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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란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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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앉은황소 (116.♡.100.252) 댓글 4건 조회 5,871회 작성일 10-03-0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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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장기간의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들어갈날이 다가오네요^^
며칠동안 조금씩해왔던 그동안 써왔던 글들의 정리가 이제 거의 다되었습니다.
작업(?)을 해가며 느낀것이 있다면, 물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리하지않은 파일또한
사람이 단순하게 사는것을 방해할수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많이들 아시는글이겠지만, 이글도 아래글처럼, 저를 거쳐왔던 수많은 글중에 하나였는데,
이제 그만 흘려보내려고 합니다. 언젠가 어느 인연으로 다시볼수 있겠죠...보니 역시
공부하지마라...지금 이순간을...^^
아래 수수님과 은타비쌩님 같은분을 볼수 있는 이 사이트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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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란과의 대화

끼란과의 대화

면담 1.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나는 1993년 11월에 푸나에서 끼란을 처음 만났다. 나는 다다지를 방문하러 갔었다. 다다지와의 면회가 허락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중년 부부 한 쌍이 도착했다. 한 친구가 그들을 나에게 소개하며 말했다. “이 분은 끼란입니다.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로서 깨달은 분이죠. 푸나에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분은 끼란의 부인인 비노디니입니다. 이 분들은 다다지와는 오랜 친구사이죠.” 이 우연한 소개를 받고 나는 깜짝 놀랐다. 오쇼의 깨달은 제자라니! 내가 수년 동안 갈망해왔던 것을 성취한 구도자라니! 그러한 일이 과연 가능한가? 다음날 저녁 나는 끼란의 초대로 무쿤드나가르에 있는 그의 집으로 그를 찾아갔다. 그의 제자이자 친구인 사람들도 4명 와 있었다. 우리는 그의 정원에 앉아서, 그의 동의 하에 다음의 대화를 비디오테잎에 담았다.

정신 수행은 깨달음을 방해한다.

마두카르 : 당신은 얼마나 오랫 동안 오쇼 옆에 있었습니까?

끼란 : 저는 15년 이상을 그분의 제자로 있었습니다.

마두카르 : 요컨대, 우리 둘은 오쇼와 더불어 같은 길을 여행해 왔군요. 당신과 같은 구도자로서 나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정확히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나도록하기 위하여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나는 당신이 내가 했던 것과 꼭 같은 방법과 명상을 실천했는지 어떤지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왜 당신에게는 깨달음이 왔지만 나와 다른 친구들에게는 깨달음이 오지 않는 것입니까? 만약 당신이 다른 또는 부가적인 명상과 방법을 실천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당신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당신은 영적 구도의 길에 있는 나와 다른 친구들을 도울 수 있습니까?

끼란 : 나는 오랬동안 오쇼와 더불어 지냈습니다. 나는 당신네들과 함께 여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찾는―진리를 찾는, 삶의 진실을 찾는―길 위에 있는 여행자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오쇼와 더불어 여행하고 있을 동안, 우리들은 많은 것들―명상, 치료, 집단적 행위―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오쇼가 우리에게 제시한 것들은 무엇이든 했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그를 추종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완전히 우리를 맡겼습니다.

나 역시 그랬습니다. 나는 그의 바로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수년 동안 그의 강의를 듣고 있었습니다. 나는 언젠가는 깨달음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가 제시하는 것들을 따랐습니다. 나는 1981년 그가 미국으로 떠나기까지, 그에게 완전히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영적 삶과 세속적 삶은 그와 함께함으로써 완전히 확실하고 안전했습니다. 나는 잠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미국으로 가버렸을 때, 나는 갑자기 그러한 안락함으로부터 깨어났습니다. 그것이 나의 깨달음의 시작이었습니다.

