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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같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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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6건 조회 4,319회 작성일 07-09-0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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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산 공원에서 바라보는 측면의 영도,
나즈막한 비린내 나는 자갈치 선착장에서 비스듬하게 누운 영도,
남항등대에서 훤히 전면으로 바라보는 영도.
影島는 그렇게 바라보는 곳에 따라 풍광과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용당이나 용호동의 남구에서 바라보는 영도는 사뭇 다를 것이다.
어떤 地名이 추억과 사무치게 되면 아무래도 바라보는 느낌이 남다른
애상에 젖어들게 마련이지만, 나도 영도를 무심히 바라보지는 못한다.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아니, 그 섬이 보일까 두려워서 고개를 다른
쪽에 두어야 마음이 편하다.
'인자는 고향에 머리를 둘 곳이 없다'라는 예수님의 말처럼,
내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영혼이 성장한 부산이라고 하여도, 오히려
그곳을 떠나 낙동강변을 따라 철로로 올라오는 경부선에서 마음이 한결
놓이기도 한다.
십오 여 년 전, 그렇게 나는 그 곳을 떠나 어디 낯선 도시와 낯선
사람들에 묻혀 무엇인가를 하얗게 지워버리고 싶은 자포자기의
심정이였다.
그리워 하면서도, 증오하고, 아니 보려고 하면서도 보이는 곳이며
한사코 떠나려고 하여도 발목을 잡고 울부짖는 곳이 나의 고향이다.
영도다리를 지나 영도의 허리 굴곡을 넘실거리듯이 쓰다듬어며
도착하는 9번 버스의 종점. 그리고 가파른 산복도로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오른다. 뒤를 돌아다 보면 멀리 육지와 선박수리소의
낮은 등불이 가물가물 보일 무렵이면 숨이 차고 등에 땀이 흐른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길이 내 인생에서 가장 처참하면서도
가장 행복했던, 한스러우면서도 감미로웠던 나만의 골고다 언덕
이였다. 어떤 무형의 십자가를 등에 진 채로.
한 삼년은 죽자살자 잊으려고 발부둥을 쳤다. 또 한 삼년은
아침에 깨어 일어나면 다시 아득한 꿈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꿈에서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로 돌아왔다.
나머지 삼년은 무심을 빙자한, 추억을 염주알 굴리듯 관세음
보살하며 보냈다. 그리고 십여년이 흘러 차츰 마음이 진정
되었다.
그런데, 영도를 바라보면 십년 수양이 봄눈 녹듯 허물어지며
다시 저 다리를 건너, 다시 저 언덕을 너머, 숨이 찬 골목길을
올라, 단지 내 인생에서 단 한 번 이라도, 딱 한 번이라도,
먼 발치에 서서, 비록 낯선 타인이라 해도, 그녀의 얼굴을 바라
보고 싶다. 그저 한 삼분이라도 몰래, 숨어서, 마음껏 보고 싶다.
정말 보고 싶다. 사랑이고 추억이고 애증이고 그 모든
것은 개나 물어가라고 할지언정. 이제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의 미망,
혼몽, 지극한 어리석음, 바보의 절망이라도 해도 좋다.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 그 얼굴을. 먼발치에서라도.
이런 내 정신이 미친듯이 그 숨찬 산복도로를 뛰어 올라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상상을 하게 되면 철가면의 금속 표면에 녹이 쓸어
균열이 가고 눈물이 봇물처럼 쏟아 오른다.
그래서 나는 부산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갈 때 까지
오른편에 타서 절대로 왼편을 바라보지 않는다.
이 세상에 제 아무리 날카로운 칼로 떼어내려고 해도 절대로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
육지 같은 섬, 섬같은 육지,
그 섬은 나와는 관계없이 언제나 그 바다에 그렇게 떠있다.
나의 그림자 한 편이며, 한 조각 처럼.

댓글목록

따슨밥님의 댓글

따슨밥 아이피 (210.♡.154.251) 작성일

내 인생에서 가장 처참하면서도
가장 행복했던, 한스러우면서도 감미로웠던 나만의 골고다 언덕
이였다. 어떤 무형의 십자가를 등에 진 채로.

생각해보니 자몽님과 같은 무게의 십자가를 지어본적이 없군요
감수성을 깨우는 멋진 글을 부러웠했는데 이유가 있었네요^^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공자님이 樂而不淫 哀而不傷 이라 말씀 하셨습니다.
슬퍼 하데 상할 만큼 하지 말라.
어리석어 베일만큼 아파했습니다.

글쓰기는 때로 내 고통을 기록하는 것이며
내 슬픔을 통해 구원의 증거를 찾기도 하지요.

달리, 치유를 위함이기도 합니다.

집착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 입니다.

화는 에너지이고, 슬픔은 거름이라...............

번뇌 심 = 보리 심 맞나요.

뜨신밥님의 댓글

뜨신밥 아이피 (210.♡.154.243) 작성일

싯다르타는 그의 치유의 경험이 후세에게 또 하나의 구원의 길을 제시했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경로로 또 여러 방식으로 나름대로 치유를 했다 하지만
저마다 그 수준이나 한계는 다르지요. 스스로는 같거나 더 낫다 착각하는 이가 많겠지만..
번뇌보리는 다른데서 더 심화해서 얘기 나누어봅시다^^

자몽님에게 기대하는 바가 많습니다^^

thinair님의 댓글

thinair 아이피 (203.♡.164.173) 작성일

자몽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인자는 고향에 머리를 둘 곳이 없다'

주자가 깨침을 얻고 쓴 시에 이런 구절이 있죠.

이제 더이상 병주(幷州)를 고향이라 부르지 말게나.

병주는 시인 가도가 오랜동안 머물다 떠나면서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시를 지은 적이 있죠. 그 이후, 병주는 오래 머물러 정든 곳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주자는 깨침을 얻고 습관적인 삶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뜻으로 쓴 말이죠.

예수는 그런 의미로 쓴 건 아니겠죠? 웬지 비슷해서...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떤 설화와 전설을 보면, 위대한 사람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오면
'나는 변했는데' 고향 사람들은 옛날 그대로 자신을 본다고 합니다.  예수도 고향으로
돌아오니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나 봅니다. 한 고조를 도운 전략가 한신도
고향에 돌아오니 만구 백수 건달로 알았다던가.

여우는 죽을 때 제 고향녁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데........그 조차도 할 수가 없는 듯한
비감으로 저는 그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 머리를 반대로 두어야 평온을 찾는 듯한 이방인의
괴로운 심정으로.

저가 비약이 좀 심했나요.

thinair님의 댓글

thinair 아이피 (203.♡.164.173) 작성일

좋은 글이고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제가 이 싸이트에 오는 이유는 여러분들의 글이 좋아서이죠.
주인장의 글도 좋고요.
또,
상담을 하는 것이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다 점인데,
주인장의 점은 아주 수준이 있습니다.
이론은 좀 엉성해 보이는데, 점을 잘 쳐요. ㅎㅎ
저도 따라해보는데,
감성이 부족해서 그런지 잘 안 됩니다.
님은 소질이 있어보입니다.

종종 좋은 글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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