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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ura (221.♡.72.17) 댓글 0건 조회 8,167회 작성일 11-12-28 07:11본문
킴썽희…… 미스 킴……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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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의 신비스런 눈동자가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수치감보다도 어떤 분노와 환멸이 참을 수 없이 솟구쳤다. 나는 밤새워 <노튼 앤솔로지>를 읽고 워즈워스와 콜리지와 셸리, 바이런, 키츠의 시편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나마 사전을 찾아가며 소리 내어 읽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고작 시험문제가 작품과는 상관없이 작가들의 신변잡사뿐이라니!
교실의 모든 눈동자가 묵묵히 나라는 불쌍한 과녁을 향해 쏠려 있었다. 신부님은 나의 울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마치 낙제생을 위로하며 격려하는 자애로운 교사처럼,
Do more efforts!(좀더 노력하도록 해요!)
머리를 쓰다듬듯이 애잔하게 말하였다. 나 외에도 F학점을 받은 학생은 몇 명 더 있었으나 그들은 내가 준 충격만큼 큰 파문을 던지지는 못했다. 나는 맨 처음에 불려진 최초의 F학점생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잠시 비관했는데, 그것은 왜 나의 노력은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는 허무한 곳에 바쳐졌는가 하는 우울한 질문 때문이었다. 그것은 팔자와 같은 것인지 언제나 나의 노력은 학점이라든가 기타 객관적 가치로 교환될 수 없는 어떤 것에 몽땅 바쳐지곤 했다. 따라서 좋은 학점이라든가 객관적 인정 같은 것은 언제나 나와 인연이 없었다.
독방, 내 자의식의 인큐베이터
이제 나에겐 독방이 생겼다. 자기만의 독방이 생긴다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독방이란 인간에게 자기만의 응급실이고 고해실이고 또한 분장실이 될 수 있다. 뇌출혈ㅡ그리고 어떤 뇌출혈이 줄기차게 그 방 속에선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집은 비교적 새로 지은 한옥이었는데 안채의 끝방이 내 방으로 정해졌다. 소녀다운 분위기가 흘러 넘쳐야 할 그 방엔 그러나 흉측한 관념덩어리와 애매한 분노와 치열한 의지의 진폭들이 퇴폐적으로 빈 술병처럼 뒹굴었다.
나는 동굴을 원했다. 미개한 짐승들이 상처받은 몸을 숨기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 같은 그런 동굴을 원했다. 침묵과 어둠의 수혈의 피처럼 가득 찬 동굴. 어떤 새로운 태(胎)를 원한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의 살과 피를 받아 어머니의 태 안에서 어느 날 태어났던 그런 김승희가 아니고 나만의 자의식의 태 속에서 다시 잉태되어 내가 바라는 어떤 새로운 김승희가 되고 싶다는 어떤 종류의 강렬한 욕망, 비극적인 이글거림 같은 것을 나는 느꼈다.
나에겐 하나의 태초(太初)가, 하나의 원초(原初)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동굴 속에서 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은 당분간 거의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했다.
나는 점점 말이 하기 싫어졌다. 도대체가 그저 무의미했다. 집에 들어가면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식구들과도 낯을 피했다. 서먹서먹한 거리가 마치 식구들을 낯선 사람인 것처럼 대하게 만들었다. 우리 집에 일 년 남짓 세를 살았던 젊은 새댁은 한참 동안이나 나를 벙어리인 줄 알았다고 했다. 어느 날 내가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그 새댁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때 내가 당황한 나머지 왜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요 따졌다. 그때 새댁은 그 사실에 대한 변명도 없이 벙어리인 줄 알았더니 말을 다 하네요 하며 웃기만 했다.
일 년 남짓 같이 살았던 사람이 벙어리인 줄 알 정도로 말을 안했던 것은 내가 침묵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묵은 질병처럼 나를 사로잡아 내부에서 백열하는 것처럼 끓고 있었다. 백열의 도가니ㅡ 그런 것이 내 육체 속에 끓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언어에 이르는 병' 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침묵이란 말이 없음이 아니었고 어쩌면 '울부짖음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때 나의 내부는 무성영화의 어떤 클라이맥스처럼 그렇게 침묵으로 울부짖어야 할 무엇이 잠복해 있었다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때때로 홀로 물어본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누구였을까.
