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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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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자 (211.♡.131.51) 댓글 1건 조회 5,552회 작성일 10-02-1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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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동안거에 들어가는 겨울입니다.
숲의 나무들도 나뭇잎을 다 버리고 홀가분한 모습으로 안거에 들었습니다.
나무마다 선 채로 고요히 참선에 들어 숲은 적막합니다.
저 나무들도 햇빛과 그늘, 음과 양, 사랑과 미움, 동과 정, 자기와 타자의 문제로
번뇌와 갈등이 많았을 겁니다.
선정에 든 나무들 곁에서 나는 사랑의 화두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그의 어디에 이르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는 내 가슴을 안고 나의 어디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내가 이르고자 하는 곳은 그의 전부일까요, 한 순간일까요.
부드러운 살과 따뜻한 영토를 지나 내가 도달한 곳은 그의 어디 일까요.
내가 머문 곳은 그의 심장 가장 깊은 곳일까요, 섬 기슭일까요.
그가 도착한 곳은 내 생의 한복판일까요, 아슬한 벼랑일까요.
내가 이른 곳이 그가 아니라 나인 것은 아닐까요.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이 그이면서 나인 건 아닐까요.
나를 확인하고 싶어서 그를 사랑하는 건 아닐까요.

오늘도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랑의 갯벌에 서서
밀려오고 밀려가는 사랑의 물결에 대해 생각합니다.
내일 다시 사랑으로 끌려가게 될 내 몸과 마음을 바라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멈추지 않은 이 물결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삶의 화두입니다.
사랑은 우리 생을 행복으로 데리고 가는 나룻배이면서 고통으로 덮어버리는 해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너무 큰 사랑만을 말씀하시고 부처는 사랑을 없는 것으로 여기라 하십니다.
보통 사람인 우리에게 사랑은 손에 쥐고 있는 아프고 구체적인 물건인데 말입니다.
사랑은 크나큰 희생이고 가없는 자비이지만
우리 같은 속인들에게는 하루 세끼 밥처럼 나날의 현실입니다.
사랑은 수신(修身)의 종교이지만 우리에게는 안신(安身)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사랑은 '돈오점수'의 험난한 길입니다.

그와의 구체적인 사랑을 통해 행복에 이르기도 하고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그에게 이르는 길은 정말 수신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몸을 지나 그의 마음과 함께 그에게 이르는 길이 깨달음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내가 누구인지 생의 궁극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그런데 스님들은 겨우내 중생의 번뇌 심지인 사랑을 화두로 삼지 않고
늘 그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는 것만 붙들고 계십니다.

다람쥐도 개구리도 벌레들도 다 안거에 들어간 숲에서
나무들은 말없이 서 있고 산은 돌아앉아 있습니다.

시퍼런 하늘도 말이 없는데
나는 오늘도 묻고 있습니다..

그의 몸, 그의 가슴을 지나 내가 이르고자 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동안거 / 도종환의 산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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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ahffk님의 댓글

ahffk 아이피 (112.♡.175.97) 작성일

올 동안거 한철 끝나는 날이 몇칠남지 않았습니다.
선방드신 스님들 정말  부모미생전 한 물건 타파하여
길없는 허공길을 시원시원 걸어들 가셨어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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