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정신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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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20.♡.146.21) 댓글 0건 조회 5,353회 작성일 07-10-06 11:07본문
대학을 다닐 때 정신위생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시간나면 도서관에 가서 심리학 개론부터 시작해서 인지/의식 관련한 책을 많이 읽었고,
심리학 관련 수업을 즐겨들었으며, ‘인간’과 ‘정신’의 문제에 대한 고민도 끝없이 되풀이 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와 삶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에 기인한 것이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갖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기 위한 시도는
내 청소년기부터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공간에서는 그 ‘왜?’라는
질문을 좀 더 다각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마련되고 있었음으로
나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위한 좀 더 치열한 사색을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치뤄냈다.
나는 까딱 잘못하면 ‘자기 자신의 견해에만 집착하게 된 후로 그 함정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인간 종족의 고질병인 ‘독단’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인간심리일반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숙고, 내 자신을 들여다보기위한 노력 등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 자신의 견해에 맹목 할 수 없음을 경계했고,
이 모든 것들을 내 자신의 사고의 확신 속에서만 추려나간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검증 받고자 힘썼다.
그래서 학교생활 상담소에 가서 학기 바뀔 때마다 심리검사를 받고 상담도 받곤 했다.
2학년 1학기 때인가는 심리검사하고 난 후에 ‘결과분석’을 해주시는 상담교수님으로 부터
참으로 오랫동안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심리검사를 한 후에 1주일이 지나 후 결과를 듣기위해서 간 나에게 검사지를 살핀 교수님이
대뜸 ‘정상이다’(제정신이다)고 말씀하신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나는 교수님의 말씀을 어처구니 없이 느꼈던 것이다.
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20수년을 넘게 살아왔던 내가 도대체 정상일 수 있는 것인가?
인간에 대한 관심, 배려... 자연에 대한 진지한 이해와 그 속에서의 온전히 하나 되기 위한 노력,
조화, 통합, 우애, 사랑 등등의 가치 등이 송두리째 짖 밟히는 사회.
한정된 지구자원으로 인해서 내가 하나라도 더 가지면 다른 사람들이 덜 갖게 됨으로
내가 많이 쓰고 풍요해지는 만큼 상대적으로 헐벗고 굶주리며 죽어가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현실’에 아랑곳 않고, 다른 사람들보다 하나라도 더 손에 쥐고, 자신의 지위를 높일 수 있는 능력만 가지면
영웅취급을 하는 ‘이따위’ 사회에 적응해 살아온 내가 도대체 제 정신일 수 있냔 말이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나는 상담교수님에게 내가 정상이지
않음의 사실을 말씀 드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정상이지 않은 사실 조차도 확인하지
못한 함정에 빠진 상태임을 말씀 드렸다.)
물론 이를 위해서 우선 사회가 정상이지 않은 현실을 구구 절절히 설명해 드려야 했다.
이것이 한 학기 내내 1주일에 두 번씩 이어졌다.
그 상담이라기보다는 토론의 공방전에서
나는 늘상 ‘사회적 책인감’의 문제를 들먹이면서 ‘무책임한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회의 혼란’을 화두로 삼았고,
상담교수님은 ‘왜 그런 생각을 하는가? 네 마음이나 편하게 가져라’는 말씀만 줄기차게 고수하셨다.
상담이 이어지면서 상담교수님과의 매꿀 수 없는 간격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후 심리학/사회학 분야의 교과목을 섭렵하면서 ‘사회적 시야’와 ‘심리학’과의 분명한 괴리를
거듭 확인한 후에 내가 가진 ‘의문’이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더 이상 상담소를 찾지 않았다.
하여간 그 후로 사회학, 철학, 종교, 노장사상, 물리학, 생물학 분야의 잡다한 서적들을
떠둘러 보며 좀 더 치열하게 사색했다.
머리가 총명하지 못해서 역사상 굴찍한 사상가들은 한번 읽으면 낱말까지 일일이 기억한다는
그 지혜를 전하는 책들을, 줄치고 읽고 난 후에도 제목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번번하지만
하여간 책을 덮으면 그 내용을 잊을 망정 열심히 살피면서 뇌리에 자극을 주곤 했다.
물론 나는 단순히 ‘사색하는 것’으로 내 존재와 삶의 비밀/원리를 알아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늘상 현실적인 ‘부데낌’ ‘행동과정’ ‘실천’을 통한 ‘사고의 숙성’이 따라야 했다.
그러한 ‘실천성’은 ‘내 자신의 삶이 사회에 보편타당하게 하라’는 어떤 선각자의 말과 같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잘 못 짜맞춰진 사회현실을 내 일로 고민해야할 필요와 맞물려져서
‘사회적 실천’으로 현현되었다.
대학시절 ‘사색과 실천’이라는 이름으로 동아리를 만들어서 캠페인을 행했던 것은
그러한 ‘이론’과 ‘행동’을 합치시키기 위한 나름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내가 ‘제 정신을 갖고 살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는 것을 말할 뿐
그러한 노력 자체가 내가 제정신을 가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식은 그 내부에서 스스로의 자아를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끝없이 스스로의 의식을 ‘재확신’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으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엄청난 독단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인지할 길 조차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더불은 갖가지 심리학적인 방어기제와 합리화기제는 우리가 순수의 시야로
스스로를 들여다 보기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고승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자기 자신의 의식을 내려 놓고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을 갖는다고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이야기이고,
깨달음을 위해서 머리 깎고 절간에 들어갈 각오(그리해서 깨달아질 수 있을지의 문제는 차치하고)가
되어 있지는 않은 나 같은 평범한?사람들이 제정신을 갖고 살기는 참으로 요원하리라.
하여간 이렇게 인간으로 태어나서 제정신을 갖는 것이 어렵다 보니
희대의 살인마로 이름이 난 외국의 어떤 이도 교수형 당하는 마당에
‘이건 내 잘 못이 아냐?’라고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고 하지 않는가?
특별한 자각과 훈련을 통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평생을 그 속에 빠져 살면서도
그 사실 조차도 알수 없는 의식의 함정.
우리는 어떻게 그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오늘도 나는 나를 찾아 나선 이 길바닥에서 내가 과연 제정신인지를 숙고해본다.
--- 내가 지금 한바탕의 꿈 속을 헤메이고 있다면 어서 빨리 깨어나기를 기원하며...
* 참고로 나는 나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상대방이 나에게 쏟아내는 ‘*새끼’ ‘*할놈’이라는
류의 욕설에는 즉각적인 호전적 반응으로 일관 한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새끼’이고,
‘*’ 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친놈’(정신 빠진 놈)이라는 류의 욕설에는 상당히 관대한 것은
앞서와 같은 사색의 결과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하는 ‘미친놈’이라는 류의 욕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전반의
일반적인 의식상태일 것이기 때문에 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내가 그 존재 매김에
무턱대고 반발할 근거는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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