내 육체속에서 울부짖지 않고서는 배겨날 수 없었던 한 마리의 짐승을 나는 언제나 느껴왔다. 짖어 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황폐한 야수. 일종의 미치광이 짐승, 굶주린 늑대 같은 것, 그것이 그때는 침묵으로 울부짖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것은 나와 더불어 살고 있지만 이제 그것은 자기 나름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와 더불어 오랜 운명을 같이 해오면서 이제 시인이라는 말의 성직에 봉사하고 있다. 누군가는 나를 가리켜 '언어의 테러리스트'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내 육체속에 깃들어 나와 희로애락을 같이 해오고 있는 그 기갈에 날뛰는 짐승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일 것이다.
나는 때때로 그 괴물이 지겹다. 미쳐 날뛰는 기갈, 골수에 파고드는 환멸과 우울 미치광이, 환상성이 강한 공포ㅡ 그런 때는 오장육부를 향해 이빨을 갈 듯이 저주한다.
너는 그 속에 처박혀서 홀로 미치고 날뛰고 발광하여라. 나는 이제 너와 헤어져 맛있는 것을 탐하고 좋은 옷을 입고 즐겁게 살 테야. 내 너를 유폐형에 처하니 그 속에서 나오지 마라. 제발 그 속에서 네가 시를 쓰든 말든 나를 편하게 살게 해다오. 이 괴물아.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그 괴물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인간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 겪는 고통이란 신이 천지창조를 하실 때 겪은 고뇌보다 결코 작지 않으리라. 나는 그렇게 나의 동굴 속에서 정체 모를 욕망에 시달리며 아편과 같은 고통 속으로 탐닉해 들어갔다. 그것이 또 하나의 세계였고 타인들의 천하를 다합친다 해도 바꾸지 못할 자신만의 지구였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지 침묵으로 울부짖는 한 마리의 날뛰는 기갈이었다. 그 방은 내 자의식의 인큐베이터였다.
'언어에 이르는 병(신경증)'은 과거의 상처에 고착된 행동에 빠져 있다가 깨어 있음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자신이 고착된 행동에 빠져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상황이 빠를수록 건강함을 의미합니다.
저의 이야기 입니다.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는 것과 조그만 소리가 들려도 소스라치게 깜짝깜짝 놀라는 것, 머리가 부숴질 정도로 두통이 심한 것, 또 가슴은 답답하고 한숨만 나오고 무거운 쇳덩이가 얻힌 것 같고 복부가 쿡쿡 찔리는 듯한 통증의 상태, 사람과의 대함이 아주 극심하게 불안함, 며칠 전부터 이런저런 생각에 두려움이 심하고 회피하는 상황, 온몸에 살이 빠져나가 뼈만 남는 것 같은 느낌, 불면증이 너무 심하여 도저히 깊은 잠을 못자는 상태(5일간 거의 잠을 못잔적도 있음)등등으로 신경정신과에 많이 다니며 이런 저런 의사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특진 선생님과 2년정도 상담을 받다가 나중에는 예약하지 않고 갔기 때문에 이런저런 선생님을 두루 만나게 되었는데 원래 진료를 받던 선생님이 아니면 다시 처음부터 반복해서 이야기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병적인 행동이라는생각에 꺼려하는 느낌이 있어서 결국은 처음 방문을 한 그곳에 그 선생님과 다시 만나게 되는 상황이 되더군요.
제가 만난 선생님은 서울의대 최고의 명의 중 한분이셨는데, 느낌과 공기적 흐름, 공감능력이 아주 탁월하셨습니다. 말을 전혀하지 않아도 굉장한 실력자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지요. 근데 제가 선생님의 음성과 몸짓 행동들을 자주 포착하여 괴롭히기도 하고 건성으로 상담받고 속였기 때문에 이제는 저와 충분한 신뢰가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드시면서 이젠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그토록 뭉친감정을 풀어주시고 흐름으로 받아주시던 분이 감정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저 딱딱한 논설문과 사무적인 말과 약만 툭 던져 주셨습니다.
