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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는 능력'과 '깨달음을 전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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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11.♡.228.63) 댓글 21건 조회 6,133회 작성일 07-03-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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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와 환경운동가, 시민활동가를 거쳐 '떠도는 나그네'짖을 하면서
각계 각층의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인간의 내면의 문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인지라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을 다음의 두 부류로 구분하곤 한다.
1. 깨닫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
2. 깨달음을 전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
특이한 점은 어떤 이는 1이 특출나고 어떤 이는 1은 특출하지만 2는 전혀 갖춰지지 않는 등으로 경우의 수대로 사람의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가적인 '겸손'의 미덕인지...
노장적인 '무위'인지는 몰라도 1을 위해 힘쓰는 이들은 많아도
2로 넘어가는 경우는 극히 부족다하는 것이다.
주로 1에 집중하는 이들을 보면 '내 마음이 중요하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화두에만 매달려서 그것을 나눠야할 필요를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2의 능력을 가진 이들도 무조건 긍정할만한 것은 못된다.
근본적으로 '나와 너가 하나다'라는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공'에 머무를 필요가 없음을 깨닫지 못하는...
'자기 과시적'이고 '지시적'인 태도는 온전한 '2'의 능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석가는 말했다. '자기 깨달음'을 얻었으면 그것을 '중생과 나누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노장자도 그리했다. '자기 깨달음'을 책으로 만들어 중생에게 전파했다.
예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목숨'걸고 그 이해를 민중들에게 전하려 했다.
원효는 어떤가? 득도한 후에 무애박을 두드리며 사람들에게 그 앎을 나누려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많은 이들이 '내 자신도 깨닫지 못했는데 누구에게 내 이해를 전하겠는가?'라며 겸손의 미덕을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이들일 수록 '깨달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나와 너'가 구분되지 않는 온전한 한 덩어리의 세상을 '직관'하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과 끝일 터인데... '내 자신도 깨닫지 못했는데 누구에게 내 이해를 전하겠는가?'라는 발상은 그러한 이해에 다다르는데에 근본적으로 벽이 되기 때문이다.
그 벽을 무너트리고 '너'에게 대응하는 순간 우리는 좀 더 탄탄한 진리의 지반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역동적인 작용을 하는 온전한 '한덩어리의 세계'에...

댓글목록

자유님의 댓글

자유 아이피 (150.♡.136.46) 작성일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자신의 생각 속에 존재합니다.
그런 제가
당신은 왜? 당신의 생각 속에 머물고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다면 과연 옳은 질문일까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63) 작성일

ㅎㅎ 님의 눈에 무엇이 문제로 보였는지 궁금하군요.
제가 말씀 드린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해서 그리 짜증이 나셨는지요.

디감바라님의 댓글

디감바라 아이피 (125.♡.4.146) 작성일

이상한 알파벳이름을 가지신 분은 둥글이님의 스토커처럼 보이네요.
이곳은 자유게시판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서로 소통하는 장소이지요.
알파벳님이 반론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정리하여 정정당당히 논박하면 될일이지
내가보니 님의 글 주된 내용은 이해할 수 없는 근거로 인신공격만 퍼붓고 있네요.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못하면서...

저도 둥글이님이 논하는 깨에대하여 일부 공감도 가지만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둥글이님은 전형적인 운동가입니다.
님은 운동의 명분과 동기를 깨의 실천즉 자비를 실천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존경할 만한 일이지요.
운동은 대부분 싸워야할 대상을 가집니다.
님의 논리대로 너와 나가 하나임을 직관한 사람이 누구의 편에서,
물론 대의와 약자와 정의의 편에 서서 싸운다고 님은 확신하실 것이지만
현실세계는 절대 그렇치 못하다는데 세상의 모순이 있습니다.
님은 현상의 모순은 간과하고 2000년전 텍스트를 근거로 님의 참여의 의미와 가치와 명분에 집착하는 듯
느껴집니다.
물론 내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깨달음의 행동은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깨달은자의 행동은 자연스럽고 즉각적이며 힘듬없이 주어진 상황마다 나름대로의  적절한 지혜가
작용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님의 현실속에서 님의 지혜로운 선택임이 틀림없겠지요...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63) 작성일

