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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귀가 길 : 여자들의 기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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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3건 조회 6,860회 작성일 07-09-2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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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낮 12시에 출발하여 벌써 도시고속도로부터 차량이 막히기 시작했다.
아내는 차에 타자말자 제사 음식 장만과 시댁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자유을
만끽하며. 시어머니 흉부터 시누이 심뽀까지 낱낱히 고해 바쳤다.
아무래도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타야 했는데, 부산-대구 간의 고속도로를
선택한게 실수 인듯 보였다. 끝임없이 늘어진 차량 행렬를 바라보며 갑갑해
죽겠는데, 아내는 결혼식날 일어났던 사건부터 조카의 이기적 행태까지 자신이
성에 차지 않았던 구석구석을 종알거리고 있었다.
뭐. 결론은 자신이 그렇게 희생하고 베풀었는데, 단지 며느리 라는 죄때문에
응당 인정받지 않는 억울함을 골격으로하여, 평상시 냉대받았다 짐작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빠짐없이 나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고 가스가 떨어져 조바심이 났다.
화장실 앞에 긴 줄이 늘어져 있고 편의점의 음료수와 과자는 동이 날 정도였다.
기름이 떨어진 차가 견인차에 연신 끌려 가는 걸 바라보면서도 아내의 하소연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 시아버지의 좀생이 같은 인생과 마음 씀씀이,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느냐로 실타래가 풀려 어디 명당 자리가 났다고
넌지시 꺼낸 말이 또 자신 보고 무덤 자리까지 사달라고 하는 뜻이 아니냐고
성토를 했다.
이미 도착하여 저녁을 해 먹을 시간인데도 대구까지 밖에 오지 못했다. 차는
거북이 걸음을 계속하는 가운데 어둠이 내려앉아 고속도로가 붉은 등으로
긴 도배를 한 듯 보였다.
시누이가 오년전에 빌려간 돈 오백만원을 왜 갚지 않느냐. 갚을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 시댁 외삼촌은 왜 나에게 와서 내년쯤에 에어콘을 하나 장만해 두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는가. 그 의도와 진의가 무엇이냐. 나는 베푸기만 하고 왜
받지 못하는가의 이유가 점쟁이에게 사주를 보았는데 자신은 실컷 고생만 하다가
은덕을 돌려 받지 못하는게 음력 2월생 남자와 절대로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필 나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눈이 뻑뻑해지고 허리 아래가 쑤셔서 등뼈가 아파왔다. 애들은 PMP를 통해 영화를
보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끊임없이 달렸다. 왜관 쯤에서 차라리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모텔에서 하루쯤 자고 가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려 12시간이 지나서야 집에 간신히 도착했다. 피곤에 절어 온 몸이 천근 만근 처럼
무거웠다. 대충 라면 끓여 먹고 자기에 바빴다. 아내는 이불에 누워서도 자신이
첫 딸을 낳았을 때, 시어머니가 얄궂게 미역국에 조개와 굴을 넣어, 이 지방에서는
당연히 쇠고기를 넣어야 하는데 그걸 이상한 젓갈을 넣은 시뻘건 김치를 자기보고
먹어라고 하여, 그 모습을 본 자신의 어머니가 집에 가서 울었다는 기억에 나지도
않는 일들을 연신 조잘조잘 거렸다.
여자들은 참 이상하다. 온갖 사소한 일들을 일기장에 써지도 않으면서도 까마득
하게 잊혀진 일들이 시댁에 다녀오기만 하면 넝쿨줄기처럼 줄줄히 머리 속에
새겨져 나오나 보다.
12시간의 하소연을 하여도 도저히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댓글목록

J(제이)님의 댓글

J(제이) 아이피 (121.♡.37.54) 작성일

그러게 평소에 잘해서 입막음을 해두어었어야지요.
ㅎㅎㅎ

권보님의 댓글

권보 아이피 (58.♡.168.134) 작성일

자몽님 덕분에 많이 웃어봅니다. 마치 제가 사는 모습을 보는 것같아서 동질감도 느낀답니다.
그러나 12시간동안의 하소연을 무던히도 들어주며 짜증나고 막히는 장거리운전을 하면서도
들어주셨다니, 존경을 표합니다. 저같으면 벌써 승질을 부려서는 제가 핸들을 놓고 내렸거나
아내의 조잘거림이 끊긴 정적을 만들어내었을 것같습니다.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제이님, 권보님.

 여자 없는 세상 상상도 할 수 없으니....................
 다정히 공존하는 법을 배워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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