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와 오쇼가 남긴 서로에 대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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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비 (116.♡.158.150) 댓글 5건 조회 11,171회 작성일 10-12-18 00:59본문
케이가 말하는 오쇼
크리슈나무르티는 라즈니쉬의 재능은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라즈니쉬를 상대하지 않았으며 라즈니쉬가 '바그완'이란 칭호를 사용하는 것에 심한 경멸을 보냈다. 신도 아닌 인간이 그런 경외스러운 극존칭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였다. 아무튼 크리슈나무르티는 디크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는 범죄자입니다. 그가 영성(靈性)이란 미명하에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지금까지의 행동들은 명백한 범죄행위인 것입니다. 이 말은 곧 라즈니쉬가 법을 어겼다는 뜻이 아니라 그동안 최면술과 영적 능력을 교묘히 악용해 왔다는 지적이었다. [타락한 신 中]
오쇼가 말하는 케이
나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u Krishnamurti)의 관계는 정말 신비하다.
나는 크리슈나무르티를 안 후로 줄곧 그를 사랑했으며 그도 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번도 만난 일이 없다. 우리의 관계는 말을 넘어선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한번도 본 일이 없지만...... 어쩌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 보지 않아도 언어를 넘어선 소통을 한다.
(...중략)
그는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하지만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크리슈나무르티가 세상을 떠났음에도 세상은 ‘최고의 지성인이 이제 거기 없다‘ 는 사실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앞으로 몇 백 년간은 그렇게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가 다시 나타나기 어려울 것인데도 사람들은 너무 깊이 잠들어 있는 나머지
그런 위대한 지성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아무도 읽지 않는 지방 신문에 그의 부고 기사가 실렸다.
거의 70여 년 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구속과 굴레를 벗어던지라고 외치던 90살의 노인에게 아무도 경의를 표하지 않는 것 같다.
인류사를 통틀어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말이다.
나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아름다웠다. 그는 삶이 주는 모든 것을 성취했다.
내가 슬퍼하는 대상은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드높이 비상하여 의식의 최고봉에, 더없이 밝은 별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놓쳐 버린다.
사소한 일들에 너무 깊이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크리슈나무르티에게 깊디깊은 친밀성을 느낀다. 관계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을 만큼 말이다.
관계는 두 존재가 서로 나뉘어 있을 때 가능하다. 하지만 나와 그는 하나라는 느낌이 든다.
그가 했던 비판에도 불구하고, 내가 했던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의 비판은 모두 그 노인네에게 던지는 농담이자 그 노인네를 건드려 보려는 방편이었다.
그는 아주 쉽게 자극을 받았다.
나는 산야신을 보내 그의 강연장 맨 앞줄에 앉게 했다. 내 산야신들은 모두 붉은 옷을 입는다.
맨 앞줄의 붉은 옷을 본 크리슈나무르티는 불쾌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빨간색을 아주 싫어했기 때문이다.
전생에 황소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붉은 천만 보면 날뛰는 황소 말이다. 황소에게도 자기 나름의 개성이 있는 법이다.
맨 앞줄의 붉은 옷이 눈에 띄면 크리슈나무르티는 강연의 주제도 잊어버린 채 나와 내 제자들을 비판했다.
나중에는 자신이 머물던 집의 안주인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
“이자는 정말 못 말리겠소.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내어 내 강연을 방해하니 말이오.
붉은 옷을 입은 사람만 보면 강연의 주제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것도 매번.
물론 그가 내게 농담을 걸고 있음을 알긴 하지만.
그 사람은 심각하지도, 나를 반대하지도 않아요.
나도 그 사람을 반대하지 않고요.“
나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측근들이 이런 사실을 말해 줘 잘 알고 있다.
“그 분은 당신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당신에게 아무리 화를 낸다 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해 줬다.
“나도 알아요.
나는 그분을 좋아합니다.
한 사람을 좋아하는 일과 그 사람에게 농담을 던지는 일이 모순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분이 조금은 덜 심각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약간의 농담이 해가 되진 않습니다.
바로 그 점에 대해서만 나와 그분의 생각이 다릅니다. 그분은 너무 심각해요.“
종교가 좀 더 인간적으로 다가오려면 유머를 알아야 한다.
종교 가르침에 유머가 없으며 인간미가 사라지며 지식적이고 논리적으로 변한다. 더욱 과학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과학의 연구대상이 될 수 없다. 인간에는 과학을 넘어선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라.
나무도 웃지 않고 물소도 웃지 않는다.
동물들도 웃지 않는다. 유머를 아는 생물은 인간뿐이다.