대화를 가능케 하는 적절한 문제의식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저는 '깨달은 자는 행동해야 한다'는 목적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물론 약간 그런 측면도 있기는 합니다.)
다만 '깨달은 자는 행동하게 되어 있다'는 '원리'를 나름대로의 소견에서 풀어 놓은 것입니다.

제가 '목적론' '도덕론'적인 입장에서 '깨달은자' -> '행동'의 논리를 피력하려고 했다면
이런 저런 '선행''화합''윤리'적 측면에서의 당위론적인 이유를 귀납적으로 막 늘어 놓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나와 너'가 결국은 하나인 사실을 제대로 깨닫게 되면
내 자신의 발등이 찍혔을 때 신음하고 이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 처럼...
다른 사람의 그런 모습을 봤을 때도 '자연스럽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힘쓸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행'이네 '사회적실천'이네의 수준과 관계없는...
그냥 '하고 싶은 일이면서 동시에 해야할일'을 하는 수준의 그것입니다.

뭐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필요한 수준에서의 문제의식의 제기 감사합니다.

디감바라님의 댓글

디감바라 아이피 (125.♡.4.146) 작성일

다시 둥글이님에게
우리현실에서 많은 문제점중에 하나가 자발적 참여가 거의 없다는데 있습니다.
건전한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못하여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정치가 왜곡되고
정치인은 자영업자 수준이지요.
막상 입으로 비난만 죽어라고 하지만 그런분들은 투표도 않합니다.
여기서 둥글이님을 무작정 비난만 하는 분들처럼...

<내 자신의 발등이 찍혔을 때 신음하고 이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 처럼...
다른 사람의 그런 모습을 봤을 때도 '자연스럽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힘쓸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 이지요.
내 이웃의 아픔에 무관심하면 결국 우리집 대문밖에 괴로움이 놓여져 있기 마련입니다.
보기에 따라 세상은 고통속에 신음하고 있는 것같기도 하지만 보이는게 전부는 아닐뿐 더러
그 고통의 종류도 다양하고 원인조차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의 고통을 참아본 사람은 타인의 고통도 참아낼 수 있을 거란 걸 배우기도 합니다.
사실 어떤 고통속에는 기쁨이 잠재되어 있기도 하고 아무리 최악의 고통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겪어낼수
있는 한도까지만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것은 깨달음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타인의 고통과 나를 동일시 하는 순간 즉각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깨달음은 고통의 원인을 알게 해주어 스스로 고통의 사슬에서 벗어나거나 수용하게 해줍니다.

현실의 개선을 위한 님의 참여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시면 되는데,
깨달음과 관련짓고자 하는 님의 오류(?)가 이곳 자게판에서 이상한 거부감을 갖게 만드는 것같습니다.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63) 작성일

좋은 말씀입니다.
매우 날카로운 말씀입니다.

문제는 '보통사람들'의 참여와 실천이 부족한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깨달음을 얻은 이들 조차' 그러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죠.
그러니 전혀 '변할'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위 '깨달음'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에게 제 개인적인 생각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깨달았다는 이들...' 혹은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이들'이 '자기 밥그릇 중요한 것 알듯이 다른 사람의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적당한 것이 아니냐?'고 말이죠.

이것이 바로 제가 '깨달음'과 '현실참여'를 연결시키려는 고리인 것이죠.

