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금 4000원으로 봄을 사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그냥 (121.♡.214.39) 댓글 1건 조회 4,649회 작성일 08-03-19 11:59본문
일금 4000원으로 봄을 사다.
천리향 유묘가 상가 해 밝은 꽃집 노점에서 눈에 들어온다.
국수 같은 가녀린 목가지로 두 대의 꽃봉오리 연분홍색이 나에게 손짓을 한다.
이미 개화한 넉 장의 꽃 뺨 위로 코를 대니 할아버지 계시던 큰집 내음이 향긋하다.
얼른 지전 4장을 건네주고 조금 큼지막한 화분으로 옮겨 희죽대며 식구로 맞이한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유년시절 김해 큰집 마당 중앙에 제법 운치 있는 화단을 고모님이 가꾸셨다.
천리향 제법 큼지막한 나무가 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이맘때 대문을 지나쳐 발걸음을 옮기면 제일 먼저 천리향 꽃향기가 나를 맞아 준다.
코를 쳐 박고 한참이나 몽롱하였던 그 시절 그리움 한 자락이 내 책상위로 내려앉았다.
이미 봄은 왔다.
좋잖은 소식들로 봄이지만 내내 마음이 무거운 요즘이다.
네 모녀... 어린 초등학생.... 뒷말을 옮기지 못하겠다.
인두겁을 쓴 종자와 같이 존재해야하는 현실 이 사바세계가 갑자기 무서워진다.
일식집에서 살은 새우 한 마리도 제대로 먹지 못해 안절 부절인 나로써는 오로지
손만 떨릴 뿐이다.
부처님과 예수님이라도 저 종자는 용서 말아야 할 것이다.
경제사정도 오리무중이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여파가 일파만파이고 주가 환율 원자재가 폭등으로
뉴스만 보면 혼미할 지경인데 이노무 정치권은 한 술 더 떠서 지랄 옘병이다.
춘래불사춘 이다.
이런 지경에서도 대자연은 초심 그대로 산수유 그 노오람을 피워내고 대지를
물컹하게 만들고 부드러운 바람으로 내 볼을 쓰다듬으면서 위로를 보낸다.
내가 기대어 숨 쉴 곳은 자연적인 있는 그대로의 法 뿐이다.
산으로 가까이 갈 나이가 이제 발끝을 톡 건드린다.
인도에선 삶을 4주기로 나누어 마지막 네 번째 시기가 접어들면 가족과 가진 재산을
모두 훌 훌 털어버리고 산야신이 되는 풍습이 있다.
오렌지빛 천을 몸에 두르고 주문을 암송하며 하루하루 버리는 일상은 아름답다.
나도 마음속에는 나이 60이 넘어가면 삶을 버리고 버리는 작업에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
산골 한적한 토담집 해바른 곳에 오롯이 앉아 언젠가 확실하게 찾아올 손님 즉 죽음을
준비하다보면 시간이 흐르는 듯 아니 흐를 것이다.
친구가 연락이 온다.
지리산에 가자고 운을 띄운다.
1박2일 출가지만 나에겐 소중하다.
아침에 사무실 문을 여니 천리향 내음이 나를 반긴다.
잠시 번뇌망상을 내려놓았다.
오늘도 감사하옵게도 여일 할 것이다.
댓글목록
김윤님의 댓글
김윤 아이피 (211.♡.174.143) 작성일
그냥님, 봄 소식이 화사하네요.
덕분에 천리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천리향의 향기를 맡아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