내가 1967년 처음으로 오쇼를 만났을 때, 나는 열정에 불타고 있었고 진리를 향한 나의 갈망은 매우 강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나는 서서히 서서히 잠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오랫 동안 나는 내가 잠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미국으로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이러한 사실에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굳은 결심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점차로 나는 추구한다는 것에 무언가 잘못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늘 무언가를 뒤쫓는 것이 잘못이라고 나는 느꼈습니다. 나는 바깥 어디에서 무언가를 찾음으로써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찾아가고, 길을 묻고, 누군가의 발 아래에 앉고,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정신 수행과 노력의 도움을 통하여 깨달음이 일어날 것이라고 갈망하고 하는 등의 일들이 모두 잘못을 범하는 짓임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단순히 나 자신을 관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마음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의 내면에서 발생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아주 서서히 나는 갈망, 노력, 실천, 수행 등이 실제로는 나의 평화를 파괴하고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깨달음의 추구가 깨달음의 장애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실천과 노력을 놓아버려야 한다고 오쇼는 우리에게 자주 말했습니다. 오쇼는 우리가 결코 그것(깨달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며, 그것은 이미 우리의 본성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바로 앞에 앉아서 나는 수없이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잠이 들어서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잠이 들어 있었고 그래서 오쇼의 말을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이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나는 잠을 깨기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한 첫 번째 일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한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나의 모든 실천과 수행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단순히 보통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였고, 내 가족을 돌보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어딘가에 도달하려고 갈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무엇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내버려둬, 내버려둬. 나는 신경쓰지 않아.”하고 나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내면에서의 갈증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내면의 갈망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과 관련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내가 지난 10년 동안 오쇼와 만나지 않은 이유입니다. 오쇼가 미국으로부터 푸나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아쉬람으로 찾아가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홀로 있으면서 나에게는 모든 것이 안정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문득 나는 추구가 끝났음을 느꼈습니다. 나의 모든 추구는 저절로 사라져버렸던 것입니다. 나는 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어떤 변화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무엇이 되려고 욕구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깨달음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 자신만으로 편안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현재 이 순간의 나로서 행복했고, 평화로웠고, 편안했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좋아. 훌륭해. 나는 지금과 다른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나는 어느 곳으로도 가고 싶지 않아.”하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오쇼가 푸나로 돌아왔을 때, 아쉬람으로 그를 찾아가고 싶은 열정이 나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의문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모든 의문과 추구가 간단히 끝나버렸습니다.

수년 동안 나는 우리집 여기 이 의자에 혼자 묵묵히 앉아있기만 했습니다. 수년 동안 나는 침묵과 홀로 있음 속에서 나 자신과 본성을 즐기기만 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깨달음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추구가 끝이 났고 모든 의문이 사라졌음을 분명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질문할 것이 없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안정되었고, 자신에게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나는 고요가 나에게 찾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서히 서서히 나는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스스로 아는 바로는, 나는 다만 사라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고요 속에서 존재에, 모든 것에, 모든 사람에게 밀접해 있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것도 내 자신 속의 평화를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1993년 1월부터 사람들이 나를 만나러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에게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마두카르 : 당신이 홀로 있음과 고요함 속에 머물게 되기 이전에, 당신은 기본적으로 우리 모두가 오쇼의 아쉬람에서 했던 것들을 하고 있었습니까? 당신은 오쇼의 공동체에서 일함으로써 오쇼와 그의 일에 헌신했습니까? 당신은 가능한한 오쇼의 공동체 속에서 그와 함께 하려고 노력하였습니까? 당신은 오쇼의 명상과 치료집단에 참여하였습니까? 스승에 대한 순복과 헌신이 당신의 기본적 수행이었습니까?

끼란 : 그렇습니다. 그러한 수행들이 바로 오쇼와 함께한 나의 생활이었습니다.

마두까르 : 당신이 적용한 또 다른 방법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정확합니까? 모든 노력을 버리고 ‘다만 존재할 뿐’으로 남아 있은 뒤에야 비로소 당신의 깨달음은 일어난 것입니까? 그것이 정확합니까?

끼란 :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엇이 어떻게 그런 깨달음을 불러왔는지 정확하게 집어낼 수가 없습니다.

마두까르 : 깨달음을 불러온 무언가가 있긴 있었습니까? 어떤 종류의 인과관계가 있었습니까? 보통 우리는 수행이 목표지점으로 이끌어준다고 믿습니다. 깨달음의 과정과 그 과정의 내용에 관하여 가능한한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당신의 과정을 묘사(描寫)함으로써 당신은 제가 제 자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나아가 당신의 묘사를 통하여 저는 아마 저의 공부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끼란 : 깨달음의 과정에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이 저의 모든 영적(靈的) 여행에 관한 저의 기본적인 이해입니다. 깨달음이란 당신이 마음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는 행위 - 예컨대 명상이나 뭐 그런 것들 - 때문에 발생하는 그런 사건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무엇이 원인이 되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노력을 통하여 성취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은 잃어버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내가 이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깨달음을 찾고 있는 당사자인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큰 주제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바깥 어딘가를 찾아다닙니다. 우리는 늘 무슨 목표를 뒤쫓고 있습니다. 우리는 깨달음을 찾습니다. 우리는 불성을 찾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찾는 일에 너무 바쁘기 때문에, 찾고 있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깨닫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가 이런 깨달음을 원합니까? 누가 부처가 되고자 합니까? 우리가 이 주요한 질문을 잊고 있을 때, 우리는 모든 방향으로 노력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밖에서 찾는 모든 노력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찾는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까? 질문자가 누구입니까? 당신이 이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를 당신이 알고 싶어하기 때문에 당신은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모순입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사라진 것이 아닌데, 당신이 어딘가에서 당신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당신을 찾는 모든 노력과 모든 행위는 당신을 당신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난 사람은 누구나 오직 모든 노력과 모든 행위를 내려놓은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목표를 향한 행위를 한다는 그런 기본적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행위는 마음에 의하여 만들어집니다. 마음은 의식적 행위라는 언어만을 이해합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조용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 봄이 오면 풀은 저절로 자랍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쇼는 이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가 그 말을 반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용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하고 우리는 계속 묻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의미였습니다. 우리는 항상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그것을 해야 하며 어떻게 그곳에 도달할 것인가’를 알고 싶어 합니다. 모든 이런 질문들은 마음이 묻는 것입니다.