'자본과 권력'의 속성에 매몰된 이들에게는 아무리 현실속에서의 핍박받는 민중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 참여를 유도하려고 해도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눈'이 그쪽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명 '깨달았다는 이들...' 혹은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이들'의 경우에는 그래도 상당히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속성에서 어느 정도 자유를 획득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거듭 말씀 드리지만,
'깨달았으니까 사회적 실천을 해야한다'는 식의 '도덕적' '윤리적' 관점에서 저는 문제를 접근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흔히들 깨달았다는 이들이 말하는 것 처럼 '자아가 없거나 자아가 온 우주에 뻗혀있거나' 하다고 스스로를 매김하는 이들이 과연 '타인의 고통'이 '타인의 문제'라고 신경을 안쓰거나 아예 인식을 못하는 것이 과연 '온전히 깨달아서 자아가 확장된 이의 그것인가?'의 문제의식을 개진한 것이죠.


추가적으로 제가 '밥'(과 사회적 실천)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 드리는 것은
그것이 그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할 '최소한의 그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강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식으로 '밥'의 문제를 강조하다 보니 '물질' '사회'의 문제에 대한 관심만 갖고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심한 것으로 보여졌던 듯 합니다.
이렇다 보니 님께서
제가 말하는 [현실의 개선을 위한 님의 참여]를 [깨달음의 문제]와 별개의 것으로 지적하셨던 듯 합니다.
그래서 왜? '현실참여의 문제를 깨달음의 문제와 관련짓는지' 의아스러워하신 듯 합니다.

하지만 '첫 글'에서 말씀 드렸지만, 제가 바라는 상의 사회는 '잘 먹고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모두가 제대로 깨달아서 나눔과 비움의 분위기가 가득한 사회인 것입니다.
그 의미까지가 '현실의 개선'에 포함되었습니다.(과거 제가 쓴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하기에 '깨달은 사람들'은 자신이 깨달은 그것(자유/해방)을 '나누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얘기하면서 (기본적이고 일차적으로) 밥 굶는 사람에게는 우선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바람직한 것을 계속 강조해 온 것입니다.

뭐 그렇다는 얘깁니다.

한꺼풀씩 보다 깊은 얘기 벗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니감바라님의 댓글

니감바라 아이피 (211.♡.28.183) 작성일

소갈머리가 참 추하군.
맞수끼리 다로이 나가놀아라!

디감바라님의 댓글

디감바라 아이피 (125.♡.4.146) 작성일

이시대는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 매우 드문 시대 입니다.
자본의 속성이 강력하게 지배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시대또한 별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책속에서, 또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속에서 깨달은 사람들의 이미지를 습득하게 되었지요.
아마 그러한 책을 쓴 사람조차도 그 사실을 직접 보고 쓴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중국 선사들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불경이나 책속에서,
그리고 절에가면 큰스님들이 수도 없이 반복하여 법문으로 써 먹습니다.
단지 책속에 있는 이야기일 뿐임에도 그분들 자신도 털껏만큼도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수많은 견성 각자가 배출되었음이 분명한데도 현실에서 자신을 희생하여 대승을 실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제자나 키우면서 산문 밖에 나서는 것을 죄악으로 알며 밑도 끝도 없는 공부만 합니다.
물론 그렇게 보일 뿐이겠지요...

깨우친 자는 현실참여를 통하여 깨달음을 직접적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논리는 님의 단견이고 억지일
수도 있지만 종교가 제 역할은 커녕 부작용만 더 많이 보여주는 우리현실에서 당연한 요구일지도 모릅니다.

물직적으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개인은 긴세월 무척이나 힘든 교육과 선발경쟁을 거쳐야 겨우 인간구실할 정도로 생존경쟁이 치열한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과거의 피지배 인간들 보다 지식과 지능면에서 수백배나 좋아져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이나 이상은
이제 인간을 움직이는 동인에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하고 보이는 것 조차 자신의 현실적 이익과 연계하여 생각합니다.

요즘 역사왜곡의 현실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만 그 많은 역사학자의 학문적 양심은 제쳐두고
증명되는 역사까지도 멀쩡히 왜곡하고 부인합니다.
불경, 성서, 도덕경... 다 위대한 말씀은 틀림없지만 그 자체가 사실은 아닙니다.

