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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까운 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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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2건 조회 4,696회 작성일 07-09-1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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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의 남자는 카탈로그와 노트북 컴퓨터의 도표를 열심히 보여주며
나의 인생 설계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가 보여 준 몇 개의 인생 공식들.
즉, 늘어나는 인간의 수명과 인플레이션의 이율
현재의 소득과 장래의 수입 한계곡선
질병과 사고에 속수무책인 연약한 인간들......
설명을 하는 도중 우리의 일방적(?) 대화는 그의 휴대폰이 삼분 간격으로
울려 토막토막난 꼴이 되었다.
나는 그 틈 사이 사이 붉은 노을로 물드는 동작대교를 바라보고
커피숍 입구 수족관의 붉은 잉어가 수염난 입을 뻐끔뻐금 거리며
작은 모래 자갈을 입안에 넣었다 다시 뿜어 내는 것을 쳐다보았고
또 빨판 깔대기 입을 가진 열대어가 투명 유리막을 조금씩 문지르며
조그만 입으로 녹색 이끼를 쭉쭉 빨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바보처럼 키위 쥬스가 담긴 글래스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니까 말씀이지요. 이 종신보험에 들면.
♪ ♬ 따라란 따라란..딴딴......따라라라라♪ ♬
그의 휴대폰 벨소리 화음은 모짜르트 40번 교향곡이였다.
그 경망스러운 벨소리 음악이 중요한 순간마다 주인의 말허리를 분질러 버리고 도망을
갔다가 다시 주인을 애타게 찾는 재촉으로 되돌아왔다.
보험 설계사님, 저랑 만나 우리 위태로운 인생을 말하기에
저는 선생님의 벨소리가 너무 불안합니다.
다음에 만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나누어 보지요.
한 시간 동안 무려 열번 가까이 휴대폰 벨소리가 우리의 대화를 끊었다.
흐릿한 어스름이 붉은 노을과 함께 이 지상에서 사라지고
내 일생에서의 단 하루, 흔적없는 생존점이 일몰과 함께 허물어져 간다.
문득 그의 벨소리 사이사이에 아주 가까운 피안이 있었는지도.

댓글목록

식객님의 댓글

식객 아이피 (121.♡.37.54) 작성일

^ㄴ^

길님의 댓글

아이피 (125.♡.4.146) 작성일

상담의 기본이 안되어 있는 설계사로 군요.

아니면, 내가 이렇게 바쁘고 고객이 많은 유능한 사람이란 걸
그런식으로 알려주려 했거나...

붉은 노을이 으스름한 초가을 초저녁에
동작대교를 바라보며,

열대어가 한가롭게 놀고 있는 멋진 수족관이 있는 커피솝에서
종신보험상담을 받을 수 있는 자몽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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