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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존재의 원리서) 이해의 길 - 2 (8절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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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11.♡.227.16) 댓글 0건 조회 12,382회 작성일 06-08-23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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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용량의 한계로 한꺼번에 안올려지고 짤리는 군요. ㅠㅜ
8절 부터 아래에 옮깁니다.


8. 도덕경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적 존재성]을 이야기한 것이지 이를 [추구하는 과정] [현실적 존재]를 정리한 책은 아니다.


흔히 도덕경을 접하며 하는 실수중의 하나가 서에 정리되어 있는 [이상적 존재성]에 극단적으로 매몰되어서 그러한 존재성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적 중요성]을 간과하고 [현실적인 존재성]을 등한시 한 체 그 [이상적 존재성]과 일치하기 위해서만 매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완변주의’가 만들어낸 그릇된 관점이다.

가령 군사훈련의 ‘표본동작’이 군사지침서에 그림 그려져 있지만, 그 ‘완전히’ 정확한 동작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비슷한 동작을 취한 상태로 ‘팔이 좀 올라가거나’ ‘정지상태에서 살이 떨리거나’ ‘코가 벌렁거리거나’ 하면서 각 개인에 맞게, ‘표현’될 뿐이다.


도덕경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리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다만 그 ‘표준지침’을 참고 해서 그에 맞게 우리의 현실적 존재성을 적용시킬 수 있을 뿐이지, 병적으로 그에 집착해서 문구 하나하나에 매달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 매달리는 것 자체가 잘 못이다.


일예로 도덕경 3장에 표현된 '불상현' 은 '현을 증가시키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노자가 스스로 '상현'하지 않았다면 도덕경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또한 노자의 '비움'과 '무지무욕'적인 표현 역시 노자 스스로가 완전히 비우고 무지무욕했다면?

여기에 묘한 딜레마가 형성된다. 만약 ‘불상현’과 ‘비움’ ‘무지무욕’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노자가 쓴 책 자체가 이율배반적이고 위선적인 책이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본인은 다른 이들에게 불상현 하라고 하고 비우라고 했으면서 책을 썼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표현(불상현, 비움, 무지무욕) 자체는 단지 ‘이상성’을 말했을 뿐, 자신이 표현한 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한계와 제약이 있음을 ‘도덕경’을 쓰는 행위 자체로 노자는 천명했다. (이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현실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것)


그러나 문제는 한국형 기독교인들이 예수보다 더 처절히 하나님의 나라(이상향)에만 매달려서 그 현실성은 간과하고 늘 교회에만 처박혀서 ‘천국의 나라를 주옵소서’하고 기도하는 그 모습과 똑같이, (그것은 노자의 가르침이 아닐 진데) 도덕경을 접하는 이들은 그 ‘이상성’에만 매달리고 집착해서 그에 정신이 매몰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들은 주로 [모든 것이 세상의 순리인데 마음을 비우고 하나되자] 정도 수준의 생각들이 도덕경의 진수인줄 믿어 의심치 않는데,


이렇다 보니 이들은 ‘밥’의 중요성을 잊고 있고, ‘다른 사람들의 밥’에 더 더욱 관심이 없는 것은 필연이다. (특이하게도 이런 이들일 수록 끼니 걱정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

이들에게는 사회적인 부정과 부조리와 환경파괴로 인한 재앙과 이로 인한 ‘후손의 미래 없음’도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이해의 관점’에서는 이에 대한 고민 자체가 생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어지지도 않는 법이다.


묘한 것은 그러한 이해를 갖춘 이들로 세상의 불평등과 부정은 더욱 가중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엄청난 성장과 흡입력으로 인해서 시민사회활동에 참여 할 수 있는 동력이 대부분의 한국형 기독교회 내에서 묻혀서 사장되는 것처럼,

불평등과 부정을 막아낼 수 있는 시민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동력의 그 나머지 부분을 ‘노장’ ‘불교’ 계통에서 빨아 흡수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자본’ ‘권력’자들의 엄청난 힘에 순수로 나서는 이들이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없는 것이고, 매번 피범벅이 되는 것이다. 결국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은 다시 악순환 된다.