우리의 탐구에서 우리는 마음 너머에 있는 어떤 공간을 찾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도달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그 공간은 마음을 놓아버렸을 때에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실제로 그 공간은 마음이 녹아 사라졌을 때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음은 틀린 도구입니다. 여기에서 그것은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마음이라는 도구를 써서 어떻게 그 공간에 도달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공간에 도달하는 데에, 마음은 도움이 되는 도구가 아니라 장애물일 뿐입니다. 명상수행, 심리치료, 집단수행, 기타 모든 그런 터무니 없는 짓거리들이 마음에 의하여 행해집니다. 우리는 그 공간에 도달하기 위하여 마음을 사용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우리 모두는 동일한 실수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쇼의 면전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수행들은 실제로 깨어나는 데에는 장애물들입니다.

나는 말합니다. “모든 노력을 그만두시오! 모든 의도적 행위를 내려놓으시오! 멈추고 바라보기만 하시오! 다만 지켜보시오! 단지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기만 하시오! 무엇이 되겠다는 모든 욕망을 내려 놓으시오!” 당신이 당신의 모든 행위를 내려놓았을 때, 그 즉시 행위자가 녹아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행위자는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이 해체되고 녹을수록, 존재는 더욱 그 자신의 작용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에 당신은 당신 자신이 자유로움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아아! 그것이 이런가? 이것이 그것인가? 이것이 그것이구나!”라고 당신은 스스로에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웃음이 나올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보고 다만 웃을 뿐입니다. 그것은 너무 간단하고 너무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면, 마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의 이해를 넘어서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사용하고 있는 한, 스승은 당신에게 무언가 할 일을 주어야 합니다. 스승은 당신에게 당신이 당신의 모든 노력을 통하여 절망하고 지쳐버릴 때까지 당신에게 무언가 할 일을 줍니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 당신은 그 모든 노력들에서 손을 놓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끼고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당신은 완전히 절망하게 됩니다. 이 완전한 절망의 상태에서 당신은 완전히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당신은 말합니다. “아! 아! 나는 더 이상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끝장났다.” 이러한 완전한 포기에서 당신은 완전한 받아들임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당신은 존재와 당신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받아들임이 당신의 모든 의지적 노력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는 마음의 뿌리를 몽땅 잘라버릴 것입니다. 그 영양분이 없으면 자아(ego)는 녹아 없어질 것입니다.

당신 주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지켜봄(witnessing)으로써 그리고 아무 것도 애써 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천천히 천천히 이러한 받아들임의 상태는 실현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일은 다만 발생하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이 구경꾼의 상태에 도달할 때에, 비로소 당신은 ‘그곳’에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오랜 구도(求道) 여행의 종착점에 있는 것입니다.

마두까르 : 당신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군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어떤 스승도 도울 수가 없다. 어떤 기술이나 방법 그리고 어떤 명상의 실천도 깨달음이 일어나게 하지 못한다.” 다른 한편 저는 구도자들이 충고나 안내를 받으려 당신을 찾아오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심지어 저는 사람들이 당신 집의 명상실(冥想室)에서 명상하기 위하여 앉아 있는 것도 봅니다. 당신은 그 사람들에게 명상의 기술을 가르쳤습니까?

