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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모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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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봉식이할매 (175.♡.214.244) 댓글 1건 조회 6,921회 작성일 15-11-23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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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서적으로 책 모임을 한번 해보려는 생각은 어느 정도 있었다. 하지만 의욕만 넘쳤을 뿐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은 그 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니 인문학책으로 모임을 진행하는 진행자로서 넘어야 할 산은 한둘이 아니다. 고개를 최대한 위로 치켜들어도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하늘 위로 쭉쭉 뻗은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 그런 산은 올라갈 생각 없이 그냥 쳐다만 봐도 그 웅장함에 기가 확 꺾인다. 그렇게 인문학과 친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인문학)에 올라가기도 전에 포기하고 만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혼자서 고민만 실컷 하고 있던 그때 아이디도 이상한 '양반'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아이디는 '양반'인데 생김새는 아니었다. 피부는 시커멓고 같은 옷만 계속 입는 거 같았다. 한마디로 아이디만 양반인 '양반'인 셈이다. 그런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양반'을 알아가고 있었다. 생김새와는 다르게 인문학 쪽에 관심이 대단하더라, 그뿐만 아니라 유식한 정도가 이 할매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반성했다. 다시는 사람을 생김새만으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실 이지성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읽고 독후감을 쓰려고 했는데, 글을 써 나가다 보니 어느샌가 양반님이 등장해 무협지 주인공처럼 쉬지도 않고 쌍칼을 휘두르며 우리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바람에 계획에도 없던 수필이 되어버렸다. 머 장르가 바뀌면 어떤가 재미있으면 됐지. 잠시 빠져있는 배꼽은 본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9월 30일 양반님이 자유게시판에 '진로상담(번개)'이라는 글을 하나 올린다.


[인문고전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누구나 대상이고요. 참가방법은 댓글 남겨 주시면 되겠고요. 장소는 참가인원 확인 후 정하겠습니다. 시간은 10월 3일 토요일 오후 6시로 하겠습니다. 준비물은 동.서양 인문고전 추천도서(또는 의견)외 식대 약 1만 원(치맥이 어떨까 한데요) 도저히 혼자서는 답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ㅠ.ㅠ 도와주세요~~ ]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인문학에 목이 마른 상태였다. 한겨울 바짝 마른 낙엽처럼 나의 앎(인문학)의 메마름은 바짝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럴 때 타이밍 좋게 양반님이 진로상담이란 물을 나에게 뿌린 것이다. 나는 이게 웬 떡인가 싶어서 덥석 물었다. 나의 호빵맨처럼 생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제 드디어 인문학 모임이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동지를 만났다는 생각에 신이 절로 났다. "못난 사람들이 모여서 무얼 하겠는가?"라며 콧방귀를 뀌는 사람도 있겠지만, 못난 돌일지라도 서로 부딪혀야 불꽃이 튈 것 아닌가! 나는 함께하는 누군가 있다는 사실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계속 좋은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행복은 불행의 전주곡이라고 괴테가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짧은 시간 느꼈던 기쁨도 잠시였다. 천천히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리고 나는 무슨 책을 고를까? 머리를 싸잡고 고민과 씨름을 한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고통이 이런 건가? 할매의 인생에 몇 권 안 되는 책 중에서 골라야 했다. 한참 고민 끝에 책이 아닌 TV에서 본 <EBS 인문학특강>이 문뜩 떠올랐다. 아직 책은 읽지 않았지만, 인기가 많은 강의는 책으로도 출판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터라 "이걸로 해야지" 라고 결정하고 약속 잡힌 날만 기다렸다.


 10월 03일 그동안 잠잠하던 호랑이(통증)가 몸속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목, 허리, 등, 골반을 사정없이 할퀸다. 몸속에 호랑이가 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호랑이가 잠들었던 동굴로 들어가야 한다. 몸을 최대한 움츠려 활동을 최소한으로 만들어야 한다. 몸을 움직이면 몸 구석구석이 아프므로 어쩔 수가 없다. 근데 오늘이 무슨 날인가? 인문학 모임 첫 약속이 잡힌 날이 아니던가? 그동안 나는 호랑이한테 최대한 양보하면서 지내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제아무리 밀림의 왕 호랑이라 할지라도 오늘은 나의 길을 막지 못한다. 오후 5시 이제 약속까지 1시간 남았다. 호랑이보다 더 굳센 의지와 아래위로 깔 맞춤한 옷으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약속 장소로 향해 길을 나선다.


 곤히 자는 아기를 보듬은 색시처럼 호랑이를 등에 업고선 식은땀을 흘리며 버스정류장까지 최대한 천천히 걸어갔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정말로 할매가 된 것처럼 두 눈에 라이트를 켜고선 앉을 자리 찾았다. 레이더망에 빈자리가 포착되었다. 내가 언제 허리가 아팠냐는 듯이 빛과 같은 속도로 자리를 차지했다. 혹시 나이 지긋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내 앞에 서는 시련이 찾아와도 나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호랑이도 꺾은 의지가 아닌가? 그런 불굴의 의지로 나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렇게 버스는 목적지로 향해 출발했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놀란 호랑이는 발톱을 새웠고, 나는 그때마다 입술을 깨물고선 힘겹게 약속 장소인 창원대까지 갔다.


 창원대 옆에있는 우영프라자 2층 치킨집에 들어섰다. 양반님 혼자서 치킨집을 지키고 있었다. 테이블엔 술은 없고 책만 소복이 쌓여있었다. 양반님과는 책 모임에서 몇 번 만났지만 둘이서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유일한 공통 관심사인 인문학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 마지막 참가자인 허니샘 님이 도착했다. 이분들이 정말로 치킨집을 도서관으로 만들 심산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양반님보다 더한 허니샘 님은 책을 아예 쇼핑 팩에 담아 오셨다. 그렇게 해서 2015년 10월 03일 오후 6시 인문학 모임 첫 회의가 시작됐다. 그들은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나도 몹시 궁금하다.

댓글목록

햇살님의 댓글

햇살 아이피 (175.♡.55.224) 작성일

다음 글이 궁금하네요^^ 인문학 모임..재미있겠는데요.
집이랑 가까운데 언제 한번 놀러가고 싶어요.
책 읽고 독후감 쓰는 건 싫은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가 궁금해서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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