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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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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윤 (211.♡.174.163) 댓글 0건 조회 5,613회 작성일 08-03-1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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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갑자기 옛날 설화들이 생각난다.


예컨대.. 단군설화의 웅녀 이야기.

학교에서는 토템 신앙과 결부시켜 곰족, 호랑이족과의 관계로 얘기하지만..

웬지 그 신화 속에는 동이족의 수준 높았던 영성이 숨어 있는 것 같다.


환웅이 신시를 열고 세상을 다스릴 때, 곰과 범이 한 굴에서 살며 사람이 되기를 청하였다. 환웅은 그들에게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개를 주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범은 참아내지 못하고 뛰쳐나갔고, 곰은 참아내 21일만에 여인으로 변하여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


쑥과 마늘은 정화도 시켜주고 힘도 북돋아주는 식물인 것 같다.

그런데 이것들은 쓰고 매운 맛을 가지고 있다.

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생마늘을 먹는 것을 상상해 보면.. 참 힘들고 눈물도 많이 날 것 같다.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끝까지 참아내야 한다.

그리고 사실 그 과정만 참아내면 된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바깥으로 뛰쳐나가지 않고..


다 말해주고 있는 것 아닌가?

참사람이 되는 길에 대해, 참사람으로 거듭나는 길에 대해,

그래서 신과 하나되는 길에 대해..


내 안의 고통을, 아픔을,

내가 싫어하는 내 안의 것들을,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한다. 꼭꼭 씹어서 먹고 소화시켜야 한다.

나 자신을 고스란히 대면해야 한다.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뛰쳐나가고 싶은,

고통스러운 이 과정을 견디고 또 견뎌야 한다.

어두운 동굴 안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

바깥으로 뛰쳐나가면 안 된다.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쓰면 쓴 맛을 느끼고, 아프면 아픔을 느끼고,

미칠 것 같으면 미칠 것 같은 채로 있고,

눈물이 흐르면 눈물을 흘리고,

그냥 그대로 있어야 한다.

날이 다 차기까지는...


호랑이는 어려울 것이다.

활동적이고 공격적이고 능동적이고 남성적인 호랑이는

가만히 있기도 힘들 뿐더러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말 것이다.


곰은 통과했다.

수동적이고 수용적이며 여성적인 곰..

동면을 할 정도로 가만히 있을 줄 아는, 인내할 줄 아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곰은

힘들고 괴로웠지만 마침내 통과했다.


그래서 거듭났다. 비약을 경험했다.

참사람이 되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다.

드디어 눈부시게 환한 세계로 나왔다.

신과 사랑에 빠졌고 마침내 혼인했다.

하늘과 땅이 하나되었다.

옥동자를 낳았다.


짧지만 모든 핵심을 다 담고 있는 듯한 이 근사한 이야기가

우리 곁에 있었다니... 놀랍다.


2007.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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