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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적 믿음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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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11.♡.228.4) 댓글 2건 조회 6,083회 작성일 08-03-0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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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독단'은 자신들만의 종교를 절대적으로 여기고 타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비하하고 무시하는 일련의 태도이다.

한국 사회의 종교적 독단론자들인 -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흔히들 자신의 믿음이 그 자체로 ‘완벽 한’, ‘의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에 자본과 권력의 ‘역사’가 삼투되어 있고, 이를 받아들이는 문화와 언어의 특성을 반영하며, 개인적인 심리와 사고가 투사된다는 사실을 고려조차 하지 않고, ‘내가 믿는 믿음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동어 반복적인 환상에 안주 해 있다.


이들의 다른 종파와 타종교 배척적인 행태는 아마 이러한 무지와 아집의 결과이다. 이들의 무지와 아집은 허술한 정신의 토대위에 겹겹이 쌓여진 것이라,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가 필요치 않다.


가령 그들(종교적 독단에 빠진 많은 이들)에게 ‘카톨릭은 온전한 믿음인가?’라고 물을 때 그들은 ‘기독교에만 진실한 신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담 이때 ‘삼위일체를 믿는가?’라고 다시 물어보자. 그들은 ‘당연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다.’고 주장할 것인데, 문제는 이 ‘삼위일체’는 가톨릭 교회에서 만들어진 교리이다. 더군다나 삼위일체설을 공표했던 사람은 예수를 십자형에 처한 ‘본디오빌라도’의 정치적 후손인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황제로서 구데타를 통해 황제에 오른 후에 정치적인 안정의 목적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그렇게 형식적인 교리를 다듬어 갔던 것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공인 후에도 자신의 태양신 숭배 경향을 그치지 못했는지 그가 만든 주화에는 태양신이 찍혀 있을 정도이다. 안식일을 히브리식의 토요일에서 로마식의 일요일로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예수 탄신일이라고 알고 있는 12월 25일도 사실은 로마에서 '태양이 소생하는날'이라고 하여 기념되던 날을 로마 교회에서 도용한 것이었다. 삼위일체의 ‘진실성’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렇게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공표’되고, 1000년 넘는 시간을 넘게 ‘카톨릭’의 품속에서 이어져온 교리가 개신교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또한 기독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라. ‘예수’와 ‘신’은 원래 하나인가?(단성설) 아니면 예수와 신은 각각의 다른 존재이지만 하나로 뭉쳐진 존재인가?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은 이러한 구분은 ‘칼케톤공의회(451)’에서 논의된 주요 주제로, 만약 여러분이 ‘예수와 신은 원래 하나이다’라고 주장했다면 당장 파문당하고 당신의 교회는 불태워졌을 것이다. 이러한 ‘단성설’을 믿는가 안믿는가?의 여부는 ‘삼위일체’를 믿는가 안믿는가?의 여부보다 교리적, 정치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단성설을 믿고 있었던 이집트, 시리아의 교회와 교인들은 칼케톤공의회의 의결 직후, 처참하게 박해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훗날 아랍인들이 유럽대륙으로 전파한 ‘이슬람교’가 이집트와 시리아에 받아들여졌던 것도 ‘이슬람교적 단성설’ 예수교적 ‘단성설’이 교리적인 교통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교리적인 교통으로 이슬람의 지중해 인근 정복 전쟁 시 이집트인과 시리아 인들은 이를 ‘해방’으로 여겼을 정도였다고 사료는 전하고 있다. 이 ‘단성설’ 문제는 아랍의 종교와의 교통의 문제, 로마제국의 분열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분명 기독교 교리에서는 ‘삼위일체설’보다 훨씬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어야 했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설’을 믿는지의 여부를 통해서 상대가 ‘진정한 기독교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고 하지 ‘단성설’을 믿는지의 여부로 기독교인임을 판단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는 짐작이지만, 종교지도자들이 생각한 바대로의 ‘몽매한 대중’을 상대로 해서 ‘삼위일체설’과 ‘단성설’의 복잡한 교리를 모두 주입했다가는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를 했던 듯 하고, 단성론자 배척 과정에 너무 큰 희생이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로부터 1500년의 세월을 건너뛴 현대의 기독교인이고, 정치적 필요에 의한 종교지도자들의 회합인 ‘공의회’의 결과를 ‘맹신’하는 이유로 ‘삼위일체설을 믿지 않으면 기독교인이 아니다’(니케아공의회)라는 용감한 주장을 할 수 있으려면, 마찬가지로 ‘단성설 적인 생각을 하는 이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 하라는 말이 아니라, 삼위일체설에만 맹신해 있어야할 필요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아마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단성설’이 공의회에서 부정된 교리이고, ‘이슬람교’의 믿음과 교통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 '뜨끔‘해 하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몰이해를 시인하며, 단성설을 결사 부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랴, 그 후의 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527)는 단성론자들을 다시 받아들이고 박해받았던 단성설 주장자를 교황서열 2위에까지 앉혔을 정도였다. 그렇담 기독교의 초석을 세운 로마의 정치가들이 단성론자의 대대적 박해 후에 이렇게 단성론을 다시 받아들였으니 어쨌든 복잡한 단성론 교리의 옳고 그름은 서로 상쇄되는 것이고, 현대 한국사회의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론’만 물고 늘어지면 될까?


