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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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22.♡.240.38) 댓글 8건 조회 13,515회 작성일 07-07-15 12:31본문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1.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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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지역에서 텐트를 치고 몇 일 생활하면서, 중학생 둘을 알게 되었다.
할일 없이 놀 꺼리를 찾아다니며 방황하는 아이들이었다.
한 녀석은 얼굴에 항시 때 국물이 흐르고 있었고, 허름한 옷에 슬리퍼 차림으로 돌아다녔다.
학교 갈 때도 그 차림 그대로 가방도 없이 등교하는 모습을 봤었다. 깨지고 썩은 이빨을
하고 있었고, 허리 쪽에는 자그마한 문신도 하나 새겨져 있었다.
녀석의 아버지는 막일을 하시는 분이시란다. 일을 끝나고 오면 온 몸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
술을 꼭 한 병씩 마시곤 하셨단다. 그런데 언제부터 일은 안 나가시고 술로 세월을 지샌단다.
아버지가 돈을 벌어오지 못하니,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도
알지 못한다. 세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단다.
친구가 옆에 있음에도, 이런 얘기를 히히덕 거리며 늘어 놓는다.
자신의 불행을 대하는 태도에서 오랜 세월동안 할퀴고 찢겨졌던 그 마음이 엿보였다.
전날은 집에서 쫓겨났단다. 돌아다니다가 열 시경에 집에 들어가려니, 아버지가 술취한
기운에 ‘(집에서)나가’ 라고 소리를 지르셨단다. 그래도 그냥 비집고 들어가서 자려고
했는데, ‘안나가면 죽인다’고 소리를 치길래 그냥 나왔단다. 그래서 그의 친구와 함께
어떤 건물 아래 의자에서 웅크리고 잤단다.
함께 방황하는 그의 친구 도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자기 방이 보수중이라 잘 곳이 없이 떠돌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다른 방에서 자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아버지 술 냄새 때문에 못 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밤새 그리 돌아다닌
단다. 술 냄새는 변명인 듯 했다. 뭔가 말 못할 다른 이유가 있을 듯 했다. 더군다나 아버지
는 위암 중기라고 하시는데, 하지 말라고 해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하루 종일 술 담배로
지샌단다.
막연한 불안감과 축적되는 고통의 경험들, 과도한 스트레스 자극과 통제할 수 없는 갖가지
상황들은 그들이 사춘기의 방황을 유달리 길고 암울하게 만들어 낼 것이다.
보통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거듭되는 절망과 좌절, 어둠속에
서의 끝없는 방황...
아이들은 착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불우한 주변 환경이 그들로 부터
언제 그 마음을 빼앗아 갈런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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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할 때,
동네에서 방황하며 돌아다니는 아이들 서넛을 내 방에서 재운 적이 있었다.
녀석들은 술 먹는 부모들에게 시달리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지역을 떠나려고 한단다.
잘 알지는 못했지만, 안면이 있었고 나이도 서너 살 어린 녀석들이기 때문에 부디 ‘올바른
길?’을 갈수 있기를 바래면서 책장에 있던 책도 한권씩 건네주기도 했다. 그 책을 받는
녀석들도 상당히 진지한 눈빛으로 뭔가 받아들이려는 표정을 보였기에 나름대로 ‘뿌듯함’
마저 느껴졌다.
그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소영웅주의적’ 발상으로 무장해서, 야간에 풀 통하나 옆구리에
끼고 거리를 돌며 (인간사랑과 관련한)벽보를 붙이고 다녔을 정도였음을 보면, 방황하는
후배들에게 관심을 갖고 ‘설법’을 늘어놓으려 했던 것은 극히 당연한 처사였다.
그런데 녀석들에게 밥 해먹이고, 재우고 난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잠깐 한눈팔던 사이에 녀석들은 내 책상에 올려져 있던 책살 돈 십 몇 만원을 가지고 도망을 갔다.