끼란 : 아니요. 나는 어떤 기술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나는 고집스럽게 “아무 것도 도울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당신들이 깨어나지 않고 있는 한, 그리고 당신들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한, 나와 함께 앉아 있어 봐야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스승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들을 도와주는 친구로서 여기에 앉아 있을 뿐입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또는 내가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당신들을 도와주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들은 마치 스스로의 눈을 감고서 “나는 빛을 볼 수가 없어!”하고 울부짓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나는 말합니다. “그저 눈만 뜨시오. 그러면 그 빛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도울 수 있는 방식입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말합니다. “그저 눈만 뜨십시오.” 당신들에게는 “눈을 뜨시오.”라는 말조차도 어떤 행위를 의미하는 듯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그것을 더 잘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눈을 뜨시오.”라는 말이 행위가 아님을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전달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깨어남이란 사실 눈을 뜨는 노력 조차도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깨어나는 것입니다. 마치 당신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당신들 모두가 잠에 빠져서 꿈꾸며 울부짖고 있는 것을 봅니다. 나는 단지 당신들을 흔들어서 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말합니다. “깨어나세요, 울지 말고. 꿈꾸지 마세요.”

이것이 내가 여기에서 하고 있는 일입니다. 여러 해 동안 명상(冥想)한다는 버릇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는 명상실에 앉아 있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들이 여전히 자기들의 꿈을 즐기고 싶어할 동안은 그들은 명상 속에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들이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방에다 앉혀둡니다.(웃음) 그러나 나는 그들을 때리고 반복해서 흔들면서 “깨어나시오.”라고 고함을 지를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웃음) 나는 어떠한 방법이나 행위도 제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을 즐긴다면, 그냥 둡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앉지 않습니다.

마두까르 : 그러나 당신은 여기에 스승으로서 앉아 계십니다.

끼란 : 그들이 방에서 나올 때, 나는 다시 그들을 때립니다. 나는 그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마두까르 : 그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끼란 : 나는 그들이 잠잘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 왔을 때, 나는 다시 그들을 흔들어 깨웁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깨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나는 그들을 깨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두까르 : 당신은 바로 지금 그것을 할 수 없습니까? 저를 때려주십시오, 제발! 저의 잠을 완전히 깨워주십시오.

끼란 : 나는 지금 그것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대화에서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두까르 : 알겠습니다.

끼란 :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꿈을 즐기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두까르 : 바로 지금 제가 명상실에서 나와 당신 앞에 앉아 있다고 한다면, 당신을 저에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끼란 : 지금 이것은 꿈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즐기고 있구요. 나는 당신과 함께 나의 깨어남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에게는 소용 없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만약 내가 항상 당신을 깨우려고만 한다면, 나는 당신의 원수가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친구로 남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내가 계속 당신을 때리고 흔들기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선은 나는 당신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마두까르 : 그것이 당신 집에서의 공부모임(satsang) 뒤에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이유군요!(웃음)

끼란 : 예, 나는 당신들의 친구로 남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내가 당신들을 심하게 때려야 하기 때문에, 친구로 남는 것이 당신들에게는 힘든 것입니다만. 나는 당신들이 여기에서 도망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때로 나는 매우 가혹하게 되어야 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마두까르 : 당신은 가르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하십니다. 한편으로 당신은 구도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3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둘째,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셋째,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완전하게 깨어 있어라. 저에게는 이러한 제시가 깨닫기 위하여 실제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누구를 향하여 이야기 합니까? 누가 듣는 사람입니까?

끼란 : 그런 질문은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논리적인 질문입니다. 당신은 내가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누가 듣고 있는지, 누가 이러한 받아들임을 실행해야 할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을 나는 언어로써는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말할 때에 나는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제시하는 이유입니다. 첫째, 완전한 신뢰로써 존재에 내맡겨라. 둘째, 사랑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라. 셋째, 완전히 깨어 있음으로써 모든 일을 하라.

이것들은 사람들이 노력과 찾기를 그만두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계속하여 그들에게 말하는 세 가지 제안입니다. 내가 이러한 제안을 할 때에는 마치 어떤 방법이니 기술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바로 이 순간 단순히 내 제안대로만 산다면, 당신은 당신자신에게로 즉각 되돌아 가고 있음을 알 것입니다. 그런 제안들이 당신을 당신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집의 창문에서 아이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리온 얘들아! 식사가 준비되었단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하여 어머니는 음식이나 쵸컬릿을 가지고 그들을 유혹합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와 꼭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당신들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나의 제안들은 당신들을 집으로 유인해 들이기 위한 미끼들입니다. 그 미끼들은 목적은 당신들을 스스로의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존재에 대한 내맡김 속에서 당신의 모든 노력은 자동적으로 떨어져 나갑니다. 오랫 동안 당신은 자아(ego)를 통하여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애써왔습니다. 당신은 이 세계에서 당신의 지위를 표시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맡길 때, 당신은 자신이 존재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존재 속에서 당신은 조그마한 점일 뿐입니다. 이 광대한 존재 속에서 당신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존재 속에서 모든 것은 다만 일어나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웃기는 생각입니다.