그러나 역사는 그러한 대립적 결과물들의 맞바꿈으로 원점이 되는 일은 없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사후 다시 단성론자들은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서도 ‘교리적’으로 ‘정책적’으로 단성론자 배척이 지당할 터인데, 현대의 한국적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 부정하는 이들을 이단으로 내치듯이)왜? 단성론자들을 색출해서 배척하지 않는가?


뿐만 인가? 그 자체로 우상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성화-성상’을 파괴하라는 칙령이 내려져서 동로마에서는 성상-성화를 파괴에 나섰다. 이는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성화-성상숭배의 유행으로 갖은 병패가 발생한데 대한 교황의 특단의 조치였다. 특히나 이슬람교도가 기독교회에 만연된 성화-성상숭배의 부적절함을 주장하면서 기독교회의 권위를 떨어트림에 대한 동로마 교황의 위기의식은 그렇게 특단의 조치를 행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하지만, 서로마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이를 거부하면서 대립을 겪다가 결국 8세기 말에 열린 공의회에서는 동로마도 다시 ‘성상-성화’숭배를 합법화 시킨다. 이러한 과정에서의 분쟁을 빌미로해서 서로마는 동로마의 교회세력으로 부터 독립하고자 했으며, 결국 이로인해 ‘그리스정교회(동로마)와 ’로마카톨릭‘(서로마)가 나뉘게 된다.


어쨌든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성경에 명시되어 있어 이에 약간의 자정노력을 보이던 와중에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맞물려 ‘나 이외의 다른 신’(우상/성상)을 교리화 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더군다나 공의회 결과가 그렇게 결정 내렸으면 기독교인들이 ‘3위1체 니케아 강령’을 맹신하는 것처럼 교회의 중앙에 예수의 그림을 걸고 이를 숭배하는 것이 마땅할 터인데, 그렇지 않는 것 역시 이상하기는 매 한가지이다.


앞서 살펴봤던 대로의 ‘공의회’는 정국안정을 위한 정치적인 필요에 의한 교리의 통일을 강요하기 위한 회합이었다. 물론 그 안에 믿음이 출중한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공의회’는 ‘제국의 믿음’을 형식화 제도화하기 위한 회합이었다. 초기 300년 이전의 탄압받고 무시되던 ‘약자의 믿음’이 로마 제국의 정치적 이해에 맞물려 ‘지배자의 믿음’으로 변질되면서 그렇게 형식화, 제도화, 규격화 되어 갔던 것이다.


