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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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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2건 조회 7,061회 작성일 07-07-1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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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엄마가 자개농을 들일 때 붉게 웃던 얼굴을 기억한다.
자개농은 어렵게 어렵게 계를 들어 장만 하신 것이다. 집안의 세간 살이 중에 자개농이
으뜸이라 말버릇이 되었지만 엄마는 틈만 나면 윤이 반질반질 나게 자개농을 닦으셨다.
가세가 기울어 이사를 여러 번 옮길 때도 이삿짐 일꾼을 따라 다니며 흠이 가지 않도록
당부를 하셨고 시집간 누나가 어린 쌍둥이 조카를 맡길 때에도 자개농만큼은 미리 담요와
수건으로 잘 덮어 두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자개농은 아롱거린다.
조개, 전복껍질, 소라를 갈아 까만 칠기 바탕에 수놓듯 붙여놓은 양각에는
새, 달, 사슴, 공작, 꽃, 바위, 나무, 잉어, 물결의 갖가지 모양이 새겨져 있다.
자개농의 오른쪽 모퉁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날아오르는 기러기의 오른쪽 날개가
살짝 부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 흠은 17년 전 집안이 이 모양 이 꼴인데 어떤 여자가 들어와 살려구 그러겠노.하고
그만 울분에 받쳐 아침 밥상의 국그릇을 내가 던졌기 때문이다.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그 참한 애가, 그 참한 애가........ 아무런 말없이 눈물로 옆에서 걸레질만 하셨다.
그 당시 그 때 눈이 먼 시절, 그 흠의 상처는 마음 속 환부를 다시 아릿하게 누른다.
원목 나무 결이 곱게 살아있는 현대식 가구에 익숙한 나에게 자개농은 아무래도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이지만 ‘여자는 죽을 때까지 여자이다'라는 말처럼, 나는 여자의 마음이
들어간 사물에 대해서는 아직 까마득하다.
모든 어머니는 결국 할머니가 된다는 뻔한 사실을 요즘 좀 체감하고 있지만
차츰 삭아가고 줄어드는 작은 몸체를 움직이며 오늘도 부지런히 자개농을 닦는
모체 뒤의 까만 자개농을 바라본다.
모란이 피어나고 부엉새 지저귀며 창포잎 흔들릴 때 바구니 한옆에 끼고
나물 캐러 다니는 산골 처녀.
구름 흐르는 언덕의 휘어진 소나무 등걸에 한 손 얹고 살포시 눈 감으며 영롱한
꿈에 젖은 처녀가 지금은 가날픈 어깨와 꾸부정한 허리를 뒤흔들며
죽음의 검은 옻칠 사이로 자신이 돌아갈 환한 빛의 세계를 혹시 닦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롱 위
사슴 한 마리 언덕 위에 떠오른 무지개 빛 달을 바라보려 고개를 한 옆으로 들었다.

댓글목록

선우님의 댓글

선우 아이피 (59.♡.73.129) 작성일

제목은 자개농인데, 어머니의 내리사랑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자몽님의 글 잘읽고 갑니다.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03.♡.106.18) 작성일

님에게 빌리본 Bily Vaughn 악단의 Petite라는 곡을 들려드리고 싶네요.
아니면 벤 웹스터의 '미스티'를 들려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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