진화의 정점에 서있는 인간만이 웃음을 아는 것을 보면 웃음 속에는 무언가가 있음이 틀림없다.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은 참으로 훌륭하지만 너무 심각하다.
나의 경험과 느낌에 비춰 보면, 크리슈나무르티는 자신의 심각함으로 말미암아 70년의 세월을 허비했다.
그래서 심각하고 불행한 사람들만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는 송장 수집가였다.
그가 늙어감에 따라 송장들도 늙어 갔다.
우리에게는 유희와 유머, 웃음이 좀더 필요하다.
이 점에서만큼은 나는 크리슈나무르티와 견해를 완전히 달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재였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사람들의 가슴을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는 사람들의 머리에 다가갔을 뿐이다. 가슴은 다른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평생 생각을 달리했다.
가슴에 다가가지 않으면 앵무새같이 같은 말만 되풀이하게 될 뿐이다. 그런 말에는 생명이 없다.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하는 것은 모두 진리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가슴과 연계시키지 못했다.
다른 말로 하면, 크리슈나무르티는 위대한 철학자였지 위대한 스승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을 돕지 못했다.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살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크리슈나무르티를 사랑한다.
그는 철학자 같은 삶을 살면서도 신비가의 길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신비가의 길을 피했다. 신비가의 길을 우회해서 돌아갔다. 거기에 그가 실패한 원인이 있다.
현대 사상가들 중에서 신비가의 세계에 가장 가깝게 다가갔지만 그 경계선상에서 멈춰버린 유일한 인물이
바로 크리슈나무르티이다.
신비주의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이 신비주의의 낡은 전통이나 철학에 빠지게 될까봐 크리슈나무르티는 두려워했을 것이다.
바로 이 두려움 때문에 크리슈나무르티도 신비가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했고 그의 가르침을 듣던 사람들도
신비가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했다.
왜 크리슈나무르티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그토록 반대했을까?
그건 치유가 되긴 했으나 흉터가 남은 상처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제자가 되어야 했다.
애니 베전트를 비롯한 여러 신지학자들이 크리슈나무르티를 선택했을 때 그는 겨우 아홉 살의 어린 꼬마였다.
그래서 자신의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엄격한 규율에 따라 생활하도록 강요받았다.
그는 스물 네 시간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당시 신지학의 지도부에 있었던 리드비터가 본 비전에 따르면,
어린 크리슈나무르티는 장차 미륵불이 그의 몸속에 현현하여 세계 교사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거기에 맞춰 대단히 엄격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놀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했다. 항상 감시를 받았다.
보통 학교에 입학하지도 못했다. 완전히 감옥에 갇힌 생활을 해야 했다.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티베트, 중국, 인도, 이집트 등등의 수많은 의식을 거행해야 했다.
참으로 피곤한 생활이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동생 니티아난다가 죽었을 때 견디기 힘든 상처를 받았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동생 니티아난다와 함께 세계 교사가 되는 교육을 받았다.
둘 중 누가 세계 교사가 될지 신지협회 측에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튼 니티아난다는 엄격한 훈련을 받다가 사망했다.
동생의 죽음은 크리슈나무르티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동생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랑의 대상을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일찍 죽었으며 사원 노릇을 하던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런 환경 속에 있던 두 아이를 베전트가 양자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두 아이는 베전트의 양자가 된 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비의들을 배워야 했다. 어린 형제에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니티아난다의 사망 원인은 엄격하고도 벅찬 신지협회의 교육이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두 아이는 감옥에 갇힌 죄수 같았고 선생들은 두 아이를 지키는 간수 같았다.
그래서 어린 크리슈나무르티는 선생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당시 어린 나이로 스승의 올무(새나 짐승을 잡기 위하여 만든 올가미)에서 빠져 나오는 일은 대단히 어려웠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성년이 되자마자 그 올무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했다.
“저는 그 누구의 스승도 아닙니다.
저는 세계 교사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두 무의미합니다!“
그 후로도 크리슈나무르티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스승이나 제자, 수행, 명상 등의 주제가 나오면 지체 없이 비판을 가하곤 했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사실 크리슈나무르티는 스승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제자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강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사랑과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스승과 제자에 관해 절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을 강요했으며 이미 죽은 전통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크리슈나무르티는 스승과 제자, 산야스 등을 비롯한 모든 방편들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그의 내력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크리슈나무르티가 붓다와 그의 제자에 대해 무얼 아는가?
그가 아티샤와 그의 스승들인 다르마키르티, 다르마락쉬타, 요긴 마이트레야에 대해 무얼 알겠는가?