정교일치의 사회에서 교리의 분열은 곧 정치- 국가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렇기에 로마의 황제와 그 이후의 교황들은 기독교를 공인하고, 공의회를 통해서 믿음에 대한 ‘공적 규제’의 기준을 정한 것이었고, 창칼을 이용해서 이에 벗어나는 믿음을 재단해 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과연 누가? 그렇게 규제와 형식을 가하라고 하였나? 예수께서 자신을 믿기 위한 교리를 ‘국가권력’을 등지고 ‘공인’하여, 이러한 규정된 믿음을 믿지 않는 이들은 창칼로 단죄하고 이글거리를 불로 정죄하라고 하였는가? ‘왼뺨을 맞았다면 오른 뺨을 내밀라’이르셨던 예수께서?

'성경' 자체에도 앞서 얘기한 분량에 뒤지지 않는 복합적인 모순과 분열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성경’역시 창칼의 위협과 재정적 지원(채찍과 당근)을 통해 당시에 널려져 있던 여러 종류의 성경 중에서 27권을 모아서 급조하고 ‘공인’한 것이었다. 이렇다 보니 가장 핵심적인 ‘4복음서’의 예수 탄생에 관한 내용마저도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이해해 줄 만하다.

하지만 '올바른 신양의 길'을 외치며 교회 개혁에 나섰던 개신교의 시조였던 루터는 27개 신약성경 중 '허수아비편지'라고 폄하했던 야고보서를 신약성경에서 빼고 26개만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루터의 카톨릭에 대항한 개신교 정신만이 '올바른 믿음'을 회복할 수 있는 길로 생각하고 있고, 타 종교를 배척하기 위해서 늘상 그러한 '배척기준'을 들이 밀기 때문에도 기독교인들은 루터의 판단도 고스란히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어쨋튼 이로 인해서 다시 상당히 복합적인 고민꺼리가 발생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통치체제의 구축을 위해서 급조한 신약성경이 '신성화' 되었는데, 그 신성화된 성경을 16세기 종교개혁의 우두머리가 '신성의 회복'을 빌미로 '재단'(신성침해)한 것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문제의 복잡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예수 생전시의 '구약'은 46권이었다. 하지만 예수 사후 90년이 지날 무렵 유대교 학자들이 모여서 그들이 생각하던 바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성경' 7권을 '외경'이라하여 빼버리고 이러한 전통은 '개신교'로 이어진다. 하지만 예수는 46권의 성경 전체를 온전한 성경으로 받아들였고, 종교개혁 이전의 동, 서교회(지금의 카톨릭)도 마찬가지로 46개의 성경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를 핍박해서 못박혀 죽이게 했던 유대 학자들의 선택 - 구약 39권 - 이 개신교로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에 기독교인들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의 '신성'이 내재해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예수가 믿었던 46권의 구약 선경이 온전히 카톨릭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에 '신성'이 자리하고 있을 것인가?

이러한 얘기들은 기독교 교리가 만들어지던 당시의 권력의 작용, 공의회 결정의 모순, 종교와 맞물린 역사 문화적인 작용의 연속-단절-괴리를 지적함으로 ‘기독교’ 자체의 허구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역사와 각각의 인간주체의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신은 만유를 관장하는 그 보편타당한 힘으로 우리와 관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선 얘기들이 다 맞던지 다 틀리든지에 관계없이 이러한 잡다한 논란을 다 걷어낸 그 안에 신은 영롱한 빚을 내며 우리를 맞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는 ‘인간과 역사와 편견의 찌꺼기(결과물)’에만 매달려서 그것을 '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와 같이 종교와 역사는 '완결된 증명서'가 아니라, 끝없이 요동치고 맞물리며 다시 해체되고, 파뭍혀진 황야에서 고개를 들이 밀어 반석위에 굳건히 서있을라 치면 다시 무너져 내리는 특유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교리 자체가 시대와 장소를 거쳐오면서 바뀌고 뒤섞이고, 재해석되는 과정에 서로 상충하고 모순을 만들어 냄으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온전한 모습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 조차 없다.