저는 혼이 나가버렸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힘들어서 찾아가는 곳인데 그곳에서 버려진 느낌이였습니다. 다른 상담소에 가면 처음부터 반복해서 엄청난 검사와 심리평가를 받아야 하고 처음부터 다시 다 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일이 별로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반복해서 생각이 났습니다.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다시 찾아갔습니다. 예전에 신경증의 행동을 더 수준을 높여서 선생님을 저에게 빠지게 하려 했습니다. 보다 강력하게 과거로 회귀하려 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받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정신, 마음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아픈 곳까지 들먹이며 강하게 실제로도 아픈 곳을 말하며, 불상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더욱 강력하게 저를 내쳐 버렸습니다. 그저 돈을 넣으면 나오는 약물 자판기 일 뿐 이였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선생님은 계속 똑같은 행동으로 저를 대할 것이 뻔하였습니다. 저는 위로 받으러 갔지만 선생님은 약물 자판기 행세만 반복해서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밥맛도 없고 감정도 없고 무기력 하기만 할 뿐 이였습니다. 그러자 문득 버려진 나 자신과는 만나지 않고 상대에게만 눈을 쏟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나 자신을 만나려 하였습니다.
108배도 새로 익히고 복식호흡에도 새로이 눈을 떴습니다. 다시 저와 만나기 시작 하였습니다. 선생님께 위로 받으려 불쌍한 척 하는 내가 아니였습니다. 선생님을 비꼬거나 행동과 말등을 잡아 포착하려 하지도 않고 그냥 바라보았습니다. 저의 과거의 잘못을 깨끗하게 시인하였습니다.
그러자, 전투와 같이 의식하며 경계만 늦추지 않던 선생님도 빛장을 풀고 원래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셨습니다. 정보도 모두 알려주시고, 다시 감정이 돌아왔습니다. 오직 나눔 밖엔 없었습니다. 그 분을 23세때에 만났는데, 저는 24세때에 저의 무의식을 깨닫고 30세에 와서야 어리광이 끝나고 진정한 그 분과 만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이 드는 일을 상담료도 많이 드린 것도 없지만 제가 제 마음 답답하듯이 그 분 속도 답답하게 했기에 나라는 사람이 방문하면 더 의식하셨던 분, 그 분 마음이 저의 마음에 숨쉬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 고속버스를 타고 전주에서 인천으로 올라오는데, 차가 달리는 도중에 멀미가 나셔서 구토가 올라오는데, 뱉지를 못하고 입에 머금었다가
다시 삼키는 행동을 내내 반복하셨습니다.
2. 어머니와 결혼을 하시고 신혼초기에 차를 타고 가다가 차창에 자신의 눈이 비춰지자. 나는 이 놈의 눈을 칼로 찔러 버리고 싶다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제 자신도 저를 찌르고 싶은 충동이 수년간 지속되었습니다.)
3. 항상 옳고 건실한 이야기를 꼼짝없이 앉아 비판도 못하고 불안함에 사시나무 떨리듯 벌벌떨며 앉아서 내내 들어야 했는데, 아버지가 계신 방과 제 방에 긴 통로가
있었습니다. 그 통로를 항상 힘겹게 지나 앉아 있어야 하는 힘겨움이 있었습니다.
4. 어머니와의 불화로 아버지와 지내면서 집은 어질러져 난장판이고, 온 사방에 바퀴벌레들이 들끓는데, 내 몸에 달라붙어 놀랐던 시절들.
5. 규칙적인 생활을 자주 강조하셨는데, 정리정돈이나 자신에게 내키는 상황이 아니면 항상 잔소리가 나왔던 시절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항상 숨막히고
의식되고 항상 편하게 있질 못했습니다.
