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도덕경 제 7장 <죽어야 진정살리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초심 (211.♡.229.167) 댓글 3건 조회 6,125회 작성일 10-02-16 13:42

본문

공유님이 말씀하신 도덕경 7장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래에 공유님의 <자기를 비운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게시글에 단 <비움>이란 글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한 말씀 드립니다. 제가 말한 '비움'은 사리불과 같은 '이승'의 수행 즉 '자신의 마음을 온 통 비우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고요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수행 단체들 중에서 많은 곳에서 이러한 '마음을 비우는 수행'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그때)일 뿐 좌선을 마치고 눈 앞의 현실로 돌아 오면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이 나의 수행의 부족한 탓으로 돌리고 그러한 '비움'의 수행을 반복하는 것은 <조작>일 분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수행은 힘만들뿐 진실의 <자신>을 대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적멸(고요함)이란 이렇듯이 자신의 번뇌하는 마음을 비우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고요한 것이 아니라 마치 서핑(파도타기)선수들이 거친 파도를 즐기며 그 파도(번뇌)와 하나가 되듯이 내 안의 격량(우울, 화, 불안, 불만족...등등)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님이 말씀하시는 도덕경 제 7장의 <죽어야 진정살리라!>라는 김 선생님의 의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어야>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여기>가 아닌 <저기>로 망상을 쫒아서 미로속을 헤메이지 말고 <지금! 여기!>로 돌아 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김 선생님은 <노자와 논어와 성경>을 인용하여 절절한 마음으로 말씀하시고 있고요...!

아래에 그 중에서 일부를 발췌하였습니다.
읽어보시고 김선생님이 의도하신 바를 다시한 번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

아, 그렇게 타는 목마름으로 '자기 완성'과 '자기 해방'을 위해 그 오랜 세월 몸부림쳐 왔건만, 아직 끝나지 않고 채워지지 않는 이 내면의 갈증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어쩌면, 정말 어쩌면, '자기 완성'과 '자기 해방'을 위해 나아가는 우리의 방향과 방법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이미 처음부터, 다시 말해, '자기 완성'과 '자기 해방'의 그 지난(至難)한 길로 우리를 들어서게 한 어떤 <전제>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정녕 이미 '첫 단추'부터 잘못 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 진리(眞理)는, 도(道)는, 진정한 '자기 완성'은 저기, 나 밖(外)에, '완전'을 향한 우리의 무한대의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전혀 뜻밖에도,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내 안에 있다. 내가 이미 <그것>이다(I am That)! 그리고 이것은 <사실>이다. 아니, 오직 이것만이 <사실>이다! 그러니, 스스로의 노력을 통하여 '완전'을 이루려는 그 마음을 내려놓고, 다만 '지금' '여기'에 머물라. 오직 '현재'를 살라. 미래의 '완전'을 향해 달려나가던 그 마음을 돌이켜, 다만 지금 현재의 그 '부족'을 살라. 그 '부족' 위에 머물라. 그것에 저항하지 말고, 그 '부족'을 믿어주고, 그것을 그냥 살아내어 보라. 단 한 순간만이라도 그렇게 해 보라.

'깨달음'이랄까 혹은 '진리(眞理)'는 그러한 <돌이킴> 속에서 이윽고 그 소박하고 투명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면 스스로 알게 되리라, 현재(現在)는 '부족'하지 않으며, '나'와 '삶'과 '세상'은 이미 처음부터 '완전'했음을―!
이러한 '있는 그대로의 현재'로의 <돌이킴>이 바로 '不自生'이며, 그것은 '완전'을 향해 달려나가던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든 지식과 믿음과 노력의 포기, 곧 자신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아 죽어야 진정 살리라! 不自生!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 ― 곧 참된 실재(實在) ― 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태복음 10:39)

댓글목록

공유님의 댓글

공유 아이피 (110.♡.85.230) 작성일

이러한 '있는 그대로의 현재'로의 <돌이킴>이 바로 '不自生'이며, 그것은 '완전'을 향해 달려나가던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든 지식과 믿음과 노력의 포기, 곧 자신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아 죽어야 진정 살리라! 不自生!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 ― 곧 참된 실재(實在) ― 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태복음 10:39)
-----------------------------------------
좋은 경구입니다.

공유님의 댓글

공유 아이피 (110.♡.85.230) 작성일

요즘 수행 단체들 중에서 많은 곳에서 이러한 '마음을 비우는 수행'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참고로 마음 비우기는 신비주의자 에크하르트 톨레도 애용하는 주장입니다.
`깨어있음` `주시하기` `지금 여기에 집중` `내면(몸속)으로 파고들기` `무심의 유지` 톨레의 대표적 사상들입니다.
비원님처럼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주장한 사상가는 끼란이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끼란은 `지켜봄(목격자 되기)`에 중점을 두는데 비원님은 그것마저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단지 언어의 차이일 뿐이라고 볼 수 있는 미미한 차이일 따름입니다.

공유님의 댓글

공유 아이피 (110.♡.85.230) 작성일

청학 울리싸만코, 일지 이승헌 등등의 사이비교주들은 증명하지 못하는 과대포장, 교묘한 최면술과 상술로 사람들을 유혹하곤 합니다.
이런데 빠지면 돈낭비,시간낭비,알량한 깨달음에 목숨을 걸게 되죠.
진정한 배움은 신비함이 아닌 자기가 녹아 사라지는 현실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Total 6,238건 215 페이지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888 급급 5810 07-06-06
887 자몽 5942 07-06-05
886 둥글이 13226 07-06-04
885 김재덕 5674 07-06-03
884 let it be 10517 07-06-02
883 송재광 5043 07-06-02
882 지나가다 5208 07-06-08
881 구름에 달 가듯 6112 07-06-01
880 구름에 달 가듯 7335 07-06-02
879 과메기 6624 07-06-01
878 둥글이 6545 07-06-01
877 그냥 5045 07-06-01
876 공자 5143 07-06-01
875 은솔 13841 07-05-31
874 둥글이 5065 07-05-31
873 공자 6184 07-05-30
872 지나가다 7802 07-06-02
871 그냥 8138 07-05-30
870 담당자 11215 07-05-30
869 장안수 6423 07-05-30
868 쓰임 5638 07-05-30
867 과메기 8325 07-05-29
866 둥글이 6792 07-05-29
865 공자 7505 07-05-29
864 없는이 10881 07-05-28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4,942
어제
13,850
최대
18,354
전체
5,896,703

Copyright © 2006~2018 BE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