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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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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봉식이할매 (175.♡.214.244) 댓글 2건 조회 7,969회 작성일 15-06-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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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트와  아무런 관계없음)


누군가가 아무런 이유 없이 당신을 노려보며 욕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을 할 것인가?


상쾌하지만 않은 일요일 오후 나는 언제나 그랬던 거처럼 목욕탕으로 향했다.

자고 일어나면 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그 뻣뻣함을 풀기 위해 난 온탕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뿌연 연기가 가득한 목욕탕 안. 나는 가볍게 샤워를 하고 온탕으로 향했다.

39도의 물에 온몸을 푹 담갔다. 두 눈을 감고 온몸으로 퍼지고 있는 따뜻함을 만씩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노려보는 듯한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 불편함은 오늘 처음 보는 어느 젊은 사내의 눈에서 분출되고 있었다.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젊은이. 키는 한 175cm 정도에 몸집은 조금 마른듯해 보였다.

조금 까무잡잡해 보이는 얼굴에 두툼한 입술이 특징 아닌 특징이었다.

나를 노려보는 듯한 눈빛. 난 순간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처음 보는 사람을 이상한 눈초리로 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눈앞에 젊은이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무슨 불편한 감정이 있어서 그래서 그런 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의 눈빛을 회피했다.

지루하기만 했던 일요일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요일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온탕에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냉탕에 가기 위해 그 젊은이의 옆을 지나가는데,

그의 입에서 특유의 감탄사가 흘려 나왔다. "아~~~ 아~~~."
 이상한 눈빛 그리고 목욕탕 안에서 소리를 내는 것이 평범하지만 않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목욕탕에서 혼자서 소리를 낼 정도의 연륜이 되려면 적어도 50살은 넘어가야 한다.

3년간 매일 목욕탕에 다녀본 경험에서 나오는 상식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혼자가 아닌 둘 이상 모여 있어야 필요 이상의 큰 소리로 떠든다.

그게 젊음의 특징 중에 하나다.

젊은이가 대중탕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거나 혼잣말을 한다는 것은 일단 평범하지 않다.


그냥 그렇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냉탕에서 줄곧 하다 다시 온탕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그 젊은이의 바로 옆자리에서 몸을 담궜다.

그리고 나만의 운동을 시작했다. 팔굽혀펴기 구부정한 등을 조금이라도 똑바로 펴기 위해서 하는 운동.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인마~~~!" 아주 큰 소리가 나의 귓가를 때린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고개를 돌렸다.

한 마리의 짐승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난 영문도 모른 체 같이 노려봤다.

처음 느꼈던 감정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나는 확인한다. 그는 계속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지금 나는 지금 목욕탕에 있는 게 아니라 열대 밀림 속에서 살아있는 짐승 한 마리와 마주하고 있다.

순간 찾아온 긴장감에 심장은 쿵덕 쿵덕 거린다. 이 젊은이가 왜 이러나 싶었다.

사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노려만 보고 있었다.

또 다른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과연 내가 저 젊은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게 어색한 눈빛 교환이 끝나고 난 다시 팔굽혀펴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보다 더 과격해진 소리가 나의 온몸을 뒤흔든다. "빠구리하나?"

몸을 돌려 그를 쳐다보며 더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당신 나 알아?"

그는 나를 노려보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말했다. "왜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하느냐?"

그는 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빠구리한다고?, 그거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젊은이는 썩은 미소를 지으며 나의 말을 회피할려는 듯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입을 연다. "아니 니한테 안 했는데?"

난 그 순간 젊은이의 얼굴에서 악마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성을 잃고 화를 낸다.

"당신이 제정신이면 그런 말은 못하지 안 그래?"

같은 탕에 몸을 담그고 있던 50대 아저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아저씨가 보시기에 제정신인 거 같나요?"

아저씨는 순간 당황하며 어찌 해야 할지 몰라 했다.

난 온탕을 나와 냉탕으로 향했고 차가운 물에 몸을 식혀보지만,

온갖 생각들이 끝도 없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내 허리가 꾸부정해서 나까지도 병신으로 보는 거 아냐?

그냥 112 전화해서 둘 다 경찰서로 가?

경찰서에서 합의 안보고 끝까지 버티다 둘다 벌금 80만 원짜리 딱지를 받아?


그렇게 망상의 나래 속에서 열심히 허우적 거릴 때 젊은이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재미있는 건 그 흥얼거리는 소리에 내가 더 열 받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차분해졌다는 사실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피해 의식조차 사라졌다.

동양에 순자 그리고 서양의 마키아벨리 두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성악설 주장에 있다.

꼭 지금 내가 처한 상황처럼 말이다.

나는 순자와 마키아벨리를 솔직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두 사람만이 지금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아직도 진행중인 사건을 해결해줄 수 있다.

순자의 주장은 이렇다. 사람들은 본래 악하므로 예치(禮治)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주장 군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때때로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순자와 마키아벨리의 말을 지금의 경우를 비춰보면 "품고만 있어야 할 악한 마음을 밖으로 드러난 경우이다."

