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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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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리 (221.♡.118.252) 댓글 6건 조회 13,462회 작성일 06-05-26 09:19

본문

<김성희 기자의 뒤적뒤적>

씨앗은 힘이 세다 / 강분석 지음, 푸르메


직장인들이 흔히 그러죠. 퇴직하면 시골에서 농사나 짓겠다고요.
그런데 일찍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 선배를 만났더니 농사,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꿈 깨라며 고개를 젓더군요.
언론에서나 보는 여유롭고, 목가적인 농촌풍경은 농촌의 실상, 농부의 땀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 일종의 귀농일기입니다.
지은이는 독일어를 전공해 잡지와 홍보 일을 20년 가까이 한 서울내기입니다.
마흔 살이 되면 농부가 되겠노라고 노래를 부르던 남편을 따라 아무 연고도 없는 충청도 시골에
덜컥 집을 짓고 농투성이가 되었습니다. 1997년 일입니다.


400평 밭에 들깨와 두릅 농사로 시작한 첫해 수확은 고작 들기름 몇 병이었답니다.
그러구러 9년,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겠습니까.


생전 처음 내 손으로 심은 콩알이 제 몸무게의 몇백 배나 되는 흙을 뚫고 초록색 새싹으로
올라왔던 날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존재로 보면 저나 나나 똑같다는 것을 일러주는 듯,
작은 싹은 당당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책 제목이 비롯된 구절입니다.


생전 처음 벼를 베던 날, 나도 모르게 '아이구, 내 새끼!'하며 벼를 가슴에 부둥켜안았던 순간을,
그 마음을 잊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당부한다.
이 대목은 어떻습니까?
매끼 밥을 먹으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밥상에까지 오르게 되었는지를 생각한 적이 거의 없던 이가,
두부나 콩국수를 먹으며 맛타령이나 하던 이가 씨 뿌리고, 땡볕에서 바랭이며 피를 뽑느라 땀 흘리고 나서
얻은 깨달음입니다.

joins.jpg

그렇다고 농촌 생활이 늘 이처럼 충만하고 기껍기만 한 것은 아니었답니다.
같은 귀농자에게 묵정밭을 빌려 고구마를 키웠는데 고생 끝에 제대로 된 밭을 일궈놓으니 진입로를 막더랍니다.
수확은 둘째치고'돈 잃고 사람도 잃는구나'하는 생각에 잎이 무성한 고구마 밭을 보며 서럽게 울기도 했답니다.
멧돼지며 고라니가 수확을 앞둔 복숭아며 벼를 파헤쳐 낙담한 일, 이웃 논의 제초제가 날아들어
무농약으로 공들인 모가 몸살을 앓은 기억, 남들 논과 달리 중년의 성긴 머리처럼 되어버린 논을 보며
애태우던 아픔도 잔잔히 담겼습니다.


주말을 보내고 출근한 월요일, 눈에 띈 책을 단번에 읽었습니다.
시큰한가 하면 뭉클하고, 부럽기도 하고 감탄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진정이 담긴 글은 힘이 세다'라고.


진입로가 없는 맹지는 구입하지 마라, 마을 주민은 사돈같이 대하라 등 '귀농 십계명'같은 글은 소중한 덤입니다.


김성희 기자
강 분석 님 홈 http://angsung.com/
비내리던 어느 새벽 , 우산 들고 밭에 올라 새끼손가락만큼 올라온 콩대 팡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예쁘고 장하다는 느낌을 넘어 감동이 밀려왔다. 빗속에 엎드려 비닐 아래로 기어 들어간 콩대를 구멍 밖으로 꺼내놓았다. 초록색 콩대를 보며 콩알을 넣을 때의 조바심과 안타까움을 떠올리며 씨앗은 정말로 힘이 세구나, 중얼거렸다. 농사를 짓는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조금 도와주는 것일 뿐. (앙성 님 글 중)
----------------------------
어제, 서점에서 앙성 님의 책을 사서 돌아오는데 아주 오래된 기쁨들이 혈관을 타고 흘러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온 몸으로 살고 느끼고 노동하는 분석님의 글 들은 저에게 어떤 큰 가르침보다 명료한 지침입니다.

댓글목록

옆에머물기님의 댓글

옆에머물기 아이피 (211.♡.246.8) 작성일

좋은책 같아서 알라딘문고 보관함에 살포시 등록했어요^^

anan님의 댓글

anan 아이피 (211.♡.95.181) 작성일

'앙성댁 일기'라고,
한겨레신문에 연재되었더랬는데,
농촌에서 나고 자란 저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조금 호들갑이 심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진입로가 없는 맹지는 구입하지 마라'는 충고도 좀 그래요.
그런 땅을 사서 오히려 쓸모있게 만들어야 진짜 농투산이가 되는건데....

마을 주민은 사돈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처럼 섬기는 마음으로...^^

정리님의 댓글

정리 아이피 (221.♡.118.252) 작성일

농촌에서 나고 자란 분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앙성 님의 글에서 저는 진짜 농부가 되고픈 진정이 느껴지던 걸요...^^

스승님보다 더 어려운 존재가 저는 사돈이 아닐까..생각이 들더군요.
왜냐하면 스승은 나...와의 관계로 끝나는 일이지만
사돈 님은 자식과의 불편함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 싶어서요..
자식은 나보다 더 한 나...이라는 생각에..^^

anan님의 댓글

anan 아이피 (211.♡.95.181) 작성일

지식이든 교양이든, 도시에서 주렁주렁 걸치고 간 것 다 벗어버리고,
손 마주잡고서 함께 뒹굴어도 모자랄 판에 사돈처럼 어렵게 여기다니요?

제 말은, 초등학교도 못나온 것 같아보이는 시골 어르신들을
진정으로 스승으로 여기며 겸허히 하나부터 배우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도시적인 사고로 무슨 비지니스 하듯 정보와 지식을 취합하여 자로 재고 모로 재며
농촌살이를 계획하는 것 자체가 바로 자연 그대로인 주민들과의 거리감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을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한 것입니다.

지식으로 판단하고 돈으로 사들이는, 알토란 같은 땅보다는
버려진 모래땅 황무지를 감사히 여기며, 그 박토를 단 한뼘만이라도
나의 땀과 노력으로 옥토로 만들어 보겠다는 순직한 마음....
무조건적인 흙 섬김의 정신....

이런 것이 백 가지 정보와 지식보다 앞서는
귀농의 지혜가 아닐까 싶어 참견을 했습니다.

정리님의 댓글

정리 아이피 (221.♡.118.252) 작성일

^^

아줌마님의 댓글

아줌마 아이피 (59.♡.149.162) 작성일

정리님 감사드립니다. 정말 좋은 사이트이네요. 즐겨찾기에 다소곳이 모셔두었답니다. 저도 애들 크면 시골로
들어갈 꿈을 가지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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