당신은 어디에 도달합니까? 인류는 달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래서 어쨋단 말입니까? 인류는 에베레스트의 꼭대기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래서 어쨋단 말입니까? 인류는 바다의 밑바닥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래서 어쨋단 말입니까? 위대한 성취라구요? 당신들이 인류의 위대한 성취라고 부르는 것들은 정신의 영역에서는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그것들은 개미가 땅에서 마이크의 꼭대기로 기어오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개미의 기어오름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인류의 성취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아(ego)에게는 그런 일들이 커다란 의미를 가집니다. 이 광대한 존재 속에서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전체 존재는 무한한 과거로부터 계속 작용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60년 혹은 80년 혹은 100년이라는 짧은 삶 동안, 당신이 이 존재에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근본적으로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이 지구 위에서 당신에게 삶을 준 존재를 신뢰해야만 합니다. 신(神)이 당신에게 일어날 일을 결정하도록 버려두세요. 왜 방해하려고 합니까? 존재가 당신의 내면의 목소리로 말할 때에는 그것을 듣고 따르세요.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존재가 알고 있다고 믿으세요. 존재가 당신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버려두세요. 당신이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신뢰로써 존재에게 내맡기라는 나의 제안은 이러한 ‘버려둠’을 가리킵니다.

외부 세계의 존재에 대한 내맡김은 세속적 성취라는 외적 여행을 줄여줍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내면을 향하여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내면의 여행을 줄여줍니다. 당신은 내적 성장과 내적 성취에 대한 모든 요구를 포기합니다. 내면의 추구와 내면의 여행과 영적 성장 등을 제거하면, 사랑이 남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미움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하는 욕망에서 생겨납니다. 받아들이지 못함과 미움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외면적으로 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당신은 자신을 향상시키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증오, 분노, 질투 등과 같은 모든 마음의 병들을 제거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치료 집단(therapy groups) 등과 같은 모든 그러한 종류의 무의미한 행위에 매달립니다. 당신은 마음을 씻어내는 일에 매달립니다. 모든 이러한 행위들은 내면적 추구의 일부분입니다.

나는 말합니다. “왜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을 받아들이십시오. 당신의 내면적 외면적 추구를 완전히 버리십시오.” 받아들임은 사랑을 가져옵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도 믿지 못할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맡김과 받아들임은 당신을 구경꾼(witness)이 되게 하고, 구경꾼이 되면 어떤 행위나 노력이나 수행이나 방법도 불필요합니다.

자신을 받아들임으로써 당신은 마음의 뿌리를 끊는 것입니다. 마음은 당신이 무엇이 되려고 할 동안만 살아 있습니다. 되어감이 없을 때에는 목표도 없습니다. 목표가 없는데 마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제 마음은 아름다운 도구일 뿐입니다. 늘 무엇이 되고자 투쟁하던 그 마음을 당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무엇이 되고자 하는 싸움은 끝이 납니다. 이제 당신은 마음을 붙잡고 싸우지 않습니다. 당신은 마음을 이기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당신은 마음을 깨끗이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마음은 진흙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놓아두면, 마음은 저절로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받아들임이 있기 때문에 진흙은 가라앉습니다. 어떤 노력이나 행위도 없을 때, 마음은 고요해지기 시작합니다.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받아들임을 통하여, 마음은 가라앉고 고요해 졌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기적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그것을 수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은 물을 것입니다. “아무런 노력이나 행위도 없었는데, 어떻게 이런 평화와 고요와 기쁨이 가능한가?” 당신이 온갖 방법으로 추구해왔지만, 당신은 평화와 기쁨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그것을 기적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당신이 자신을 받아들이고 존재의 내면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당신은 문득 구경꾼이 됩니다. 행위자인 마음은 사라집니다. 자아도 사라집니다.

당신이 단순히 구경만 계속한다면, ‘당신은 다만 보고 있을 뿐이고’ ‘모든 일은 다만 일어나고 있을 뿐임’을 문득 깨닫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이 문제, 슬픔, 고통 등과 같은 모든 세속적 틀의 일부가 아니라 아름다운 전체 존재의 일부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일어나는 일들을 다만 구경하며 보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당신은 다만 당신 내면의 목소리와 내면의 힘을 따라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 목소리와 힘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든 개의치 않고. 당신은 당신을 존재에 내맡김으로써 당신의 모든 속박과 집착을 제거한 것입니다. 당신은 일들이 발생하는대로 내버려 두고서, 사건들의 흐름 위를 떠 다닙니다. 당신은 헤엄을 치지 않습니다. 당신은 지금의 존재와 지금의 당신 자신을 받아들인 채로 떠 다니는 것입니다.

