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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눈이 떠져 보인다는 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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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3건 조회 7,873회 작성일 08-01-1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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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앵무새와 파랑새만 가득하고 유쾌한 까치가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약간의 살을 보탠다.
어떤 이는 라즈니쉬의 말을 가져다 붙인다.
어떤 이는 능엄경을 실어 나른다.
어떤 이는 파격적인 에오와 유지의 글을 옮긴다.
어떤 이는 선가의 '할', '엄지손가락' '방망이'와 더불어 선문의 심결을 적는다.
하지만 좀처럼 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을 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냥 자신의 마음이 가는 구절에 밑줄 그은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가 보다.
혹자는 진리의 말에 무슨 사족을 덧붙이고 허투른 생각을 덧칠하겠는가.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듯이 그냥 그대로가 좋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어쨌든 진리의 말은 전부 문자라는 텍스트로 적혀 있다.
텍스트를 초반에 읽다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열심히 쫓다가
'그렇지 그렇지'하고 맞장구를 치다가 볼일 다 보게 된다.
여기엔 자기의 의견과 뜻이 없다. 텍스트를 모시고 사는 셈이다.
한참 이러다가 경륜이 생겨 대체로 비슷한 분야의 여러 텍스트를 보게된다.
오래 연륜 가운데 마음 속으로 이것 저것 비교하여 견주어 보게 된다.
이 사람은 요렇게 말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말했는데 참 요상타는 의문이
비로소 든다. 여기서부터 문맥을 더듬거린다.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해설했는가
찾아보기도 하고 주변에서 찾을 길 없을 때 답답하여 스스로 궁리를 하게된다.
이 까지가 참구이다. 긴 세월을 요한다.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러다 스스로 나중에 답을 찾는다. 우리는 그가/그녀가 정답을 찾았다고
말하지 말자. 이쯤되면 뭔가 터져 나가 안목이 생긴다. 재미있는게
그냥 '눈'이라 말하면 될 것을 왜 똑 같은 '눈'을 두 개나 겹쳐 썼을까.
이것은 나의 상상인데 이제 겨우 두 눈으로 뭘 읽어 본다는 뜻으로 古人이
비로소 두 눈을 떴다고 '안목'이란 말을 찾아 쓴 것 같다.
안목이 생긴다는 것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말은 옳다, 저 말은 그르다. 이 말은 이런 처지에서 한 말이다.
저 말은 이 사람이 그 경지를 몰라 좀 헤매고 있다. 말하자면 자신에게
비추어 보아 텍스트를 비판적이면서도 또 독창적으로 해석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부터 능동의 주체적 글 읽기가 나온다.
비로소 텍스트를 남긴 사람과 텍스트를 읽는 사람이 평등하게 앉아
서로 암중의 대화를 나누는 셈이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글을 남긴 사람과 읽은 사람이 일체가 동화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나는 농담삼아 사람들에게 그 책을 쓴 사람이 꿈에 나오나요? 하고 묻는다.
그 사람이 왜 꿈에 나오느냐고 어리둥절해 한다.

꿈에 나온다. 이것은 정확한 내 경험이다. '산촌여정'을 수 백번 읽고
나서 내 꿈에 '이상'이 자주 등장한 적이 있다. 꿈 속에서 나는 '존 레논'을
수시로 만난 적이 있다.
대개 사람들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나 '존재의 기술'같은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왠만하면 다 읽는다. 읽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이 가슴에 와 닿는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대부분 기억조차 못한다.
나는 밑줄까지 쳐가며 아주 여러 번 읽었다. 나중에는 그의 저작을 찾아다
십 년동안 거듭 읽어 보았다. 어느날 에리히 프롬이 꿈에 나타나 나랑 여행도
다니고 나에게 귀띰도 하더라. '내 삶의 신념'이란 자기 인생을 회억하며
요약한 그의 마지막 글을 읽고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밤을 지새운 적도
있다.
이 정도가 아니라면 이 세상의 어떤 텍스트도 자기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고
있지 않다. 즉 아무 것도 소화되지 않는 그냥 보기 좋은 문자의 떡이라는
것이다.
인용은 좋다. 하지만 백퍼센트 인용은 실제로 아무런 의미도 없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 짐작하는 바의 뜻을 덧붙여 보아야 한다.
당당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해본들 그것은 틀려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경전과 스승과 진리라는 권위를 받아들이고 나서
금방 나태해져 잊어먹고 산다. 참 된 의미란 자기 몸에 아로새겨져
문신으로 남지 않으면 그것은 그냥 속담 정도로 끝이 나 버린다.
그 딴 말 씨부렁거리지 말고 너의 말을 해보아라하고 스승이 제자를
몰아 부친 이유는 두 눈을 감은 채 엣 성현의 말을 읊조리며 자기 껏인 척
암송하는 앵무새 같은 제자에게 매서운 부리와 힘찬 날개로 공중을 선회하며
백리 밖의 토끼도 보이는가를 물어보는 일종의 경책 일 것이다.
두 눈을 똑바로 떠고 있느냐 !
앵무새는 자기 말을 못하는 새이다. 고작 누가 말한 걸 그냥 흉내 낼 뿐.
소리는 닮아 있더라도 뜻은 없다.

댓글목록

e-babo님의 댓글

e-babo 아이피 (58.♡.32.16) 작성일

워매~, 기가 팍 죽어버리능거......
죽비도 아주 장군죽비를 드셨습니다요...

솔직히 이 글 읽고 기 막히네 기막히네 하면서
감탄만 죽어라 하다가
끝에 가서는 아무 말도 할말이 없어져 버리능만요......

저는 아무리 혀도 안목없나봐요......
두 눈을 똑바로 못 뜨겠습니더...

안목이고 뭐고 똑 부러질 게 아무 것도 없는
지같은 거는 기냥 앵무새나 해얄모냥입니더...
우야지요...?
용을 써 보까요? 기를 써 보까요?
쫌 도와 주이소~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이 바보님. 저도 바보 입니다. ^^

프롬 선생은 엣날 어떤 나라 어디로 가든지 간에 읽을 만한 책도 없었다고 합니다.
대충 열권 정도 보면 배운자 취급을 받았고, 동양이라해도 사서삼경 보면 학자로 대접
받았습니다. 별 책이 없었기에 옛날 사람들은 집중과 몰입이 엄청나 달달 외우는 암송 경지에
이르렀고 뭔가 하나를 알더라도 아주 깊숙히 알았다고 하더군요.

우리 현대인이 옛사람 보다 읽은 텍스트의 양은 대개 백배를 넘습니다. 수천 수만권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것은 떠도는 지식일 뿐, 지혜로 내화되지 않고 정신 분열증을 앓고 도저히 집중을
못할 정도로 불안에 떨고 좌불안석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을 한 번 상기해 보자~ 정말 우리가 그걸 알고 떠들고 있는가 반성하자는 취지 밖에
없습니다.

옛사람들은 누구나 말하지요. 한 가지만 제대로 깊숙히 파라. 니 놈이 다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많이 가지고서도 결핍증을 앓는가 봅니다. 결국 자기 것이라 주장할만한게  이 세상에
별로 없습니다.

배경님의 댓글

배경 아이피 (211.♡.76.142) 작성일

無我가 되면 글쓴이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그리고 스승이 자기소리를 하라고 하는 것은 확철대오 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지
그러지도 못한 사람에게 자기 주장을 관철하라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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