이의 예측할 수 없는 '역동성'은 편협한 인간적 관점에서 감히 판단해야할 것이 아니지만,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는 것만 믿게끔 교육하는 사회에 적응해온 이들은, 그 편협한 사고의 잔존물(겉으로 보이는 '현재'-'한국'에서 유행하는 교리)에만 매달려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런 이들이면 이들일 수록 스스로 빠진 함정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 기독교가 그 믿음의 본질에 대한 성찰 없이 비본질적인 것에만 치우쳐져 있다 보니,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반생명적이고, 반민중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환경과 약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FTA나 이라크전쟁에 쌍수 들어 환영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지배자의 종교로 변질되어오던 ‘규격화(공인)된 기독교’가 자본과 권력 지향성을 갖게 된 영향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에 더불어 집단적인 무리근성을 가진 한국인들은 ‘욱’하는 여세를 몰아 더욱 규모화 되고, 성과주의적, 패권적인 성향으로 자신의 종교의 골격을 세워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무지’를 ‘용기의 원천’으로, 인간의 권력과 역사가 만들어낸 ‘교리’를 단단한 갑옷 삼아, 깨어나지 않은 정신으로부터 뿜어지는 독선을 휘두르며, 그들이 원하는 바의 ‘기독교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정복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믿음은 완결되어진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가 과거 100년, 200년 전에 믿었던 믿음과 앞으로 100년 200년 후에 믿을 믿음... 그리고 ‘여기’가 아닌 다른 나라에 태어나서 믿었을 믿음은 지금의 우리의 것과 상당히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공의 잔재 물과 나약한 인간의 경험의 산물을 걷어낸 그 너머에는 분명 우리가 믿어야할 믿음의 원형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 살아있는 믿음을 구하지 못하고 외형적인 것에만, 인간의 정치-역사적인 결과물에만 매달리는 믿음은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것인데, 아쉽게도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그 실마리를 풀 기회조차도 가지려고 하지 않고 있다. ‘내가 믿는 진실된 믿음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동어반복적인 환상에 빠진 체로...

'종교적 독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자세는 '우리 믿음은 완벽하다'는 무턱댄 신념이 아니라, 종교가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에 대한 역사-정치-문화적인 이해이다. 또한 그 종교적 교리가 만들어져왔던 과정에 대한 (역사-정치-문화적)이해를 통해서는, 자신의 믿음이 그 종교의 '정통교리'에 근접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지, 그러한 교리와 율법을 충실히 따르는 것 자체가 '신성'에 접근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더불어 그러한 교리와 율법에 충실한 것은 자신이 가진 종교의 기준에 의거한 '온전한 믿음'을 갖는 것일 뿐이지, 그러한 교리와 율법을 갖추지 않은 다른 종교에 '신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과도 전혀 별개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주의를 갖추지 못한 한국의 상당수 기독교인들은 루터가 개혁한 기존 교회의 병패를 다시 답습하고 있다. 즉 루터는 [신의 대리인인 교황- 주교는 필요 없고 오직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기존의 교회에 대한 저항을 통해 개신교를 성립시켰다. 하지만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시대를 다시 그 이전으로 되돌려서 '종교지도자'(목사)를 마치 신의 대리인으로 추종하면서 자신의 '숙고'와 '믿음'의 기회를 그 종교지도자들에게 위임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온전히 사색하고 행위하여 믿는 믿음이 존재하지 못하고, 자본과 권력의 작용에 자연스레 휩쓸려 집단적인 추종, 규모화, 승리주의적인 발상에 근거해서 타종교를 배척하고, 종단 내에서도 서로를 비하하는 종교적 독단이 가능했던 것이다.
유럽의 중세 암흑기를 되풀이 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는 급진적 개혁이 요구되고 있다. 물론 현재의 그 모습 그대로 세태에 야합해서 자신들 권력의 바벨탑을 쌓아가는 무리들(일부적극적종교지도자/다수의세뇌된신도들)이 이를 방해할 것이지만, 이 권력화된 세력의 독주를 막고 신도들에게 올바른 믿음을 돌려주기 위해서도 이는 꼭 넘어야할 장벽이다. 이를 위해서 작금의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독단'을 온전히 보임으로 종교개혁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선지자'의 등장이 절실히 요구된다.

