다가
그도 질리면 재미도 없는데 단지 읽을 요량으로
또 뭐 없나 오만 텍스트를 허기진 듯 와구와구 먹어치우다가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들곤 했다.
몸에 찬기가 돌고 팔에 피가 안통해 저릴 것 같고 배도 고프고 화장실도 가고 싶은데도 그러곤 했다.
한두시간 자고 학교에 나가자면 온몸이 천근만근이고 눈은 퀭하고 머리도 잘 안 돌아가고.
아마 그때 잠이라도 충분히 푹 잤으면 키가 더 자랐을거다.
그런 식으로 인터넷을 하다보면 인터넷의 자료를 클릭하고, 로딩하고, 다운받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그 속도에 내 몸과 마음을 맞춘 채로 그냥 무작정 질주하게 된다.
나를 완전히 놓아버리고 맡겨버리는 것이다.
그 인터넷도 이젠 별 재미가 없고...... (할려고 해도 힘이 달려서 그렇게 못한다.)
이젠 컴퓨터의 리듬에 내 몸을 맡기지 말고
내 몸의 리듬에 컴퓨터를 맞추어 써보자 싶어서 깨어있으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컴퓨터가 좀만 멈추거나 걸려도 답답해 미치겠는데
이 답답함을 한번 견뎌보자 맘먹고 멈추어보는데 잘 안된다.
답답함의 느낌이 감지되자마자 딱 피하면서 눈을 다른데로 돌리게 된다. 
원래 쓰려던 건 이런 내용이 아니었는데 맘먹고 글 한번 쓰려는데 렉이 걸린 탓이다.
난 성격이 엄청 급한가보다;;; 하려던게 바로 안되고 한 템포 쉬게 되면 김이 팍 새고
할 맘이 사라진다.
근데 내맘이 꼭 렉걸린 것 같다.
무슨 생각이 들면 렉 걸린 것 처럼 툭툭 멈춰버리곤 한다.
일순 온몸에 긴장이 들어가면서 숨이 흡하고 들이마셔진다.
차라리 맘껏 망상에 빠져 헤매기도 했던 때가 행복했나 싶기도 하다.
그땐 망상하면서 걷고 망상하면서 일하고 망상하면서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그런 자신을 모른 척 했는데.
내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망상에 빠져있었는지 알게 되자
그게 부끄럽기도 하고 필요없는 허황된 거란 걸 알게 되고
나도 모르게 걸러내고 막아서려고 하는 것 같다.
화나 짜증이나 질투나 두려움, 부정적인 생각들도... 그걸 자제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믿은 세월이 길어서인지
그런 생각이나 감정이 들면 모두 막아서게 된다.
렉 걸린 것도 받아들이고 그 때의 찝찝함과 불만스러움...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라고 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렉이 걸릴 땐 뭔가 덜컹하고 큰 일이 벌어진 것 같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그 순간을 훌쩍 뛰어넘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나면 이미 지나온 그 순간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내 에고가 그 경험을 갖고서 이리저리 요리하곤 한다.
뭐라고 하는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너무 빠르고 제멋대로라서.
이걸 어떻게든 해결하고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같다. 또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지 등등...
그러고나면 기분이 참 가라앉는다..
생각이 렉이 걸리니 행동도 렉이 걸린다.
근데 웃긴 건 가끔 맛보는 '지금'에서는 그게 뭐가 문젠지 렉이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거다.
그래서 또 지금엔 없는 '지금'의 경험을 구하고 찾는다.
지금을 받아들여야지, 이 몸의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기도도 하고 명상도 해본다.
살짝 나아졌다 다시 뒷목에 조이면서 양어깨가 저려온다.
흐르는 것을 틀어쥐려 하니 렉이 걸린건지,
렉이 걸린 것을 해결하려 드는 것이 진짜 렉인지.
지금껏 난 돌다리를 두들겨도 너무 많이 두들기며 살았다.
돌다리를 두들기느라 저편으로 건너가질 못하고 있다.
'떨리면 어떡하지, 의식하면 어떡하지, 남이 이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챙기고 대비하고 준비해야할 것이 너무 많았다...
렉, 렉, 렉
렉도 처음엔 살고자 생겼을텐데...
감당치 못할 정보량을 처리하기 위해 생겼을텐데...
감당치 못할 감정과 현실을 조금이라도 잘 다루기 위해 생겼을텐데.
렉에 걸려 쓰러지지도 못하고 걸어가지도 못하는 나.

