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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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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0건 조회 5,706회 작성일 07-09-0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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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크리스마스 캐롤 송이 울려 퍼지던 부산 남포동의 번화가에는
허름한 옷을 입고 수염도 듬성듬성한 사내가 얼핏 보면 약간 정신이 돈 것 처럼도
보였지만 화려한 네온싸인과 패션이 물결치는 번화가의 한 모퉁이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무말 없이 싱긋 웃으며 노란 봉투를 건네 주었다.
얼떨결에 봉투를 받아든 사람들은 속에 무엇이 들었나 살펴 보았지만
납과 아연으로 주조한 일원 짜리 동전 한 닢에 새겨진 무궁화 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미 통용되지 않는 화폐의 최소 단위 1원.
새털 처럼 가볍기만한 동전 한 닢 1원.
이 세상에 아무런 것도 살 수 없는 1원.
그러나 나도 일원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라는 사람이 꽤 나올쯤
이 허수룩한 사내가 일주일, 한달이 아닌 아주 오랫동안 1원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적선(?)를 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왜 이 사람이 1원 동전을 건넸는지 그 이유와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무궁화 꽃이 피고 지는 것 처럼 이 사람은 남포동의 길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 사람들은 1원의 의미를 제각각 짐작해 보았다.
그는 詩人으로 1원 한 푼의 낭만이라도 사람들에게 찾아 주고 싶었다.
그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무궁화 꽃의 정신이 이 땅에 다시 피어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하여 인생이 거덜 나고 난 후, 돈 한 푼의 가치를 뼈저리게
느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고 싶어 했다.
아니다. 그는 사람이 죽을 때 1원 한 푼 가지고 갈 수 없다는 인생의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그런 일을 하였을 것이다.
이런 저런 추측이 떠돌았지만, 정작 그 이유에 답할 사람은 거리에서
사라져 버리고 난 이후였다.
나도 오랫 동안 1원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그 뜻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문득문득 길 한 가운데에 서서 1원짜리 동전 한 닢을 나누어주던 그 사내를
상상하노라면 그 옛날 예수님과 부처님도 그 때 그래 그래 그랬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고요하게 손을 뻗어 무엇인가를 안겨 주고 싶은 어떤 동그라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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