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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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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책 (124.♡.17.2) 댓글 3건 조회 5,406회 작성일 09-12-2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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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동안,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 속의 말을, 자신 속의 그 무엇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누구이건 어떤 사람이건, 지식이 많건 적건 상관없이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기만 하면, 그는 자신 속에 숨어있거나 넘쳐 오르는 자신의 말을 어떤 방식으로건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어떤 이는 신세타령을, 어떤 이는 자신이 감동한 것을, 어떤 이는 새로운 앎을, 어떤 이는 자신의 경험을, 어떤 이는 자신의 고통과 고민을, 어떤 이는 자신의 성취를, 어떤 이는 자신의 억울함이나 분노를 전하려 했습니다.

어떤 이는 누구도 흉내 못낼 만큼 멋진 문학적 어투로, 어떤 이는 누구보다 거친 시장바닥 어투로, 또 어떤 이는 너무도 잔잔한 어투로, 어렵게 또는 평이하게 자신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소위 진리를 깨달았다거나 나름대로 어떤 경지에 올랐다거나 철학적 사유나 사상적 사유에 깊이 빠졌던 사람들, 혹은 종교적 문학적 부류의 사색에 능한, 그러니까 주로 독서량을 좀 갖춘 흔히 말하듯 가방끈이 좀 길다는 지식인들, 그 가운데서도 소위 고뇌하는 지식인들이 주로 말을 더 많이, 길게 오래도록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의가 자신의 말을 털어놓음과 동시에 교훈처럼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는 성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저의 모습처럼, 대부분이 많건 적건 나름대로 자신이 알거나 알았거나 깨닫게 된 일상적 혹은 사유적 깨달음이나 발견들을 말과 글을 통해 전함으로써, 자신의 말과 그 내용을 제대로 알아봐 줄 이해의 동지를, 자신의 경지를 제대로 알아봐 줄 능력과 경력의 동지를, 자신의 말을 듣고 자신에 대해 그 마음을 제대로 알아줄 아량의 동지를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발견한 후 어느 순간 저는 제가 하는 모든 말들과 표현들을 일종의 배설물로 간주하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말을 더듬는 것도 타인의 똥냄새를 맡는 것과 같았습니다.

배설은 배설하는 자에겐 쾌감이며 고통을 경감시키는 수단이며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지만 타인에게는 빨리 치워야 할 냄새나는 똥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칫 자기 똥냄새는 거부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똥냄새는 유난히 못 견뎌할 수도 있겠다고 여겼습니다. 똥이 약이나 거름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지만 그것은 옛날 말입니다. 자신의 똥도 오래 간직할 수는 없습니다. 똥은 빨리 흘려보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옛사람의 배설물이나 타인의 배설물은 그 악취가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드물게도 타인의 똥 색깔을 살피고 똥냄새를 맡아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냄새 맡는 것도 모자라 그 똥을 찍어 먹어보고 처방전을 써 주는 의원 같은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타인의 똥냄새를 기피하거나 타인의 똥냄새를 직간접적으로 비판하고 나무랐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타인의 똥 위에 자기 똥을 쌌습니다. 자기 똥냄새로 상대의 똥냄새를 덮으려 했습니다.


그 옛날 달마대사는 ‘내가 세상에 온 뜻은 오직 속지 않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함이다.’라고 말하여 그 말을 들을 대상을 찾음으로써 그 역시 누군가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노자도 ‘말을 잊은 그 사람과 더불어 말하고 싶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어법에는 허점이 있습니다. 속지 않는 한 사람이나 말을 잊은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속지 않는 한사람인 그가 과연 누군가에게, 속지 않는 자신의 경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할까요? 말을 잊은 사람인 그가 말을 잊은 경지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을 전하고 싶어 할까요? 대부분이 말을 통해 말을 걸어올 이해의 동지를 찾으려 했다면, 달마대사와 노자는 오히려 말을 통해 말을 잊은 사람을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찾겠습니까? 속지 않는 사람과 말을 잊은 사람을 무슨 수로 찾는다는 말입니까? 속지 않는 사람과 말을 잊은 사람은 찾아지지 않습니다.


말을 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로 착각하는 것은, 상대는 자신이 아는 것을 잘 모를 것이라고 여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상대를 가르치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상대를 깨닫게 하기 위해 때로는 안타까운 심정이나 자비나 희생이나 배려라는,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그 배경으로 동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심리적 기저에 깔린 것을 더 깊게 열어보면 열에 아홉은 모두, 상대는 아직 모를 것이라는, 그래서 자비를 베풀어 가르치고자 하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깔려있었습니다.

