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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홈피에서 찾아낸 김기태선생님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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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옆에머물기 (122.♡.97.6) 댓글 0건 조회 7,441회 작성일 08-01-1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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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어떤계기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답) 글쎄요, 그걸 '계기'라고 할 수 있을는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제가 만난 하나님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러나 '만났다'라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은 만날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대상(對象)이 아니며, 어떤 실체(實體)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그런데도 '만났다'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그저 그렇게 말할 뿐입니다.

하여간 저는 하나님을 만나고부터 제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이전에는 오직 메마름과 고통과 온갖 다양한 형태의 감당할 길 없는 삶의 무게와 힘겨움밖에 없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시편 1:3) 제 인생에는 언제나 평강과 평화와 쉼과 자유가 넘실대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라는 말씀이 마침내 제게 이루어진 것이지요. 아, 그 감사와 감격과 다행스러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은 제게 참 어이없게 찾아왔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제 책 '아, 여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오직 너희가 전심(全心)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13)라는 말씀만을 붙들고 그 '나'를 찾아, 진리(眞理)를 찾아, 하나님을 찾아 15년간을 헤매며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서른 네 살이 되자 그 갈망은 극(極)에 달해, 마침내 저는 직장과 처자식마저 버리고 50일 단식(斷食)을 하기 위해 상주에 있는 극락원이라는 암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의 그 '궁극의 목마름'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것을 버려두고 떠나왔건만, 마음과는 달리 '진리'랄까 '해방(解放)'이랄까 하는 것은 선뜻 제 앞에 나타나주지 않았습니다. 아, 그때의 그 절망감은 또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합니까, 저는 이미 모든 것을 버렸고, 진리가 아니고서는 이대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을요. 그렇게 입술이 타듯 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어느 한 순간 문득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고, 그래서 다시 가부좌(跏趺坐)를 틀며 앉았습니다. '그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참 뜻밖에도 저의 오랜 도반(道伴)이었던 어떤 분이 느닷없이 저를 찾아왔고, 그래서 그 분과 오랜 시간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 대화 도중에 '변화'했습니다.

그 분이 대화 중에 줄곧 제게 했던 말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당신은 이미 배부른 자이며, 이미 물을 마신 자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끊임없이 배고프다 하고 목마르다 하면서 밥만을 찾고 물만을 찾는가? 이제 그만 쉬어라. 이제 그만 배부른 자의 삶을 살며, 목축인 자의 삶을 살아라.

그러나 그 당시의 저는 너무나 영혼의 배가 고파 50일 단식을 하면서까지 '진리'로써, '깨달음'으로써, '자유'로써 배부르며 목축이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도 그 말이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저는 화를 벌컥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그 말이 무슨 말인가는 저도 압니다. 중생(衆生)이 곧 부처요 번뇌(煩惱)가 곧 보리(菩提)라는 말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것은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진리'에 목마르고 '자유'에 굶주려 있는데, 그래서 배가 고파 거의 죽게 되었는데, 그런 사람 앞에서 '너는 이미 배부른 자다'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공허한 말은 이제 그만하세요! 저는 어쨌든 제 손으로 밥을 떠먹어 보고 또한 물을 마셔봐야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 '맛'이 어떠하며 '배부름'이 어떠한지 하는 등등의 얘기는 그 다음에 합시다!

저는 무척 단호했고,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한치의 진전도 없이 서로 팽팽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는 갑자기 '이름(名)' 운운하는 엉뚱한 얘기를 꺼냈습니다.
'이름(名)'은 곧 '에너지'를 동반하는데, 따라서 어떤 '이름'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그 삶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김기태씨, '이름'을 한 번 바꾸어 봅시다.느닷없이 '이름' 운운하는 얘기에 저는 영문을 몰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하는 말이,김기태씨는 지금 '배고픈 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늘상 그렇게 '밥'을 찾으며 배고픈 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참에 한 번 '배고픈 자'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대신 '배부른 자'라는 이름을 붙여보십시다. 그러면 그때부터 '배부른 자'의 삶이 펼쳐질 거예요. 왜냐하면, '이름'은 곧 '에너지'이니까요.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따지듯 그에게 말했습니다. 아니, 내가 '배고픈 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니오!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배부른 자'가 되고 싶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배부른 자가 되기 위해서 또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한복음 4:14)을 마시기 위해서 50일 단식도 하고 있는 것이구요. 또 나는 지금 실제로 배가 고프고 한없이 목이 마르니까 '배고픈 자' 혹은 '목마른 자'라는 이름이 붙었지, 내가 만약에 배가 부르다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름'만 바꾼다고 배가 불러집니까? 실제로 내가 밥을 먹고 배가 불렀을 때, 다시 말하면 '존재'가 바뀌었을 때 '이름'도 따라 바뀌는 것이지, 어떻게 이름만 바꾼다고 '존재'가 달라진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는 하지도 마십시오!