나는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책’을 보면서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내 관심과 정성이 쓰레기통에 처박혀진 듯한 느낌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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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니며 자취를 할 때, 싼 방 찾아다니다 보니 빈민가 중심부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옆집에 사는 자취하는 중학생 녀석이 동생들과 함께 살면서 학교는 안가고
집에서만 먹고 놀고 하면서 수시로 뽄드질을 해대는 것이다.
섬에서 살고 있는 그의 아버지 역시 ‘술’로 찌들어 사시며 녀석에게 관심을 갖지
못하셨기에 녀석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삶을 살고 있었다.
종종 불러서 먹을 것도 사주고 잔소리도 해줬는데, 다음 학기부터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마음이 멀어지다 보니 녀석의 그 이후의 행적을 알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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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청소년 관련한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보호관찰소’ 와 ‘아동복지시설’ 등에서
각각 서너 달씩 실습 하면서 살폈는데,
상당수의 문제아로 불리우는 아이들 뒤에는 늘상 불우한 가정이 있는 것을 확인했고,
그 ‘불우한 가정’의 ‘중심’에 술 먹는 가장이 든든히 버티고 있음을 발견했다.
2. ‘누구의 책임인가? ’
자...
앞선 고통스러운 사춘기를 보내는 세 부류의 아이들 이야기 속에 ‘술 먹는 가장’이 끼어
있고, 보호관찰소 실습을 통해서도 그 ‘사실’을 재 확인했음의 사실에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술 먹는 가장’을 탓하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이 글을 써
내려왔음으로 생각 할만도 하다.
물론 어떤 아이들이라도 충분한 보호와 관심 속에 풍요한 사춘기시절을 보내야 할 권리가
있음의 사실에서 보면, 아이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방황하도록 ‘방조’ 내지는
‘내모는’ 술 먹는 가장에게 큰 책임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방황하는 아동-청소년의 문제를 대하는 우리가 ‘술 먹는 가장’을 지탄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이 누려야할 최소한의 기본 권리가 실현되지 않는다.
외국 선진국과 같이 아동-청소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우리 각자의
‘이해’와 ‘책임’과 ‘실천’의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이다.
이러하다면 술 먹고 주정하는 부모를 지탄‘만’하고, 책임 있는 관심과 실천을 동반하지 않는
우리 각자는 결국 방황하는 아동-청소년이 생겨나도록 ‘공모’한 것이나 다름없음의 사실을
알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그 ‘술 주정뱅이’들이 ‘빼앗긴 권리로 몸부림치는 사회적약자이고, 자본주의 사회적
인간평가척도의 희생자’임의 사실을 판단한다면, 각각의 사회구성원들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진다.
3. ‘술 주정뱅애 가장을 만들어내는 사회’
위계질서를 가리는 [유교문화적인 전통]과 압축성장을 통해 심어진 [천민자본주의적인
사고]는, 한국사회에서 부와 권력의 ‘갖고-갖지 못함’으로 인해 사람을 차별하는 경향을
심화시킨다. 이는 (과거보다는 호전되었다고는 하나) 직업에 대한 차별과 직위간의
수직적인 종속관계 등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러한 ‘위계’와 ‘권위’를 발생시키는 ‘소유지상주의 문화’는 아이들의 문화에까지 침투해서
‘폼나는’ 메이크 제품 몇 개 갖지 못하면 ‘축’에도 못 끼고 기가 죽고 따돌림 당해야 하는
독특한 ‘열등과 소외의 문화’까지 발생시키곤 한다.
이는 가진 것(권력)의 양이 많을 때 ‘우월감’과 스스로에 대한 ‘중요감’을 자극받고, 반대로
가진 것의 양이 적을 때 ‘열등감’과 ‘좌절’을 겪게 만듦으로 더 갖게끔 의지를 자극시킴으로
‘운영되는’ 자본주의 사회 체제가 그 각기의 구성원에게 강요하는 심리 작용이다.