당신이 물 속에서 다만 긴장을 풀고 쉬어버리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흐름은 스스로 원하는 곳으로 당신을 데려가고,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 흐름에는 정해진 목적지가 없습니다. 이 흐름은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힘입니다. 당신은 내면의 목소리와 내면의 흐름을 따라서 계속 떠 있습니다. 그 목소리와 흐름은 항상 그 목소리와 흐름을 움직이고 있는 생명력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떠 다니는 것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어떤 노력이나 갈등도 없이 다만 떠 있기만 할 뿐입니다. 당신은 다만 보면서 구경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당신은 존재 전체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마음의 짐에 짓눌리지 않고 쉬게 되면, 당신은 문득 커다란 기쁨이 샘솟아 오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장애도 없기 때문에 고요함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존재가 당신의 인간성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당신은 문득 고요해집니다. 당신은 갑자기 즐겁게 됩니다. 당신이 너무나 편안히 풀어져 있기 때문에, 기쁨이 솟아오르기 시작합니다. 사랑이 당신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힘이 당신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존재의 향기가 당신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즐거움, 사랑, 아름다움, 향기 등은 모두 존재의 성질입니다.

당신이 고요할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의 공간인 존재와 하나가 됩니다. 그때 당신은 당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자연의 상태로 돌아온 것이며, 당신은 그곳에 영원히 머무릅니다. 존재와 하나가 되면, 즐거움과 사랑이 당신의 생활방식이 됩니다. 당신은 다만 한 순간 한 순간 살아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매 순간을 기쁨으로 찬양합니다. 당신의 어디에도 갈등은 없습니다. 당신은 매 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길이 어디로 가건 그것을 즐깁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두까르 : 이야기의 초점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당신을 방문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오랫 동안 오쇼의 제자였습니다. 그들은 당신과 함께하여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라고 당신에게 오는 것입니까? 그들의 요구는 무엇입니까?

끼란 : 나한테 물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마두까르 : 그 질문을 달리 하겠습니다. 그들의 요구에 무언가 공통점이 있습니까? 그들은 동일하거나 비슷한 질문을 합니까?

끼란 : 예. 그들이 처음 올 때, 그들은 모두 깨달음을 요구합니다. 보통 그들은 깨달음에 관하여 동일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깨달음에 관하여 들은 이야기가 무엇이건 간에, 그들은 어떤 특별한 일이 일으나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들은 ‘수천개의 태양이 폭발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깨달음을 원합니다. 그들은 깨달음에 관하여 모든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옵니다. 그들이 나에게로 오면, 나는 그들의 의문을 폭파시켜 버립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나는 그들의 의문을 날려 버립니다. 나는 그들을 아주 세게 때립니다. 나는 그들이 내가 지금까지 당신에게 말한 것들을 깨닫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마음의 용도에 관하여 말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말해 줍니다. 나는 그들이 그것을 이해하도록 만듭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그들은 내 말을 듣고 나면, 더 나아짐을 느낍니다. 그들은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가 말한 것을 실천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절망에서 벗어났을 때, 그들의 미소짓는 얼굴을 나는 볼 수가 있습니다. 처음으로 나를 방문한 뒤에 그들의 얼굴이 밝아짐을 나는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웃기 시작하고, 편안해지게 됩니다.

마두까르 : 당신은 오쇼의 곁에 매우 오래 있었기 때문에, 오쇼의 제자들을 잘 압니다. 당신도 같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오쇼 제자의 마음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깨달음에 대하여 그리고 스승으로서의 당신에 대하여 그들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의 인상을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끼란 : 당신의 관찰이 옳습니다. 나를 방문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오쇼와 함께 지낸 사람들입니다. 첫째, 나는 그들이 여전히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두번째, 나는 그들이 마지막 도약을 기다리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들은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숙제를 다 한 사람들입니다. 단지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아직 마지막 도약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다만 마지막으로 한 번 밀어주기만 하면 그들은 그곳에 도달하게 될 그런 상황입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오쇼의 회상에서 수 년 동안 지내면서 오쇼가 제시하는 모든 종류의 명상을 다 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들은 완전한 좌절의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성취입니다. 자기자신에 관하여 솔직해져서 수 년 전의 자기와 지금의 자기가 여전히 꼭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나를 찾아오는 수행자들은 그들의 참된 상황을 인정할 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의 내면 깊숙이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수행자들은 자신들의 얼굴을 숨깁니다. 그들은 정직하지 못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신(不信) 속에서 이렇게 물을 수도 없습니다 : “내가 그렇게 오랫 동안 오쇼와 함께 살아 왔는데도 아직 아무것도 얻지 못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전혀 바뀌지 않았어.” 나를 찾아 오는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목적지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들의 정직함 때문에 그들은 그들이 찾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정신 세계에서는 정직이 첫째 조건입니다. 당신은 자신에 대하여 정직해야만 합니다. 정신 속에서 당신은 스스로를 속일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면,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들도 속이고 있습니다.