댓글목록

김미영님의 댓글

김미영 아이피 (175.♡.45.223) 작성일

흠,,,글쿤요.돌다리도 너무 두들기니 깨져버리더라고요.ㅋㅋ(경험상).
여기에 글을 올리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반응보다 자기 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게 되니 좋은것 같아요.^^
다반 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궁금하군욤.지난번 대구 망년회 술자리에서 얘기했던 기억은 나는데 구체적인 건 기억이 안난다능.

다반님의 댓글의 댓글

다반 아이피 (122.♡.139.18) 작성일

히히...저요. 대학 졸업하고 아직 백수나 다름없어용. 근데 가만히 있긴 뭐해서 2개월씩 찔끔찔끔 알바하고 지냈답니당.. 그 알바도 힘들어서 관두고 흑ㅠㅠ
저도 돌다리를 그냥 확, 뽀개버릴까요? 뽀사버릴까요?ㅋㅋㅋㅋㅋㅋㅋ

김미영님의 댓글

김미영 아이피 (175.♡.30.244) 작성일

저도 대학 졸업하고 이일 저일 찔끔찔끔 그랬어요.뭐든 오래한 일이 없었지요.일자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대인관계에서 오는 피로를 감당하지 못했던것 같아요.경쟁에 취약했고 무엇보더 나 자신이 싫었으니까요.매사에 확신이 없어서 남들은 쉽게 대처하는 경우에도 덜덜 떨고 긴장하다가 나혼자 나가 떨어지길 여러번...(제가 원래 오덕 원조예욤 ㅋㅋ)
 그런데 호주에 사니 오덕들이 너무 많아염...오히려 제가 무척 적극적이고 능동적일때가 많아서 깜짝 놀래요.(물론 공적인 일관계로 만나게되면 그렇게 안보일지 몰라도) 사적인 생활을 들여다보면 나의오덕스러움은 저리 가라는 수준....결국 한 사회나 국가가 거기에 적합한 생산적인 인간형을 모델로 삼고 특정한 인간형을 이상화하기 나름이 아닐까싶어요.그러니 너무 스트레스 받을 필요없는것 같아요.
님의 성향이 누군가에게 물질적으로는 아니라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큰 위로가 될 수도 있잖아욤.^^

다반님의 댓글의 댓글

다반 아이피 (122.♡.139.18) 작성일

호주에 사니 오덕들이 너무 많아염...에서 저 빵터졌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젠 날씨도 좋고 해서 밖에 걸을려고 나갔는데, 나른하고 피곤해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어요. 고개를 드니 나뭇잎들이 우거져있고 그 사이로 맑은 하늘과 구름이 보이는데 편안하고 좋아서 노래도 부르고, 그랬어요. 혼자만 있어서 무지 평화롭고 좋았는데 어떤 사람들이 와서 내 맞은편 쪽 벤치에 앉는 거에요. 그때부터 그 편안함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경직, 긴장 시작..ㅋㅋ 그냥 아까처럼 쫌 편안하게 혼자 노래도 부르고 그러고 싶은데 귀를 비롯한 온 신경이 그 쪽으로 쏠려서는, 아무리 편안할려고 해도 편안할수가 없더라고요.
근데 잠깐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영향받지 않고 편안할려는 그 마음과 몸에배인 몸짓이, 문득 좀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왜 그렇게 영향안받을라고 기를 썼지? 난 원래 좀 예민하고 수줍고 소심한 사람인 것도 같은데... 그게 좀 과한 편이긴 했지만..;;ㅋ
물론 아주 기분이 좋고 편안할 땐 남이사 뭘하든 나몰라라 신경안쓰일때도 있거든요. 근데 왜 항상 그런 상태여야만 한다고 믿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눈치 안볼라고, 안 떨라고, 안 수줍어 보일라고......
사실 좀 수줍고 예민한 사람들을 만나면, 맘이 놓이고 편안하고 귀엽게 보이기도 하잖아요. 그렇기도 한건데.

이제야 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남들 하는 거 보면서 적당히 무난해보일려고 하고, 적당히 괜찮아보이게 농담도 하고, 털털한 척 하고, 마음은 안 열면서 관계맺는 척 하고... 당근 얼마 안 지나 뽀록나고...ㅋㅋㅋ 내가 날 싫어하고 숨기려 하니까 사람들 속에서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고...
그냥 모든 게 적당히 괜찮아보일려고 연기하는 것 같았어요...
이젠 안 괜찮아도 좋으니까 그냥 나이고 싶은데... 그 포장하느라 몸 곳곳에 붙어있는 군더더기들, 아무것도 모르겠는, 어쩔줄 모르겠는 자신이 참 견디기 힘드네요. 자꾸만 이런 날 벗어나서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 몸짓은 반자동적이고... 암흑속 같기도 해요..ㅋㅋㅋ 그치만 미영님 댓글에 큰 위로를 받는다는 거, 아시죠?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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