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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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116.♡.205.9) 댓글 7건 조회 6,301회 작성일 10-04-11 20:11본문
댓글목록
일호님의 댓글
일호 아이피 (110.♡.28.120) 작성일
둥글이님, 세상에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 논리와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책에서 본 얘기입니다.
앎의 사람이 되어가는 단계에 있어서, 두번째의 적은 명석함이다. 네가 명석한 사람이 되면 명석함이라는 적이 찾아온다. 네가 그 적을 굴복시키지 못하면, 평생 어릿광대나 싸움꾼으로 머무르게 될 것이다.
일호님의 댓글
일호 아이피 (110.♡.28.120) 작성일
보통 그냥 왔다가 지나가는데, 오늘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어서 지나간 글들과 댓글을 좀 보았습니다. ^^
사실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
먼저 '봉다리'라는 이름으로 '동글이님의 글을 읽은 소감'제목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께 글 잘 보았다는 감사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가르침또한 많이 남겨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둥글이님의 글도 잘 읽었습니다. 둥글이님의 취지에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만, 봉다리님이 댓글에서 말씀하신 것이 훨씬 더 적절한 진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논어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자기 몸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비록 명령한다 하더라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몸을 바르게 하면 비록 명령하지 않아도 따른다.
김기태 선생님은 후자의 길을 가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뭐랄까요,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맞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116.♡.205.9) 작성일
그렇습니다.
그리고 님이 지적하신 말씀은 '논리'가 형식이 아닌 '내용'이 될때 빚어질 문제이지요.
그렇게 논리가 내용이 되어버리면 논리 자체가 존재의 모든 근거를 집어 삼키지요.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를 극복해야합니다.
그런데 '대화'하는 법은 좀 다릅니다.
토론을 나누는 방법은 좀 다릅니다.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은 좀 다릅니다.
필연적으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논리적 형식은 필요한 것이지요.
만약에 사이비 종교, 사람을 노예화 하는 종단의 교주가
앎의 사람이 되어가는 단계에 있어서, 두번째의 적은 명석함이다. 네가 명석한 사람이 되면 명석함이라는 적이 찾아온다. 네가 그 적을 굴복시키지 못하면, 평생 어릿광대나 싸움꾼으로 머무르게 될 것이다.
라고 얘기하면서 논리적으로 문제를 판단하지 말 것을 강요할 때,
제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 말씀은 자신 속의 앎을 찾아갈 때 적용되어야할 부분이지,
타자간의 문제와 의사소통할 때 무조건적으로 사용될 부분은 아닌 듯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요.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116.♡.205.9) 작성일
대단한 인내력이십니다. 그 글들을 다 읽으시다니...ㅋㅋ
님께서 하신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김기태 선생님이 틀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법정스님과 김기태 선생님의 말씀의 작용이 빚어내는 차이를 말씀 드린 것이지요.
김기태 선생님의 방법은 '자기가 올바로 피어나면 세상도 변한다'는 식이고,
법정 스님의 방법은 '자기와 세상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라'는 식입니다.
그 말씀의 우열이 있나요?
없습니다. 다만 작용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저는 그것을 말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김기태 선생님의 방식을 적용하시는 분들로 인해서는
세상이 변할 기미가 안보인다는것입니다.
왜그럴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완전히 피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피어났다고 확신하는 분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앞으로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완전히 피어날 사람이 나타날까요?
아니요 나타날리 만무합니다.
누가 감히 '나는 완전히 깨달았다'고 얘기하겠습니까?
결국 이렇다 보니 김기태선생님식 믿음을 추종하는 분들은 '자기 마음의 문제'에 매달리기는 할 망정,
그 결과로 세상의 문제에까지 이르는 길에 닿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나와보라고 하십시요. 완벽히 깨달았다고 여기는 분들요. ㅎㅎ
'세상의 문제보다는 내 자신을 찾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은 결과론적으로
본의 아니게 세상에 대한 무관심과 무이해를 고조시키지요.
말은 좋지요. '내가 잘 피어나면 세상도 잘 피어난다.'
하지만 그러한 전제 자체가 아예 자기 자신을 세상과 격리시키는 빌미가 되지 않는지는 생각해 봐야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내가 잘피어난다'는 말이 극단적으로 나의 자아를 세상과 고립시키는 전제에 의한 말이 아닌,
꽃이 활짝 펴올라서 세상을 감싸쥐듯이, 나의 자아가 세상으로 뻗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결국 '내가 잘 피어난다'는 말은 '세상과 하나가 된다'는 말과 동격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가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말을 하시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나'와 '너'를 철저히 다른 것으로 구분하는 발상을 하시는 듯 합니다.