6. 하루하루 일정량의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항상 확인하고 물어보셨으며, 대답하지 못하면 왜 그걸 모르느냐고 건설적이고 옳은 내용, 교훈적인 말들을 쏟아내셨는데,
저는 또 다시 불안해하며 듣고만 있었고, 아버지는 왜 또 저에게 말이 없느냐며 답답해하며 결국은 호통치고 가슴을 치던 일들. 저는 매일 확인 하는 학습량에 공부는
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하였으며, 항상 무기력하기만 했던 시간들이 지속되었습니다.
7. 어머니와 불화로 떨어져 지내다가 다시 재결합을 반복하셨는데, 다시 시작해보자고 시골로 내려가 다시 시작한 농촌생활, 또 금새 다시 깨져 어머니는 도시로
올라가셨고 아버지와 있는데 가로등에 벌레가 왜 달려드느냐?라고 묻자. 너 스스로가 생각 좀 해보라고 윽박지른 일등.
엄마에 대한 생각
저희 형제들끼리 하는 말은 처음엔 무능력한 아빠가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성숙하고 나이가 드니 어떻게 보면 둘다 온전치 않은데 엄마가 더 이상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도 누나와 엄마는 심하게 싸우는데 제가 왜 싸우는지 잘 살펴보니 누나가 엄마한테 아주 강렬하게 지적을 하는데 엄마는 아주 듣기가 싫은지 말을 받지는 않고 바로 그 말이 희안하게 다시 나오는 것을 확인 했습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서로 질서를 잡으면 될터인데 엄마는 자식을 끔찍이 여겨 자신을 희생하면서 여지껏 살아왔는데 이제 자식들이 비판하는 것이 아주 끔찍이 싫은가 봅니다.
엄마의 불만은 연에도 제대로 하지 않고 사회 경험도 없는 외할머니가 배타는 사람은 돈 많이 번다는 말을 해서 결혼하라고 재촉을 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는 연애도 안하고 그냥 결혼하는 시절이였나 봅니다.
아빠는 사우디도 가고 배도 타고 하였지만 어느 한 곳에 꾸준히 정착하여 일하지 못했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듯 하였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벌어온 돈이 적다고 항상 타박을 하였고 허영과 꾸밈 자신의 친척에 비해 능력이 없는 남편과 언제나 싸웠습니다.
엄마는 타고난 사교적인 사람으로 가는 곳마다 즐거운 파티가 벌여지고 하는데 즐기기만 하고 일이 생기면 처리는 안하는 듯 합니다.
아빠가 집을 나가니까 엄마와 살다보니 여러 남자가 집에 오고 갔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때 더는 안되셨는지 일본행을 결심하셨고 일본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타고난 끼를 발산하여 (매우 아름답고 사교적이고 밝고 유쾌한 성격)클럽, 술집, 음식점을 운영하셨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초반에는 경제 호황으로 장사가 매우 잘 됐습니다.
점점 집안 사정이 좋아지자 아빠에게서 완전 독립시켜 따로 살게 되었고 점차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따로 사니 많은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엄마는 거기서도 헤아릴 수 없는 남자들을 섭렵하였습니다. 엄마에게 빠지고 빠져 돈을 탕진하고 자살한 사람도 있습니다.
엄마는 근데 겉잡을 수 없는 낭비벽과 돈을 모으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쓰면서 속은 비어도 겉으로는 떵떵거리고 화려하게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하도 돈을 좋아하고 순간적인 충동을 못견뎌서 일본에서 한국사람이니 은행거래는 안되기에 낙찰계, 사채등을 마구마구 써대서 깡패들이 항상 꼬이고 200%를 내야 하는 돈도 꿔서 쓰고 하였습니다.
장사가 잘돼서 돈을 많이 벌어도 이상하게 돈이 없었습니다.
유혹과 남들말의 귀는 얇아서 지금 2천에 월세에 사는데 5천만원짜리 그림이 걸려있고 3000cc 고급승용차가 집에 있으니까요.
일본에서의 이자만 엄청난데 저희 사는 한국에서는 그에 비하면 작다고 하면서도 집 담보 대출로만 8년간 1억을 내었습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장사도 안되고 마음이 그다지 온전치 않아서 로또에 당첨돼도 금방 탕진 할 사람 같습니다.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지나갔어도 누구하나 안착하고 같이 살기 힘든 것 같습니다. 굉장히 히스테리적 성격으로 감정이 복받치면 비싼 물건을 다 내 던져서 부숴버립니다.