관념은 현실에서 증명이 불가능하므로 대중에게 쉽게 써먹을 수 있었고,
지배수단의 한축으로 교육되어 왔으며,
권력자들은 이를 이용하여 평안과 명예와 자리를 보전하고,
인류는 그것을 갖고 놀다가 싫증나면 버렸다가 가끔씩 불행을 당하거나 두려울 때면 의지하며 살아 왔습니다.

깨달은 사람이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것은 님의 강박관념일지도 모릅니다.
님이 깨달음 그자체가 되시어 그 누구에게도 기대할 것이 없는 대자유를 누리길 바랍니다.^^

디감바라님의 댓글

디감바라 아이피 (125.♡.4.146) 작성일

끊임없이 파리떼가 왔다갔다 하는구나.
놀장소를 마련해주신 주인장 기태선생을 봐서라도 내가 똥파리 한두마리는
쫓아 버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겠다.

겨우 그따위 댓글을 달려고 로그인 까지 하냐?  네 손가락이 불쌍타...ㅉㅉ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63) 작성일

참 좋은 말씀이십니다.
대부분 동감합니다. 

깨달음 그자체가 되시어 그 누구에게도 기대할 것이 없는 대자유를 누리길...'
이 말 역시 좋은 충고의 말씀이십니다.

아쉽지만 바로 그 '선'이 님과 저의 이해가 서로 닿을 수 없는 근본적인 '경계'인 듯 하군요.
님의 깨달음은 '깨닫는 즉시로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고 '비심'한 상태로 되는 것이지만...
제가 말하는 깨달음은 오히려 '하나로 엮어지는' 관계속에서의 그것을 말하기 때문이죠.

하여간 잘 들었습니다.

디감바라님의 댓글

디감바라 아이피 (125.♡.4.146) 작성일

크하하하 ㅏ
댓글에 만족하오.이정도 성의는 표하여야 옳소.
모르게 뭐냐고 물었소?  그대는 모르는걸 알고 있소?
근데 뭐가 불만이오.
쇠파리님 같은 분들이 자꾸 이글에 끄달리는 이유를 제대로 알아듣게 설명해주시오.
그게 내가 모르는 것이 올시다.^^

송재광님의 댓글

송재광 아이피 (125.♡.160.145) 작성일

저는 그저 가끔 오는 사람이온데 제 생각으로는 저도 깨달은 거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 깨달은 분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의 깨달음은 아기같은 깨달음으로서.... 적게 깨달아도 깨달은 거다..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의 체험으로는 직장생활에서의 팍팍함. 자본주의사회에서 구조적 사회문제들. 악다구니같은 인간들이 설쳐대는 사회에서 참다운 인간관계를 맺기 드문점. 그런것들이 제 삶의 문제입니다. 더불어 모두의 문제겠지요.
저는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누군가 나한테 잘못하면 용서하고 잘해주다보면 그사람도 날 이해해주고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줍니다.
어디를 봐도 별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그래서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문제가 많지만 제 생활속엔 없습니다.
그렇다면 매스미디어나 책에서 우리가 보는 문제들은 어떠한가?
빈곤이나 질병 기아 환경오염. 이라크침략 팔레스타인 문제들..한나라당이나 여러 정치적문제들..그런 것들에 대한 제 생각은.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니란 겁니다.
나의 삶이 아니란 겁니다.
은둔자같기는 합니다만 저는 실로 그렇게 느껴서 저의 운명이 저에게 주는 저의 개인적인 삶만이  현실이다..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만약 다른 문제를 제가 해겨래야 한다면 저는 그런 문제를 지닌 현실을 곧 만나게 되겟지요.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63) 작성일

옛 것을 바꾸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옛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곤 하죠.
아마 쇄파리님은 우리가 옛 것을 바꾸려고... 뒤짚으려고... 혁신하려고... 하는 듯이 보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주제넘는 분석입니다만)그러한 '보수성'(나쁜 의미가 아닌 그야말로 보수성)은
체제와 구조에 자아가 일체되어 있기 때문에
그 체제와 구조... (더불어 그 체제와 구조의 대표자)를 위협하는 모든 시도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는 차원에서 반발감을 갖는 것을 나름대로 분석해왔던 터입니다.

