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업)가 생기는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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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초심 (211.♡.219.66) 댓글 1건 조회 5,856회 작성일 09-08-22 14:15본문
번뇌(업)가 생기는 원인.
예전에 제가 피아노의 비유로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피아노를 가지고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피아노를 가지고 연주를 할 때 나오는 모든 소리(도레미파솔라시도)는 다만 피아노 소리일 뿐입니다.
중생이 분별망상을 한다는 것은 '도'가 볼 때에는 분명히 '레미파솔라시'가 자기 밖에 따로 존재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레미파솔라시'역시 각각이 자신외에 별도의 소리가 있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있고 너가 있고 온갖 사물의 경계가 따로 있는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피아노를 가지고 동요인 ‘학교종’을 연주한다고 합시다.
기본적인 음계는 솔솔라라 솔솔미~ 솔솔 미미레~입니다.
그런데 '도'의 입장에서 보니 '솔'은 6번 등장을 하고 '미'는 3번, '라'도 2번을 등장을 하여 출세(?)를 하는데 자신(도)은 전혀 무의미하고 도태된 존재로 여깁니다. 그래서 다른 소리들에 대하여 질투를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면서 내적으로는 괴로움에 몸부림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기원을 합니다. 저도 출세를 하게 해 달라고...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학교종이 끝나는 부분의 마지막에 '도'를 등장시킵니다.(솔미레미도~)
‘도’는 부처님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 것에 대하여 환희심을 느낍니다. 그래서 감사의 기도를 하지요. 그러다가 또 다른 노래의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자신이 등장하지 않으면 또다시 갈등을 느끼면서 “아~ 나의 기도가 부족하여 부처님의 가피가 없는가? 나의 업장이 얼마나 두터운가....등등” 그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갑니다...
조금 더 우리의 생활과 비유를 들어볼까요?
‘도’는 그렇게 번뇌속에서 자신의 수행의 부족을 탓하며 이제 나는 늦었으니 “내 자식이라도 잘되어야지”하면서 자신의 자식(낮은 도)이 ‘레’나 ‘미’.....의 자식들 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서 더 출세하기를 바라면서 부처님께 기원을 하지요. 자신뿐만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높은 도)조차도 그렇게 손자(낮은 도)가 잘되기를 기원 합니다.
이렇게 분별심(망심)으로 좋은 일 싫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 '번뇌의 삶'이며 '業'입니다.
‘망심’으로 모든 것을 고정화하여 '있다有' '없다無'고 하는 양변에 치우친 것이 '業'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음계(도레미파솔라시도)들을 볼 때에 정해진 '운명과 업'이 있는 것인가요?
'도레미파솔라시도'가 각자 자신의 더러워진 '업'을 열심히 닦아야 청정한 자신의 본래 소리를 찾아서 ‘근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인가요?
여기에 악업이 어디에 있고 무명이 어디에 있어서 이것을 닦는다고 하는 것인가요?
원래 악업이 있고 무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에게는 오직 분별심(망심)이 있을 뿐입니다.
아래에 묘정님이 쓰신 글에서 [업장 소멸이란 말 역시 결국 스스로 선행과 철저한 수행으로 자기의 어두운 습을 바로 보고 잘못된 나쁜 습관을 스스로 고쳐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선행으로 복을 짓고 수행으로 악습을 소멸 하여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하셨는데, 다른 분은 그렇다고 넘어가드라고 이 곳 법사회 카페의 스텝이신 묘정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것에 대하여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우리는 이미 헤아릴 수 없는 무수 겁 전에서부터 생사윤회를 거듭하면서 쌓아 온 '업'이 과연 얼마나 많을까요??? 이것을 님이 말씀하신 수행(수행으로 악습을 소멸 하여 지혜를 터득하는 것)으로서 해결하려면 또한 얼마나 많은 세월을 생사를 거듭하면서 수행을 해야할까요???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 온 세월 보다는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도 분별심으로 여전히 '업'을 쌓고 있으니 이것까지도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님이 말씀하신 것은 법화경을 수행하시면서도 이승(성문승, 연각승)의 수행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법화경에서 분명히 부처님께서 “일승에서 방편으로 삼승을 열어보였다.”라고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까?
법화경(진실의 실상)은 오직“일불승”이 있을 뿐입니다. 바로 삼라만상 모든 것이 “부처”뿐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진실은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별개로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의 소리(피아노)'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 미국인...너와 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것!-마음, 불성'이 있을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를 보면 나무가 '이것!-마음, 불성'이고 구름을 보면 구름이 '이것!-마음, 불성'이며 온 세상 모든 것이 다만 '이것!-마음, 불성'뿐이지 다른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르므로 법화행자인 우리들이 수행을 해야 할 것은, 바로 근원(피아노)을 깨달아 확인하여 본래 아무 일 없이 무탈하며, 또한 모든 것이 ‘나’ 아님이 없으며(아 즉 우주, 우주 즉 아) 삼라만상 모든 것이 다만 “이것-부처”뿐이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아 아는 것(즉신성불)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법화경으로 우리 중생들에게 선물하신 “일대사 인연”의 목적인 것입니다.
비록 만나기 어려운 법화경을 만나서 신행을 하더라도 자칫 잘못하면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위반하는 우를 범하기 쉽습니다.
법화경은 태양이 떠오르면 일시에 어둠을 멸하듯이, 점차점차 닦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즉시에 모든 번뇌를 멸하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공유님의 댓글
공유 아이피 (110.♡.85.230) 작성일
님께서 분별심을 없애면 그만이라고 하시지만, 그게 그리 호락 호락한 문제가 아닙니다.
고통(번뇌,업)의 가장 근원적인 요인은 육체입니다.
몸을 뜨거운 쇳물로 지지고 눈알을 칼로 쑤셔도 분별심만 버리면 다 해결됩니까?
뜨거운 쇳물로 피부를 지질 때 아픈 느낌을 싫어하는 그 분별심이 쉽게 버려집니까?
땡볕에 1분만 돌아다녀도 몸이 땀으로 끈적거리는데, 하루종일 막노동을 하며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위의 글이 도움이 될까요?
임종을 앞두고 육체의 고통과 삶의 허망함이 느껴질 때 분별심 버리자고 해서 버려질까요?
문제는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육체만 안락하면 마음은 저절로 안락해질 수 있으나
마음만 안락하면 육체가 곧 힘들어질 때 마음도 심란해지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마음보다는 육체의 힘이 훨씬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생각으로 술을 마시는 것과 실제로 술을 마시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