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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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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냥 (121.♡.214.12) 댓글 3건 조회 4,547회 작성일 07-09-0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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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초록 댓병을 가슴에 안고 대문을 나서면 콧가에는 석유냄새가
향긋했다. 골목을 돌아 바윗돌로 얼기설기 만든 계단을 눈을 떼지 않고
조심스레 내려 계단이 끝날 즈음 귀퉁이에 자그마한 기름집이 있었다.
댓병을 깨질세라 조심스레 내려 놓으면 아저씨는 쳐다보지도 않고 깔때기를
주둥이에 턱 걸쳐놓고 오줌 내갈기듯 투명한 액체를 시원스레 쏟아 붇는다.

석유냄새를 좋아했다. 쪼그려 앉아서 병이 차기를 기다리는 동안 포말을 일으키며
댓병은 숨이 턱에 찬다. 꼬깃한 돈을 건네며 더욱 조심스레 받아 안고선 걸음이 바쁘다.
벌써 엄마의 칭찬이 기다려진다.
대문을 발로 툭차고 젠걸음으로 물당구를 지나 감나무는 쳐다 보지도 않은채
쪼르르 부엌으로 달려간다.

'엄마 내 사가지고 와따'
엄마는 늘 등뒤로 대답을 하셨다.
'그래 그짝에 잘 나 나라' 욕바따소리는 그당시 잘 듣지 못했다.

석유곤로 조그마한 기름주입구에 엄마는 기름 한방울 안흘리고
부어 넣어셨다. 투명한 액체가 미끈한 몸매를 뽐낸다.
'야야 성냥좀 가지 온나' 얼른 재빠르게 큰방 사각성냥통을 낼름 갖다드리면
어느새 엄마는 심지를 돋우고 둥근 통을 살짝 들고 계셨다.
성냥불을 그어 심지에 부치는 순간만큼 오금저리는 볼거리가 그당시 많지 않았다.
처음 붉은 불꽃이 검은 연기를 토해내며 살금거리기 시작한다.
엄마는 이리저리 곤로 심지로 마술을 부리면 어느듯 붉음위로 파란 불꽃이 춤을
추었다.
연탄불로는 밥을 지어셨고 석유 곤로로는 된장국을 만드셨다.

밥시간이 될때까지 옆집 희야와 씨차기를 한다.
기지바들 하는 놀이인 바닥에 금을 그어놓고 발로 돌을 툭차는 놀이는
시간 죽이기에는 그만 이었다.
딱지치기는 돈이 들었다. 다마치기도 마찬가지고..
덕분에 동생들이 한동안 나를 언니야로 불렀다.

석유냄새가 가시고 된장국 냄새가 코를 자극할 즈음 나는 항상 지고 있었다.
지지바들은 선수들이었다. 정확하게 금안 쪽으로 툭툭 잘도 찼다.
나는 조심스럽게 차면 다음 땅으로 가질 못하고 마음 먹고 툭 차면 언제나
돌은 삼천포로 빠졌다.

'희야 인자 내 밥 무거러 간다'하고 내치면 '야이 머시마야 이거 다 끝내노코
가라 니 우끼는 머시마네'라고 딴지를 놓아도 훌쩍 마루로 뛰어 오른다.
내가 사온 석유가 보골거리는 된장국을 만들어 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두부만 건져 먹으면서 늘 상상을 한다.
다음엔 내가 곤로심지에 불을 붙혀 보아야지...
사실 엄마의 금기사항중의 하나가 곤로 접근금지였다.
그래도 나는 똥까자를 가스냄새가 골을 멍하게하는 연탄불이 아닌 석유곤로에서
만들어 먹고 싶었다.

9월로 접어드니 문득 석유곤로의 매캐한 냄새와 파란 파란불꽃이 문득 그립다.

댓글목록

녹수청산님의 댓글

녹수청산 아이피 (211.♡.214.168) 작성일

님 글도 구수하지만 사투리 되게 구수하네요.ㅎ 전라도쪽 사투리인가요?? ㅎㅎ

그냥님의 댓글

그냥 아이피 (121.♡.214.12) 작성일

부산입니다 고향이... 경상도 사투리이지요
똥까자는 설탕을 녹여 소다를 부어 만들어 먹던 과자 였지요.
이젠 석유곤로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아직도 라즈니시 42장경을 틈틈이 보고 있습니다.
1982년 바그완의 '마하무드라의 노래'라는 책은 내 영혼을 흔들었지요.
경전을 원문 그대로 읽어야 된다는 사실을 늦게 알고 다시금 찬찬히 보고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겨울날의 저녁 어스름

넓은 부엌에서 유자냄새가 난다.
램프를 켜면 창문의 파릇한 그림자가 사라진다.
처마끝에 팔딱 무엇인가 떨어졌다.
산탄에 상처입은 한마리 도요새였다.
그리고 추운밤은 진눈깨비가 되었다. 

/ 다나까 후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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