(쇠파리님이 기분 나쁘라고 쓰는 표현이라고 여길 듯 해서 조심스럽지만)쇠파리님 같은 분에게는 '논리적' '이성적'인 설명은 안먹어 들어갑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체제와 구조'에 대한 '공격'만 멈추면 문제가 해결되지요.

따라서 제 개인적인 판단이건데 '우리'가 쇠파리님과 이해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면 될 듯 합니다. ???

송재광님의 댓글

송재광 아이피 (125.♡.160.145) 작성일

주역에
불항기덕 무소용야. 란 구절 이  좋지 않은가요?
논어에
호인불호학 기폐야우.
호지불호학 기폐야탕.
호신불호학 기폐야적.
이런 구절도 좋지요?
순간의 깨달음과 시간의 현실사이에서 말입니다.
학문이 그 다리일 겁니다.
그 덕을 항구히 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책도 쓰고 직업도 잇고. 아들도 낳고. 그런것이겠지요.
하여튼 행복한 세상이고 즐거운 우주임에 틀림없습니다.

디감바라님의 댓글

디감바라 아이피 (125.♡.4.146) 작성일

송재광님^^ 
님의 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문제는 내가 문제라 생각할 때만 비로소 문제가 됩니다.
끔찍한 비극은 전쟁만이 다가 아니고 오늘도 가까운 우리 이웃에서 항상 벌어지고 있지요.
가까운 곳부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만이 나의 현실입니다.^^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63) 작성일

송재광님 참으로 필요한 때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1. 그렇담 재광님께서는 눈 앞에 헐벗고 굶주린 이를 봤을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2. 또한 눈 앞에 헐벗고 굶주린 이가 안보이더라도 그런 이들이 실존하고 있는 것은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자본과 권력'의 부조리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재광님께서 눈앞에 헐벗고 굶주린 이를 봤을 때 '비심'(무심의 의미와 비슷함)했다면 두번째의 경우에 대해서 '비심'하는 것에 나름의 일관성이 있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1에 대해서는 모종의 '동정'의 마음이 생기는데... 2의 것에 대해서는 '나의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너무나 '감각적'으로 '보이는 것'에만 반응한 결과가 아닌지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숙고를 해보건데
흔히들 얘기하는 '깨달음'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비심' 한 마음... 쉽게 말해서 '자기 집착'을 벗어난 그 상태를 얘기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과연 '깨달음'이 '그것일까'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게 진정한 깨달음일 것 같으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덩이만큼 제대로 깨달은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그래 맞다 돌덩이가 진정한 도 아니냐?'는 댓글도 붙을만 한데...
제가 꾸준히 드려온 말씀은 과연 '그러한 깨달음' '그러한 도'도 좋기는 하지만,
자신이 배고풀 때 하루 세끼니 밥 먹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당연스레'생각하면서
다른 이들의 '그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심'한 것이 적절하냐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한정된 자원'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내가 먹은 만큼 다른 사람의 배가 비워지게'되는데 말이죠.
과연 이런 관계에 '비심한 것'이 깨달음일까요?