깨달음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당신 자신에게 솔직히 “깨달음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말하십시오. 만약 당신에게 변화가 없다면,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 동안 그렇게 많은 노력을 투자한 것은 어떻하고? 마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 “어떻게 내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내가 그렇게 많은 시간, 돈, 노력, 믿음 등등 모든 것을 다 바쳤는데.” 만약 당신이 내일 아쉬람(선원)을 떠나 사람들에게 “나는 여전히 이전의 나와 같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비웃을 것입니다. 당신의 정신적 환경에 의하여 조성된 아집(我執 ego)은 당신이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만큼 충분히 정직하지 못하다면, 당신이 깨달을 기회는 없을 것이고, 도리어 당신은 당신의 꿈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반면에 언젠가는 당신이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정직하다면 당신은 깨어날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진실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에게 옵니다. 딴 사람들은 아마 그들이 스승에게 봉사함으로써 도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오지 않습니다.

오쇼가 애쓴 목표는 아직까지 달성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그의 문하인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음으로써 그들의 꿈 속에 계속 남아 있다면, 오쇼의 꿈은 달성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만약 당신이 깨어난다면, 당신은 다른 어디로 가거나 다른 누구를 만나거나 ‘그것’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비록 당신이 깨어난다 하더라도, 당신은 아쉬람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신(神)’에 도달치 못해서 신이 되지 못했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나는 그렇게 오랫 동안 오쇼와 함께 있었지만 아무것도 변화된 것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세요. 당신 자신에게 정직하십시오! 왜 가면을 쓰고 다닙니까? 왜 위장(僞裝)을 하고 다니면서 오쇼의 등 뒤로 당신의 얼굴을 숨깁니까? 왜 항상 오쇼를 마음 속에 그립니까?

마두까르 : 아마 오쇼의 마지막 말이 “나는 당신들에게 나의 꿈을 남겨준다.”이었을 것입니다. 오쇼의 뜻은 우리가 꿈과 실제 사이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일까요?

끼란 : 글쎄요, 만약 당신이 실제로 오쇼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의 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전생애를 통하여 오쇼는 그의 제자들이 모두 부처(깨달은 자)로서 꽃필 수 있는 불국토(佛國土)를 건설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의 그의 제자들이 모두 부처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수천명의 부처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꿈입니다. 그의 노력은 이런 목표를 향해 있었습니다. 일생 동안 그는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싸웠습니다. 그는 그의 꿈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하여 불국토(佛國土)를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죽어면서까지 그는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 “나는 나의 꿈을 당신들에게 남긴다. 언젠가는 당신들 모두 스스로의 불성(佛性)을 알 것이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 나는 오늘날까지 그의 꿈이 얼마나 성취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면담 2

다만 쉬어라. 그리고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아라.

나는 첫 만남 뒤에 여러 번 끼란을 방문하였다. 다음의 대화는 1994년 3월에 푸나에 있는 그의 집에서 녹음된 것이다. 그때 나는 끼란과 그의 가르침에 관한 비디오를 편집하고 있었다. 이때 방문자는 나 혼자뿐 이었다.

명상(冥想)은 없다 :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마두까르 : 제가 제 친구들에게 선생님에 관하여 말하면, 그들은 흔히 이런 질문을 합니다 : ‘이 끼란이란 사람은 누구인가?’ 선생님에 관하여 좀 이야기해 주십시오. 이렇게 묻겠습니다 : ‘끼란, 당신은 누구입니까?’

끼란 : 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고 있습니다. 당신들과 나 사이에 있는 유일한 차이는 이것입니다 : 당신들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고, 나는 깨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현상(現象)과 삶은 다만 꿈이요 연극일 뿐임을 나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삶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 분리됩니다. 나는 다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다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다만 삶을 즐기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불만도 없습니다. 나에게는 도달해야 할 목표나 성취해야 할 목적이 없습니다. 나는 영적인 삶으로부터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내 자신의 자연적 공간으로 돌아와 있는 것입니다.