그러니 '나'가 먼저 어떤 특정한 상태가 되어야 '너' '세계'의 상태도 변할 것이라고
단계적인 발상을 하시는 것이지요.
하지만 '색'의 현현은 결국은 '공'의 귀착(색즉시공)으로 볼때,
그렇게 '색'을 철저히 나누기만 하는 분들은 결국 앎으로 부터 영원히 소외돌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대로 알지 못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진정한 앎은 그것들이 둘이 아니다는 사실의 확인에 있지 않을까요?
어쨋튼 잠시 벗어났는데, 이 반면
법정스님의 방식은 '세상의 문제'와 '나의 문제'를 별개로 두지 않습니다.
세상의 문제에 관심갖는 것 자체가 나의 문제에 대해서 통찰하는 것과 연결되지요.
물론 그렇다고 법정스님이 옳고 김기태샘이 틀리다는 말은 아니지요.
제가 볼 때 김기태 선생님도 옳은데, 김기태 선생님이 그 앎을 전달하는 과정에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듯 합니다.
하여간 뭐 그렇다는 얘깁니다. ㅎㅎ
일호님의 댓글
일호 아이피 (110.♡.28.120) 작성일
앎의 사람이 되어가는 단계에 있어서, 두번째의 적은 명석함이다. 네가 명석한 사람이 되면 명석함이라는 적이 찾아온다. 네가 그 적을 굴복시키지 못하면, 평생 어릿광대나 싸움꾼으로 머무르게 될 것이다.
=> 이래라 저래라 하는 뜻으로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셨다면 죄송합니다. 둥글이님을 보면 꼭 저의 예전 모습을 보는 듯해서요 ^^
일호님의 댓글
일호 아이피 (110.♡.28.120) 작성일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김기태 선생님의 방식을 적용하시는 분들로 인해서는
세상이 변할 기미가 안보인다는것입니다.
=> 둥글이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은,
세상은 변해야 하나요?
답변은 안 주셔도 됩니다. ^^
둥글이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도덕경 제일 처음 구절입니다.
도를 도라고 일컬으면 더 이상 도가 아니다.
둥글이님께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116.♡.205.9) 작성일
일호님은 말씀은 부드럽게 하시지만, 도덕경 1장까지 인용하신 것으로봐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은 불필요하다'는 식의 이해에 가까우신 듯 합니다.
(잘 못알았다면 지적바랍니다.)
일호님의 집에서 마을까지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에 놓인 '다리'가 무너졌을 때,
이에 방관하지 않고 나서서 '보수'하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일'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배고픈 상태를 참지 않고 입에 밥을 넣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일이고,
저쪽에서 배고파 하는 이들이 배고프지 않게 힘쓰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일입니다.
제가 말하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은 나와 관계없는 전혀 괴리된 어떤 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나의 일부요 내가 그 것의 일부인 일입니다.
아마 세상의 변화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피력하시는 것은
세상자체가 순리적 으로 움직인다고 판단한 때문이 아니신가합니다.(궁금)
이에 대해서는 ['밥의 문제'는 통찰의 문제]의 문제에서 다뤘으니 참조해주십시요.
또한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의 주장에 대해서 '꼭 세상이 변해야 하나?'며 '변화의 불필요성'을 피력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은 '세상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저에 대해서도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옳습니다.
'세상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둥글이'의 생각에 대한 변화를 기하려는 것 자체가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하시는 분들 스스로는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면서
'세상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둥글이의 주장은 틀리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이렇게 자가 당착에 빠진 엄청난 모순을 보이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지적할 때마다
'논리가 중요한 것이아니다' ㅠㅡ 는 답변이 날라오니 슬플 따름이구요.
우리는 이러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도 뇌파는 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내 손가락을 들어올릴 때 미약하지만 전 우주에 중력이 뻗히는 것 처럼...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나눔의 관계를 통해서, 삶을 통해서도 늘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 세상에 의해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제가 토로하는 '세상의 변화'는 혁명적인 뒤바뀜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일상 생활하면서, 우리가 할 수있는 일이 수도 없이 많이 있지요.
'세상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게시판에 올리는 것 자체도 세상의 변화를 위한 일이지요.
물론 미약한 활동이기는 하지만요.
이를 정도차이와 관계의 문제 속에서 판단해야지, '혁명적 변화를 위한 동참' 정도로 전제하면
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이 양자(나와 세상)를 나누는 발상 자체가 엄청난 오류인데,
많은 분들께 이를 설명드릴 방법이 없어서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뭐 말이 길어졌는데, 일호님에 대한 댓글이라기 보다는
일호님이 던져주신 화두에 대한 잡다한 생각이었습니다.
질문꺼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질문요.
님이 원하는 세상은 어떤 것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