그런지 아닌지는 저는 모릅니다.
다만 저는 그에 대해서 꾸준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하이트님의 댓글

하이트 아이피 (58.♡.108.34) 작성일

세상과 여건을 탓하는이여,
그냥 차라리 돌뎅이가 되라.
무얼 그리 따져되는고?
자신의 방향을 문제로 생각햐야지,무엇을 어지하라고
이리도 민폐를 뿌리시나?
모르면 좀 겸손이나 하시고,자꾸만
동지를 찾아 헤매시는데,
그런 부류의 동지는 그대에겐 단지 ,
눈만 흐리게 하는 물귀신이 되지나 않을지 염려되누만.
모르다는대견한 생각도 하셨으니
그만 잘 모르는진지하고 어린 사람으로 언행하시길....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63) 작성일

동지 찾아 헤매는건 아니고요.
'돌맹이의 역할은 돌맹이에게 맡기라'는 말씀을 드린건디요. ㅠㅜ

하이트님의 댓글

하이트 아이피 (58.♡.108.34) 작성일

돌맹이는 스스로 돌맹이라 하지 않앗네.
누가 돌맹이라 하고,역할은 또 뭔가?
말기는 건 또 뭐고.
님께서나  자신의 역할을 하시면 그만 아닌가요?
괜시리 다른이에 머리를 흔들어 대지 마시고.
살기도 복잡한데 ,이런 쉼터에서 까지 짱구가 복잡해져서야.
쉬운 말로다 풀어서 쓰시고,간략히 요점만.
볼래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라하데요.
서론이 길고,해석과 설명이 긴 글이나 말은 ,사실 거짓이거나
엉터리가 대부분이지요.
진실한 뜻은 항상 간결하지요.
말이 길면 헛소리가 되고,실수가 많은 법이지요.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63) 작성일

제 말이 그겁니다.
님과 같은 분들의 개입이 늘 일을 두배 세배 복잡하게 만들지요.

송재광님의 댓글

송재광 아이피 (125.♡.160.175) 작성일

둥글이님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한참 생각을 많이 하고 각 분야에 결론을 다 내려서 글로도 정리를 많이 해놓았었어요.
그러니까 왜 사는지 섹스는 뭔지 질투심은 뭔지 왜 똥은 누는지 왜 죽는지 왜 사는지 왜 시간이 있는지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생각을 바라보는 그 생각 위파사나식으로 그런거 많이 했어요.
한게 아니라 절로 그리 되어가지고 우주 모든 걸 다 알 것 같고. 그냥 쓰면 무얼 쓰는지도 모르면서 쓰면서 다 이해가 되고 그러햇어요.
지금 인터넷 어디에 숨겨놧는데 그뒤로 직장을 다녓는데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그뒤로 한번도 못보고
그런 생각이나 느낌도 가질 여유가 없고 그저 온순한 성품 그대로 녜녜 하면서 직장을 다녀요.
주말에 드라마나 보고 맥주마실까 서울막걸리마실가 뭐가 몇백원 더싸냐 계산하면서 안주는 그냥 500원짜리 베이컨칩인가 그런거 먹고 그래요.
예전에 제가 쓴 글들중에 해답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은 다 잊어먹엇어요 정말.
우습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직관이나 느김의 핵심은 기억속에 아니면 몸으로 정신으로 살아잇어서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단지 저의 자아가 이런저런 혼란을 느끼고 당황하고 추스르고 그러는걸 지켜보면서 개입을 하기도 하고 방관하기도 하고 뭔가 혼돈을 느끼지만 어렴풋이 그래 이런들 저런들 다 괜찮다..라는 생각이 한 기둥 있고..
나의 의지로 뭔가를 이뤄야지 하는 생각이 한 기둥 있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자잘한 문제들이 들이닥쳐서 정신이 없고 그러면서도 그냥 그럭저럭 괜찮은 거 같고 그래요.
정신이 너무 없어요.
다들 어떻게 사는지 모르겟어요.
돈돈돈~ 그리고 주말에 맥주한잔과 하얀거탑같은 재밌는 드라마감상.
그리고 아이들 보면서 그냥 사는 것 같아요.
해답도 없고 해답을 옛날에 적어두엇다 한들 다시 볼 시간도 없고.
그냥 그 무수한 해답들의 한가지 정수.
그냥 나 지금 여기 있노라~ 그거 하나 같아요.
김기태선생님 말씀이 진리예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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