애니 베전트와 리드비터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독창성에 해가 될까봐 고대 경전들을 읽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크리슈나무르티는 위대한 영적 흐름들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
그대가 아티샤와 다르마키르티를 모른다면 소중한 걸 놓치게 된다.
아티샤의 스승이었던 다르마키르티는 아티샤를 다르마락쉬타에게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는 것은 전부 네게 가르쳤다.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말해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은 나의 길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르마락쉬타에게 가라. 그는 나와 다른 길을 갔다.
그는 네게 더 많은 것을, 더 참된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난 거기에 대해 듣고 보기만 했을 뿐이다.
나는 네게 공을 가르쳤다. 이제 다르마락쉬타에게 가서 자비를 배우라.“
그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다르마락쉬타는 자비를 배운 아티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성적이고 수동적인 자비만 안다.
능동적인 자비를 배우려면 요긴 마이트레야를 찾아가라.
그가 네게 가르쳐 줄 것이다.“
이들은 소유욕도 질투심도 지배욕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전적인 자유를 가르친 스승들이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이런 스승들의 존재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신지학자들뿐 이었다.
신지학은 20세기에 일어난 종교 사상들 중에서 가장 추한 종교 사상이다.
온갖 잡다한 바보들이 신지학이란 깃발 아래 모여 온갖 잡탕을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종교의 좋은 점만을 따 와 하나의 통합된 종교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 통합은 가능하지 않다.
설사 그런 통합 종교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해도, 그런 종교는 숨도 쉬지 않고 맥박도 뛰지 않는 죽은 종교가 될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이렇다.
그대가 여러 여성들을 사랑한다고 하자.
그런데 한 여자에게서 아름다운 눈을 따 오고 다른 여자에게서는 아름다운 코를 따 오고......
이런 식으로 여러 여자들에게서 아름다운 부위들을 따 와서 조립을 해 하나의 여자로 만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결과는 죽은 사람이다.
기껏 하나의 송장을 만들기 위해 여러 명의 여자를 죽인 일은 또 어떤가?
이는 어리석음의 극치일 뿐이다.
신지학이 한 일은 바로 이런 것이다.
힌두교에서 아름다운 것을 따 오고 도교에서도 아름다운 것을 따 오고 이슬람교에서도 아름다운 것을 따 오며
유대교에서도 아름다운 것을 따 온다.
따 온 것들을 모두 모아 믹서에 넣고 섞는다.
거기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죽은 송장뿐이다.
불행하게도 크리슈나무르티는 이런 사람들과 살아야 했다.
하지만 크리슈나무르티의 지성은 놀라웠다.
다른 사람들이 크리슈나무르티의 위치에 있었다면 모두 주체적인 정신을 상실하고 신지협회란 새장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 새장은 참으로 아름답고 참으로 매혹적이었다. 수많은 추종자들을 그냥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슈나무르티에게는 그런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 만큼, 모든 함정에서 뛰쳐나올 수 있을 만큼
용기와 배짱과 지성이 있었다.
신지협회에서 나오는 일은 생존의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을 존경한다. 더없이 존경한다.
나는 왜 그가 스승과 제자, 산야스를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관찰자는 피관찰자가 된다” 라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은 그 어떤 사람의 말보다 심오한 말이다.
이 말은 크리슈나무르티 자신만큼이나 비범하다.
이 말을 지적으로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지식의 길은 이원론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의 길에서 주체는 객체가 될 수 없고, 보는 자는 보이는 자가 될 수 없다. 관찰자는 피관찰자가 될 수 없다.
지적인 세계에서 그런 말은 논리에 맞지 않다. 논리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상식에도 어긋나는 이야기다.
실체에 대한 지적인 접근은 사물을 분리하는 것이다.
아는 자와 알려지는 자가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럴 때라야 둘 사이의 지식은 가능해진다.
과학자가 과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학자는 자신이 하는 일과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
실험자가 실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는 지식과 논리의 세계에서 분명히 타당한 시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식을 넘어선 지식, 과학을 넘어선 앎도 존재한다.
과학의 영역을 넘어선 앎의 세계가 존재할 때라야 신비주의와 종교성이 가능한 법이다.
다른 시각에서 한번 보자.
과학은 세계를 경험의 세계와 존재의 세계로 나누고 기지의 세계와 미지의 세계로 나눈다.
사실 오늘의 기지는 어제의 미지였고, 또한 오늘의 미지는 내일의 기지가 된다.
그러므로 기지와 미지는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기지와 미지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무지의 영역이 줄어들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지식이 확장됨에 따라서 미지의 영역이 줄어들고 기지의 영역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논리를 따라가면 미래의 어느 날엔가는 미지의 영역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즉 서서히 미지가 기지로 변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아무런 미지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무지를 완전히 몰아내는 것, 이것이 과학의 목표다.