높은 곳에 앉아 내려다보면서 자기 눈에 다 들어오고 다 파악되어야 안심하는 병적 우월감과 모든 것을 자신 속에 넣어야 안심하는 병적 식욕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상대에게 제압당하거나 먹힐 것 같은 자신의 결핍이나 결함 등으로 인한 열등감을 견디지 못하기에 상대를 먼저 먹으려 합니다. 그래서 상대를 자신 속에 두려합니다. 그래서 지식과 사상과 철학과 논리와 경지와 깨달음으로 중무장을 합니다. 논리적으로 상대를 잡아먹으려 하고, 지식으로 상대를 잡아먹으려 합니다. 심리적 우월감으로 상대를 잡아먹으려 하고, 감성적 우월감으로 상대를 잡아먹으려 합니다. 경험이나 경지의 우월감으로 상대를 잡아 먹으려하고, 자아의 자존적 우월감으로 상대를 잡아먹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우월감의 배경이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열등감임을 안다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다시피 글을 쓰는 저 자신도 지금 그 오류에 빠져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 누구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을 모를 리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스스로 자신이기 때문이며, 그 자신이란 다른 것일 리가 없으니까요. 모두가 스스로 자신이어서 자신을 알고 있기에 그 누구에게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가르칠 대상이 있을 리도 없습니다. 다들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정말 모르시겠다고요? 모르는 자신입니다. 모를 뿐인 자신입니다. 그게 아는 거랍니다.

이렇게 자기 똥냄새를 풍기면서 한 바가지 말을 배설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 역시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댓글목록

ahffk님의 댓글

ahffk 아이피 (112.♡.175.97) 작성일

뭘 용서를 구할것 까지야...ㅋ
님 말씀대로 다 아는 사실인데...
그렇지만  알든 모르던 글을 써주시는 모든분들이 저는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서로 배울수 있는 또는스스로를 돌아 볼수 있는 지침이 될수 있으니깐요..
어떤똥도 훌륭한 거름이 될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고로 나는 존재합니다..
그런데 님도 참으로 말은 쉽게도 하는군요..
마치 모두가 자신이라는것을 완전 체험 증명한것 처럼 말입니다..
그건 정말 님만이 알고  님과 직접만나 차라도 한잔나누어야  좀 알수 있을것 같네요..
전 하는 일이 바빠서 요즘은 일요일에나 가끔 똥을싸고 남들이 싸놓은 똥을 먹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솔직히 앞으론 똥을 잘 안쌀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도덕경회원도 아닌데..
그래서 괜히 남의집안을 기웃만 그리는 별로 방갑지않은 객같은 느낌도 뇌리를 자주 스치고..
그렇다고 제가 뭐 깨달음을 이룬자도 아니면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마음의 글을 쓰기도 너무미약하고...
암튼 모두들 새해 복마니 받으시길..^^

수수님의 댓글

수수 아이피 (69.♡.240.165) 작성일

산책님의 글을 아주 천천히 읽었습니다
왜냐면 수수자신을 구석구석 비춰주는  거울이 있습니다..
자신을 보고 마음의 태도를 바꾸는 일은 일생을 통해 가장 아푸고,멋지고 , 통쾌한 일 입니다
한번의 그일이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자주 선명히 보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을 만날뿐이였습니다

노자님과  달마님이 그런 멋진 말을 하셨다니 역시 훌륭하신 분입니다^^
내가 세상에 온 뜻은 오직 속지않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함이다
말을 잊은 그 사람과 더불어 말하고 싶다 


자신에게 속지 않고
자기 자신을 포장하여 장사하려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 순수한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가끔씩 산이 보고싶습니다
수수가 산이 되면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꺼같은데...
그리고 보니 산이 되신 그분들도 산을 그리워 하셨군요 ^^

수수님의 댓글

수수 아이피 (69.♡.240.165) 작성일

ahffk님 안녕하세요~
똥을 싸고 남들이 싸논 똥을 먹기도 하면서 즐기시는 ahffk님^^
 상황을 즐길즐 아는 마음도 아름답습니다

근데 , 남의 집안을 기웃거리는 별로 반갑지 않은 객같은 느낌은 쫌 추었습니다
누구나 이곳 홈피에 애정을 갖고 오시는 분은 다 식구이지요
그리고 글을 올리는게 꼭 남에게 도움이 되기 위함만도 아닌거 같아요
소위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경지를 알리고 싶어 안달하는 글들은 짜증이 납니다
어떠한 변명이든 결국은....수수도 해봐서 알아요 ㅋㅋ
그리고 그 짜증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수수의 일임도 알고있습니다 ^^

전에는 유치하다고 외면했었던 ....인간 냄새 솔솔 풍기는,  함께 거울처럼 비춰주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수수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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