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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와 '헬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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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봉식이할매 (175.♡.214.244) 댓글 1건 조회 7,151회 작성일 15-10-1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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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나는 지난 5년간 히키코모리와 같은 삶을 살았다. 온종일 방에서 게임만 했고 게임이 지루하면 드라마를 내려받아서 봤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히키코모리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병의 두려움에서 도망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집안에 틀어박
히게 되었고 점점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히키코모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
갇힌 쥐가 된 기분이랄까. 계속된 사회와의 단절 속에서 나에 대한 희망도 점점 잃어갔다. '나'라는 인간에게서 한 줄기 빛도 
찾지 못했기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하루에 두 번씩 꼭 먹어야 하는 약도 끊어버렸다. 약은 살고 
싶은 사람이 먹는 것이므로 나 같은 인간은 먹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끝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 속에서 죽지
못해 살고 있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삶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지구가 태양을 5번 돌고 다시 6번째로 돌던 2014년 4월 나에게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아무리 삶을 포기했다 치더라도 삶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희망은 가슴 깊은 곳에 숨겨 놓았다. 그렇게 
변화에 대한 생각만 있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던 때에 미드 <브레이킹 배드> 를 보게 된다. 가족을 위해 마약 제조를 
하는 화학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주인공이 너무나 대단했다. 마약을 팔아 큰돈을 벌었다고 해서 대단하게 생각한
건 아니다. 돈보다는 폐암에 걸렸지만 죽을 힘을 다해 역경을 해체 나가는 주인공의 삶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인공이 무엇 때문에 저렇게 바뀌기 시작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주인공이 저렇게 변했을까? 끝없이 나는 주인공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냐면 나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살고있는 삶이 너무나 끔찍해서 정말로 벗어나고 싶었다. 변하고 싶다는 의지가 간절해서였을까 나에게 아주 작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드라마 주인공의 외부적인(가정의 불화, 아픈 몸) 요인은 더 악화되었지 좋아지지 않았어." 

"맞아, 변화는 마음에서 시작됐구나!" 

"마음이 변해서 그런 거구나!" 

"그래 맞아! 생각을 바꿨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구나!"

나에게 찾아온 희망의 불꽃이 시들기 전에 얼른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나도 생각을 바꾸면 변할 수 있을까?"

질문과 동시에 가슴 속에서 튀어나온 한 줄기 빛은 나를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는다. 

"상우야 너도 할 수 있어!"

죽은줄만 알았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눈앞에 빛이 사라지기 전에 잽싸게 낚아챘다.
그리고 살아서 꿈틀거리는 희망을 움켜쥔 체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변할 수 있을까?" 
 
 히키코모리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나'와, 히키코모리의 삶에서 벗어난 이후의 '나'를 비교해보면 변화의 시작은 생각에서 
시작됐다. 몸이 아픈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생각이 바뀐 후 나는 게임 대신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는 대신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니 책과 관련된 모임에 참가하게 되고 서서히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변하고 
있는 모습을 매일 지켜보는 것이 게임 케릭터를 키우는 것보다도 더 재밌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매일 하루가 게임같이 재미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의 그런 변화의 시발점인 생각의 차이를 <미움받을 용기>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프로이트
의 원인론적 사고방법과 아들러의 목적론적 사고방법의 차이라고. 원인론적 사고방식을 나쁘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에게
닥친 불행을 과거의 잘못으로 돌릴 여지가 많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과거의 잘못을 핑계 
삼아 불행 속으로 계속 머무르게 되는 늪 속에 빠질 위험이 많아진다. 이와는 반대로 목적론적 사고방법이란 트라우마 같이 
현재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려고 하는 의지가 숨어있다. 지금 나에게 닥친 문제나 삶에 전반적으로 뿌
리내리고 있는 나의 불행들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 가려고 하는 힘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경규가 진행했던 힐링캠프에 법륜 스님이 나오신 적이 있다. 그때 이경규가 법륜스님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데. 

"스님 제는 가끔 혼자서 술을 마실 때 이런 고민을 합니다."

"내가  태어났는지 궁금합니다."

이경규 질문에 대한 법륜 스님의 대답이 참 기가 막힌다. 

"이경규 씨 그건 질문이 잘못되었다." 

"내가  태어났는지에 대한 질문보다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태어났는지.'라는 물음은 원인론적 사고방법이고,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목적론적 사고방법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륜스님은 이미 ''라는 질문과 '어떻게'라는 질문의 차이를 알고 계신 것이다. '내가  태어
났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것은 마치 출구가 없는 미로에 쥐를 풀어 놓는 것과 같다. 그래서 법륜스님은 이경규의 질문을 나쁜
질문이라고 이야기했고 대신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버리신다. 원인론적 사고방식은 과거를 주시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목적론적 사고방식은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니 ''라는 질문 대신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며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자.
 
 요즘 인터넷에 유행처럼 떠도는 말이 있다. '헬 조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마치 지옥 같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신생 용어이다. 무덤에서 편히 자는 아들러를 깨워서 이러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준다면 과연 아들러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미움받을 용기>를 읽는 동안 계속 궁금했다. 그래서 죽을 각오를 하고 아들러를 깨워 질문을 던져 봤다.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  
<미움받을 용기>  P.319 
 
'헬 조선'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쓰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주인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자신의 삶에 주체자로 사는 사람이라면 결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지옥'으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대
민국은 지옥이야!" 그러니 우리의 말을 믿으라고 윽박질러도 주체자의 삶을 사는 사람은 남의 말을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엉뚱한
물음을 던질 것이다. "대한민국이 지옥이라면,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세계를 만드는 사람
이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지옥도 내가 만들고 천국도 내가 만들다대한민국을 '헬 조선'이라고 부르는 
람들은 자기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내고 있다.

댓글목록

여름가지님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83.♡.231.39) 작성일

봉식이할매~.
새벽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하고,
커피한잔과 함께 조용히 묵상에 잠기는 이 시간이 저는 좋습니다.
이 좋은 시간을 봉식이할매와 함께하고 싶어 댓글을 달아 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철저히 외면했었고,
게임에 빠져듬으로써 자신의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마비시키는 '히키코모리'의 삶은,
너무나 끔찍해서 저라면 단 하루도 참아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변하고 있는 모습을 매일 지켜보고,
자신의 육체적, 심리적 고통에 보다 깊이 관심을 두는 것, 그것이 곧 '어떻게'를 통해 온
마음의 질적인 변화(자신에 대한 철저한 외면에서 관심과 사랑으로 바뀌었으니...)이자,
내적혁명일 것입니다.

며칠전에 이런 기사를 읽었습니다.
'세서'라는 태국계 미국인입니다.
이 친구는 태국에서 다리없이 태어나서 버림받고 미국으로 입양됩니다.
(비극의 주인공이 갖추어야할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이 친구는 버림받았고, 양다리가 없지만,
손으로 할 수 있는 운동과 활동들을 찾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갑니다.

버림받았다는 마음의 한계에도 갇히지 않고,
또 다리가 없는 육체적 한계에도 갇히지 않는,
이 친구는 어떤 내면의 힘을 깨달은 거겠죠?!!!, 상우씨처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No legs, no limit
(다리가 없으니, 한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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