부조리와 맞서다가 그 피범벅이 되어 신음하고 있는 이들에게 ‘천국을 외치고 도를 외치는 이들’이 오히려 점쟎은 훈계를 하고 있으니 상황이 오죽하랴!


우리는 도덕경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적 존재성의 표현이 말 그대로 '하늘나라에만 존재하는 이데아'이고 다만 '지향'일 뿐 그것은 '현실'과 거리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더군다나 도덕경적 '무상현'과 '무지무욕'이 '허무'적 관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그것임을 알면 결국 우리는 문자가 주는 한계를 바로 인식하여 실존적으로 받아들이며 우리의 삶에 올바로 현실화 할 수 있는 것이다.


‘불상현’ 하려면 우선 정확히 ‘상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상현’의 의미조차를 모르는 이가 ‘불상현’ 한다고 불상현 되겠는가?

제대로 채워보지도 않은 이가 비우는 것은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아가 세워져있지 않은 이가 자아를 무너트릴 수 있는가?


우리는 도덕경의 이상적 존재원리에 무턱대고 맞춰야할 것이 아니다. 도덕경의 이상적 존재원리 속에는 ‘그를 위한 과정적 노력’과 ‘현실 적용’의 내용이 아예 정리되어 있지 않음을 인식하고 각자의 실존에 맞춰서 이를 실재화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것이 세상의 순리인데 마음을 비우고 하나되자]는 식의 이해는


[모든 것이 세상의 순리여서 이렇게 돌아가기는 하겠지만은... 뒤틀린 세상이 자연상태에서 한참을 왜곡되어 왔고, 인위적인간의 이성이 가한 폐해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니, 이 튀틀림이 자연 본성적 궤도에 오를 때 까지는 투장하자]라는 식으로 위기의 세계관계에 현실적, 실존적으로 응용되거나,


[이 아픈 세상의 순리에 나의 마음을 던져서 같이 하나되자]는 식으로 완벽한 ‘무위’를 실현하는 관점으로 적용될 수도 있다.


군사지침서를 작성했을 노자를 한번 생각해 보라. 노자는 창검술 교본을 정리하면서 과연 창검술 16개의 기본동작을 표준 체형을 가진 군사의 16개 동작 그림으로 간단히 정리할 것인지... 아니면 ‘뚱뚱한 사람 - 삐쩍 마른 사람’ ‘키 큰사람 - 키 작은 사람’이 창검을 들게 될 때 그 ‘상대적인 무게감/거리감’으로 인해서 창검이 들리는 오차 각도까지를 포함한 그야 말로 ‘모든 가능한 변수’를 적용해서 수백만 장의 상세한 그림과 그에 따른 설명과 주석과 보조주석까지를 곁들인 책을 만들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물론 그의 머릿속에는 그 군사가 ‘극히 내성적이거나’ ‘무좀이 걸렸거나’ ‘흐린 날씨’에 창검술을 하게 될 때 까지의 동작에 대한 지침까지 고려된다. 그 몇 일 전에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인의 서찰’을 받은 병사의 동작을 위해서는 보다 섬세한 배려가 필요함을 직감한다.


한참을 고민 끝에 노자는 세심한 부분까지의 각론까지 정리를 하려면 자신의 35대손 까지 쉴세 없이 교본을 집필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현실적’으로 16개의 기본 동작만 간단하게 정리할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가 교본을 작성하면서 한 가지 큰 잘못을 했음을 그는 그 교본을 쓰고 난 후에 하늘나라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발견한다.


그 교본을 보고 동작을 연마하는 병사들이 창검술 훈련은 하지 않고, 교본속의 그림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총의 각도와 높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몸을 늘이거나 줄이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가???


노자는 통탄한다.

‘아~ 내가 왜? 저 교본의 끝에 그림속의 군사가 취하는 동작은 이상적인 기준일 뿐이고, 그냥 각자의 신체와 현실에 맞춰서 동작을 하면 됨’이라는 간단한 주석을 하나를 달아주지 않았는가?’하고...