이러한 ‘심리’ ‘문화’가 그 기반을 받치고 있는 터에,
[자본과 권력관계]에 혈연, 지연, 학연이 엮어지고, 가진 자들의 카르텔과 없는 자들에 대한
억압이 심화되다보니, 가진 자들은 계속 ‘권력’과 ‘부’를 누리며 ‘떵떵’거리는 것이고,
없는 자들은 계속 그 처지에 머물러 기꺼히 ‘비참해’ 한다.
이는 ‘한정된 지구자원’이 모두에게 배분될 수 없음에 의한 근원적인 불평등에 기인하지만,
비정규직노동자들/ 일용직노동자/ 사회소외계층에 대해 유난히도 ‘노블리스오블리제’가
부족하고 배척적인 성향을 가진 한국의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사회 작용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일명 ‘못 가진 이들’이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과 ‘자학감’ ‘좌절감’을 갖고 살게 되는 것은 ‘필연’이다.
그것은 ‘가진 자’들이 목에 힘주고 떵떵거리는 것과 같이, 한 덩어리로 작용하는 사회의
정반대편 극에 위치한 이들의 자연스러운 심리작용이다.
더군다나 현재의 ‘결핍’이, 앞으로도 개선될 가능성이 없음을 스스로 자각 할 때 그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엄청난 것이고, 바로 이 위치에 놓인 ‘개인’은 중대한 심적인 격동을 겪게 된다.
가치적인, 기질적인, 감정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극단적인 상실감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이의 해결하기 위해서 주로 두 부류로 반응한다. 세상을 파괴하거나, 자기 자신을 파괴하거나.
세상을 파괴하는 부류의 이들은 반사회적인 범죄성향을 표출시킴으로 자신의 금전과
권력에의 결핍을 보충하는 이들이고,
(중심 문제로 다루고 있는)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이들은 완전히 자포자기가 되어서 술로
세월을 보내는 이들이다.
이렇게 자포자기가 되어서 술로 세월을 보내게 되면, 이들 자녀들의 삶 역시 황폐화 될
터이지만, 이미 그들의 ‘자아’는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진 터이다.
더군다나 한국사회는 이렇게 '알콜중독자‘를 만들어낼 수 있게끔‘ 사회 문화 각종의 요소가
잘 짜 맞춰져 있는 동시에 ’알콜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이 전무하다. 이에
더불어 알콜 중독을 사회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개인의 윤리적 처신의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에도, 해결의 길이 요원해진다.
이러한 사회분위기에서 알콜릭 가장을 둔 가정의 아동-청소년의 방치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고, 방황하는 아동-청소년들을 대하는 일반인들이 아무런 ’사회적 책임의식‘을 느
끼지 못하고 그의 알콜릭 부모에게만 ’손가락질‘ 해대는 것 역시 현재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 수준의 인식에서는 필연이다.
4. 그렇담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간 우리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선행할 필요가 있다.
산업화로 사회가 급변화하는 중에 한국사회에 (앞서 말했던)엄청난 부작용이 빚어졌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 ‘사회’ ‘교육’ 시스템은 이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체계적인 이성과 논리력을 갖춘 인물들을 거의 만들어내지 못했다.
혈연, 지역, 학연이 권력과 자본-관계에 얽매여 있고, 천민자본주의적 사고가 그에 덮여져
있으며, 개인주의를 넘어선 이기주의가 팽배한 한국사회가 바로 설 기미가 안 보이는 것은
필연이다. 더군다나 냉철한 이성의 눈이 아닌, 전통과 감정의 기호로만 이 문제를 살피니
문제는 인식자체도 되지 않는다.
이러하다 보니 우리는 선진 유럽국가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민의식’을 갖추
고 있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시민의식의 개념 조차 모른다. 이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의식’
'사회적 연대의식‘이 생성 될리 만무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실천이 동반 될리 만무하다.
이렇다 보니 시민사회로부터 시작되는 건전한 사회정화작용이 이뤄지지 않고,
기득권세력과 권력자들의 의지에 따라서 사회구조가 작위적으로 맞춰지며,
그에 반발한 소수운동가들의 격렬한 반발이 동반되는 것이다.