댓글목록

권보님의 댓글

권보 아이피 (210.♡.99.25) 작성일

둥들이님,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깊이 공부하시고 또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저또한 님처럼 기독교 교리에 대해서는 상당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아니면 교리란 것에 대해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부류에 속합니다. 정말 이 교리를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이렇게 교리를 세워서 나의 가르침을 전하고, 교회를 만들어 오늘과 같은 형태로 가르침을 전하라고 하지 않으셨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 교리를 기반으로 소위 복음이란 것을 전하는 체제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과 피흘림이 수반되었을 것이며, 그 갈등과 피를 기반으로 오늘의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어설픈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크리스챤은 아마도 세상에 오직 한사람밖에 없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는 예수, 오직 한사람이란 생각이지요.

가르침을 펴는 스승과 그를 추종하는 집단이 형성되어 조직화되면 그곳은 자연스럽게 기독교나 다른 종교들처럼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갈등과 아픔이 수반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스승의 가르침과는 동떨어진 어떤 형태나 형상을 만들어 우상화가 뒤따르고요.....

오래전 선생님을 처음 뵙고 얼마지나지 않아 나누었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오늘 이렇게 선생님의 좋은 가르침을 받고 따르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이 되면 선생님을 따르는 분들께서도 교단같은 것을 이루어 조직화가 이루어지며, 그런 조직화된 기반속에 선생님께서도 교주처럼 되시지 않겠느냐고요. 그때 김기태 선생님께서는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답해주셨고 그 말씀을 지켜주셔서 무척이 고맙고 감사하며, 변함없는 존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지금은 선생님을 따르는 분들을 규합하여 조직화를 이루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일렁이고 있으니, 이게 바로 오늘의 기독교와 같은 종교집단의 형성초기의 제자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가족들의 방에 올린 제 글들속에도 그런 마음들이 녹아있는 것을 보며, 저또한 섬짓하답니다.

둥글이님의 좋은 글을 읽으며 생각나는 것들 적다보니, 장황하게 길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4) 작성일

참 생동감 있는 말씀을 해주셨군요. ^^ 제가 올린 말씀의 '실사버젼' 정되 되는 말씀입니다.

그게 참 묘한 듯 합니다.
'조직'이 없으면 '영향력'을 발휘를 하지 못하는데, 조직이 만들어지면 시간이 지나면서 야리꾸리해지거든요. ㅋㅋ

물론 '야리꾸리해 지지 않을 체계를 갖춘 조직'을 만든다면 문제는 해결될 터이지만,
과연 '야리꾸리해 지지 않을 체계'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아마 이는 '조직'(집단-무리)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모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식이 짧아서 그것까지는 많이 생각안해봤구요)


나름대로는 이러한 '조직의 관성'으로 인한 갖은 부조리와 불이익을 극복하기 위해서,
'주체-실존'적 인간상을 (우선은)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특히나 '집단주의'성향이 있기때문에 더더욱 말입니다.

물론 '주체적 인간'보다 더더욱 높은 인간 정신의 수준이 있기는 할 터이지만,
현재의 '집단성' '대중성'을 탈피한 '주체'가 우선 보편적으로 깨인 사회가 만들어져야만이
그러한 '새로운 인간'이 만들어질 길이 열리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 '새로운 인간'이라는 것은 '영혼이 자유로운' 인간이겠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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