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 이후에 제가 얻은 깨달음을 정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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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무개 (61.♡.241.138) 댓글 4건 조회 5,638회 작성일 11-02-23 10:53본문
39세 이후에 제가 얻은 깨달음을 정리 해보았습니다.
1. 연기 같은 존재가 사람의 생명의 옷을 입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기 같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생명의 옷을 입었다는 것. 원래 저 자신이 연기 같은 존재였기에 그 어떤 생명의 옷을 입어도 감사할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어도 좋고, 동물이어도 좋고, 곤충이어도 좋고, 풀이어도 좋고, 하루살이어도 좋고, 그 생명의 희열은 사람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생명 자체가 엄청난 신의 축복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하나다.
밀폐된 작은 지구라는 공간은 하나의 물을 먹고 살아가는 한 생명입니다. 내가 마신 물은 오줌으로 나와서 시내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증발되어서 구름이 만들어집니다. 그 구름은 지구 저편에서 비로 내려 다른 생명의 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람의 몸은 70%가 물입니다. 제 몸 안에 있는 물은 수십억 년 전에 사라진 공룡의 몸속에서 흐르던 물입니다. 그리고 저는 와니타의 몸에서 흘렀던 그 물이 오늘 내 안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3. 모든 인간은 완전한 존재이다.
저는 부모님의 작품이 아니라 신의 작품입니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면 불완전하게 만들어지게 되지만 저는 신이 만들었기에 ‘인간으로서 완전한 존재’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신은 절대로 실수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0~7세까지 성장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성숙해지기 위한 과정에서 필연 적으로 채워야할 이기성을 악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이기성을 채 채우지 못하고 도리어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어서 그 상처가 콤플렉스가 된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교당하면서 항상 부정적인 점을 지적당하면서 ‘넌 고쳐야 할 존재’로 세뇌해 왔기 때문에 콤플렉스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4. 신의 창조 목적에 따라 내가 창조되었다는 것
소금은 소금을 위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녹아서 짠맛을 내거나 음식을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 창조된 것입니다. 또한 나무도 나무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잘리고 다듬어져서 가구나 집을 만들기 위해 창조된 것입니다. 저 역시 저 자신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과 사람의 인연을 통해서 다듬어 져서 널리 이롭게 쓰기 위한 절대자의 설계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연과 일들을 콤플렉스 때문에 생긴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하려고 하기 때문에 절대자가 설계한 길로 가지 못하게 되어서 실패한 인생 성공을 해도 허무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이 행복해 질 수 있도록 하는데 쓰시기 위해 창조되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5. '나'의 주성분은 콤플렉스이다.
나를 소개할 때 ‘내 나이는...’ ‘내 직업은...’ ‘내 재산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등등의 말을 합니다. ‘나’라고 규정지어서 말 할 수 있는 것은 모두다 껍질이고, 콤플렉스입니다. 내 나이는 나가 아닙니다. 내 돈이 내가 될 수 없습니다. 내 직업이 내가 될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소개할 때에 그런 껍질만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껍질이 바로 자기 자신인줄 압니다. 모든 생명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듯이 ‘진짜 나’는 말로 설명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 설명되어질 수 있는 것은 모두 껍질이며, 모두 콤플렉스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껍질과 ‘나’가 동일시 되어있기 때문에 인생의 목적을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추거나 돈이나 명예, 권력 등으로 치장하는 일로 일생을 낭비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짜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껍데기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인생은 허무한 것’으로 결론을 짓게 됩니다.
6. 나는 어제 죽었을 지도 모를 생명이다.
저는 아침에 눈을 뜨고 바쁘게 출근 준비하면서 천변의 버드나무가 늘어진 길을 따라 운전하면서 출근을 합니다. 여유 있게 늘어진 버드나무를 바라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낌과 동시에 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벅찬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제 지구상에는 갖가지 사연으로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죽었지만 신의 보호 아래 저는 이렇게 살아서 생명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어찌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의 생명이라는 것이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이 너무나 나약한 존재인데 오늘의 이생명감은 신의 절대적인 사랑이 없이 이게 가능한 일인가? 다리가 하나 있어도 좋고, 눈이 하나 없어도 좋고, 생명을 입고 이 순간 펄떡거리는 것 자체가 벅찬 감사를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또 이렇게 하루를 허락하신 신께....
7. 나는 아무 것도 할 수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닌 너무나 나약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신의 허락 없이 어찌 눈을 깜빡일 수 있을 것이며, 먹은 음식을 소화를 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내 능력과 의지로는 그 무엇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신께서 맺어주는 일과 모든 사람의 인연에 무조건 감사합니다. 신이 허락한 일만 하고, 신이 허락한 사람을 만나고 신이 계획하신 일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내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발버둥을 칠 때에는 암울한 미래에 절망적으로 살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 후 신께 모든 것을 맡기고 보니 내가 계획할 필요도 없고, 내가 책임 질 일도 없었습니다. 신이 계획하신 일에 순종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생명감의 희열을 만끽 하는 일 이외에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행복한 봄맞이하세요.
산처럼...
나무처럼....
댓글목록
권보님의 댓글
권보 아이피 (59.♡.232.155) 작성일
참 좋네요.
이렇게 글을 올려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제가 그간 누리고 지낸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김영대님의 댓글
김영대 아이피 (222.♡.55.205) 작성일
아무개님 참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구절 구절 동감합니다.
내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발버둥을 칠 때에는 암울한 미래에 절망적으로 살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 후 신께 모든 것을 맡기고 보니 내가 계획할 필요도 없고, 내가 책임 질 일도 없었습니다. 신이 계획하신 일에 순종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생명감의 희열을 만끽 하는 일 이외에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이 부분의 글을 읽고서는 영화 벤허의 마지막 장면이 떠 오릅니다.
석양이 질 무렵 주님이 지팡이를 들고 앞장서 걷고 있고 그뒤를 따라 양떼들이 무리를 지어 평화로이 따라 가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도 그냥 양떼들처럼 따라가면 될입니다.
이해춘님의 댓글
이해춘 아이피 (112.♡.123.88) 작성일
오늘 한조각의 햄버거도 신의 주신것이요.
인연따라 온것뿐입니다.
내가벌어서 왔다고 생각마세요.
좋은법문 감사합니다,
뜨신밥님의 댓글
뜨신밥 아이피 (210.♡.154.8) 작성일
사람은 자기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각자의 세계를 살게 됩니다.
이 정의가 바로 자기자신이 되는 것이지요.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스스로 생각해낼수 있는 정의는 매우 협소합니다. 한정적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정의자체가 단정성이 심하고, 확신까지 가지고 있으면 그 한정성이 더욱 드러나게 됩니다.
저는 사람을 볼때 그 한정성의 두께가 두꺼우냐 엷으냐에 따라서 대화의 내용이 달리지게 되더라구요,