사회적인 시스템의 차이가 있지만, 일본 미국이 각각 정기적 자원봉사비율이 20%, 30%임
에 비해서 (얼마 전까지) 한국인들의 정기적인 자원봉사 비율이 2,3%에 그친다는 것은
이러한 ‘사회의식 부재’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는 이렇게 기본적으로 ‘연대의식’ ‘시민의식’이 형성될 수 없는 사회에 살아 왔음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시작으로, 불우한 시기를 보내는 ‘아동-청소년’을 위한 책임 있는 관심에 임해야 한다.
만약 유럽인들이 와서 방치되는 아동-청소년들의 실태를 접한다면 기겁을 할 것이다.
알콜릭 가장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어째서 그 ‘알콜릭 가장’의 문제를 사회화
하지 않고, 방치되는 아이들에 대해 무관심한지에 대해서 일반 시민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회의식’으로는 이러한 문제는 마땅히 일반 시민들이
나서서 머리에 띠를 두르고 ‘투쟁’해서 쟁취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가
있다면 정치인들도 관심을 갖고 법안으로 만들어 내고 제도화 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기반’(=각기의 시민정신) 자체가 다져져 있지 않다보니, 그러한 ‘사회적
연쇄작용’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무엇이 부족했는지에 대한 ‘사회심리적’ 차원에서의 이해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에 들어가자.
2)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앞선 ‘문제제기’를 하나씩 짚어서 해결해 내는 것 자체가 문제를 해결해 내는 것이다.
첫째 - [ 사회구조적인 관점 ] - ‘법’적 ‘제도적’으로 ‘알콜릭 부모’들과 ‘아동-청소년’의
문제를 개선할 방안을 고민하고 실력행사에 나서거나, 그러한 문제를 다루는 단체들
(주로 여성/청소년 단체를 ‘후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단체 후원하기 클릭 http://howcan.or.kr/best%20org.htm
둘째 - [ 지역 공동체적 관점 ] - 국가적인 관점보다 조금 축소된 지역공동체(마을/동네)적
인 관점에서의 해결도 필요하다. ‘문제에 대한 집중력’만 있다면 지역의 몇몇이 모여서
구체적인 고민을 통해서 지역 청소년의 실상에 맞는 활동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고,
관련단체나 관청으로부터 ‘정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자체적인 조직은 동네의
관심 있는 이들이 모여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조직할 수 있다.
이 활동에서는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청소년과의 교감을 위한 ‘찾아가는 활동’이다.
이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직접 접하고, 현장 감각을 익힐 필요에 의한다. 학교와 경찰서
등으로부터 ‘비행청소년’에 대한 자료를 (가능하면) 확보 받아서 그 실태를 파악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할 수 있다.
참고로 여기서의 ‘찾아가는 활동’은 주로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초등학교 구석,
오락실, 유흥지 등에 직접 찾아가서 아동청소년과의 교감을 이루는 활동을 말한다.
‘방범활동’의 형식을 접목시킬 수도 있다.
셋째 - [ 각각의 아동-청소년적인 관점 ] - 가장 구체적인 방법으로 방황하는 아동 청소년
과의 대면을 통해서 그들의 상처를 확인하고, 필요를 보충해 주는 방법이다.
이는 가정으로부터 제대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신이 해결해 낼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충격 등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 무기력감에 시달리고 있는 아동청소년들에 대한 임파워먼트
방법으로, ‘맨토링’과 맥이 통한다. (맨토링 : 성인의 배려 있는 지도 속의 청소년과 성인의 1:1 신뢰관계. )
이 활동에는 아동청소년의 ‘사회적’ ‘경제적’ 결핍을 보충하고, 정서 심리적인 문제를 확인하여,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능동적 자발성, 적극성을
심어주는 등의 노력이 필요한데, 지역사회의 여러 종류의 복지자본을 아동-청소년과
연결시키기 위한 네트워킹 방법도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전반적인 작업을 위해서는 청소년 상담, 복지 관련한 전문적인 소양이
갖춰져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아동-청소년에게 ‘진지하게 관심 갖고 있음’의
마음이라도 전해주는 것 자체가 큰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결손/알콜릭 가정에서의 아동-청소년들의 경우에는 가장이 만들어내는 문제 상황에
휘둘리면서 무기력한 상황에 빠져들고 이에 따른 집중력의 상실로 학업성취도 마저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다시 그들의 부모와 교사들의 질책을 이끌어 내고, 이로 인해 ‘자존심’이 저하된다.