형제들은 이제 지쳐서 3명이 부모 도움없이 저희힘으로 삶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 말씀대로 경제 사정이 좋아지고 21살 때 3수생 나이로 재수학원에 갔다가 열등감과 친구를 사귀지 못함에 잠도 못자고 도망치듯 나오면서 책을 탐독하면서 폭발을 하고 크게 앓았습니다.
대학은 1학년 마치고 공부도 안되고 무기력함에 혼자 도서관에서 책만 보다가 그만뒀습니다. 그 뒤로는 계속 방황만 했습니다.
그냥 직장잡기에는 부자로 사는 것 같았고, 자신도 없었고, 공부를 하고 싶은데 친구를 사귀며 안정되게 공부를 할 순 없는 시간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불면증은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다음엔 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제 이야기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위에 사진은 유치원생때 아버지와 한강에 나들이를 갔다가 찍은 사진 입니다.
너무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많아 타이즈에 난 구멍을 가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비슷한 사진이 9장이 있는데 7장은 가리고 찍었고 2장은 아버지가 안내장을 치우라고 소리치셨던 것 같습니다.
사진 찍는 것도 부끄러워 2번째 사진은 시선이 다른곳에 머물렀던 것도 생각이 납니다. 사진기나 사람들의 맑은 눈이나 항상 응시를 똑바로 하질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습니다.
위에 그림은 현재의 시점에서 무의식의 창고로의 여행으로 지금도 살아 있는 과거 기억을 꺼내와 될 수 있는 한 다시 그대로 재현하려고 애 쓴 그림 입니다. 그러니 본래의 그림과는 조금 다를 것 입니다.
유치원에서 주어진 주제는 부모님 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린 후 우체국에 방문하여 편지로 붙이는 것이였는데, 다른 아이들은 재빨리 그림을 그리는데 저는 망설이다가 마지막에 대충 그려서 편지봉투에 넣어 버렸습니다.
아이의 그림 같습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제 마음에 부모님을 그리는데 가운데 선을 강하게 그었다는 점 입니다.
그 당시에 부모님은 서로 치열하게 싸우기만 하셨기 때문에 저의 마음에는 부모님을 그리라는 것이 망설여졌으며 끝나는 시간에서야 마지못해 재빨리 그려 냈었습니다.
저는 항상 그림이 또렷하지 않고 모호하고 산만한 그림을 주로 그렸습니다. 당연히 점수는 낮았습니다.
저는 굉장히 몽상가적인 아이, 공상가적인 아이, 꿈속에 있는 아이, 비현실적인 아이였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피아노 학원에 다녔습니다. 누나와 함께 배웠습니다. 누나는 저와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누나가 보이는 세계에 주로 속해있고, 저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주로 속해 있는 것 같습니다. 누나는 피아노를 화려하게 잘 연주하였는데, 저는 음표는 왜 이렇게 되는지, 생김새등은 왜 이런지, 도대체 이건 무슨 원리인지등을 엉뚱하게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손가락 연습후에 나비아와 종소리 몇 곡을 쳤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쉽게 익히고 마는데 저는 엉뚱한 상상으로 골몰하여 진도가 느린아이, 둔하고 한참을 생각하는 아이였습니다. 결국은 피아노 학원 가기를 싫어하여 그만뒀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히 생각나는 건 원장선생님이 저를 너무 귀여워 해 주셔서 갈때마다 아주진한 뽀뽀세례를 듬뿍 받아야 했습니다.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어떻게 할 줄 몰랐습니다.
100원을 항상 주셨는데 수리수리마하수리라는 카드와 껌이든 것을 사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슬픔과 우울감은 유치원꼬마도 가지고 있었으니, 친구들이 놀 때 저는 혼자 있었습니다. 그 때 저와 친구가 된 것은 여러 동화책 중에 유독 눈길을 끌어 집을 수 밖에 없었던 미운오리새끼입니다.