그러나 무지를 몰아내는 것은 곧 미래의 가능성을, 미지의 가능성을 파괴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무지의 파괴는 지성의 사망을 뜻한다.
무지가 완전히 사라지면 지성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성은 과거의 유물로 전락하고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그다지 즐거운 이야기가 아니다.
신비주의는 과학을 믿지 않는다.
신비주의는 과학을 초월한다.
신비주의에서 존재와 경험은 기지와 미지와 부지(不知)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과거의 미지는 현재의 기지가 되고 현재의 미지는 미래의 기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부지는 언제나 부지로 존재한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존재의 신비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 신비의 세계가 그대의 존재를 둘러싸고 있다. 그대의 삶과 사랑, 명상을 둘러싸고 있다.
신비는 파괴할 수 없다.
물론 무지는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무지를 파괴하여 신비와 그 기적마저 파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은 부지의 영역을 가리킨다.
명상이란 마음의 흐름을 점점 더 많이 자각하는 것이다.
마음이 모든 에너지를 가져가면 그대의 내면은 완전한 수면 속으로 빠진다. 거기에는 아무런 각성도 남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 붓다가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었다.
프라센지타 왕도 붓다의 설법을 듣기 위해 왔다.
왕은 붓다 바로 앞에 앉았다.
왕은 바닥에 앉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몸이 불편할 때마다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었다.
그러면서도 붓다의 설법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엄지발가락을 쉴새 없이 움직였다.
딱히 할 일이 없으면 안절부절 못하는 타입이었다.
붓다가 설법을 중단하고 왕에게 물었다.
“왜 엄지발가락을 계속 움직이십니까?”
사실 프라센지타 왕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대도 역시 많은 일들을 의식하지 못하고 한다.
다른 사람이 지적해 주지 않으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모를 때가 많다.
붓다가 묻자마자 왕은 발가락의 움직임을 멈췄다.
붓다가 다시 물었다.
“왜 멈추십니까?”
왕이 대답했다.
“난처하게 만드십니다.
사실 발가락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왜 움직이냐고 묻자 그냥 발가락이 멈췄습니다.
내가 한 게 아니에요.“
왕의 말을 들은 후 붓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겠는가?
자신의 발가락이 움직이는 데도 왕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왜 움직이느냐’ 고 묻자 왕은 그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바로 그 알아차림이 발가락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왕이 멈춘 게 아니다.
‘왜 미련하게 발가락을 움직이지’ 하는 각성이 발가락을 멈추게 한 것이다.“
마음이란 끊임없이 흐르는 생각이다.
마음은 러시아워처럼 밤이고 낮이고 온갖 생각들로 붐빈다.
명상은 이런 생각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이다.
인도에 서서 지나가는 차들을 지켜보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지켜보라.
판단도 평가도 비난도 인정도 하지 말고 순수하게 관찰하라.
이런 관찰에 익숙해지면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대가 10퍼센트 각성을 하면 그만큼의 에너지는 마음에서 관찰자 쪽으로 이동하며 마음은 90퍼센트의 에너지만 갖는다.
그렇게 계속 관찰해 나가면 그대가 50퍼센트의 에너지를 차지하는 순간이 온다.
그대의 에너지가 증가함에 따라 마음은 계속 에너지를 상실한다. 마음의 흐름이 더디어지고 그대의 존재가 더욱 더 많아진다.
관찰을 계속하면 지켜보는 힘이 증가한다. 점점 더 강해진다. 그리고 마음은 점점 더 약해진다.
90퍼센트의 관찰자와 10퍼센트의 마음, 99퍼센트의 관찰자와 1퍼센트의 마음, 이런 식으로 말이다.
관찰자가 100퍼센트가 되면 마음은 사라진다. 도로는 텅 비워진다.
마음의 스크린은 완전히 비워지고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는다. 오직 관찰자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하는 경지다.
관찰의 대상이 모두 사라지고 관찰자만이 남을 때 관찰자는 피관찰자가 되는 것이다.
아는 자가 아는 자를 안다. 보는 자가 보는 자를 안다.
대상과 생각으로 흐르던 에너지는...... 생각도 없고 대상도 없다. 에너지는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이 에너지는 자신을 비추는 빛이 된다. 거기에는 비출 대상도 사라졌다. 그래서 침묵과 무의 빛이 자신을 비출 뿐이다.
그것이 “관찰자는 피관찰자가 된다” 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의 뜻이다.
이를 깨달음이라 불러도 좋다.