‘나는 못나고 쓸모없다’ ‘비참하다’ 는 류의 생각들이 아동청소년 의식의 한편을 채워가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서 ‘능동적 집중력’마저 저하가 되면, 이제 ‘본능’과 ‘욕망’의 포로가
되어서 잡다하고 떠들썩한 ‘유흥’ 꺼리만 찾아다니게 된다.
내제한 ‘사회적 기준’에 의해서 스스로 ‘낙오’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종종 불안에 휩 쌓이지만, 이를 해결 해낼만한 굳건한 자아가 형성되지 않았음으로 인해서,
비슷한 문제를 가진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문제를 더더욱 악화시키고, 범죄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이러한 악순환이 빚어지는 원인이 바로 ‘사랑받지 못했음’에 있음으로, 아동청소년에게
‘진지하게 관심 갖고 있음’의 마음을 전해주는 것은 긍정적인 연쇄반응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정서적지지’의 차원과 더불어
그들에게 ‘자신이 현재 처해있는 현실’을 볼 수 있게끔 심리적인 도식을 만들어주고
‘능동적’으로 이에 대처할 수 있게끔 구체적인 지침을 들어주는 것은 중요하다. (임파워먼트)
일예를 들어보자.
방황하는 아동-청소년이 자존심의 하락과 무기력을 경험하는 것은 그들의 알콜릭 가장으로
부터 보고 배운바가 크다. 그들의 가장이 스스로에 대한 ‘낙인’으로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가정의 아동-청소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를 답습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서 학업성취도가 떨어지고 낙오적 삶의 전처를 답습하는 자식들을 보면서
그들의 가장 역시 다시한번 스스로에 대한 낙오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해결해 낼 수 없는 사건들과 불안에 휩쌓이면서 방황하는 아동청소년들에게
‘이러한 도식’을 만들어 보여주면서,
‘네 자포 자기한 아버지를 직접적으로 바꿔낼 가능성이 없다면,
네 자신이 네 삶을 추스르고 노력하는 모습을 네 아버지에게 우선 보임으로 인해서도
너의 가정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림으로, 그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능동적‘으로
뭔가를 행할 수 있음을 제시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향제시’가 그들의 삶을 바꿔낼 기회가 되지는 않더라도,
그들이 서있는 위치를 살피게 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뭔가를 행할 수 있음’의 사실
자체를 안다는 것 자체가 하락한 자존심을 끌어 올리는 하나하나의 자극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아동-청소년에게는 마음을 넓힐 책을 선물해주거나,
인류 역사상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들이 겪는 문제인, 무기력감, 집중력저하, 번잡한 자극과 욕망 추구는
근본적으로 ‘협소한 자아감’에 의한 것임으로 그러한 헌신적인 인물들의 이야기와 책을
통해서, 그 오그라들어 있는 자아를 우선적으로 해방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용어설명] 방황청소년 : 이는 범죄행위와 연관되는 ‘비행청소년’과는 다른 개념으로,
이는 ‘비행청소년’으로 진행할 위험은 있지만 아직은 비행청소년 집단에 속하지 않은 청소년들로,
가정과 학교에서의 미흡한 보호로 인하여,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에 자신을 추스르지 못함으로,
어른의 관심과 보호를 요하는 대상을 말한다.