노자도 인간였는지라 자신이 죽은 뒤에 발생할 문제까지를 다 정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물론 앞서 지적했듯이 그는 ‘무상현’ ‘무지무욕’하라고 했으면서도, 이율배반적이게도 도덕경을 썼던 (상현 지욕)행위를 통해서 그 무상현과 무지무욕이 완전한 이상성의 실현은 아니라는 것이라는 ‘형태적’인 주석을 달아 놓기는 했지만...)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많은 이들이 도덕경의 몇몇의 개념과 몇몇의 논리의 이상성에만 사로잡히는 이유로 사람들은 제대로 ‘무위’할 수 없었던 것이고, 스스로 ‘무위’ 했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격리된 고요함’ ‘폐쇄된 평온’ 정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 아닐까?




결론


이 글은 주로 ‘극단적인상대주의’와 ‘허무주의’적 사고를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 이유가 노장사상에 관심 있는 이들의 이해가 주로 ‘불교도적 허무주의(자아해체)’와 맞닿아 있음을 발견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사회와 생명에 대한 무관심과 무실천’을 당연시 여기는 풍토를 유행시켰다고 판단되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무관심과 무실천은 단순히 노장사상에 관심 있는 이들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경향이 노장사상 속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역사상 900회가 넘는 외침을 통해서 약한 민족에게 지워진 헤어날 수 없는 시련에 몸부림 치면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노력으로서 장독위에 물을 떠 놓고 ‘기복’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핏속에 그러한 [괴리된 현실성]은 삼투되어 왔던 관계로 아직도 관념과 감성 속에서만 안위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한국인의 성향이 현재의 한국의 ‘종교’ ‘문화’ ‘사회’에 그대로 침투 되어 있다. 그것은 노장사장이던, 기독교교리건, 정치사상이건 가리지 않고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던 간에 깊이 침투되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에 의해 유도되는 인간과 생명에대한 ‘무관심’과 ‘무실천’에 의해서 ‘사회적 약자-없는자’의 삶에 더욱 무거운 짐이 올려지고, 결과적으로 수구기득권세력의 지배하에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구조화된 현재의 사회가 영속된다는 것이다. 자연과 생명의 파괴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다른 이들의 삶에는 아랑곳 않고 ‘무위’하는 것을 과연 ‘무위’라 할 수 있는가!!! ‘분별’하는 노력을 져버리다 보니 ‘무위’와 ‘무책임’ 이 구분되지 않는 것인가?


인간의 이성기능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은 욕망작용에 충실한 원시뇌를 보호하는 껍질역할을 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분별을 통해서 우리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의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만들어져 있는 것임을 알아 ‘잘’ 사용해야할 것이다.


무턱댄 회의와 부정 속에 진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회의와 수렴’ ‘부정과 긍정’ ‘무와 유’의 절절한 ‘균형’속에 나와 세계가 ‘현존’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는 ‘중용’을 말하는 것이 아닌 ‘무위’를 일컬음이다.


‘무위’ - ‘도’는 결코 생을 부정하는 회의론과 허무주의, 무실천 무책임주의와 물질을 부정하는 관념론에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의 원리’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밥’이 곧 ‘무위’이다.





http://howcan.or.kr

1234yz@hanmail.net


* 분석의 한계 *


본인 자신이 야한 싸이트 뒤지다가 큰 깨달음을 얻어서??? 스스로 선사로 칭하고 다니면서 헛글 쓰는데 정력을 낭비하는 판이라 집중의 한계가 있었고, 아는 한자라고는 이름 석자 빼고는 없는 이유로 몇몇 번역된 서를 참조하는 것에 대한 ‘굴절’현상이 있었을 것이기에 분석의 한계가 있을 것임을 토로한다.


특히나 앞서 밝혔듯이 이러한 도덕경 분석은 나름의 ‘가치’ ‘경험’ ‘인지방식’ ‘사고체계’ ‘각종 자아방어기재’ 및 ‘욕구 욕망구조’와 나름의 ‘실존성’이 지시하는 방식대로 이뤄져 있을 것임을 보는 이들은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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