외면적으로는 나는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평범할 뿐입니다. 내면적으로 나에게는 어떤 절망이나 고통도 없습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더 많이 이해할수록 나는 더욱 평범해 졌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이러한 알수 없음에 충격받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알거나 이해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 그것을 이해할까요? 어떤 지식이나 이해도 요구하지 않는 앎과 단일성을 나는 어디에서 얻을까요? 나는 존재 자체의 일부분인 동조(同調) 혹은 공명(共鳴) 때문에 그것을 얻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주장할 것이 무엇 있습니까? 아침에 당신이 꿈에서 깨어나 지금 잠이 깨어 있다면, 당신이 무엇을 주장하겠습니까? ‘나는 깨어있다.’ ‘나는 위대하다.’라고 주장할 것입니까? 그것이 성취입니까? 그것은 자유(自由)의 느낌일 뿐입니다. 당신은 번뇌(煩惱)라고 하는 모든 그러한 꿈들로부터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당신은 자신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당신은 편안해지고 삶을 즐기고 삶을 찬양하게 됩니다.

마두까르 : 만약 당신이 가르치지도 않고 스승도 아니라면, 당신이 하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끼란 : 나는 아무것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교육은 어떤 지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질문하고 있을 때, 나는 당신의 지식을 증가시킬 대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나는 다만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가질 뿐입니다. 나누어 가진다는 것과 가르친다는 것은 다릅니다. 나누어 가진다는 것은 당신의 즐거움, 침묵, 이해를 나누어 가지는 것입니다. 나는 깨어 있기 때문에, 나의 깨어 있음을 나누어 가집니다. 당신들이 꿈 속에서 울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을 흔들어 깨우려 하는 것입니다.

“나를 꿈에서 깨울 방법이나 기술을 좀 제공해 주세요, 제발!” 하고 당신은 꿈 속에서 누군가에게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누군가가 당신의 요구에 응하여 당신에게 어떤 기술을 제공해 준다 하더라도, 그 사람과 그가 제공한 기술은 모두 역시 동일한 꿈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사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꿈꾸고 있는 당신을 흔들어서 깨우는 것 뿐입니다. 꿈 속에서 무슨 기술이 소용 있겠습니까? 당신이 꿈에서 깨어날 만큼 세차게 치고 흔드는 것 밖에, 가능한 소통(疏通)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밖의 것을 나누어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깨어났을 때, 당신은 다만 웃을 것이고 나도 웃을 것입니다. 이해하거나 알 것은 아무것도 없고, 도달해야 할 곳도 없습니다. 모두가 꿈입니

댓글목록

수수님의 댓글

수수 아이피 (69.♡.240.165) 작성일

언젠가  다큐 영화 황소와 할아버지가 나오는  영화를 감명있게 봤었습니다
제목이 코에다 구멍을 뚫어 넣는 링을 칭하는건데 생각이 안나네요
앉은 황소님이 올려 주신 끼란과의 대화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언젠가 공유님이 올리시어 그때도 잘봤었는데

지금 여기라는 단순한 사실이 수수가 쌓은 상들을 깨부시기 위하여 이렇게 길고 섬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섬세히 말씀하셔도 스스로 자신으로 가지 않고서는 또하나의 상을 만들뿐.....

감사합니다 앉은황소님

수수님의 댓글

수수 아이피 (69.♡.240.165) 작성일

요즘들어 깨달음이든지 진리라든지 그런말들이 참 무색해졌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황소처럼 뚜벅뚜벅  삶을 걸어갈뿐
끼란과의 대화를 통해 성장은하고 구체적으로 좀 논리적으로 알고 싶어했던 수수를 보았습니다
맞아요 내가 자신을 더 많이  알아갈수록 나는 더욱 평범해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되는 일은 지식을 만족하는 대답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냥 그럴뿐.....

끼란님 사랑해요
수수도 끼란님처럼 바람끼가 많았어요 ^^
자신을 버리고 밖으로만 ㅋㅋㅋ
지금도  바람이 불고,  오고 가지만 그것에 저항하며 쓸데없이 힘을 소모하지 않아요

앉은황소님의 댓글

앉은황소 아이피 (222.♡.251.57) 작성일

'아무리 섬세히 말씀하셔도 스스로 자신으로 가지 않고서는 또하나의 상을 만들뿐.....'

와닿는 말입니다...^^

정말반갑습니다.수수님

저는 들어가기 전 한달동안, 선생님의 실험을 해보려고 합니다.
살아오는 동안 단한번도 무언가를 습득하는 방식을 버려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오늘 절감했습니다.
또 한달동안 아무것도 하지않는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그만큼 뒤쳐진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는군요.
불안한만큼 꼭 그만큼 그무엇을 하는행위에 저의존재를 이입킨거겠죠...

정말,,, 한순간도 그냥 내버려둔적이 없었네요...^^

수수님의 댓글

수수 아이피 (69.♡.240.165) 작성일

앉은 황소님 화이팅 !!!
큰 결심을 하셨군요
그 불안감 보다 더 용기있게 무너지는 황소님께 수수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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