빛은 빛 자신을 비출 뿐이다. 거기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이 모두 녹아 없어졌다. 거기에서 그대는 완전히 깨어나 홀로 존재한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을 사용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표현, 아무도 쓰지 않은 말, 어떤 스승도 사용하지 않은 언어를 찾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는 평생 자신만의 표현을 찾아서 썼다.
체험은 영원하다.
체험을 표현하는 말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체험 자체는 바꿀 수 없다.
체험을 깨달음이라 부르든 니르바나라 부르든 사마디라 부르든 다른 어떤 것으로 부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대는 자신이 만든 말로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체험 자체는 언어로 바꿀 수 없는 것임을 명심하라.
체험 자체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말로도 바뀌지 않는다.
크리슈나무르티의 표현은 붓다의 니르바나, 파탄잘리의 사마디, 마호메트의 알아함 등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관찰자는 피관찰자다” 라는 표현은 너무 논리적이다. 물론 그의 표현은 실체를 가리키고 있지만 별로 시적이지 않다.
내가 아는 사람이 크리슈나무르티가 죽기 사흘 전에 그를 만났다.
이 지인은 크리슈나무르티가 매우 슬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열심히 했소.
하지만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고 나는 괜히 시간만 허비했소.
사람들은 내 강연을 시간이나 때우는 구경거리로 생각했소.
구경거리라는 말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오.
나의 일생은 구경거리나 제공하는 것이 되어 버린게요.“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스무 살부터 인류를 위해 봉사하며 90년을 살다 갔다.
그런데 크리슈나무르티는 몇 백 년 전에 떠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무도 그를 생각하지 않고 아무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그는 20세기의 위대한 거봉이었지만 노벨상 위원회는 그의 이름을 거론도 해보지 않았다. 정치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크리슈나무르티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하지만 교회와 종교, 사제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인류에 대한 생각을 서서히 접어 갔다.
그를 따르던 사람은 세계적으로 소수 도시에 사는 사람들뿐 이었다.
그는 인도에 오면 네 곳, 즉 크리슈나무르티 학교가 있던 리쉬 계곡과 뉴델리와 봄베이, 바라나시만을 찾았다.
세계적으로도 그랬다.
30년, 40년, 50년이 흘러도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한결같이 같았다.
또한 50여 년 동안이나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의 삶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이 사실은 참으로 슬프다.
그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지 못했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인류는 더욱 완강해지고 있으며 잠과 약에 취하여 죽어가고 있다.
사람들을 일깨우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오쇼 라즈니쉬, 위대한 만남(Meetings with Remarkabl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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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화를 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유명한 영성가들이 남긴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다 같으며
그들이 가르치는 방식은 다르더라도 서로에 대해 공감하며 깨달은 경지도 비슷할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착각입니다.
위의 글을 보더라도 크리슈나무르티는 오쇼를 사이비교주로 보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정직하게 비판을 하였고
오쇼는 겉으로는 크리슈나무르티를 치장해주는 척했으나 속뜻으로는 그는 한낮 철학자에 불과했으며 사람들에게 진실된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명상계의 방향과 종착점은 지도자에 따라 분명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자기만의 착각의 길로 접어들지 않게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신비님의 댓글
신비 아이피 (116.♡.158.150) 작성일
국내에도 여러 종류의 스승들이 있지요.
분명하게 다른 종파들이 있습니다.
다름을 다르다고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일념집중님의 댓글
일념집중 아이피 (211.♡.164.232) 작성일
신비님 반갑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오쇼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오쇼선생님의 유머와 장난끼를 너무 좋아합니다.
얼마전에는 오쇼자서전을 읽어봤는데, 확실히 어렸을 적부터의 성장배경을 알게되니
그분의 전체적인 가르침의 흐름들을 이해하기가 수월하더군요...
하여간 멋쟁이 선생님입니다.
신비님도 오쇼를 무척 좋아하시는 분인것 같습니다. 반가워요.
크리슈나무르티라는 분은 많이 들어봤지만, 아직 책을 접해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신지학회는 잘은 모르지만, '시크릿'이란 책때문에 조금 알게된 단체네요.
바다海님의 댓글
바다海 아이피 (211.♡.60.194) 작성일
오쇼~~~!
오쇼명상을 하고 있는 제겐..
움직임이 많아서 신나죠
오로지 춤추고 노래 하고 놀고~~
신비님의 댓글
신비 아이피 (116.♡.158.150) 작성일
글쌔요.
저는 오쇼보다는 K의 말에 보다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일념집중님의 댓글
일념집중 아이피 (211.♡.129.211) 작성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헛다리짚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