그림 하나하나를 보다가 어느덧 백조가 되어 날개를 펴며 동화가 끝났을 때, 알 수 없는 감동과 눈물 전율이 느껴졌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나’와 정확히 일치하고 싶어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정신분석에서는 6세까지의 부모님과의 관계를 맺은 경험이 정신토대의 95%를 이룬다고 합니다.
최근 혼란스러운 생각과 감정들을 정리하고자 나이별로 구분하여 유치원시절만 지속적으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근데 30살인 지금도, 6세 이전에 부모님과 사랑을 나눴던 방식이 똑같이 진행되고 있었고 앞으로도 상당부분 지속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기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시 예전 생각이 문득 기억이 나 바이엘 첫 장에 있는 즐거운 나의 집을 혼자 연습해서 연주하여 보았습니다. 이제는 연습해서 쉬운 이곡은 연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꿈에서 깨었을때, 이제 처음부터 시작이 아니라, 모두 연속해져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임을, 이제는 눈을감고 그 꿈속들을 즐겁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지금 이 글을 보고 내면에 반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말입니다.
구멍 뚫린 타이즈와 가린 타이즈 그것이 곧 진리일 것 입니다.
심리치료는 자신의 의지대로 안되고 혼란스럽고 증상들에 시달리게 하는 무의식의 억압된 기억을 찾아서 의식화 하는 것이다. 근본은 자유연상법으로 내담자는 비밀이 보장되는 안전하고 느슨한 공간에서 신뢰가는 분석가에게 도덕적 시선은 내려놓고 자기검열 없이 기억이 나는 데로 이것저것 논리도 두서도 없이 말하면서 탐구를 해 간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할 일이 생긴다. 치료를 받으러 왔으면서 점점 압축이 되어 무의식에 자료에 거의 다 다가갔는데 더 이상의 자유연상을 멈추고 말하기를 망설인다. 분석가가 접근하지 못하게 무의식의 문을 딱 닫아 억압해 버리고는 괜찮다고 다 나았다고 “그냥 살면 되잖아요?”하고 치료를 끝내려고 한다. 이 사이트에서 한달 넘게 아이디를 바꿔가며 게시판이쪽 저쪽을 넘나들며 아주 생쇼를 하였는데, 창피한 것은 숨기고 멋있는 척 깨달음 운운하면서 숨을 수 있는 만큼 숨는 것이다. 저항의 출현이다.
마치 아파서 병원 갔더니, 주사 맞아야 하는데 막상 보니 주사가 너무 두려운 것이다. 괜찮다고 다 나았다고 이제 치료는 싫다고 떼를 쓰는 아이와 같다. 강렬하게 저항한다. 눈물, 콧물 쏙 뺀다. 보던 사람들이 옆에서 괜찮아 안 아플거야. 주사 맞으면 엄마가 너 좋아하는 장난감 사줄게~!, 형이랑 놀이공원 가자~! 한다. 어? 그거 내가 좋아하는 건데! 하면서 반응을 보인다. 그래도 울면서 싫다한다.
자신도 저항하는 것을 모른다. 모두 무의식적인 것이다. 사실 자신을 낱낱이 드러내는데 너무 창피하니까 도저히 말 못하는 것이다. 이 사이트에도 저항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근본은 자유연상이고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당신의 깨달음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 쓸데없는 토론하자는 사람, 분석가도 모르는 이론으로 지식화하는 사람등등 이런 것들이 자신의 마음과 상처에 저항하고 있는 것들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추악한 모습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정성을 자신이라고 통합하지 못하여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도 남도 괴롭다. 그게 바로 나였다. 초등학교 1학년때 과일가게에서 귤하나를 훔치고 느꼈던 정서를 다시 체험하니 현기증이 일어난다. 나는 도둑놈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거참 이상한 놈이네. 하고 바로 고개돌려 외면해 버릴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인정하기가 힘들다.