그런데 그때 그는 제게 더욱 어이없는 말들을 쏟아내었습니다. 아, 어차피 이름 한 번 바꾸는 것인데,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그러니 '배고픈 자'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배부른 자'라는 이름을 한 번 붙여봅시다. 아니, 아이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름'만 바꾼다고 '존재'가 달라집니까? 아니,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어허, 참! 아무리 밑져야 본전이라지만, 그런다고 '존재'가 바뀌어집니까? 아니,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그러니 이름 한 번 바꾸어 보십시다. 아니, 그런다고…… 아니,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하면 곧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을 들이밀었고, 그럼으로써 저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아니 도대체 어떻게…… 아니,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급기야 저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알았어요, 알았어! 이름을 바꿀께요! 아니, 도대체 사람이 무슨 말을 못하게 하니, 원! 그러나 보세요, 말끝마다 밑져야 본전이라며 말문을 틀어막으니 하는 수 없이 이름을 바꾸는 것일 뿐이지, 그렇다고 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좋습니다, 이름을 한 번 바꿔봅시다…….

그랬더니, 그는 갑자기 박수를 치며, 이젠 됐다는 겁니다. 이젠 다 끝났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며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더 이상 묻기를 그치고, 오랜 시간 대화하느라 미룬 일을 해야겠다며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방안에 혼자 남은 저는 어허, 참! 끝나기는 뭐가 끝나? 자기의 질문에 자기가 끝났지, 그리고 '밑져야 본전'이라며 무슨 말을 못하게 하니 하는 수 없이 이름을 바꾸자고 했지, 끝나기는 뭐가 끝나? 참 실없는 사람일세…….라고 중얼거리며 멀뚱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바람이나 좀 쐴까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곤 이리 저리 걷다가 문득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렇게 쪼그리고 앉은 제 앞에는 마침 조금 키가 자란 풀 한 포기가 있었는데, 저는 무심히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 풀이 뭔가 모르게 달라 보였습니다. 설명할 순 없지만, 하여간 그 순간 풀이 제게는 달라 보였습니다.

어! 이 풀이…….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후부터 제게는 참으로 많은 '변화'들이 찾아왔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아무 생각이 없는 멍청한 상태가 계속 되었고,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화에도 끼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있기가 일쑤였지요. 또 어느 땐가는 누군가가 책을 펼쳐 보이는데, 놀랍게도 어린 아이처럼 글자를 읽지 못했습니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를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모든 '이름'과 '개념'들이 다 떨어져나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고,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 어디에도 '진리'니 '도'니 '깨달음'이니 '하나님'이니 하는 것들이 있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관념이 제게서 사라졌고, '에너지의 소모'를 전혀 느끼지 못했으며, 모든 순간에 평화가 흘렀습니다. 제 몸도 완전히 바뀌어, 전혀 다른 몸이 되었음을 저는 압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가장 오랫동안 제게서 나타난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아침에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내가 어디 있는가를 찾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참 희한하게도 분명히 눈을 뜨고 일어났는데, '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앉아서 내가 어디 있는가를 찾다 보면 이윽고 조금씩 육체와의 '자기동일시'가 일어나고, 그러면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가를 또 기억해 내어서는,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출근 ― 그 당시엔 아마 노가다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을 하곤 했습니다.

그밖에도 많이 있지만, 그러나 그 모든 현상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 지나갔고, 지금의 저는 다시 평범한 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게 하나 있습니다. 아니, 참 많습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평화와 자유와 지혜와 사랑과 기쁨과 감사와 행복과……모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렇게 저는 다시 '존재의 지복(至福)'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우습죠? '밑져야 본전' 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으니…….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그것은 바로 '나[참나(眞我)]'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압니다, 자기 자신을 만나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중생(衆生)이 바로 부처라는 것을…….

그런데 나중엔 또 '만났다'라는 것도 떨어져 나갔습니다.
'나'는 본래 그러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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