댓글목록
모난자님의 댓글
모난자 아이피 (210.♡.89.71) 작성일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겠어요. 유기적인 문제지요. 또 과거와 현재 미래가 얽힌 복잡하고도 다단한 문제라오. 그래서 그 해결도 장구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 토대를 마련해 가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러면 우선 선의 연대가 필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선의 힘을 모아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뒤에 그 결집된 힘을 통해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봐요. 단 선한 노력이어야만 합니다. 투쟁이나 쟁취 등 악한 노력이 아니라... 투쟁 등은 투쟁 등을 낳을 뿐... 그러니까 내 말은 악이 부그러움을 느끼고 설 땅을 잃어버리게 하자는 것이지요. 선현들은 가난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가난속에서도 아름다운 향기를 풍겼습니다. 사람은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니고 가진 것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요. 그들은 행복이 인간다운 길을 가며 콩을 반쪽씩 나눠 먹는데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가진 자 못가진자 패를 나눌 것도 없고 그런 것이 주 관심사가 아니었어요. 인간다운 삶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임을 알았던 것이지요. 가지지 못했다고 불행하다거나 슬퍼하는 것은 물질만능이라는 양적 팽창이 빚어낸 매우 편협한 생각입니다. 그런 것에 가치를 둔 사람만이 그런데 얽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하면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거든요. 가져야 행복하고 잘 살 수 있고 못 가지면 술 퍼먹어야 하는 것은 모두 물질본위의 가치관과 생각에 근거한 것일 뿐이지요. 마음을 바꾸면 세상은 달리 보여요. 이것이 물질 문명을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고도 행복을 일으키느 것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한 관점을 제시하는 것일 뿐입니다. 참고하시기를...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22.♡.240.38) 작성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막연히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씀 말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모난자님의 댓글
모난자 아이피 (210.♡.89.71) 작성일
구체적으로 모색을 해야겠지요.
마당발처럼 뛰면서... 연대할 그런 사람들을 찾아야지요.
일은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뜻을 가진 사람 얻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있기는 많이 있을 텐데...
여러가지 모색이 있어야겠지만 구심점을 만들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요.
그런 사람이 나서주면 좋을텐데...
누굴까요?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22.♡.240.38) 작성일
제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쓰는 글도 한계가 많죠.
어쨋튼 그것을 알아 보시고, 제 글의 부족한 점을 짚으시면서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의 단언을 하셨을 정도이고 보면,
좀 더 기술적이고, 경험적이고, 사실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그리고 님의 그와 관련한 '경험'과 '관점'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씀 하신 것은 극히 지당한 말씀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 필요한 사람을 채울수 있을 것인지...
그러한 필요한 사람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따져보고,
그러한 인물들을 만들어내는데 방해가 되는 '맥'을 끊을 수 있는 정확한 관점과 논리와 실천적인 경험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종치기님의 댓글
종치기 아이피 (210.♡.89.45) 작성일
그대가 바로 방황하는 아이 일쎄요..
대체 무슨 사설이 그리 심하오 ?
그만 방황을 그치시오.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22.♡.240.38) 작성일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종치기님의 댓글
종치기 아이피 (210.♡.89.45) 작성일
노, 노우 !
사람이 한창 방황할 땐, 다 그런거라우 ㅎㅎㅎㅎㅎㅎㅎ
부족한 줄을 정말 아셨다면, 다른 고수 분들께 먼저 양해를 구하응 것이
순서요. 본인은 말을 함부로 해서 님께 그런 사과를 들을 자격이 없소이다.
모난자님의 댓글
모난자 아이피 (210.♡.89.153) 작성일
기술적이고 경험적이며 사실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그런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보여달라.
그런 사람 만든다는 얘기가 아닌데...
그런 사람 만든 경험 없어요.
제 자신도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
필요한 사람을 채운다???
방해가 되는 맥을 끊는다.
선의 연대에 방해가 되는 맥이라?
누굴 대항하는 것도 대척적인 것도 아니고 물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 연대에 그런 것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투쟁 등의 악한 노력이 아닌데 그런 것이 생길 것 같지 않습니다.
둥글이님이 뭔가 제 말을 오해하신 듯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