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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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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vira (110.♡.248.4) 댓글 6건 조회 6,219회 작성일 12-02-0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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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오랜 시간을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지도했었다. 입시에서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별것이 없어 몇 개의 기초적인 조형원리들을 반복하여 이런저런 방법으로 알려주고 이해시키며 숙달시키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요즘은 약간의 개성 있는 발상이나 아이디어가 통용되긴 하지만, 어쨌든 예술적인 그 무엇이 아닌 객관성을 요하는 말 그대로 입시 그림인 것이다. 아이들이란 묘한 데가 있어서, 적절한 조언이나 지적들을 따르려하지 않고 그들의 수준에서 자기식대로 받아들이거나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거기다가 그림을 시작한지 한두 달만 지나면 자기식의 좋은 것에 대한 기준이 생겨(어떻게 이런 想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자기의 멀쩡한 그림을 나쁜 것으로 여기거나, 테크닉 위주의 그림을 훌륭한 것으로 여겨 그것을 흉내 내고 어떠한 충고도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소수의 아이들만이 조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빠른 진보를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참 조심스러운 데가 있는 것이 입시 지도였다.
가령, 뎃상(dessin)의 예를 들자면, 부분에 집착하여 전체를 못 보는 아이에겐 큰 명암의 흐름이나 덩어리, 공간감을 강조하고, 분위기만 그럴듯하고 디테일이 부족한 아이에겐 부분 묘사를 강조한다. 연필을 눕혀서 사용하는 아이에게는 세우기를 요구하고, 어떤 아이에게는 문지르거나 지우기를 요구하는데, 이는 학생들의 체질이나 상황에 맞추어 서로 상반되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수채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두운 곳부터 먼저 채색하기를 요구하기도, 또는 밝은 곳부터 먼저 채색하기를 요구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에게는 화려한 색감을 요구하고 어떤 아이에게는 차분한 중간색을 요구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선생은 오랜 경험을 통해 그림 전체를 한눈에 통제하고 있기에 전체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나, 아이들은 부분에 매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것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선생은 시범을 보일 때에도 선 하나, 터치 하나 하나를 완성된 전체를 염두에 두고 화면을 이끌어 나간다. 그래서 아이들이 볼 때, 불필요한 선, 무의미한 색깔들이 나중에 완벽하게 서로 작용한다. 아직 전체를 보는 힘과 경험이 없는 까닭에 그들은 언제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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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문득 아잔차 스님의 법문이 생각난다. “... 마치 내가 잘 아는 길을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과 흡사하지. 그들에게는 그 길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야. 어떤 이가 막 오른쪽 도랑에 빠지려고 하면 나는 그에게 왼쪽으로 가라고 소리치지. 마찬가지로, 왼쪽 도랑에 빠질듯하면 오른쪽으로 가라고 소리치네. 나의 가르침은 거기까지야. 그대가 어떤 극단에 빠져있던지, 무엇에 집착하고 있던지 나는 그것을 놓아버리라고 말할 뿐이다.”(‘고요한 숲속의 연못’중 발췌 인용)
오랜 시간이 흘러 입시를 코앞에 두고 이런저런 것들을 지적하면, 문득 반문한다. “왜 이제 그것을 이야기해주세요?”라고. “야, 이놈아, 항상 이야기해왔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이야기들을 수백 번이고 반복하여.”
III.
눈 밝은 스승들의 망치질은 계속되고 있으나, 하도 딱딱한 껍질에 싸여 나는 알지 못한다. 어느 때 질문할 것이다. “왜 이제 그것을 이야기해주세요?”
 

댓글목록

꽃으로님의 댓글

꽃으로 아이피 (183.♡.212.36) 작성일

선생님도 그러셨죠..
누군가에게는 화를 표출하라고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안으로는 허용하되 행동으로 표출되는걸
닫으라고 하신다고..
전체를 보는 힘과 경험이 있는 분들이 하실 수 있는거네요.

나는 어느쪽일까?를 생각해보니.. 화를 표출해야하는 쪽일 것 같아서..
요즘 참지 않고 마구마구 터트리고 있는 중이죠^^

잘 읽었습니다.~

서정만님의 댓글

서정만 아이피 (221.♡.67.204) 작성일

왜 이제 그것을 이야기 해주셨어요?란 말에 재미있는 기억이 떠올랐어요..

아빠:정만아 양말을 창문가에 걸어두면 산타할아버지가 와서 착한일많이하면 선물넣고간단다..
정만:(음...나쁜일도좀했는데 그래도 선물주겠지? )양말을 걸어둠..

실제로 양말에 선물이 들어있었음을 보고 '난 산타할아버지가 있네'생각했다..

2년후에..

아빠:이번엔 머가 갔고싶냐?이번엔 배게밑에 선물을 넣어둘꺼야..
정만:매번 내가 원하던선물은 아니니 잘모르겠다..
정만:진짜 근데 산타할아버지가 있나?난 한번도 본적없는데?의심된다..
아빠:너가 잘때 몰래 선물주고가니깐 너가 모르지 있다..산타 있다..
정만:알았다..(근데 머리가 큰다음부터 의심이 많아진 정만-.-)

새벽4시경...난 안자고 산타의 존재를 확인하려했다..

헉..아버지가 내눈치를 보며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설마..설마..했는데..
베게 밑으로 무엇을 집어넣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아버지가 방으로 돌아간걸확인후...

(혼자말을함..)
젠장 산타는 무슨!! 아빠가 선물주고 간거네..칫
(그래도 선물을 확인함..그당시 레고가 무척가지고싶었음)
선물을 열어보니 초콜릿,칸쵸기타등등..
아빠도 오늘 무척급했나보다...선물이 맘에 안드네..ㅡ.ㅡ;;

노을비님의 댓글

노을비 아이피 (112.♡.211.17) 작성일

아니 왜 이런 글을 이제야 올려주세요?
ㅎㅎㅎ;;;;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바다海님의 댓글

바다海 아이피 (182.♡.253.136) 작성일

이제 라도 알게 되었으니
저도
저를 지켜 봐야겠어요ㅡ

전 제가 뭘 가르치러 왔는지도
까먹었어요

현지어에 밀려서

vira님의 댓글

vira 아이피 (110.♡.248.100) 작성일

도덕경 모임의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서정만님,노을비와  바다해님
피어나소서. 고맙습니다.

루시오님의 댓글

루시오 아이피 (14.♡.4.152) 작성일

3번이 많이 와닿네요ㅎㅎㅎㅎ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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