그래서 악하게 행동하는 녀석에게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잠시 나도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거다.

종교에서 말하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도 잠시 잊어버려야 한다.

사람이기를 포기한 녀석에게 더 이상의 인간적인 방법은 소귀에 경 읽기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 덕분에 비로소 저 녀석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주위의 여러 사람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저 녀석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난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 다시 그 녀석의 본심을 확인 할 겸 다시 온탕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역시나 귀엽게 나를 열심히 노려보고 있다.

난 저 녀석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악마를 보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던가.

속으로 되뇌어 본다.

"어~ 그렇게 열심히 째려봐. 그럼 나도 같이 쳐다봐주지."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 오기가 발동했다.

나는 그 녀석의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양팔을 최대한 벌려 아주 거만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지구가 사라지는 날까지 그 녀석을 노려봤다.

둘 사이의 공간엔 불꽃이 티였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계속된 눈빛 교환. 온탕 안에서의 냉전.

끝내 그 녀석은 머리끝까지 치켜든 꼬리를 서서히 내리더니 나와의 눈 마주침을 피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만 아주 살짝 기분이 좋았다. 사실은 그때만큼 나도 짐승으로 변했으니까.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불편함.

사람이 되기를 원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건만 한순간이라도 짐승이 된 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불쾌함이 밀려온다.

연달아 피어나는 번뇌의 꽃들. 평온했던 바다는 온대간데없고 산더미 같은 파도가 끝도 없이 밀려왔다.

그런 불편함은 목욕탕 밖으로 나오기까지 얼마나 신경이 쓰이게 만들던지.

집까지 걸어오는 내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목욕탕에서 벌어진 희한한 사건은 머릿속을 끝없이 헤집고 다닌다.


방에 들어와 책상에 앉자마자 볼펜을 손에 쥔 체 노트에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속에 들어차 있던 것들을 열심히 밖으로 끄집어낸다.

2시간은 족히 쏟아내자 마음은 차분해 지고 글도 또한 재미가 있으니 이것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경우지만 다툼이 나에게는 큰 선물이 된 것 같다.

사실 나는 몇 개월째 몸이 매우 아파 심각한 우울 상태였다.

겨우 숨만 쉬고 있는 나날의 연속이었으니까.

신성한 노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 아파보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뜻밖에 상황이 나를 다시 불타오르게 한 것이다.

다음에 그 녀석을 만나면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겠다.

댓글목록

루시오님의 댓글

루시오 아이피 (119.♡.124.87) 작성일

글을 읽는 내내 감탄만 하였습니다. 그 어떤 소설과 영화보다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격한 공감을 하였습니다.^^

봉식이할매 형님은 요즘 많이 아프시군요. 아픔을 맞이하면 좋다고는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게시글에서 형님이 댓글을 다신것처럼, 아프면 참 힘들죠..육체적인
고통이 괜찮아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다음에 그 녀석을 만나면 고맙다고 인사' 넘 공감합니다. 저 역시도 언제나
상대가 절 힘들게 한다고 여길 땐(지금도 종종 그러합니다^^) 때려쥑이고 싶다가도
이내 '그' 덕분에 날 체험하게 해줬음을 이내 알게되면, 도리어 고마워지는 순간...ㅎㅎ

누군가가 아무런 이유 없이 당신을 노려보며 욕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을 할 것인가?
=정만이형이 무너지는 쿵푸팬더~란 게시글을 적었듯, 쉽진 않겠지만
그냥 쫄고 말 없이 벌벌떨며 도망가면서 무너지는 저 자신으로 반응을 할거예요.
그러면, 그 초라함의 에너지가 순환되서 봉식이 형님처럼 '너 나 알아? 이 바퀴벌레같은
xx야. 고마운건 고마운거고 이 시베리아 같은 xx야' 라고 저 역시 같이 욕할겁니다.ㅋㅋ

저 역시 어제 악마를 보았어요. 후임하고 어제 내무실에서 서로 암바기술을 걸면서
장난치다가, 제가 넘 팔이 아프니까 후임한테 아부했다가 다시 욕했다가를 반복하니
후임녀석이 '생각을 이리저리 굴리십니다?'라는 말에...'아, 내 멋대로 분별해내는 내 생각이
나에겐 악마구나. 내가 악마구나. ㅋㅋ' 를 되새기며,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악마를 보았습니다.ㅋㅋ

멋진 체험의 글을 읽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얼른 건강해지세요 형님!^^

여름가지님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17.♡.172.26) 작성일

봉식이할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손에 땀이 나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공포, 호러장르를 좋아하나봅니다ㅋㅋ.
둘이 눈싸움하는 장면에선 분명 목욕탕 물이 끓어 넘쳤을것 같습니다.

자기 혐오가 무지 강한 사람을 만나셨군요.
제가 만약 이런 사람을 만났다면 하루종일 불쾌함에 몸을 떨었을것 같습니다.
육체적 싸움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입니다.

비가 옵니다~~,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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