근데 진심으로 그게 나 자신이라고 인정하니 편하다. 맞아 난 그런 사람이다. 난 그런 사람 절대 아니라고 난 깨끗하다고 했을땐, 겉잡을 수 없이 신경증에 괴로웠는데, 나 이상하고 미쳤어요. 난 너무 이상해요! 라고 인정하니 정상이 된다. 진실로 모든 저항을 놓고 상처를 받아들이면 그 속엔 사랑이 있으리라.
<꿈이 나에게 말하는 것은……>
언제 부턴지 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꿈에 미리 예견되어 나타나는 예지몽도 있었지만, 대게는 수면중에 억압해놓은 부끄러운 기억들이 변장되어 꿈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꿈을 잘 생각해보면 나와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자각에 꿈에 대한 호기심이 아주 많이 생겼다.
... 얼마 전엔가도 꿈을 꾸었는데, 부처님의 거대한 돌상 앞에서 신도들과 예불을 드리던 중 부처님의 돌상이 삐걱하더니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어어! 하면서 놀라면서 바라보는데 땅에 쿵하고 떨어지면서 돌상이 부숴지고 그 안에서 엄청난 금은보화가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이였다. 우와! 엄청나구나! 하면서 금은보화를 품에 안으면서 꿈에서 눈을 떴다.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이 가면을 쓰고 변장되어 이렇게 나타나는 구나……
하면서 신이 나에게 나 자신과 만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며칠전에도 또 꿈을 꾸었다.
나의 학창시절에 관한 것이였는데,
어쩌면 아이에게 학교생활이란 가정에서 받은 사랑의 테스트 확인 장소인지도 모른다.
사랑이 결핍된 아이는 동료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취약하게 노출된다.
학교생활에서 나는 무기력했고 학교 안에서도 책을 보면서도 모든 것이 부숴지기만 했다.
원리를 생각하지 못함. 개념정립을 하지 못함. 호기심이 없음. 의욕도 없음.
나의 기질적 성향과 합쳐져서 그 어떤 아무것도……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런 것들이 꿈으로 나타났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학생들 사이에 앉아서 전자회로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이번에는 회로의 동작원리를 파악하고 이렇게 전류가 흐르고 각각의 역할들은 무엇인지 호기심있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좋아하던 선생님이 눈 앞에 나타났다. 아니 너가 지금 여기에 왜 앉아 있니? 라면서 모든 것을 이해하는 눈빛으로 한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가 금새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서 이 시간이 끝나고는 상담 받으러 오라고 했다. 나는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잠에서 깨었다.
그것이 지금의 ‘현재의 나’였고 모두가 나 자신이였으며, 상담 받으러 온 곳은 눈을 뜬 현재라는 삶이였다.
올바로 깨치기전에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한 과거들은 인정과 함께 ‘지금’이라는 신성한 강물위에 흘려보낸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였기에....
그리고 나는 지금여기 새롭게 태어난다.
정신치료는 100%이여야……
2000년 부모토막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이은석의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를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었는데, 내용의 객관성이야 어떻든간에 도입부분에 흥미로운 것이 나온다.
분석도 집어치우고
생각도 집어치우고
그 어떤 문학적 수사도 각색도 왜곡도 없이
부모를 살해한 상태를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서술하고 보인다는 점이다.
그 다음에 작가의 심리학적 분석이나 판단, 자료들이 이어지는데 이것은 당연히 객관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정신치료는 이런 것이 되겠다. 어린시절의 상처나, 분노로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무의식적으로 행한 일들에 대해서 범행 현장을 재현하는데,
부모를 어떻게 둔기로 쳐서 화장실로 끌고가 피가 그렇게 철철 쏟아지는 시체를 2구씩이나 어떤 방식으로 톱으로 자르고 뼈를 분리하고 피를 씻고 토막을 내서 어떻게 포장을 하여 교묘하게 이곳저곳의 밖에다가 내다 버렸는지를,
100%로 생생히 눈뜨고 똑같이 그대로 재현하고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망설임도 주저함, 각색도 왜곡도 없이.
