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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님에게 보내는 엽서 : 고타르도 터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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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3건 조회 4,264회 작성일 07-09-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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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를 지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장 베로나를 거쳐, 스위스의 인터라겐으로 가는
길목에서 도저히 시작과 끝이 없는 듯 보이는 고타르도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밤처럼 그 캄캄한 터널 안에서 또 여러 상념에 빠져들었습니다.
사람은 모든 걸 자기 중심성 속에서 살아가나 봅니다.
그런 세상이 조금씩 부수어지기 시작하고 어쩔줄 몰라하는게 혹시 우리네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중심으로 돌던 세상이 '나'를 내팽겨치는 듯한 느낌.
주인공에서 차츰 조연으로 물러나, 엑스트라 역의 지나가는 행인 '을' 역할을
맡을 무렵. 언젠가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 자리까지도 가겠지요.
그리고 마지막 남는 것은 필경 空(empty stage)한 법이겠지요.
어두운 고타르도 터널을 통과하면서 어릴 적 꿈, 청춘의 갈망, 장년의 무게 같은 걸
반추해 보았습니다.
내가 살아왔던 날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을 떠올려보며
나에게 남은 시간과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가를 저울질 했습니다.
그리고 아쉽지만 떠나 보내야 할 것이 아주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꿈, 환상, 추억에 대한 집착, 지식의 갈망 같은 것들이였습니다.
고타르도 터널 내부의 방향 표지판이 마지막 지점 1.5 km 라는 싸인을 보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일체유심조' 조차도 날려 보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아주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행복하게 견뎌
내는 과정이 마지막 성장통이자 잔존효과라 믿습니다.
고타르도 터널을 통과하자 모든 게 환해 졌습니다. 푸른 하늘, 설원의 알프스.
그림같은 호수가 펼쳐지고 흑고니, 백조가 떠있었습니다. 마치 요한 시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이 울려 퍼지는 듯 했지요.
항상 나를 들떠게 하며 선험적 전율을 안겨 주는 것이 그래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여행, 춤(dance), 詩, 강아지의 눈과 코, 나와 '어린왕자'가 똑같이 즐기는 황혼녁.......
꼭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J(제이)님의 댓글

J(제이) 아이피 (121.♡.37.54) 작성일

머리도 머리려니와 가슴이 살아있는 사람!!
어찌 이리 글을 잘 씁니까?

내 글은 친구들이 무슨 논문같아서 넘 딱딱
하다고, 자꾸 놀려대서 글쓰기를 쉬고 있는데,
님의 글은 가슴으로 읽히네요.

님의 글을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의 진정한
벗도, 연인도 없이 구름처럼 떠돌다 간
헷세가 생각나고, 이방인의 뫼르쏘도 생각나고,
햄릿도 생각나고, 조르바도 생각나고,
종잡을 수가 없네요!!

그렇군요!! 어린왕자의 모자그림도 생각나고......

언제, 뜨신밥님과 같이 한 번 뵈면 좋겠네요!!

김기태님도 한 번 같이 뵙고 싶구요!!
내가 김기태님을 좋아하는 것은 그가 가슴이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좋은 말, 그럴듯한 지혜의 말, 누군들 못하겟
습니까? ......

마음의 치유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가슴으로
살아버릇 하면서 많이 치유되었구요. 신화적인
환상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언제 마음의 여유가 날 때, 메일주소를 올려주세요!!
_()_

J(제이)님의 댓글

J(제이) 아이피 (121.♡.37.54) 작성일

구름은 모든 방황과 탐구, 욕구와 향수의 영원한 상징이다.
구름이 하늘과 땅 사이에 망설이고 동경하고 저항하면서
걸려있듯이, 인간의 영혼 또한 시간과 영원 사이에 망설이고,
동경하고, 저항하면서 떠돌고 있다.
                                                   
                                                              _해르만 헷세_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03.♡.106.18) 작성일

제이님. 반갑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성장과 진화를 다룬 소설인데 '어린 왕자'와 함께 읽는다면
 도판 무협지를 읽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마음의 치유는 대부분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고 어떤 지점에서 멈추어 버렸기 때문인
 경우가 많지요. 성장에는 아픔이 따르니까요.

 함께 Let it grow 하기 바라면서.

 저의 메일 주소는 여기 아이디를 클릭하고 메일 발송하면 보내게 만들어 두었더군요.
 전화 번호는 도판의 화류 공자님이 아시고 있으니 물어 보시면 알려 주실 것 입니다.

 그럼 풍성한 추석 보내 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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