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바람이 부드러워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그냥 (59.♡.87.246) 댓글 1건 조회 8,047회 작성일 07-02-27 15:57

본문

바람이 부드럽습니다. 밟히는 땅도 제법 물컹거리고 거무죽죽한 나뭇가지 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밑으로 초록기가 보입니다.

간만에 넥타이를 메고 출근하였으나 보아주는 이는 아내뿐입니다.

딸아이는 신입생 OT에 가고 없고 아들은 늘 아침잠이 깊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전해오는 딸아이 음성이 정구공처럼 통통 튀어 오릅니다.

아들내미는 필요할 때 간단하게 의사전달만 합니다.


강아지 테리 마린은 전생에 선업을 지어 좋은 주인을 만나 아침에 2키로 가량 산보를 나와 함께합니다. 요즘 춘정이 올랐는지 테리는 집에 바로 돌아오려 않습니다.

늘 코를 땅에 쳐 박고 다닙니다. 암컷 오줌을 발견하면 돌아버립니다.

마린은 공을 좋아합니다. 일전 문방구에서 산 고무공을 신주단지 모시듯 가지고 놉니다.

이넘들의 눈을 보면 언제나 호기심에 사랑에 반짝 거립니다.

행복해 하고 있다는 것을 목덜미를 건지를 때 그러렁 소리로 감지합니다.


유기견 미니는 날로 안정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배주위에 털이 다빠져 발갛던 아이였습니다.

이제 하얀 솜털 같은 털이 자라 내 손가락에 아늑한 보드라움을 선사합니다.

눈 주위 털이 웃자라 눈이 보이지 않아 조금 전 손 떨리며 잘라 주었습니다.

눈이 수정처럼 빛이 납니다.


나는 등록금 걱정을 당연히 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제 나름대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내 걱정이 아이들 것보다 더 커야 내가 마음이 놓입니다.

아이들의 걱정을 들어내는 작업을 하면서 혹여 너무 아이들을 제멋대로 키우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아내와 의논을 합니다.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다 지팔자다'

너무 간섭을 하지 아니하고 키운 아이들입니다.


물어보았습니다 아들에게...

'너 놀만큼 놀았제'

단답형입니다 '맞아요'

'너 이제 좋은 세월이 다 지나가고 있는 줄 아나'

주삣거립니다. '알고 있어요'

그정도로 끝입니다. 지가 알아서 해야지요.


나태함과 무료함을 흔들어 깨우는 이는 아내입니다.

아내는 늘 분주합니다. 규칙적이며 자기관리의 달인입니다.

'그리 게을러 터져가지고.. 존 학교 나와 가지고...'

하며 선문답을 나에게 하사하면 반사적으로 귀를 닫습니다.

그리곤 갑자기 손발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나의 감시카메라입니다.


나도 한마디 거듭니다 '이제까지 그런대로 묵고 살았던 게 기적이다 아이가'

아내도 수긍합니다.

이십여년을 그래그래 묵고 살아왔다는 사실에 저 혼자 경외감을 느낍니다.

내 아버지에게도 내 할아버지에게도 경외감을 표합니다.

무릇 살아있다는 것이 경외감의 밑바탕입니다.


늘 충만하고 구족된 삶을 나도 누려야 된다는 강박이 나에겐 예전부터 없었던 연유로

부족하고 모자란 현재의 삶에 대한 또 다른 강박증이 살아 나려고하나 이 또한 부질없는 것이라고 속으로 반야심경을 웅얼거립니다.

아들내미도 반야심경을 자주 념한다는 사실을 여자친구로부터 들었습니다.

신통하다는 생각을 아내와 나누었습니다.


먹고 자고 놀 생각을 넌지시 아내에게 권유합니다.

아내도 이제 살아온 삶의 질곡을 아는지라 고개를 돌리지 않습니다.

일이 없고 한가 할 때 아내와 바깥바람 세우는 것으로 조금전 무언의 합의를 봅니다.

2월초 일본 나들이의 후유증입니다.

걱정을 당겨서 하지 말고 놀 생각을 미리 당겨서 하는 것이 몸 마음에 좋습니다.


이미 의식주 탐진치에 휘둘리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 현생업장을 어찌 단번에 뛰어 넘을 수 있겠습니까.

먹고 자고 놀면서 잠시 잊어 버려야지요.

내일일은 내일이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관대함이 필요합니다.


즉흥적이고 감흥적이고 단세포적인 행위 일지라도

오늘 안으로 나에게 용서를 하고 어깨를 가볍게 두드립니다.

잘못하고 있음이 내 본모습이라는 대긍정 하나만으로도 봄은 이미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먹고 자고 놀면서 마음 편하게 사는 법이 이미 우리에게 있습디다.

댓글목록

권보님의 댓글

권보 아이피 (58.♡.168.130) 작성일

ㅎㅎㅎ 그냥님, 지난 주말 제게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 계십니다. 나도 이렇게 혼자서 나와지내고 싶다.고하셨는데..... 제가 오히려 그냥님께  제가 누리고 싶은 삶을 살고 계십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참 부럽구먼요, 뭐~!!

Total 6,238건 221 페이지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738 그냥 5796 07-03-02
737 봄에는 꽃이 피네 5410 07-03-01
736 김종건 5622 07-02-28
열람중 그냥 8048 07-02-27
734 나찾사 5438 07-02-27
733 햇살 5258 07-02-27
732 Nameless 5583 07-02-26
731 nameless... 5289 07-02-26
730 김윤 5491 07-02-26
729 그냥 5568 07-02-26
728 길손 8706 07-02-26
727 아리랑 5230 07-02-25
726 공자 11803 07-02-25
725 이동원 5553 07-02-25
724 자유 5586 07-02-23
723 1234 8473 07-02-23
722 호기심 6640 07-02-23
721 asdf 5680 07-02-22
720 asdf 5637 07-02-22
719 그냥 5832 07-02-22
718 공자 6661 07-02-22
717 아리랑 5450 07-02-22
716 5428 07-02-21
715 5518 07-02-23
714 gamnara 5601 07-02-19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11,009
어제
12,981
최대
18,354
전체
5,770,299

Copyright © 2006~2018 BE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