내가 은석이가 되어 재현을 해본다. 부모를 둔기로 치고 화장실로 끌고가 시체를 자르고 버려야 하는데, 시체를 자르기에 생각과 판단이 들어가 이건 인간이 할짓이 되지 못했어!의 판단이 들어가고 주저하고 망설이고 눈물을 흘리고. 문학적으로 도망가고 생각이 들어가고 멈칫멈칫 한다.
생각 하기도 싫어하며, 기억에서 없는 듯 모르는 채 살아가고 행동한다.
그런데, 묻어둔게 불쑥불쑥 내 삶을 괴롭히며,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하는데 방해가 된다.
이것이 나의 모습에 남아있다. 이것으론 부족하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그대로 바라보아, 나를 한번 씻어 말리고 싶어지는 날이다.
정신치료에서 이해되지 못할 것은 없다.
초등1) 과일가게에서 귤 하나를 집고 눈치를 보며 불안해 하다가 몰래 가지고 온 일. 엄마에게 말했다가 빼앗겨서 도로 가져다 주었는데, 생각이 반복적으로 나고 나는 도둑이라는 생각에 괴로워 한 동안 과일가게 앞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초등2) 문방구 구석에서 100원짜리 스티로폼 비행기가 가지고 싶어 아래밴드가 있는 라운드 티셔츠에 넣고 나온 일. 가지고 놀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아 괴로웠으며, 문방구가 보이면 숨이 막히고 피했던 일.
초등6) 동네 오락실에 가서 일명 ‘라이터 딱딱이’로 전기충격을 가해 코인을 올려 오락을 하다 주인 할아버지한테 들켜서 경찰서 앞 까지 간일. 그날밤 얼마나 가슴 쓸어내리며 후회를 했는지....
초등6) 빌라 옆 집 창고에서 장기판과 알을 가지고 온 일.
초등6) 비가 쏟아지는 날 어떤 아주머니가 봉투를 떨어트렸는데, 제가 바로 주웠습니다. 돈이 든 걸 알았는데, 아주머니 안 주고 바로 가지고 도망 간일. 12만원이 들어 있었는데, 2만원 내가 가지고 10만원은 수표라 사용방법을 몰라 어쩔 수 없이 어머니께 주었다.
27세) 점쟁이한테 가서 어머니가 상담 받는 도중 집안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메탈밴드 DVD가 있어서 가방에 넣어 가져온 일.
28세) 마트에서 조그만 술병을 계산 안하고 옷소매에 넣어온 일 3회, 화장 붓을 주머니에 넣고 온 일.
29세) 불면증에 다 자는 밤에 돌아다니는 일을 많이 했다. 잘 때 돌아다녔다. 캄캄한 밤에 산에 다니고 마라톤을 했다. 25세때 부터ㅡ
새벽 2시쯤 자주가는 절에 무릎이 안 닿는 연못에 한발만 들어가면 동전을 주울 수 있는 곳에 들어가서 동전을 주어 왔습니다. 처음에 3회에 걸쳐서.
다음에 얼음이 얼었을 때, 위에 올라가서 그릇에 담긴 것을 퍼왔습니다. 10만원 정도 가져왔습니다. 지하철 자판기에 카드 충전하는데 썼습니다.
절에서 알았는지, 전화가 왔습니다. 스님이 대답없는 전화로 ‘여보세요’만 반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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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는 글.
너무 쪽팔려서 1번 보곤 다신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오늘 다시 보니까 그냥 쉽게 읽힌다.
역시 감춰서 억압했던 걸 떠올리며 소산되는 그 순간(화산이 분출하는 듯한 기분) 이 지나면 휴화산이 된다.
30년간 도둑질 한 걸 새어보니 총 10건. 개별 개수로 하면 15번 정도?
내용이 찌질해서 그렇지, 다른 사람들도 훔친일들은 많이 있을텐데, 너무 양심이 비대증이라 그런 것 같다.
도둑놈이라고 하기엔 불쌍하고 안스러울 정도........
절에서 돈을 훔치고 꿈에서는 부처를 깨부수고 나를 알았으니, 마지막의 스님이야 말로 고마운 분이다.
(스님인 것은 추측이며, 이 사건과 연관이 되어 전화를 한 건지 아닌지도 알 수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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